종도사/설교문

기대를 갖고 기도하며 기다려라 (창세기 25장 20절-26절)

하엘파파 2025. 3. 2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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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갖고 기도하며 기다려라

 

말씀본문 : 창세기 25장 20절-26절

20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24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말씀제목 : 기대를 갖고 기도하며 기다려라

 

 제가 성격이 진짜 급한 편이거든요. 뭐 이렇게 여유있게 있지를 못합니다. 뭔가를 하고자 했으면 그것에 대한 어떤 결과를 빨리 도출시켜내고 싶어서 그것을 위해 엄청 집중하고 엄청 움직인단 말예요. 그렇다보니 아주 큰 단점이 있는데 결과가 빨리 안나오면 불안해합니다. 결과가 원하는대로 나오지 않으면 엄청 실망하는거죠. 제가 저는 계획형 인간이라고 여러번 말씀드렸었는데요. 그 결과가 나오는 것까지도 시기와 내용까지 다 제가 계획을 하고 기대를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면 이때쯤에는 이러한 일들이 이렇게 일어날거야' 그러니까 이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엄청 움직이는데 그 계획대로 결과가 안나오면 불안해하고 실망할 수밖에 없는거죠.


 혹시 여기 계신 분들 중에도 저와 같은 성격을 가지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계획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좋은 것이라고 생각을 하긴 하는데요, 계획형 인간의 가장 큰 단점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멘탈이 나간다는 것과, 계획한대로 이루기 위해서 굉장히 예민해진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저의 이러한 성격들을 좀 많이 깨부수시더라고요. 지금도 여전히 그 과정 중에 있기는한데 참 쉽지는 않은거죠. 그래서 지금은 어떤 일들이 있을 때 물론 저도 계획을 짜고 어떻게 해나가야겠다는 목표를 갖고 삶을 살아가기는 하지만, 그 속에 저의 생각이 담긴 것인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를 보려고 하고요. 또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 속에서 좌절하고 절망하기보단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여주시려고 하는지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일들 속에서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야 할지를 깨달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난주까지 우리는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말씀에서 아브라함의 약속의 아들인 이삭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가 있는데요. 창세기에서 나오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대한 이야기를 볼 때, 아브라함이나 야곱에 비해서 이삭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뭐랄까요, 임팩트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인생이 막 롤러코스터를 탄단 말예요. 저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쭈욱 올라갔다가 또 떨어졌다가 올라갔다가.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은 더하죠. 밑바닥을 몇번을 찍는지 몰라요. 그런데 이 둘 사이에 있는 이삭의 인생을 보면 평온 합니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성경에서도 이삭의 이야기는 별로 그렇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 이것을 두고 여러 목사님들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바친 아들이기도 하고, 이삭 또한 자신이 번제로 드려질 제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반항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임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많이 받아서 평탄한 삶을 살게 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이 있는거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삭의 삶이 정말 뭐 아예 평탄하기만 했겠습니까. 그의 인생에도 어려운 일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오늘 본문 20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20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이삭이 몇세에 아내를 맞이했습니까? 사십 세에 아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보통 예전을 생각하면 결혼을 일찍하나요, 늦게 하나요? 네, 일찍합니다. 예전에는 결혼을 일찍했단 말예요. 그런데 이삭은 사십 세에 결혼을 한 것입니다. 뭐 때문에 이렇게 늦게 결혼한 것인지 성경은 자세하게 얘기하고 있지 않지만 창세기 24장에서는 이삭의 아내를 어떻게 맞이하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나오거든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 내용에 대해서 나누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24장의 끝에 가서 보면 이삭이 묵상을 하다가 리브가를 보고 첫 만남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오게 된 것인지 얘기를 쭈욱 듣고 나서 어머니께 소개해드리고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이 장면만 보더라도 이삭의 성품이 어떠했을지를 너무나 예상이 되는 것입니다. 평온함이 느껴지는 거예요.​

 아마도 그냥 상상해볼 수 있는 것은,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그의 인생의 세계관 속에 아주 명확하게 자리를 잡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떻게 나온 아들이었습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이었단 말예요. 어머니 사라는 90세에 아이를 낳을 수가 없는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때에 낳은 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시고 하나님께 자신을 정말로 죽이면서 바치려고까지 했던 그 하나님의 존재, 그 하나님의 이야기를 모르지 않았을 거라는거죠. 그러니 어려서부터 얼마나 그 부모로부터 믿음의 교육을 받았겠습니까. "너는 약속의 아들이다", "너는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아들이다", "너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웃음이다" 이런 얘기들로 그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얼마나 세워줬겠냐고요.

