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말씀본문 : 마가복음 16장 1-8절
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말씀제목 :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은 여러분 모두가 너무 잘 알고있는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절기인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부활절이라는 것은 성탄절보다도 더 중요한 날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중요한 날이라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성탄절, 즉 크리스마스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 날을 즐깁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크리스마스라는 날에 대한 어떤 설레임이나 기쁨같은 것들이 있다는 거예요. 물론 잘못된 설레임과 기쁨이긴 합니다만, 아무튼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내용은 우리가 나중에 또 나누게 될 것이겠고, 그렇게 크리스마스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다 그 날을 기념하고 즐기는 반면, 부활절이라는 날은 믿음의 사람들만이 기뻐하고 즐길 수 있는 날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줄 아시나요? 의외로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왜 우리가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인지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성경에 보면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는데 안식일이 언제인가요? 아니, 안식일이라는 것이 왜 생긴 것입니까? 우리 기초부터 배워보자고요. 안식일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쉬신 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고 쉬셨나요? 천지 만물을 6일간 창조하시고 7일째 쉬셨다는 거죠. 그래서 일월화수목금토요일 중에 7일째가 되는 토요일이 안식일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내용을 들었을 때 여러분 좀 혼동이 오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 그럼 토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되는데 우리는 왜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거지?'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는거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날이 금요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난주간 때의 금요일을 '성 금요일' 이라고 얘기하기도 하는 거예요. 그렇게 금요일에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3일째 되는 날, 즉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에 부활하신 것을 기념해서 오늘날 우리가 일요일을 '주님의 날'이라고 해서 한문으로 '주인 주'자에 '날 일'자를 써서 '주일'이라고 부르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부활절이라는 것은 기독교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너무나 중요한 요소라는 거예요. 우리가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부르면서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다시말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그것을 믿는다는 의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여러가지 국가공휴일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3.1절'과 '광복절'은 다른 공휴일들에 비해 조금 더 의미가 있는 날이라고 말할 수 있을텐데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나라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싸워냈던 날을 기념하고 더이상 식민지 국가가 아닌 독립국가로서 광복하게 된 날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제가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3.1 운동'이 진짜 있었습니까? 여러분들 3.1 운동 보셨어요? 여기 계신 여러분들 중에 3.1 운동 보신 분들은 아무도 없으실 겁니다. 왜냐면 그 사건은 1919년에 있었던 사건이거든요. 100년 전의 일인데 여러분들은 그 사건을 보지도 못했으면서 그 사건이 있었는지 어떻게 믿으시냐고요.
저는 그 사건을 직접 눈으로 보지도 못했고, 100만명에서 200만명 정도가 거리에 나와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는게 너무 허무맹랑한 말인 거 아닙니까? 그냥 지어낸 얘기 아니에요? 라고 얘기를 한다면 여러분들은 아마 오늘 예배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셔서 부모님께 이렇게 얘기를 할 것입니다. "엄마, 우리 교회 전도사님 좀 이상한 사람같애." 왜그러겠어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건이고 모두가 인정하는, 너무나 당연하게 있었던 사건에인데 그것을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못믿겠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을 믿는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것을 못 믿는 그 사람이 이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는 거 믿으세요? 어떻게 믿으세요? 보신적 있으신가요? 배 열두척 가지고 일본 수군의 배 330척을 이겼다는데 너무 허무맹랑한 얘기 아닙니까? 말이 안되잖아요. 그냥 누군가가 지어낸 얘기겠죠. 열두척으로 어떻게 330척을 이길 수 있냐고요. 말이 안되는 얘기잖아요. 그걸 어떻게 믿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에 여러분들이 대답할 수 있는 대답이 무엇이겠습니까? '기록'과 '증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사실을 근거로 한 기록이 있고, 그 기록을 통해, 그것을 경험하고 목격한 '증인'들로 인해 우리는 그 사실을 '진짜' 있었던 사실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직접 보지 못했고, 내가 비록 직접 체험하지 못했고, 내 생각엔 도저히 믿지 못하겠는 얘기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사실을 바탕으로 한 기록과 목격담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진짜 있었던 사실로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혹시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3.1운동이 있었다고 믿고 있고, 이순신 장군을 너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앞에 말씀드린 3.1절이라든가, 이순신 장군이라든가 이러한 내용들에 대해서 그것을 믿지 못하고 그냥 전설처럼, 신화처럼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3.1 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고 믿고 있고 자랑스러워 하는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하고 존경하고 이 나라를 지켜준 것에 대해 감사해 한다고요.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을 믿으십니까? 아멘. 우리는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3일만에 부활하셨다는 사건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는 교회를 다니는 의미가 없는 거예요. 아무리 찬양을 뜨겁게 부르고 기도를 하고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냥 나의 마음에 평안을 위한 어떤 종교행위, 종교활동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취미생활 하는 것처럼 그냥 종교생활 하는거죠.
