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도사/설교문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이 받는 복 (창세기 12장 1절-9절)

하엘파파 2025. 2. 21. 09:11
반응형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이 받는 복 (창세기 12장 1절-9절)

말씀본문 : 창세기 12장 1절-9절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말씀제목 :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이 받는 복

 

 제가 군대에 있을 때, 또는 직장에 있을 때 윗사람들에게 잘하지 않았던, 그리고 아랫사람들에게 듣기 싫어했던 말 중의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 못한다, 어렵다" 라고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뭔가 오더가 내려졌을 때 해보지도 않고선 부정적인 얘기부터 하는 것을 보면 참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항상 아랫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시켰을 때 그것에 대해서 해보지도 않고 부정적인 대답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조금 화를 내기도 했거든요. 그 일을 실제로 해보고 난 뒤에 이런 저런 문제들 때문에 안된다고 한다면 그것을 극복해 나가기 위한 뭔가를 또 고민해보게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러한 것들을 보완하면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방향을 잡아야 하는 것인데, 아예 애초부터 시작을 안하게 되면 아무것도 이뤄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현대그룹의 회장이었던 고 정주영 회장의 유명한 어록이 있죠. "불가능 하다고? 이봐, 해봤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내는 법이다", "의심하면 의심하는 만큼 밖에는 못하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다. 할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이 기적을 일으킨다" 등등, 여러가지 기업가로서의 명언들을 남긴 것입니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와 생각을 가졌기에 그는 현대그룹이라는 대기업을 만들어내고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이겠죠.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의 일들을 해나가는 사람도 어떤 생각과 마인드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불가능한 것들을 해내고 기적을 일으켜 내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데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그 약속의 음성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이뤄나가시길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하나님께 기쁨이 되며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창세기 11장을 통해 바벨탑 사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12장의 말씀에서 장면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죠. 11장까지는 인간들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면 12장에 와서 아브람이라는 사람에게 초점이 확대되고 집중되는 것입니다. 1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찾아오시고 말씀하시는 사건으로 12장이 시작이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찾아오심으로 인하여 생기는거죠. 내가 하나님을 찾아가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찾아오심으로 인하여 믿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생각으로 내가 정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신념입니다. 내 생각과 선택으로 결정한 나의 신념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믿음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고 은혜를 주셔야만이 믿음이 생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은 은혜 받은 자가 가질 수 있는 아주 고귀한 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찾아오셔서 어떻게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실행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시는거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디 쉬운 선택이겠냐고요. 아브람의 고향은 우르라는 곳이었습니다. 이 우르라는 땅은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한 곳으로 아브람이 살던 당시는 우르의 번영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많은 점토판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학교가 세워져 있었고, 상업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추측하고 있는 곳이기도 한거죠. 특히 이곳은 바벨탑의 원형으로 보고 있는 지구라트가 있는 위치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굉장히 문명이 발달했고 도시화 된, 사람들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화려했던 도시였다는 거예요. 아마 지금 시대의 서울 도시 한복판, 뉴욕, 라스베거스, 마카오와 같은 그러한 크고 화려한 도시같은 곳이었다는거죠.

​ 이런 곳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아브람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곳을 떠나라는 거예요. 아예 다른 곳으로 가라는거죠. 아브람 입장에선 분명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어쨌든 그는 떠나게 되긴 하는데, 바로 가나안땅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란이라는 곳에 또 머물게 되는 것이죠. 이 하란이라는 곳도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상업도시였기 때문에 우르라는 곳 못지 않게 크고 화려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업이 활발한 곳의 특징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우상숭배가 성행하고 온갖 성적인 타락이 이루어지는 곳임을 볼 수가 있게 됩니다. 무역이 활발해지면 그만큼 다른 곳에서의 어떤 문화나 물품들이 많이 오가기 때문에 그러한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다는 것이죠.