​ 그렇게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하나님에 대해 들어왔던 이삭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 같은 것들이 쌓여있다보니 별로 조급하지가 않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실 것이란 그 어떤 믿음이 있지 않았겠냐는거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직접 경험한 당사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급해하지 않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그 믿음으로 사십 세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이삭의 믿음을 엿볼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믿음으로 기다릴 줄 알았던 이삭에게도 아픔이 있었습니다. 2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그렇게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한 이후에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그렇게 세월이 계속 흐르는데 아이가 안생기는 거예요. 얼마나 안생겼습니까? 26절을 보면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계산이 빠른 분들 계산 한번 해볼까요? 이삭이 결혼할 때의 나이가 몇 세였습니까? 네, 사십 세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나이가 몇세였다고요? 네, 육십 세였습니다. 그럼 이삭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까지 몇년의 시간이 걸린 거예요? 네,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칠십오 세에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고향을 떠나게 되었었죠. 그리고 계속해서 자식이 태어나지 않자 팔십오 세에 사고를 쳤습니다. 하갈과 동침해서 이스마엘을 잉태하게 되는거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10년 기다리다가 자기 생각대로 움직여서 사고를 쳤단 말예요. 그리고 이후에 15년이 지나서 이삭이 태어납니다. 이렇게 아버지 아브라함은 10년을 기다리다가 사고를 쳤지만 이삭은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는동안 자신의 조급함으로 사고를 치는 일을 벌이지 않는거죠.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여호와께 간구"했다는 것입니다. 

 이삭이 어쩌다 한번 "하나님 저에게도 아이를 주세요. 아멘" 하고 기도했을까요? 두번 했을까요? 세번? 아니요. 20년이라는 세월동안 그는 기도하며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했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다는 거예요. 아버지 아브라함은 기다리다가 지쳐서 결국엔 사람의 생각으로 일을 저질러 버렸지만 그의 아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과 응답을 끝까지 기다리며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자세가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기도라는 것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닙니다. 마법의 주문이 아니라는 거예요. 금 나와라 뚝딱 한다고 해서 바로 뚝딱하고 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기도한다는 거예요. 나의 소원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일이 당장에 일어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통해 그 일들을 이뤄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끝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약속하신 일이 나타날 때까지 끝까지 그 약속을 믿고 기도한다고요. 그런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 생각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 일을 저지르는거죠.

​ 저희집에 차가 한대 있는데 그건 저희 패밀리카로 사용하는 차고, 제가 개인적으로 학교도 가고 출퇴근도 하고 해야되다보니까 편하게 탈 수 있을만한 차가 한대가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집사람에게 얘기를 했는데 지금 우리 집안 형편이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안되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리라는거죠. 그래서 기다립니다. 그런데 한달 두달이 지나가는데 사줄 생각이 없어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제가 모아놓은 제 비상금을 털어서 허름한 중고차로 경차를 한대 사게 된거죠. 말그대로 질러버린 겁니다. 그렇게 질러버린 차를 보면서 집사람이 이마를 짚고 혀를 차는거죠. 새차로 좋은 차를 사주려고 돈을 모으고 있었는데 이 멍청한 남편이 그걸 못참고 돈도 없는 게 자기 돈으로 허름한 중고차를 샀으니 얼마나 멍청해보이고 답답하고 안타까웠겠어요. 제가 와이프의 약속을 믿고 꾹 참고 기다렸으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새차로 좋은 차를 타고 있었겠죠. 그러나 이미 중고차를 사버렸으니 뭐 어쩌겠습니까. 저는 그 허름한 중고차를 타고 다녀야 되는거죠.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때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고 준비하시고 예비해두고 계신데, 우리가 그것을 못기다리고 일을 그르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힘과 능력으로 얻는 것이 좋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더 좋겠습니까?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요즘 또 뭐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너 뭐 돼?" 여러분 뭐 되세요? 뭐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까? 어마어마한 어떤 것들 가지고 계시냐고요. 우리가 아무리 대단한 것들을 해낸다고 해봐야 내 능력 안에서 하는 것밖에 더 되겠냐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뭐 되시는 분이시라는 거예요. 이 세상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분이시지 않습니까. 그런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내가 믿지 못하고 내 능력을 의지한다면 얼마나 미련한 모습이겠냐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준비하시고 예비하신 것을 바라보시면서 믿음으로 기다려보십시오. 여러분의 능력으로 얻으려고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들로 채워주실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믿고 기다리는 자에게 반드시 베푸시는 역사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계속해서 22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오랜 세월을 기도하며 기다린 끝에 리브가는 드디어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에야 미리 초음파를 통해서 아이가 얼마나 자랐는지, 아들인지, 딸인지 그런 것들을 알 수가 있지만 이 당시에는 그것을 알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으니 그저 임신한 사실만 알았겠죠. 그런데 리브가의 배가 너무 아팠던 것 같아요. 성경에서 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까?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뱃속에서 두 아이가 싸웠다고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 여러분은 아직 임신을 안해봤기도 하고, 임신한 배를 볼 일이 없으셔서 잘 모르시겠지만 임신을 하게 되면 아이가 그 안에서 움직일 때마다 배에서 그게 느껴지거든요. 저도 임신을 해보진 않아서 배 안에서의 느낌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바깥에서 보면 아이가 움직이는 것이 배 바깥으로 보인단 말이죠. 아이가 발로 차고 이런 것들이 보여지고 느껴진다고요. 그런데 리브가의 뱃속에 있는 이 두명의 아이가 서로 싸우고 있었으니 리브가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이 때 리브가의 모습을 보십시오. 뭐라고 합니까?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임신해서 배가 아프면 누구한테 물어봐야 합니까? 의사한테 물어봐야 되는거죠. 이 때 당시에 산파들이 있었을거잖아요. 아니면 먼저 임신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이쪽 분야에서 전문가들이 있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리브가는 누구에게 갔다고요? 하나님께로 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사소한 것일 수 있고, 뭐 이런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나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리브가의 입장에선 너무 힘들고 괴롭다보니 자신이 가진 사소한 문제까지도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선 어떻게 하십니까? 23절을 보겠습니다.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 사소한 문제라고 그냥 지나치셨습니까? "야 그런건 의사한테 물어봐" 하고 돌려보내셨나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선 그렇게 하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아간 자에게 대답해주시고 알려주시는거죠.​