많은 사람들이 2천년 전에 예수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그가 실천했던 여러가지 사랑과 섬김의 모습을 사람들도 인정하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뭐라고 부릅니까? '4대 성인'으로 지칭하고 부르는 거죠. 공자,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그들과 같은 선상에 놓고 사랑을 실천한 인물로서 예수를 그들 가운데에 놓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사람들도 인정을 한다고요. 그런데 세상의 사람들이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부활'의 사건인 거예요. 사랑으로 많은 이들을 고치고, 그들을 품고 뭐 그런건 알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부활은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 세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거죠.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은 실제로 있었던 사건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앞에서 3.1운동이니 이순신 장군이니 했던 얘기들이 바로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렇게 구구절절 얘기를 했던 것입니다. 말도 안되는 사건이죠. 사람이 어떻게 부활을 합니까? 어떻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겠냐고요. 그러나 여러분,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는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어도, 내가 그 상황을 겪지 않았어도 누군가의 기록들을 통해, 누군가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그 사건을 인정하고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경 속에서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사건을 직접 겪은 이들이 그들의 입으로, 그들의 손으로 전파하고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1세기 당시에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걸리게 되면 감옥에 갇히거나 사형을 당하곤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사자들의 밥이 되고 산채로 몸에 불을 붙여서 거리의 등불이 되었다고요. 여러분 같으면 그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 믿는다고 하시겠어요? 그렇게 내 목숨을 걸고 예수님 믿겠다고 하겠습니까? 초대교회 당시로 갈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어요. 조선시대 당시에 외국인 선교사들이 이 조선이라는 땅에 예수님 전하겠다고 와서 낯선 땅에 배에서 내리자마자 죽은 선교사들도 있었고,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끌려가서 낯선 땅에서 죽임 당하고 그랬다고요.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렇게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지켜낸 이유가 뭐였겠냐고요. 그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 놀라운 비밀을 알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놀이동산 한번쯤은 가보셨을 것입니다. 회전목마처럼 가벼운 놀이기구들도 있지만 보기만해도 무시무시한 놀이기구들도 있는 거죠. 후룸라이드 아시죠? 여러분 후룸라이드 타보셨어요? 그정도는 탈 수 있죠? 바이킹, 바이킹정도도 거의 타보셨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좀 난이도를 올려서 자이로드롭 타보셨나요? 조금 더 올려볼까요? T익스프레스. 저는 T익스프레스는 못타봤는데 타보신 분 계신가요? 마지막 하나만 더 해보겠습니다. 혹시 스카이X 타보신 분 계십니까? 와 저는 이거 한번 타보려고 시도했었는데 멀리서 볼 땐 모르겠는데 가까이 가면 갈 수록 그 높이가 진짜 어마무시해서 매표소 앞에 딱 가서 보니까 도저히 못타겠더라고요. 포기했습니다. 그 놀이기구들의 안전을 완전히 믿는 사람들은 그 기구를 통해 재미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완전히 믿는 사람들은 그것이 무서운게 아니라 재밌는 놀이기구에 불과한 거죠. 그 놀이기구를 타고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놀이기구의 안전띠가, 안전바가 나를 지켜주고 그것을 즐기고 난 뒤에 나는 무사하게 다시 돌아올 것을 안다는 거예요.
물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죽음을 놀이기구처럼 생각을 하진 않았겠지만,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 뒤에 있을 천국에 대한 소망이, 부활에 대한 소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었다는 거예요. 그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도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 그런 선택을 한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선택을 한 사람들이 한명, 두명 정도도 아니고 백명 이백명 정도도 아니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며 죽음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을 목격한 여인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들은 무엇을 하러 예수님의 무덤을 방문했습니까?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러 간 것인가요? 아닙니다. 죽은 예수님을 만나러 간 것이었어요. 죽은 시체에 바를 향품을 가지고 그 무덤을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걱정한 것은 무덤을 막고 있는 그 큰 돌문을 누가 옮겨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들은 힘이 약하니까 돌문을 열 힘이 없는 거죠. 그래도 어찌 저찌 해보려고 한 것인지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한 것인지 아쨌든 이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걱정과 근심과 두려움을 가지고 그 무덤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의 이유는 무엇이었겠습니까? 예수님은 모든 유대인들이 다 모인 그 예루살렘에서 공개적으로 처형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너무나 큰 뉴스거리로 비참하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단 말예요. 그렇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거나 그의 추종자들 또한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똑같이 잡혀서 처형을 당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두려움으로 인해 다 도망치고 숨어있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이 여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시체에 바를 향품들을 가지고 위험을 무릅쓰고 무덤을 향해 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착해서 보니까 돌문이 열려 있는 겁니다. 그리고 무덤이 비어있는 거예요. 예수님의 시체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어떤 하얀 옷을 입은 청년이 있는 거죠. 그리고 그 청년이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 6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거예요. 여기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 눈으로 보라는 거예요. 여기가 예수님의 시체가 누워있던 곳이지 않냐는 거죠. 그리고 이어서 말하는 것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7절입니다.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예수님이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미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얘기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찾아보겠습니다. 마가복음 14장 27절과 28절입니다.