 아무튼 아브람의 가족들은 이곳 하란에서 거주하며 머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우르라는 곳에서 살아가던 그 모습이나 환경이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곳이었다는거죠. 그런데 하나님께선 아브람에게 그것들로부터 떠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을 하셨다는 겁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 모든 생활이 맞춰져있는데 그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떠나가라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움직이실 수 있겠나요? 바벨탑 사건 이전 같으면 그래도 또 모르겠습니다. 미국을 가든, 러시아를 가든, 유럽을 가든, 중국을 가든 어딜 가도 언어가 하나이기 때문에 어딜 가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때는 바벨탑 사건 이후의 시대이기 때문에 언어가 다 다르단 말이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 내가 이룬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광명에 살고 계신데 인천가서 살으라면 그정도는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아래쪽으로 해서 부산이나 목포, 울산 이런데서 살으라고 해도 그정도는 살 수 있을지 몰라요. 그런데 러시아의 어디, 캐나다의 어디, 중국의 어디에 가서 살으라고 하면 그게 쉽겠냐고요. 물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에 어딜 가든 어떻게든 살아남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인프라가 갖춰져있는 곳에서 편하게 살아가는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 될 것 아니겠냐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가라고 하시는 겁니까? 2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줘서, 그 이름을 창대하게 하고, 복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네가 있는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뤄나가실 그 일들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축구선수가 꿈이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축구부가 있는 학교에서 축구를 배우고 프로 구단에 입단해야 축구선수가 되는 것 아니겠어요? 의사가 꿈이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대를 가서 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하며 배워야 의사를 하는 것 아니겠냐고요. 그런데 축구선수가 꿈이라면서 매일 PC방에서 친구들하고 게임하고 있고, 의사가 꿈이라면서 친구들하고 맛집 투어, 카페 투어 다니고 있으면 그 꿈이 이루어지겠냐고요.

 

 뭔가를 이루고자 한다면, 내 주변의 환경들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상숭배가 가득한 곳에서, 세상의 그 물질적인 것들로 가득한 곳에서, 세상의 가치관이 팽배하게 자리잡고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그곳으로부터 나오라는 거예요. 너의 가치관, 네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 너의 생활방식, 너의 생활패턴, 죄로 물들어져 있는 그 세상에서의 문화와 가치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삶의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방향으로 가기 위해 그곳에서 빠져나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세상 가운데서 세상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면서 믿음으로 살아갈 수가 없는 겁니다. 나의 생각과 가치와 소신과 신념을 다 바꿔야 하는 거라고요. 세상의 가치로는 이러한 삶의 방향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저러한 삶의 방향을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면, 세상의 가치로 가고 있던 방향으로부터 완전히 돌아서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를 좇으며 살아가고 있으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향으로 가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라고요. 그렇게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바꾸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에게 복을 내려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을 창대하게 하시겠다는 거예요.

 참 재밌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사람에게 찾아오셔서 그를 큰 민족을 이루는 사람으로 삼으시겠다는 것이, 그 이름을 창대하게 하신다는 것이 너무 재밌지 않냐고요. 당시에 대단한 사람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당시에 이미 이름을 떨치고 있던 사람들 얼마나 많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평범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을 선택해서 그 크고 위대한 일들을 이뤄나가시겠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와 희망을 주는 메세지냐는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세상에도 마찬가지로, 이미 크고 유명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가끔 TV를 보면 제가 참 초라해질 때가 있거든요. 연예인들 보세요. 해외 그냥 너무 쉽게 놀러다니고, 값비싼 것들 다 즐기면서 살지 않습니까. 최고급 호텔에서 최고급 요리를 먹으며 최고의 대우를 받으면서 여행 다니잖아요. 사는 집은 또 어떻습니까. 한강이 쫙 보이는 집에서 혼자 살면서 이 방에는 뭐가 있고 저쪽 방에는 뭐가 있고, 없는 게 없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 정말 어떤 때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는거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보기에 보잘 것 없어보여도, 그냥 평범하게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들 붙잡고 살아가는 작은 이들을 통해 크고 놀라운 일들을 이뤄내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이 땅에서의 짧은 삶 속에서 그것을 누리는 것이지만, 우리는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자들임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절 말씀에서 가장 포인트가 되는 부분은 마지막에 나오는 말입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조금 이해가 안가는 이 말을 3절에서 풀어주고 계시는거죠. 3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나를 축복하는 사람에게 복을 내려주시고, 나를 저주하는 사람에게 저주하시겠답니다.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복을 얻게 하신다는 거예요. 이 말은 무슨 말이냐, 누가 나를 축복하든지 저주하든지 사람의 그러한 것들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 사람으로 세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얘기한다면, 다른 사람이 나를 좋게 보고 도와주든, 다른 사람이 나를 미워하고 방해하든 그런 것에 상관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드시겠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내가 다른 사람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로 인해 영향을 받게끔 만들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약속입니까.

