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수단과 방법
말씀본문 : 창세기 27장 18절-29절
18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이르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19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20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21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
22 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23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24 이삭이 이르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25 이삭이 이르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26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말씀제목 : 잘못된 수단과 방법
말씀을 시작하기에 앞서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드려보고 시작을 하려고 하는데요. 여러분은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결과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떠한 상황이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겠지만, 요즘 시대에는 아무래도 결과가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를 낸다면 모든 것이 정당화가 되기도 하는 그런 일들을 보게 되기도 하는거죠.
물론, 과정도 중요하고, 결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과정 속에서 그 과정이 정당하지 못하고 잘못된 과정이 있었다면 아무리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별로 좋은 결과로 평가받을 수 없는 것이죠. 과정 속에서 잘못된 것들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댓가를 반드시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총동원해서라도 그 결과를 얻어내기 위할 때 사용하는 말이죠.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수단과 방법을 가려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려야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 보시기에 거리낌이 있는 일들이라면 멈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이 일을 행할 때 별로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 내 양심이 외치고 있다면 그것은 멈춰야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동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고 정비함으로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있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 나오는 내용을 전체적으로 훑어보고자 합니다. 이삭이 어느날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맛있는게 먹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맏아들 에서를 부르는거죠. 그러고선 에서에게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밖에서 사냥 좀 해가지고 맛있는 음식 좀 만들어와라. 내가 죽기 전에 너한테 마음껏 축복을 해야겠다" 이러는 겁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앞에 '이삭이 어느날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아마 교회를 좀 오래다니시고 이 내용을 알고 계시는 분들은 너무 당연스럽게 이삭이 거의 죽을 때가 다 되어서 죽기 전에 마지막 유언처럼 말하는 그런 모습을 상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이게 참 재밌거든요. 성경에 나오는 이삭의 멘트대로 보면 진짜 에서가 해온 음식 먹고 바로 오늘 내일 할 것 같은 그런 모습이 그려지잖아요? 그런데 이 사건이 있고 나서 야곱이 도망치고 거기서 결혼하고 애 낳고 다시 돌아오고 뭐하고 뭐하고 할 때동안 이삭이 계속 살아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이 창세기 27장인데, 이삭이 죽는 내용은 35장에 가서 백팔십 세에 죽게 되거든요. 그렇다는 것은 아까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이삭이 당장 오늘 내일 죽을 것 같은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삭이 이날따라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그냥 맛있는게 먹고 싶어서 맏아들 에서한테 그렇게 얘기한건지 모르지만 아무튼 에서에게 사냥해서 맛있는 음식 해오면 마음껏 축복을 하겠다고 얘기를 한 것이죠. 그런데 하필 이삭이 이 얘기를 에서에게 말하는 것을 리브가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가 어떻게 합니까? 부랴부랴 이삭을 찾더니 빨리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서 아버지한테 가서 축복기도를 받으라고 하는거죠. 그러고선 아주 치밀하게 야곱을 에서처럼 변장까지 시킵니다.
야곱은 곱상하게 생기고 털도 없고 목소리도 얇고 그랬던 것 같아요. 요즘 시대로 얘기하면 기생오래비 같은 느낌이었을까요. 그런데 그에 반해 에서는 털도 많고 목소리도 굵고 그야말로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상남자같은 느낌이었겠죠. 그러니까 야곱이 어머니한테 그 얘기를 듣고도 선뜻 움직이질 못했던 것이, 형은 털도 많고 그런데 나는 털도 없어서 아버지가 아무리 눈이 안보여도 만져보면 아시지 않겠냐, 복은 커녕 저주 받는거 아니냐 이러면서 무서워한단 말예요. 그런데 엄마인 리브가가 걱정하지 말라면서 에서의 옷이랑 양털이랑 붙여가지고 속일 생각을 하는 겁니다. 참 치밀하게도 준비하는거죠.
그리고 이제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버지 이삭을 속일 준비를 하고 야곱이 아버지 방으로 들어가는거죠. "아버지"하고 들어가니까 이삭이 귀도 안좋았는지, 아니면 야곱이 목소리를 바꿔서 말했는지, 이삭이 "네가 누구냐"하고 물어보니까 야곱이 "에서입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신대로 내가 사냥한 고기로 맛있는 음식을 해왔으니 드시고 축복해주세요" 라고 대답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삭이 좀 이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물어봅니까?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느냐?" 라고 물어보는거죠. 사냥하고, 요리하고 하는 시간이 있을텐데 너무 빨랐던 것 같아요. 이 물음에 야곱이 뭐라고 대답합니까?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순조롭게 빨리 잡았습니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 하나님까지 그냥 팔아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이삭도 뭔가 좀 찝찝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에서가 맞는지 만져보겠다고 가까이 오라고 하더니 이곳 저곳을 만져보는거죠. 그런데 털이 수북하게 있는 것이 느껴지니까 이삭이 하는 말이 뭐라고 합니까? "음성은 야곱의 음성인데 손은 에서의 손이구나" 이 때 야곱이 얼마나 깜짝 놀랐겠어요. 그러고선 이삭이 다시 묻습니다. "네가 정말 에서냐?" 이삭의 이 물음에 야곱은 또 대답을 하죠. "네 그렇습니다" 이삭은 찝찝함이 있었지만 에서가 맞다고 하니, 그리고 자신이 만져봤을 때 털이 수북한 것도 느껴졌고 하니 그가 해온 음식을 먹고 에서라고 속인 야곱에게 축복기도를 해주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여러분은 어떤 것들을 느끼게 되었습니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맘 같아선 한명 한명 다 물어보고 싶은데, 그렇게 물어보기에 시간이 없기도 하거니와 그렇게 물어봤을 때 여러분들이 대답을 하지도 않을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가긴 할텐데요.
