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도사/설교문

은혜의 방주에 들어가는 사람 (창세기 7장 13절-24절)

하엘파파 2025. 2. 1.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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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방주에 들어가는 사람 (창세기 7장 13절-24절)

말씀본문 : 창세기 7장 13절-24절

13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14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15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16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17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18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19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20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21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22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23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24 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말씀제목 : 은혜의 방주에 들어가는 사람

 

 여러분들은 혹시 '골때녀'라는 TV프로그램을 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 관련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편인데요, 그 중에서도 '골때녀'라는 프로그램을 아주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여자들이 축구를 잘하면 그렇게 멋있어보이더라고요. 아무튼 그 프로그램을 보는데 거기서 백지훈 감독의 별명이 '설레발'입니다. 사전 인터뷰 등을 하면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거죠. "저는 질 자신이 없어요", "3등 밑으로는 안내려 갈 것 같은데요", "저희가 5:0으로 이길겁니다" 뭐 이런 말들을 항상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와서 사전 인터뷰를 하는데 너무 조용하니까 위원장이 물어보는 거예요. "오늘 왜이렇게 조용해?" 그러니까 백지훈 감독이 이런 말을 하는거죠. "항상 제가 설레발을 치면 결과가 안좋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좀 자중하려고 합니다." 매번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설레발을 쳤지만, 막상 결과는 별로 좋지 못한 모습을 나타내니 스스로 보기에도 창피한 모습들이 있던 것이었겠죠.

​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자신감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일 수 있겠지만, 그것이 너무 과해서 교만한 모습이 나오게 되고 좋지 못한 결과를 얻게 되면 그것은 자신감이 있는 좋은 모습이 아닌, 오히려 창피를 당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내가 아무리 잘하고 잘났다고 하더라도 모든 일들이 다 내 생각처럼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거예요. 겸손한 모습으로, 낮은 자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영광만을 높일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오늘 본문은 여러분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노아의 방주에 대한 내용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잠깐 언급을 하긴 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딱 보셨을 때 사람들의 생각과 계획이 온갖 악한 것들로만 가득차 있고 죄가 만연한 모습들만 보이니까 하나님께서 참고 참고 참으시다가 결국 결단을 내리신거죠. 어떤 결단이었습니까?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것까지 전부 지면에서 쓸어버리시기로 결단을 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러한 진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손길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노아'라는 인물이 바로 그 시대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던거죠. 그 악독한 세상 속에서 왜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에 대한 이유를 창세기 6장 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똑같은 구절의 말씀이지만 이 구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9 노아의 역사는 이러하다. 노아는 그 당대에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이렇게 나와있는거죠.

9 이것은 노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당시의 사람들 가운데 노아만은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였다.

 이 세개의 내용을 합쳐보면 결국 그는 어떤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이었습니까? 의롭고,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세상은 자기PR 시대라고 하죠. 내가 나를 드러내야 성공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나의 장점과 나의 잘남과 나의 능력들을 뽐내고 꾸미고 나타내고 드러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기준에 맞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고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세상에서 잘난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조금 부족하고 모자라다고 해서 하나님께도 인정을 못받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세상이 인정을 해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면 그것으로 우리는 이 땅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공한 삶이란, 나의 잘남과 나의 자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이 성공한 삶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그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잘남을 뽐내며, 자신들이 제일 잘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는데요, 창세기 6장 4절의 뒷부분을 보면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4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 고대에 명성을 떨치고 유명하고 영웅적인, 용사라 불리우던 그런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잘먹고 잘살던 시대였다는 거예요. 지금의 시대와 너무나 닮아있는 모습이었다는거죠. 능력있고 돈 많고, 가진 것 많은 자들이 그 명성을 떨치며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세상 속에서 이름을 떨치고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독하다고 판단하시면 쓸어버림을 당하는 결과를 맞게 되는 것이고,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조롱받고 비난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고 판단하시면 그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는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또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를 우리가 발견할 수 있게 되는데요,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게 되면, 나 한사람으로 인해 내 주변인들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게 되니까 노아와 노아의 아내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며느리들이 함께 방주에 들어갔다는거죠.

