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도사/설교기록

므낫세와 에브라임으로 (창세기 41장 46절-57절)

하엘파파 2025. 9. 2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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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낫세와 에브라임으로

말씀본문 : 창세기 41장 46절-57절

46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47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48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되 각 성읍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읍 중에 쌓아 두매
49 쌓아 둔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50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이 나되 곧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서 낳은지라
51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52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53 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54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더니
55 애굽 온 땅이 굶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56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57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말씀제목 : 므낫세와 에브라임으로

 성경에 나오는 요셉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고 많이 들어왔을 이야기일 것입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요셉의 전체적인 이야기의 줄거리를 먼저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아버지에게 예쁨 받던 요셉이 어느날 꿈을 꾸었고 그 꿈 얘기로 인해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습니다. 그렇게 요셉을 미워하던 형들이 그를 죽이려다가 노예로 팔아버리죠. 그렇게 요셉은 노예의 신분이 되어 애굽으로 팔려가게 되고, 애굽에서 바로 왕의 친위대장 보디발 장군의 집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열심히 일했던 덕분인지 보디발 장군의 눈에 좋게 보여서 인정을 받게 되고 그 집의 모든 일들을 관리하던 어느날, 보디발 장군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게 되는 거죠. 그러나 요셉은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잘 이겨냅니다. 그러나 보디발 장군의 아내로 인해 요셉은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지난주까지 나눴던 요셉의 내용이었죠.

 

 그리고 이후에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요셉이었지만 그곳의 간수장에게 눈에 띄어서 인정을 받고 감옥 안에서조차 그 관리의 일들을 다 맡아서 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바로 왕의 술 따르는 신하와 떡을 굽는 신하가 감옥에 들어오게 돼죠. 그리고 어느정도의 기간이 흐르고 이 두 명의 신하들이 같은 날 꿈을 꾸게 되는데 요셉이 이들의 꿈을 듣고 해석을 해주게 됩니다. 술 따르는 신하의 꿈은 감옥에서 풀려나서 다시 복직하게 되는 꿈이었고, 빵 굽는 신하의 꿈은 사형을 당하게 되는 내용의 꿈이라는 것을 해석해주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술 따르는 신하에게 감옥에서 풀려나서 복직하게 되면 자신의 억울함을 왕에게 얘기해서 자신이 이곳에서 풀려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거죠. 요셉의 부탁을 들은 신하는 꼭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는데, 사람이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고, 감옥에서 풀려나게 되고 복직을 하게 되었는데 요셉과 한 약속을 새까맣게 까먹는 겁니다. 요셉의 마음도 새까맣게 타들어갔겠죠.

 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바로 왕이 꿈을 꾸게 됩니다. 그 꿈이 하도 희한해서 애굽 나라에 있는 모든 지혜로운 자들을 다 불러 모으고 꿈 얘기를 해주는데 아무도 해석을 못하는 거예요. 그때 술 따르는 신하가 그제서야 요셉이 생각이 난 거죠. 그리고 그제서야 왕에게 자신이 감옥에 있었을 때의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렇게 요셉은 바로 왕의 앞에 나오게 되고 그 꿈을 해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꿈에 대한 해석을 들은 바로 왕은 요셉을 애굽 나라의 총리로 세워서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 거죠. 그렇게 한순간에 애굽이라는 거대한 강대국의 총리가 되는 요셉의 이야기가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요셉에 대한 내용일 것입니다. 마치 한편의 어떤 해피엔딩 동화와도 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질만한 스토리인 거죠.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왔고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보니 크게 감동이 없을 것도 같습니다. 정말 그냥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거든요. 마치 신데렐라 이야기나, 콩쥐팥쥐 이야기 같은 그런 동화들 말이죠.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닌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요셉의 이러한 이야기가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 가운데서도 펼쳐질 것이라는 거죠.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만 봤을 땐 요셉이 운도 지지리도 없다가, 지난주에 나눴던 말씀처럼 세상이 억까하는 것같은 그런 삶을 살아가다가 어떻게 꿈 해몽 하나 잘해가지고 한순간에 총리가 되어서 인생 역전을 맛보는, 어떤 마치 로또가 당첨된 것과 같은 그런 모습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요셉의 삶의 모습들을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절대 한순간에 꿈 해몽만 잘해가지고 총리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겁니다. 요셉의 전체적인 삶의 모습 속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요. 요셉은 가는 곳마다 관리직을 맡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시작을 했었죠. 창세기 39장 4절의 말씀을 새번역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4 주인은, 요셉이 눈에 들어서, 그를 심복으로 삼고, 집안 일과 재산을 모두 요셉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였다.