저는 이 말씀의 내용을 통해서 묵상하는 가운데 여러분들에게 전해줘야 할 분명한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질문을 드려볼게요. 야곱은, 이삭의 축복기도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된 것일까요? 조금 바꿔서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이지 않고, 그냥 에서가 사냥을 해와서 음식을 해가지고 아버지 이삭에게 줬다고 가정을 해봤을 때, 그래서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기도를 해줬다고 했을 때, 그랬다면 하나님께서 야곱이 아닌 에서에게 복을 내려주셨을까요?
저는 조심스럽게 "아니요"라고 대답을 해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제 대답에 대한 근거로 창세기 25장 23절의 말씀을 제시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뭔가 낯이 익은 구절이죠? 네, 맞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에 읽었던 본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들이 리브가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미 이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미리 알고 계시고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에서를 속이고 이삭을 속여서 그 축복기도를 받았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복을 받게 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삭의 기도로 인해서 에서가 야곱을 섬기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계획과 약속이 있었다는거죠.
여러분, 이 이야기가 정말 야곱이 에서와 이삭을 속여서 이삭으로부터 축복기도를 받아서 야곱이 복을 받게 된 내용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굉장히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이야기대로라면 우리는 결과만 좋으면 되는 거예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들을 속이고, 짓밟아서 나만 잘되면 된다는거죠. 그 과정 속에 내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팔아먹어도 된다는 겁니다.
야곱이 한 짓을 보십시오. 형이 없는 사이에 철저하게 계획을 해서 범죄를 실행한 것이라고요. 세상의 법에도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와, 계획적으로 저지른 범죄는 형량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어떤 범죄가 더 무거운 처벌을 받습니까? 계획적으로 저지른 범죄가 더 무거운 처벌을 받는 겁니다. 그말은 뭐예요? 더 나쁘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철저하게 계획을 했죠. 형이 나간 사이에, 형의 옷을 입고, 형처럼 분장을 해서, 형인척 아버지에게 접근해서 형이 받아야 할 기도를 훔쳤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그 뒤에 보면 그러고선 멀리 도망치기까지 해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시키게 되면 너무 위험한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해서 어떻게든 하나님의 복을 누리면 된다는 얘기가 되는거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시기 위해서 이 말씀을 기록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시죠.
이 말씀은 사람의 생각으로 움직인 사람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조심스러운 말씀이지만, 만약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기도를 해줬다고 해도,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려고 이미 계획해 놓으셨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이미 약속을 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혼자 조급해서 그렇게 사람의 방법으로 그 일들을 행하며 나아갔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집니까? 다 망가지는거죠.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버리잖아요. 아버지는 충격을 받죠. 형은 분노에 휩싸여서 죽이네 살리네 하고 있죠. 그것에 자신은 무서워서 집에서 떠나 도망자 신세가 되어버리죠. 어머니 리브가는 아버지와 큰 아들 사이에서 얼마나 그 마음에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겠냐고요. 야곱이 친척집으로 도망가 있는 동안 이 집에 남아있는 이삭과 리브가와 에서의 사이는 어땠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에서 입장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어머니가 얼마나 원망스럽겠어요. 아버지가 얼마나 원망스럽겠습니까. 이 집안이 평안했겠어요? 화목하게 지냈겠습니까? 그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서 집안에 있는 가족간의 관계가 완전히 다 망가져버렸다는 겁니다.
야곱 자신은 어땠습니까? 편히 지내던 집에서 도망쳐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외삼촌 집에 가서 눈치밥 먹으면서 산다고요. 그리고 그곳에서 또 어떻게 지냅니까? 나중에 말씀을 함께 나누게 되겠지만, 외삼촌과도 속고 속이는 관계가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거기서도 또 도망쳐 나오는 신세가 된다고요. 그러면서 얼마나 이런 저런 고생을 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몸도 마음도 다 고생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거짓말을 한번 시작했더니 그 다음에도 거짓말, 그 다음에도 거짓말, 거짓말이 거짓말을 계속 낳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된다고요. 여러분, 거짓말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한번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 거짓말은 또다른 거짓말을 계속해서 낳게 되는거죠. 야곱도 보십시오. 거짓말을 한번 했더니 그 거짓말이 어디까지 갑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까지 말하게 되는, 하나님을 내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그런 모습까지 가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결국 그 거짓말로 인해서 자신도 다른 이들에게 거짓말로 당하게 되는 일들도 겪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면, 나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내 눈에 피눈물 흘리게 되는 일들을 겪게 된다고요.