 성경에서는 노아의 아내, 그리고 아들들, 며느리들의 생각과 마음이 기록되어있지는 않지만 우리 상상을 해보자고요. 아버지가 방주를 만든대요. 그것도 산꼭대기에다가. 게다가 그냥 조그만 배 정도도 아니에요. 축구장보다도 더 큰 배였다는 겁니다. 이런 배를 만드는데 이 작업이 쉬웠겠냐고요. 사람들로부터 미쳤다고 조롱받고, 비웃음거리가 되는 그 상황에서 그들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그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힘겹고 버거웠겠냐고요. 그러나, 그러한 세상의 조롱과 비웃음 가운데서도 그들은 믿음의 행동을 이어나갔을 때 은혜의 방주에 들어감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지금 얼마나 교회를 조롱합니까. 세상이 얼마나 교회를 우습게 알고 비웃고 비난하고 멸시하냐고요. 그러나 여러분, 그러한 것들에 여러분의 믿음의 발걸음을 멈추지 마십시오. 여러분 한사람이 그 믿음을 지키며 나아갈 때에 여러분들로 인하여 여러분의 주변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바라보시며 믿음의 발걸음을 이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물로 그 모든 것들을 쓸어버리실 때 마음이 어떠셨을까요? "아주 속이 다 시원하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좋아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 6장 6절을 보면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라고 나와있는데요, 이것을 영어 성경으로 보면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 되어있습니다. 'The LORD was grieved that he had made man on the earth, and his heart was filled with pain' 'greived that' 그것을 슬퍼하셨다는 것입니다. 'his heart was filled with pain' 무슨 뜻입니까? '그의 마음은 고통으로 가득차있었다' 라는 뜻이에요.


 tv를 보다보면 가끔 동물들 관련한 프로그램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반려견을 키우는데 이 강아지가 늙고 병이 들어서 너무 힘들어하는거죠.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움직이질 못하다보니 변을 가리지 못하고 그런 것들에 몸이 범벅이 돼서 병균과 세균으로 계속 몸이 썩어가고 병이 들어가는 거예요. 주인이 아무리 관리를 잘해주고 케어를 한다고 해도 무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주인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안락사를 선택을 합니다. 주인의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두가지 선택이 모두 다 너무 고통스러운 거예요. 주인의 마음같아선 살려두고 싶지만, 그 사랑하는 반려견이 병으로 온몸이 다 망가져서 오히려 살아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으니, 살려두는 것도 그 반려견을 위하는 일이 아닌 것 같은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안락사를 하자니 그 주인의 마음이 편하겠냐고요.


 하나님께서는 이보다 더 한 아픔과 고통의 마음이시지 않았겠습니까. 죄로 인해 타락되어 완전히 창조의 목적에서 벗어난 모습을 하고 있는, 죄에 병들어서 완전히 썩어있는 하나님의 창조물들을 바라보시는 그 마음이 어떠셨겠냐고요. 그래서 결국 그 모든 것들을 다 물로 쓸어버리려는, 자신의 손으로 만들고 그것들을 보시며 심히 좋았다고 행복해 했던, 그 창조물들을 전부 쓸어버릴 생각을 하시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우리가 하나님의 그 마음을 감히 상상이나 해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한 사람을 찾아내시고,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인류를 구원할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신 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죄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죄 가운데 빠져서 병드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거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 창조의 목적에 맞게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 한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십시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보십시오. 세상의 기준에 맞춰서, 세상에 잘보이려 나의 잘남과 나를 드러내기 위해 살아가는 삶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에 맞춰서, 하나님께 잘보이기 위해 나를 낮추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인생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저와 여러분 모두가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있는, 그 은혜를 누리며 은혜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주에 들어가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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