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진짜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미 얘기를 하셨던 겁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이 마가복음 몇장입니까? 16장이었죠. 그리고 방금 우리가 읽은 말씀은 몇장이에요? 14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이미 먼저 제자들에게 얘기를 다 해주셨던 거예요. 스포일러를 이미 했었다고요. 그런데 이 말씀을 기억한 제자들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왜그랬을까요? 못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3년 반동안 같이 다니면서 예수님이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시는 것을 제자들은 눈 앞에서 봐왔습니다. 맹인을 눈 뜨게 하시고, 병자들을 고치시고, 오천명을 먹이시고,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고 그런 별의 별 기적들을 다 봐왔어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건 그렇게 막 마음에 와닿을 정도로 믿을만한 내용이 아니었던 거예요. 예수님께서 저 말씀을 하시고 뒤에 제자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볼까요? 29절과 31절을 보겠습니다.
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지금 제자들은 뭐에 꽂혀있어요? 자기들이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는 얘기에만 꽂혀서 "저는 절대 안그럴 겁니다!" 이러고 있는 거예요. 정작 중요한 얘기는 뒤에 하신 말씀이지 않냐고요.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제자들이 이 말씀을 믿고 기억하고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난 뒤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었겠습니까. 만약 제자들이 이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을 보고 어떻게 했겠어요? 갈릴리로 가서 예수님 만날 생각하고 있었지 않았겠습니까. 마가복음 14장 28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제자들이나, 오늘 본문에 나온 여인들이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이 말씀을 기억하고 이 말씀을 믿고 있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이들에게 있어서 두려움의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의 놀라운 부활의 사건을 바라볼 수 있는 소망의 사건이 되는 것 아니었겠냐는 거예요.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정말 고난을 당하셨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정말 십자가에 달리셨구나' 그러한 생각 뒤에 이런 생각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이제 살아나시겠구나', '이제 갈릴리로 오시겠구나' 이 생각을 하고 갈릴리로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생각에 기쁨과 소망이 넘치지 않았겠냔 말입니다.
여러분, 삼성의 이재용 회장이 책을 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이렇게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 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고 했을 때, 여러분 그 책의 내용대로 하시겠습니까, 안하시겠습니까? 아마 너무 어렵거나 무리한 내용이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이 그 책의 내용대로 따라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만드셨는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사람이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기록해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말씀해주신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라는거죠.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눈 앞의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서 세상이 얘기해주는 불확실한 내용들로 여러분들의 삶을 불안과 염려 속에 살아가도록 선택하시겠습니까, 너무나 확실하고 정확하게 얘기해주고 있는 내용들로 여러분들의 삶을 감사와 은혜 속에 살아가도록 선택 하시겠습니까? 너무 당연한 대답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세상에서 말하는 말들을 좇고 있지 않냐는 거예요. 세상이 말하는 불확실한 가치관에 여러분들의 인생을 쏟지 마십시오. 세상이 말하는 잘못된 가치관에 여러분들의 시간을 쏟지 마세요. 여러분들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고, 누구보다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보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보시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의 인생의 시간을 그 말씀 속에 쏟아보세요. 하나님께서 그런 열심을 내는 자의 인생을 절대 가만히 두지 않으실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앞에 계속해서 약속하시고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통해 나눠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여 마찬가지로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거죠.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이신 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말씀'으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이루시는 분이시죠. 그 모든 말씀하신 내용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그 일들을 증거하고 있고 그 일들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은 신화 속 이야기가 아니고, 전설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이며 이 일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도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자들임을 믿으십시오.
죽음까지도 이겨내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들을 다 이기게 하시고 승리케 하신다고 말씀해주셨으니 절망 가운데에서도,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약속하시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말씀하신 대로 이루실 주님을 바라보시고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결국 그 모든 일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시면서, 주님의 사랑에 화답하며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 하나님과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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