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벧엘로

말씀본문 : 창세기 35장 1절-15절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6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8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10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13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14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5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말씀제목 : 다시, 벧엘로
야곱은 형이 가진 장자권을 항상 부러워하고 가지려 했던 인물입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먼저 태어나려고 쌍둥이 형 에서와 싸우다가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났었죠. 그래서 이름도 '발뒤꿈치를 잡은 자' 라는 뜻을 가진 야곱이라고 지어졌어요. 이후에 세월이 흐른 뒤, 아버지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기도를 해주려고 하자, 야곱은 에서가 사냥을 나간 사이에 에서인척 변장을 하고 아버지를 속여서 형이 받았어야 할 축복기도를 가로채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에서는 분노하게 되고 야곱을 죽이고자 하는 거죠. 그래서 결국 야곱은 형을 피해서 외삼촌네 집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외삼촌 집에 머무르면서 2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고 자신의 고향 땅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데, 고향으로 가는 길이 편하지만은 않았죠.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에서라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계속 있었던 것입니다. 점점 고향 땅이 가까워질 수록 그 두려움은 커져만 가는 거예요. 그래서 야곱은 그 두려움 가운데서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를 하는 거죠.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붙잡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씨름도 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 이름을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로 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에서를 만나게 되는데 걱정과 달리, 형과 만나자마자 서로 부둥켜안고 울면서 반가워하면서 감동의 재회를 하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지난 시간동안 계속해서 나눴던 말씀의 내용입니다.
야곱은 그렇게 가장 두려워했던 형과 아무 문제 없이 재회하게 된 이후에 형은 형대로, 그리고 야곱은 야곱대로 각자의 땅에서 평화롭게 살게 됩니다. 그야말로 고생 끝 행복의 시작 같은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사실 야곱이 고향 땅으로 올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형 에서와의 갈등 때문이었잖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평생을 가슴에 가시처럼 가지고 있던 형과의 갈등이 다 해소가 되었고, 아내들도 있고 재산도 넉넉하고 자식들도 많이 낳았으니 이제 정말 그냥 탄탄대로의 인생만 펼쳐질 것 같잖아요.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성경에서 자세한 기간을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성경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대략 8~10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갔을 것으로 추정을 하는 그정도 기간이 지난 어느날, 야곱의 자녀들 중에 디나라는 딸이 세겜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습니다. 그냥 구경하러 간 건지, 아니면 친구들 만나는 것처럼 친구들을 만나러 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놀러 나갔다가 그곳에서 그 땅의 추장으로부터 강간을 당하게 되는 거예요. 성폭행을 당하게 된거죠. 그런데 그 추장이 디나가 너무 맘에 들었나봅니다. 디나와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추장의 아버지가 야곱을 찾아와서 자신의 아들과 디나가 결혼을 하게 해달라고 요구를 합니다. 그러면서 서로 평화협정을 하자는 거예요. 우리 자녀들도 너희 자녀와 결혼하게 하고, 너희 자녀도 우리 자녀와 결혼하게 하면서 함께 이 땅에서 서로 좋게 좋게 지내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실 것 같으신가요? 우리 남자 분들, 내 누나가 혹은 내 여동생이 홍대에 놀러갔다가 어떤 남자한테 성폭행을 당하고 왔어요. 그런데 그 남자가 자기가 책임질테니 서로 잘 지내보자고 웃으면서 오면 여러분들 좋은게 좋은거지 하면서 환영하고 맞이하겠습니까? 그래도 부잣집 아들이니 다행이라고 하면서 누나나 여동생한테 축하한다고, 어차피 저질러진 일이니 어쩌겠냐며 그냥 좋게 좋게 하는 걸로 그 남자와 결혼하라고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겠어요? 저는 누나나 여동생은 없지만 딸은 있는데, 제 딸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한다면, 죄송합니다. 전도사로서 할말은 아니긴 한데 그자식을 가만두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게 솔직한 마음인거죠. 여러분들도 마찬가지 아니시겠어요?