 주인이 요셉에게 모든 집안 일과 재산을 맡겼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이 대충대충 일을 했을까요? 당연히 아닐 것입니다. 대충대충 일하는 사람한테 자신의 집안 일과 재산을 맡길 수 없는 거죠. 언어도 다릅니다. 문화도 달라요. 그런 곳에 노예로 팔려왔는데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서 열심히 살아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그 하루하루를 불평하거나 꾀 부리거나 하지 않고 맡겨진 삶의 일들을 감당해 냈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 우리가 상상을 해보자고요. 요셉은 노예로 팔려오기 전까지는 요셉도 여러가지 꿈을 꿨을 거라고요. 목표가 있었을 것입니다. 꿈에서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자신의 별에게 절하는 꿈을 꿨는데 얼마나 자신의 인생에 기대가 되었겠어요. 아버지에게 예쁨도 받죠, 혼자서만 특별대우를 받죠. 그런 모든 것이 충족스러운 상황 속에서 미래에 대한 어떤 밝은 기대와 꿈이 있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한순간에 타국의 노예로 팔려오게 되었을 때 그런 기대와 꿈들이 가능했겠습니까?  여러분들 지금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면서, 부모님이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 다 해주는 그런 안락한 생활을 하며 나는 나중에 커서 어느 대학교를 가고, 어떤 회사에 취직해서,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떻게 살아야지 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중국에 노예로 팔려갔다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이 생각하던 어느 대학교를 가고 어떤 회사를 취직하고, 어떤 직업을 갖고 이런 것들이 가능하겠냐고요. 그런 것들을 꿈꿀 수 있겠습니까? 언어도 문화도 다른 나라에서 걸레 빨고 바닥 닦으면서, 쓰레기 치우고 풀 뽑고 이런 일 하면서 그동안 꿈 꿔왔던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겠냐고요. 못하는 겁니다. 완전히 망한 인생 아니겠냐고요. 그럼에도 요셉은 열일곱 살의 나이에 노예로 팔려왔지만 그의 삶을 포기하거나 절망한 채로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비록 노예의 신분으로 완전히 나락으로 간 것 같은 상황과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지만 그 상황과 현실 속에서도 어찌되었든 꿋꿋하게 열심히 주어진 하루를 살아냈다는 거예요. 그 결과로 그 주인의 눈에 들 정도가 된 것 아닙니까. 그 집안 일과 재산을 모두 맡겨서 관리하게 할 정도로 성실했다는 거 아니냐고요.

​ 이어서 그는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지난주에도 나눴다시피 안그래도 노예로 팔려온 것만도 인생이 나락으로 간 건데, 더 밑바닥으로 떨어진 거죠. 범죄자 신분이 되었어요. 전과자인 겁니다. 그야말로 인생 완전히 망가진 거 아닙니까? 요즘 시대같았으면 정말 우울증이든 뭐든 정신병 걸리고 미쳐버리지 않겠냐고요.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낸 결과가 범죄자로 감옥에 갇히게 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면 무슨 생각이 들겠냐는 겁니다. 나름대로 얼마나 정직하게 성실하게 살았겠냐고요. 그런데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원망이 터져나와도 나오지 않겠냐는 겁니다. 그야말로 멘탈이 완전히 무너지게 되는 상황과 현실을 마주하게 된 거잖아요. 그런데 그의 모습을 보십시오. 창세기 39장 22절의 말씀을 새번역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22 간수장은 감옥 안에 있는 죄수를 모두 요셉에게 맡기고, 감옥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을 요셉이 혼자 처리하게 하였다.