 두 아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두 아이가 나중에 민족이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는 것까지 다 알려주시는거죠.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라는 거예요.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주님은 그것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들으시고 응답해주신다는 겁니다. 나의 일상에서 펼쳐지는 나만의 사소한 문제들까지도 주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가면 우리 주님은 그것에 대해 알려주시고 응답하시고 말씀해주신다는거죠.

 이 이삭과 리브가를 보면 너무 잘만나지 않았습니까? 이삭의 성품과 리브가의 성품이 너무 잘어울리는거죠. 이삭의 성품에 맞게 그에 딱 맞는 배우자를 붙여주셨다는 거예요. 참 재미있는 것은, 이삭과 리브가가 만나게 되는 그 이야기가 창세기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긴 절을 차지하고 있거든요. 창세기 24장인데, 24장을 보면 절수가 67절까지 있습니다. 그만큼 이 둘이 만나게 된 것은 단순한 인간적 만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루어가시는 일들 속에서 만나게 된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는 거예요. 부부가 서로 기도로 나아가는 모습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얼마나 예뻐 보이셨겠냐고요.​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신뢰함으로 오랜 세월동안 계속해서 기도하며 기다리는 모습을 나타내었고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어떤 일들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죠. 그저 하나님께서 이루실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린 것입니다. 리브가는 어땠습니까? 사소한 문제까지 하나님 앞에 물으며 나아갔습니다. 내게 벌어지는 일들에 사람을 통해 조언을 구하거나, 세상의 지식을 의지하지 않았어요. 하나님께 나아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도제목이 있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어떤 분들은, 너무 사소한 문제들이라서 차마 이런 것까지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에는 조금 민망해서 기도조차 하지 않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어요. 또 어떤 분들은 어떤 문제들 앞에서 기도보다는 내 생각으로, 내 능력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해결하려고 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곳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각자의 생각대로,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그 나름의 삶을 살아가고 계시겠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께 권면하는 것은 너무나 명확하고 심플한거죠.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기도하시라는 거예요.

 여러분의 눈 앞에 있는 문제, 여러분들의 어떤 걱정, 여러분들의 염려,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그것들 여러분들이 해결하시려고 하면 여러분들도 힘들고요, 그러고 있는 여러분들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도 얼마나 답답하고 힘드시겠어요. 저도 가끔 딸아이가 자기가 하겠다고 낑낑 거리고 있는 모습 보면 답답할 때가 있거든요. 아빠한테 부탁하면 아빠는 그냥 별로 힘도 안들이고 해결해내는건데 자기가 하려고 끙끙 거리고 있다고요. 그렇게 하다하다 못해서 아빠한테 부탁하면 아빠는 너무나 쉽게 해결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앞에서 설교하고 있는 저는 문제가 없겠습니까? 아니에요. 저도 문제가 많고요, 한숨밖에 안나오는 현실이 있습니다.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고 도저히 답이 없어보이는 일들 투성이인거죠.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 있을 때 그래도 예전과는 좀 달라진 마음의 자세가 있습니다. '이 문제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해결하실 것이다'

 물론 저도 연약한 인간이기에 불안할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하나님께서 분명히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당장의 해결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보니 그 기다림의 시간동안 때로는 불안하기도 하고 염려가 되기도 한다고요. 그럴 때면 하나님께서 그동안 내 인생 가운데서 나에게 행하셨던 일들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보면 지금까지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셨거든요. 그리고 좋은 것들로 다 채워주셨음을 돌아보게 되는거죠. 나에게 그렇게 행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다시금 믿음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래,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해오셨지', '그래, 이 문제도 하나님께서는 뜻이 있는 것이겠지', '그래, 이 문제를 통해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을거야' 이 마음을 가지고 다시 주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삭에게도 그러한 믿음이 있었다는 거예요. 자신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겪었던, 아브라함을 통해 보여주셨던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듣고 봤던 그 경험이 있었기에, 그 문제들을 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계속해서 기도하며 나아갔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며 기다리던 이삭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 저와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대를 가지고, 기도하며 기다리십시오. 사소한 것까지 주님 앞에 아뢰며 나아가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반드시 응답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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