 어른들이 보통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줄을 잘서야 한다" 무슨 말이에요?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나의 성공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나의 흥망성쇠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건 세상 사람들의 말이고 우리는 누구만 만나면 됩니까? 하나님만 만나면 다 되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을 만나면, 내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 휘둘려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나로 인해 휘둘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축복하는 사람은 그 사람도 복을 받는 것이고, 나에게 저주하는 사람은 내가 저주 받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이 저주를 받게 된다고요. 이 얼마나 든든한 말씀입니까. 다른 사람에 의해서 나의 복과 저주가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의해서 내 인생이 정해지지 않는다고요. 바로 내가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줄 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줄에 바로 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계속 이어서 4절을 봅니다.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하나님의 약속을 들은 아브람은 어떻게 합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되는 것, 세상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그가 떠날 때에 나이가 칠십오 세인 것에 집중을 하게 되는데, 물론 우리가 집중해서 봐야 할 포인트 지점이긴 하지만 관점을 조금 다르게 봐야 합니다. 우리 시대 기준의 칠십오 세로 봐서 막 거의 거동도 힘들고 이런 나이에 이동을 해서 대단하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는 건데요. 이 시대의 사람들의 수명을 기준으로 본다면 거의 지금 시대로 따져봤을 때 40대 중반정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볼 때는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지만, 40대 중반이면 인생의 전성기일 때입니다. 삶의 경험과 지식, 능력, 지혜 뭐 이런 것들이 고점에 있을 때라는 거예요. 그런데 바로 그 때에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그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그 모든 것들을 다 버려두고, 그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하고 전혀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라고요.