 이렇게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 진짜 저 같으면 모든 것을 다 포기해버리고 그냥 폐인처럼 살았을 것 같습니다. 뭐 감옥에 갇히고 완전히 끝나버린 것 같은 인생인데 감옥 안에서 뭐 열심히 할게 뭐가 있냐고요. 그런데 요셉은 그렇게 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감옥에서조차도 그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간수장의 눈에 들어오게 되는 거예요. 뭐가 달라도 달라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간수장은 감옥 안에 있는 모든 죄수를 요셉에게 맡기고 감옥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요셉에게 맡겼다는 거예요. 이게 뭐 그냥 되겠냐는 겁니다. 대충 대충, 의욕 없이 그냥 아무렇게나 살아가는데 간수장이 이렇게 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을 겁니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을 맡길 땐 어떤 사람에게 맡깁니까?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기는 거예요.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에게 그 일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지금 그러한 삶의 모습을 나타내 보였다는 거예요. 누가 봐도, 쟤한테 맡기면 믿고 맡길만 하겠구나 라는 인정을 받는 삶의 모습을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점을 찍는 장면이 바로 41장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서 읽지는 않았지만 40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40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바로 왕이 요셉에게 하는 말인데 어떤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서 말하는 '내 집'이라는 것은 정말 집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나라의 모든 일을 맡기겠다는 거예요. 요셉은 단순하게 왕의 꿈 하나를 해몽을 잘해서 한순간에 총리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친위대장의 집에서부터 시작해서 감옥에서 그 모든 일들을 관리하면서 그는 나라까지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갔다는 거예요. 갑자기 총리의 자리에 놓이게 되었어도 나라를 관리할 수 있을 정도의 관리능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이렇게 요셉과 같은 삶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들의 그 삶의 자리,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그 하루가 절대 헛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있는 그 학교에서의 모습이, 학원에서의 모습이, 그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사소한 삶의 모습들이 여러분들의 실력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좀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왕이면 믿지 않는 이들보다 뭔가 좀 특출나도 특출나 보였으면 좋겠어요. 제가 말씀드리는 이 말은 세상이 요구하는 어떤 그런 스펙이나 사랑받기 위한 어떤 잘난 모습들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주어진 그 삶의 현장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정직하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얘기하는 거예요.

 제가 자랑하려고 하는 얘기는 아닌데, 조금만 자랑을 할게요. 제가 학교에서 장학생입니다. 장학생도 뭐 여러가지 종류가 많이 있는데 성적우수장학생이에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1등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자랑 한가지를 더 하자면, 이번에 저희 학교에서 설교대회가 있었는데 그 대회에서 1등을 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설교대회 1등 수상자의 설교를 듣고 있는 거라고요. 제가 이 말씀을 왜 드리냐면, 저는 뭐 제가 머리가 좋거나 공부를 잘한다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늘 부족함을 느낀단 말예요. 그런데 이거 하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열심히 합니다. 성실하게 하려고 해요. 그렇게 열심히 성실하게 하다보니 어찌저찌 좋은 결과를 얻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정말이에요. 그런데 제가 이런 기도는 했었거든요. "하나님, 제가 설교할 때 앞에 서서 학생들에게 예배 안빠지고도, 교회 열심히 다니면서도 얼마든지 좋은 성적 나올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본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러고 기도를 했단 말예요. 그렇잖습니까. 제 성적이 개판이면서 여러분들한테 "여러분, 예배 안빠지고도, 교회 열심히 다니면서도 좋은 성적 나올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겠냐고요. 그런말 해봐야 "너나 잘해라"라는 말밖에 더 듣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여러분들한테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 설교 때도 말씀 드렸었죠. 시험기간이라고 예배 빠져야 된다는 얘기, 정말 말도 안되는 핑계라고요.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우선이 되면, 나머지 삶의 일들은 자동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고요. 