디나의 오빠들도 같은 마음인 겁니다. 얼마나 화가 났겠어요. 그래서 이 오빠들이 어떻게 하냐면, 디나를 건드린 그 추장에게 얘기하는 겁니다. "우리는 할례라는 것을 받아야 하는 민족인데 할례 받지 않은 민족과는 결혼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너희가 우리랑 똑같이 할례를 받으면 서로 할례받은 민족이니 너희가 말한대로 우리가 서로 결혼도 할 수 있고 우리 동생도 너와 결혼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할래?" 이 얘기를 들은 추장과 그의 아버지가 흔쾌히 오케이를 하는 거예요. 자식을 향한 마음이 다 똑같은 거 아니겠습니까. 이 추장의 아버지도 자신의 아들이 디나를 너무 좋아하니까 아들이 원하는거 해주려고 할례받는 것까지 오케이를 해주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신의 아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물론 자신들에게 속해있는 그 민족의 남자들 전체에게 할례를 하게 하는 겁니다.
여자분들은 모르겠지만, 남자들은 포경수술을 하게 되면 움직이질 못합니다. 요즘에야 워낙에 수술 장비도 잘 되어있고 약도 잘나오고 마취도 하고 그렇지만, 이 때 당시는 돌칼을 가지고 살을 벗겨내는 거였어요.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러니까 삼일 째 될 때 디나의 오빠들이었던 시므온과 레위 두 명이 그 성에 들어가서 디나를 성폭행한 그 남자는 물론 그의 아버지와 그 성에 있는 남자들을 전부 다 죽여버립니다. 단 두 명이서 한 성의 모든 남자들을 다 죽인 거예요. 그 성의 남자들 입장에선 내 옆에서 다른 동족이 두 명한테 당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너무 아파서 움직이질 못하니까 그냥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던 것입니다. 디나의 오빠들 입장에선 아주 통쾌하게 복수에 성공을 한거죠.
그런데 이것은 너무나 경솔한 행동이었습니다. 이곳은 자신들의 땅이 아니었어요. 이들은 이방인들인 겁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한국인들이 사고 친 거예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하안동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이 하안동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을 다 죽인 겁니다. 한국인들이 이 일본인들 가만히 두겠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그냥 두겠어요? 저 일본인들이 내 친구들, 내 친척들을 죽였다고 생각하면 그들 가만히 냅두겠냐고요. 야곱은 이 두 아들이 한 행동을 듣고 완전히 절망에 빠져버립니다. 이제 완전히 죽게 생긴 거잖습니까. 이 가나안 족속들이 이 소식을 듣게 되면 야곱과 그 아들들을 가만히 두겠냐고요. 전쟁을 할 수 있을만한 규모도 아닙니다. 저들이 자신들의 민족의 복수를 하겠다고 공격해오면 그 공격을 감당해낼 수 있는 어떤 아무런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요. 그야말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34장 30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너희는 나를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이제 가나안 사람이나, 브리스 사람이나,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나를 사귀지도 못할 추한 인간이라고 여길 게 아니냐? 우리는 수가 적은데, 그들이 합세해서, 나를 치고, 나를 죽이면, 나와 나의 집안이 다 몰살당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야곱이 이렇게까지 얘기하는데 두 아들들은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되고 있는 것 같아요. 31절을 보니까 두 아들이 뭐라고 대꾸하는지 한번 볼까요? "그러나 그들은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처럼 취급해도 괜찮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대꾸하였다." 자기들이 뭘 잘못했냐는 거죠. 야곱이 얼마나 골치가 아팠겠습니까. 이제 곧 이 소식이 알려지면 연합군이 쳐들어올 수도 있는 상황에, 이 철없는 두 아들들은 복수심에 눈이 멀어서 철없는 소리나 하고 있고 아빠한테 대들고 있죠. 그야말로 답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어찌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그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 주시는 것입니다. 1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벧엘로 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고 묵상하면서 우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참 감사하더라고요. 34장 이후에 야곱이 하나님을 찾거나 기도하는 장면이 없습니다. 35장 1절에 바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얘기하시는 장면으로 넘어간다고요. 대략 10년 전쯤엔 어땠습니까? 형 에서가 사백 명을 데리고 오고 있단 소릴 들었던 야곱은 하나님 앞에 매달렸었잖아요. 그 두려움에 어떻게 할 수 있는 아무런 방법이 없으니까 하나님 붙잡고 매달렸었잖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매달리는 모습에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셨는데 지금은 보세요. 