 내가 한국에서 초중고 과정 다 마치고 이제 수능 앞두고 있는 학생인데, 갑자기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중국으로 가서 아예 어린 아이들이 배우는, 유치원 과정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된다고 생각해보세요. 내가 게임에서 캐릭터 열심히 키워가지고 승급 앞두고 있는데 계정이 삭제돼서 캐릭터를 레벨 1부터 새로 키워야 되는거라고요. 절대 쉬운 것이 아닌 겁니다. 아브람은 바로 그러할 때에, 하나님의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을 믿는 사람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길을 떠난 아브람은 드디어 가나안 땅에 도착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도착했더니 어떤 상황이 펼쳐졌나요? 6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 도착했더니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고 있던 거예요. 도착하자마자 '웰컴 투 아브람' 하고 있던 게 아닌 겁니다. 그렇잖아요. 하나님께서 큰 민족 이루어 주겠다고 하시고,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여러분 같으면 어떤 생각을 하시겠냐고요. 딱 도착했을 때 막 푸릇푸릇하고, 아무도 개척하지 않은 넓은 평야의 땅에서, 뭔가 막 뭘해도 다 될 것 같은 그런 광경이 펼쳐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기대로 가득하지 않겠냐고요. 그런데 웬걸, 도착했더니 내 땅이라고 할 수 있을 곳이 없는거죠. 다 그 땅의 주인들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어가다보면 이런 일들이 펼쳐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그 말씀에 순종해서 그 길을 걸어가면 뭔가 막 잘되고, 꽃길만 펼쳐지고, 하는 것마다 술술 풀릴 것을 기대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일 때가 있다는 거예요. 상황이 더 안좋아지고, 더 막막해지고, 오히려 더 답이 안나오는 그런 일들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때가 바로 믿음의 사람들의 믿음이 빛날 때라는 것입니다. 정말 누가 봐도, 믿음으로 살아낸 결과가 저것밖에 안되나 싶은 그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낼 때, 그 때가 믿음의 사람이 정말 빛나는 때라는 거예요. 성경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인물들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다니엘 보세요. 믿음으로 살았는데 포로로 끌려갔고요, 믿음으로 살았는데 사자굴에 던져지는 겁니다. 그 친구들도 마찬가지죠. 믿음으로 믿음을 지켰는데 불구덩이로 던져지는 겁니다. 욥은 어땠습니까. 믿음으로 살면서 그 모진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내는데도 상황은 더 안좋아지고 몸은 더 망가져가는 거예요. 다윗도 그랬죠. 믿음으로 계속 그 믿음을 지켜냈는데 사울로부터 쫓겨다니고 도망다니고 떠돌이 생활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음을 지켜냈을 때의 결과를 우리는 모두 다 알고 있다고요. 그러한 믿음의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어서 7절과 8절을 보겠습니다.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 7절과 8절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혹시 눈치 채셨나요? 네, '제단을 쌓고' 입니다. 아브람이 이곳에서 제단을 쌓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제단이라는 것은 크고 화려한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11장은 바벨탑 사건이 나오죠. 바벨탑은 크고 화려한 탑이었습니다. 누가봐도 대단해보이고 주목할 수밖에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는 거예요. 그러나 제단은 어떻습니까? 별로 주목되는 모습은 아닌 겁니다. 사람 키보다 조금 작은 정도의 높이에 돌멩이들로 쌓은 그 모습이 뭐 얼마나 화려하겠어요. 뭐 얼마나 대단해보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제단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보기에 대단해보이고, 화려하고, 주목하게 되는 그런 거대한 탑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만을 위한, 하나님께 드리는,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제단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께 질문드려보겠습니다. 중고등부 인원 100명이 모인 곳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너무 기쁘게 받으시고 10명이 모인 곳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지 않으실까요? 크고 화려한 무대와 조명과 빵빵한 풀세션의 장비들이 갖춰진 곳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피아노와 목소리밖에 없는 곳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별로 기쁘게 받지 않으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물론 많은 사람이 모이고, 화려한 무대와 조명, 풀세션의 장비들이 갖춰진 빵빵한 사운드를 갖춘 찬양팀이 있는 곳에서 드려지는 예배도 그 나름의 장점이 있겠습니다만, 우리의 예배가 그런 모습의 예배와 비교했을 때 초라해보인다고 해서 하나님도 우리의 예배를 초라하게 바라보시지 않는다고요. 우리 인간들은 그러한 겉모습을 볼 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무엇을 보신다고 말씀하십니까?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고요.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하나님을 향한 그 마음의 중심, 예배를 향한 그 마음의 중심을 보는 줄 믿으시고, 하나님 앞에 내 맘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예배드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십시오. 하늘에 닿게 하는, 그리고 그것으로 내 이름을 내는 탑 말고, 하나님께 집중하며 하나님만을 위한 제단을 쌓으십시오. 하나님은 내 이름을 드러내려는 자가 아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사용하십니다. 마지막으로 9절을 보겠습니다.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가나안 땅에 도착을 했지만 아브람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점점 남방으로 옮겨가는 겁니다. 왜 옮겨갔겠어요? 거주하기 좋은 곳을 찾아서 계속 이동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가나안 땅에 도착했다고 해서 바로 그곳에 정착하고 그곳에서 바로 부귀영화를 바로 누린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땅에 도착했음에도 계속해서 나그네의 모습으로 옮겨다녔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아브람은 크고 화려한 문명이 발전된 도시에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곳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던 사람이 하나님 말씀 믿고 그 말씀대로 가나안 땅에 도착했는데 이건 뭐 어디 정착해서 안정적으로 사는게 아니라 계속 떠돌아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의심이 들지 않았겠어요? 원망의 마음이 들지 않았겠냐고요. 기껏 복 주신다고 해서 따라왔더니 이건 복이 아니라 더 힘들어졌잖습니까. 그러나 그는 삶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삶으로 달라진 거예요. 사람을 의지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제단을 쌓으며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간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어떤 복을 주셨습니까? 그 자체가 복이 되는 사람으로 세워주셨다는 거예요. 사람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인생으로 새롭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조금 못나보여도, 조금 못살아도, 조금 뒤쳐져도, 조금 유명하지 않은 학교 다니고, 조금 대단하지 않은 회사 다녀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이 중요한 사람들이 아니라고요. 여러분 자체가 복이 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대단하지 않아도 복 된 사람이고요, 내가 조금 못살아보여도 복 된 사람인 겁니다. 왜요?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이면 복 된 사람이 아니죠.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부자가 되어야 복 된 것이고, 좋은 집에 살아야 복 된 것이고, 좋은 차를 타야 복 된 것이지만, 우리는 겨우 그런 것들로 복 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이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기에 세상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우리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들이라는 거예요. 참 된 복을 받은 자들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가끔 아이에게 뭔가 무리해보이는 것을 시킬 때가 있는데요, 그러나 그것을 시킬 때 사실은 엄마아빠가 아이가 그것들을 해낼 수 있도록 미리 다 준비를 해놓습니다. 그리고 혹여나, 그럼에도 아이가 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엄마아빠는 언제라도 내 아이가 해낼 수 있도록 도와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죠. 부모는 그렇게 아이가 할 수 있도록 다 준비를 하고선 아이에게 해보라고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가 하는 그 모든 것들을 집중해서 바라보며 이 아이가 해낼 수 있도록 계속해서 도움을 주는거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지켜보고 계시며 여러분들의 삶을 응원하시고, 여러분들의 그 모든 걸음을 도우시는 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부르심에, 그 말씀을 붙잡고 순종함으로 나아가 보십시오. 하나님께선 여러분의 인생 그 자체를 복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주님께 내 모든 것을 맡기며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감으로 참 된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