 제가 뭐 저 잘났다고 자랑하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좀 인생을 성실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요. 삶의 자리에서 그런 모습들을 나타나는 것이야 말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사람들에게 "예수 믿으세요" 하는 것도 분명히 중요하지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뭔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을 나타내는 것만큼 확실한 전도가 어디있겠냐고요. 내 삶 자체가 전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을 대하는 내 모습 자체가 전도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모두가 다 무조건 1등을 해야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내 삶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시라는 거예요. 사람도 최선을 다하고 성실한 사람에게 일을 맡겨도 맡기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들을 맡기실 사람을 찾으실 때에 하루를 대충 살아가고 불평불만만 입에 잔뜩 늘어놓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시겠냐는 겁니다. 그런 사람을 쓰시겠냐고요. 맡겨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정직하게, 감사함으로 감당해내는 사람을 찾으시고 그런 사람들의 삶을 사용하신다는 겁니다. 그 사소한 성실함이, 그 사소한 최선이, 여러분들의 그 사소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시작점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자를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계획하신 그때에 그 삶을 빛나도록 들어 쓰신다는 거예요. 그렇게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이 총리가 되는 나이가 30세였습니다. 열일곱 살의 나이에 노예로 팔려와서 13년이라는 시간을 고생한 끝에 결국 그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그때에 애굽의 총리로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노예라는 타이틀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선 범죄자라는 타이틀로 13년의 힘들고 고된 세월을 보냈지만, 그 절망적인 상황들 앞에서도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낙담하지 않고 그에게 주어진 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다보니 그렇게 살아온 모든 세월의 경험들이 빛나게 쓰여지는 날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요셉은 자신의 자녀들을 낳게 되면서 아이들의 이름을 통해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51절과 52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51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52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 므낫세,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에브라임,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으로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이러한 삶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입술에서도 고백되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단순하게 요셉을 총리로 세우셔서 그의 인생을 역전시키는 것으로만 끝내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왜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까? 단순하게 그가 13년 동안 고생했으니 그 고생에 대한 보답으로 이제 앞으로는 잘 먹고 잘 살으라고 하신 걸까요? 아닙니다. 그가 총리로 세워짐으로 인해 애굽 사람들이 흉년의 기간을 잘 견뎌내게 하시고, 더 나아가 이스라엘 자손들까지도 구원해내시는 일들에 쓰시기 위해서 요셉을 애굽이라는 나라의 총리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단순하게 여러분들의 개인의 삶의 잘됨을 위해서만 여러분들의 삶을 이끌어가시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을 통해서 다른 영혼들까지도 살려내실 일들을 이루시기 위해 여러분의 삶을 사용하신다는 거예요. 그 일들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해 때로는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고난도 있게 하시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현실을 마주하게 하시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러한 일들이 있을 때 우리가 완전히 실망하고 낙담하고 넘어지지 않을 수 있음은, 그 일들을 통해 이뤄나가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끝까지 그 믿음을 붙잡고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삶을 형통하게 이끌어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상황과 어떠한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도 다시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최선을 다해 내게 주어진 삶의 일들을 성실하게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때에 놀랍고 대단한 일들을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요셉과 같이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아픔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곳에서 형통하게 하셨다" 므낫세와 에브라임.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입술에서 나오게 될 날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십시오. 성실함으로 정직하게 살아가십시오. 여러분들의 삶이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향기로운 예배가 되어질 때에, 하나님께서 그 삶을 기쁘게 받으시고 여러분들의 삶을 통해 형통케 하심으로, 그 모든 삶의 발걸음을 돌아봤을 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모든 일들이 이루어졌음을 감사함으로 고백하며 나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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