야곱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기도를 안해요.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와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해주시는 거예요. 벧엘로 가라는 겁니다. 여러분, 벧엘이 어떤 곳이었습니까? 30년 전,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서 도망하던 그 때, 홀로 외롭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며 돌베개를 베고 잘 때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 주시고 만나주시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던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약속의 말씀을 주셨는지 함께 보겠습니다. 창세기 28장 15절입니다.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생각나게 하시는 거예요. 야곱에게 벧엘로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언약의 말씀을 다시 기억하라는 거죠. 너 왜 또 그러고 있냐는 거예요. 왜 아직도 하나님을 붙잡지 못하고 그렇게 세상 속에서 그 상황 가운데서 두려워하고 떨고 있냐는 겁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들은 야곱이 하는 행동을 보세요. 오늘 본문 2절과 4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것 보십시오. 이방 신상들을 다 버리라는 겁니다. 그 얘기를 들은 사람들이 이방 신상들과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다 내어놓는 거예요.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고향 땅으로 돌아오고 난 뒤에 8-10년 정도의 기간동안 하나님을 잊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집안 사람들이 이방 신상들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앙이 무너지고 있던 것을 방치하고 있었다는 얘기예요. 너무 안타깝지 않습니까?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봤는데 진짜 너무 마음이 아프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런 거 같아요. 남자 분들에게 내가 너무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혹은 여자 분들에게는 내가 너무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있어요.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전부 다 해주는 거죠. 누가 괴롭히면 찾아가서 혼내주고, 필요한 거 있으면 다 구해서 주고, 어려운 일 있으면 내가 다 도와주면서 사랑을 다 준 거예요. 그런데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이 여자친구가 다른 나쁜 남자들하고 둘이서 바다도 놀러가고 영화도 보러가고 하는 겁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소문 안좋고 나쁜 여자애들하고 보드카페 가서 놀고 맛집 투어 다니고 그러면서 자기 돈 다 쓰고 있고 이용만 당하는거죠. 그러다가 그 나쁜 애들하고 어떻게 안좋게 얽혀서 큰일 날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 절망 속에 빠져있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는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안타깝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잘됐다 쌤통이다 하는 마음도 있을까요? 그럼에도 너무 사랑해서 차마 가만히 두지 못하고 또 멍청하게, 바보같이 그 사람을 도와주려는 그 모습이 그려지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기껏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지켜줄거야. 걱정하지마. 내가 너랑 함께 있을거야. 난 너 안떠날거야" 이런 사랑의 메시지들을 들려줬는데, 내 급한 거 끝나고 나니까 금새 잊어버리고 다른 좋은 것들 좇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겁니다. 급할 땐 하나님 찾고 도와달라고 매달리고, 급한거 해결되니까 하나님을 뒤로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원하는 것들을 향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거죠. 하나님 입장에서 너무 화나지 않겠습니까? 자존심도 없겠냐고요. 그래 어디 그렇게 살다가 고생 한번 해봐라 하고선 그냥 버려도 할말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니 정이 확 떨어질 것 같지 않으세요? 꼴도 보기 싫을 것 같지 않겠냐고요. 그런데, 차마 그러지 못하겠는 하나님의 그 마음. 차마 내버려두지 못하겠는 하나님의 그 마음이 너무 바보같지 않으세요? 그런데 이게 야곱의 이야기입니까? 우리 얘기 아니에요? 여러분 얘기 아니냐고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몇번이고, 몇번이고 계속 만나주시고 사랑으로 안아주시고 은혜 베풀어주시고 해결해주시고 도와주시고 했음에도, 당장의 내 눈 앞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또 하나님 떠나서 살고 있는 그 모습이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 아니냐는 겁니다.