물론,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복을 부어주셔서 나중에는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시고, 또 이 이름을 통해 하나의 민족을 세우시고 나라를 세우시는 그런 복된 일들을 보여주시기도 하지만,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루어가실 일들이었음에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계획으로,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지혜로 움직인 결과로 인해서 자신은 물론 가족 전체가 힘들어지는 그런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번 이런 생각을 해보자고요. 만약, 시간을 돌려서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에게 가서 지금 아버지가 형에게 축복을 하려고 하시니까 너가 빨리 음식하고 변장하고 해서 아버지를 속이고 그 축복을 빼앗아서 받으라고 했을 때 야곱이 다른 행동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어머니, 형과 제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셨다면서요. 그럼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루어주시겠죠. 그렇게 속여서 형이 받을 복을 제가 훔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별로 기뻐하는 방법이 아닐 것 같아요. 형에게 축복하시려는 아버지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약속하신대로 이루실 것을 믿고 그냥 기다려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형을 축복해주시고, 저도 축복해주시겠죠. 걱정마세요 어머니" 뭐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한다면 어땠겠습니까. 그러고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면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기다림으로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갔다면, 하나님께서 그 야곱을 가만히 두셨겠습니까?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했기 때문에 에서에게 그 모든 복을 다 주셨을까요?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야곱이 저질렀던 행동은 너무나 안타까운 행동이지 않았냐고요.
말씀을 준비하면서 항상 참 감사한 것은, 이 말씀으로 인해서 제일 은혜받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죄송하지만 제가 생각할 때는 저인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으로 하나님의 생명의 진리된 그 말씀을 최대한 영양가 가득하게, 맛있게 요리해서, 배부르게 먹여주려고 준비를 합니다만, 그 과정 속에서 제가 참 은혜를 많이 받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되거든요. 최근 몇주동안 계속해서 말씀을 통해 공통적으로 보여주시는 내용이 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키워드를 몇개 뽑아본다면 '약속', '신뢰', '기다림'에 대한 키워드가 계속 맴도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현재 굉장히 좀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는 문제가 있거든요. 그 문제를 생각하면 참 답답하고 제가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라서 그저 막막하기만 한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예배를 준비하는 가운데서 말씀을 통해서 저에게 계속 말씀해주고 계신 것 같아서 참 은혜가 되고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한숨이 나오다가도 말씀을 통해서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보는거죠. '그래, 이거 어차피 내가 이 문제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만 더 커진다.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시고 보여주실 때까지 기도해야지. 하나님, 저 기도할게요. 하나님, 저 기다려볼게요'
지난주에도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께 고백했습니다만, 저는 정말 기다리는 것을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지난주에 나눴다시피 중고차를 구매하게 된 예시를 드리면서 저의 부족한 모습을 고백했던 것처럼 뭔가에 대해서 기다리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하는 겁니다. 뭔가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가 빨리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단 말이죠. 내 눈 앞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되면 그것을 빨리 처리해야 될 것 같아서 마음이 급해지는 거예요. 그러다 시야가 좁아지고 어두워져서 해결이 아닌 일을 더 그르치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내가 그렇게 망쳐놓은 그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멋있게 작품으로 그려내시더라고요. 완전히 망가진 것 같은 그 낙서같은 일들도, 하나님께서 만지기 시작하시면 너무나 멋있는 작품으로 만들어 내시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이제는 말씀을 붙잡고 기다려보는 거예요. 하나님은 반드시 해결해주시는 분이심을 계속해서 경험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겪고 있는 이 문제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실 것이라고 믿고 기다려보는거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 중에도 혹시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 가운데에 힘들어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들 앞에서 한숨만 나오는 일들을 겪고 있는 분들이 계신가요. 오늘 말씀으로 인하여 위로를 얻으시고 힘을 얻으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을 바라보시고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요. 주님이 모르시지 않습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결과만 좋으면 된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의 말들에 속으면 안됩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나의 생각으로 잘못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게 되면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심을 믿으십시오. 여러분들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여러분들의 능력으로, 여러분들의 생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마세요. 세상에서 말하는 방법으로, 나의 지혜와 나의 속임수로 무언가를 얻어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누군가를 속이면, 나도 누군가에게 속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런 방법으로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선 여러분들에게 복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누군가를 속임으로, 누군가를 이겨냄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약속으로 부어주시는거죠. 어떤 문제가 내 앞을 가리울 때, 어떤 욕심이 내 앞을 막아설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가 보세요.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 보십시오. 하나님께선 여러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러분들의 마음을 아시고,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하시고 예비해놓으신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계획하신 때에 마음껏 부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부어주실 은혜를 기대하며, 소망하심으로, 세상의 방법과 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실 때에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으신 복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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