시험기간이라고 예배 못드린다는 그런 얘기, 죄송하지만 여기 계신 여러분들만큼은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한시간 공부 해야돼서 예배를 못드린다는 얘기 말고, 한시간 예배 드리기 위해서 다른 시간에 한 시간 공부를 더 하는 여러분들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진심으로 말씀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그 인생을 절대 가만히 두시지 않으십니다. 한시간 공부 더 해서 한문제 더 맞는 것보다 더 귀한 복으로 더하신다고요. 그리고, T같은 소리 한마디 더 한다면 여러분 한시간 예배 안드리고 공부 더 한다고 해서 성적이 더 잘나오지도 않습니다. 그거 해서 더 잘나올 성적이었으면 안해도 더 잘나올 실력이고요, 예배 한시간 드린다고 해서 성적 안나올 실력이면 그냥 안나올 실력인 거예요. 인정할거 인정하자고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십시오. 하나님 의지해보세요. 예배를 소홀히 해서 망가지면 망가졌지, 하나님께 예배하는 시간 드린다고 해서 여러분 인생 망가지지 않습니다.
야곱이 그 이방 신상들과 귀고리들을 모으고 그것들을 묻으면서 하나님께 얼마나 죄송했을까요. 도무지 답이 안나오는 현실 속에서 답답해 하고 있을 때 찾아와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죄송했겠습니까. 얼마나 염치가 없었겠냐고요. 모여진 이방 신상들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눈 앞에서 직시했을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제서야 그는 그것들을 다 묻고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 정체성을 다시 잡기 위해 벧엘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벧엘로 나아갈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5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심으로 야곱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시는 겁니다. 야곱이 끙끙 앓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거예요. 이것이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와 역사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다시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이미 주셨던 이름이었어요.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얻은 이름이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을 이겼다는 이름을 받았음에도 그는 하나님을 이긴 사람답게 살아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정체성을 주셨음에도 예전의 모습으로 살아갔다는 거예요. 새로운 정체성으로 살아가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못난 야곱에게 하나님은 다시 찾아와 주시는 겁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친히 직접 찾아오셔서 그의 정체성을 다시 기억하게 해주셨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에게 다시 사랑의 고백을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그 정체성을 회복시켜주시는 거예요. 다시 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게 해주시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이방 신상들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은 어떤 우상들을 가지고 계신가요. 야곱은 세겜 땅에 머무르면서 그 땅의 문화를 접하고 그 땅의 가치관들로 인해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예배가 무너지고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망가졌다는 거예요. 신앙이 무너지니까, 믿음의 가치관이 망가지니까 삶의 일들 속에서 무너지는 상황이 펼쳐지는 겁니다. 하나님을 찾지 못하니까 어려운 일들이 생기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하나님보다 더 우선시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가치있게 여기는 것, 과감하게 버리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세상의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의 방식으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의 가치관이 세워져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의 가치관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고요.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향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려움 가운데, 낙심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배가 회복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차마 하나님을 찾지도 못하고 있을 때에도 우리 사랑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그분의 사랑의 음성을 들려 주신다는 거예요. "나를 기억해줘. 다른 것 바라보지 말고 나와 함께 해줘.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않을 거란다." 하나님의 그 사랑의 음성에 반응하며 다시 주님께 돌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벧엘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고 말씀하신 그 벧엘로 다시 나아가세요. 우리에게 벧엘은 예배의 자리입니다. 예배가 회복될 때 우리의 삶이 회복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과 회복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회복의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해주신 정체성, 믿음의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붙잡고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종도사 > 설교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의 시작 (창세기 37장 25절-36절) (0) | 2025.09.23 |
|---|---|
| 하나님의 스포일러 (창세기 37장 1절-11절) (0) | 2025.09.20 |
|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마가복음 16장 1-8절) (1) | 2025.09.18 |
| 환호의 이유 (마가복음 11장 1절-11절) (0) | 2025.09.17 |
| 정체성의 변화 (창세기 32장 21절-32절) (0) | 2025.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