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도사/설교기록

들으시고 부르시고 보내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3장 1-12절)

하엘파파 2025. 10. 1. 15:14
반응형

들으시고 부르시고 보내시는 하나님

말씀본문 : 출애굽기 3장 1-12절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말씀제목 : 들으시고 부르시고 보내시는 하나님

 지난 시간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학대 당하는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나타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애굽에서 살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들이 노예 생활을 하며 학대 당하는 모습을 봤었죠.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그러한 학대 가운데서도 더욱 번성하고 퍼져나갔다는 말씀을 통해 우리 믿음의 사람들 또한 세상에서 아무리 괴롭힘을 당하고 미움을 당해도 믿음을 지키며 나아갈 때에 더욱 번성하고 퍼져나가게 하시고 이기게 하실 것임을 새겨봤습니다. 이후에 오늘 본문에서는 모세라는 인물이 등장하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너무 잘 아는 인물이죠.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인도해낸 민족 최고의 지도자입니다. 이 모세에 대해서 잠깐 간단하게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여러분들도 너무 잘 알고 있다시피 모세는 애굽의 왕자 출신입니다. 이집트 왕자라는 영화, 애니메이션도 있죠. 지난 시간에 나눴던 것처럼 이 애굽의 새로운 왕이 아무리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로 삼고 괴롭히고 학대했음에도 이스라엘 민족들이 점점 더 불어나니까 아예 남자아이들을 다 죽이는 명령까지 내립니다. 그 때에 모세의 엄마가 아이를 숨기고 있다가 더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어쩔 수 없이 갈대상자를 만들어서 나일강에 떠내려 보낸단 말예요. 그렇게 나일강을 타고 떠내려 가다가 애굽의 공주에게 보이게 된 겁니다. 그래서 이 애굽의 공주가 떠내려온 모세를 자신의 아들로 삼는 거예요. 모세는 그렇게 애굽의 왕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애굽 사람이 히브리인, 즉 이스라엘 사람이죠. 히브리인을 괴롭히는 장면을 보게 된 거예요. 모세 입장에서는 자기 민족의 사람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니까 정의감이 올라왔겠죠. 왕자로 자라면서 전투도 배우고 해서 그런지 싸움을 좀 했던 것 같아요. 어느정도로 잘했는지 이스라엘 사람을 괴롭히는 그 애굽 사람을 때려서 죽입니다. 어쨌든 아무리 왕자라고 해도 사람을 죽이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모세는 이 죽은 애굽 사람을 몰래 매장을 합니다. 완전 범죄를 꿈 꾼 거죠.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가고 어느 날 보니까, 이스라엘 사람들끼리 막 싸우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모세가 그 싸움에 끼는 겁니다. 너네 왜 같은 민족끼리 싸우고 그러냐면서 말리니까 이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누가 너보고 우리 지도자로 세웠대냐? 니가 우리 재판관이냐? 왜, 니가 죽인 애굽 사람처럼 나도 죽이려고?" 이 말을 듣고는 모세가 깜짝 놀란 겁니다. 왜요? 자기 생각에는 애굽 사람을 죽이고 묻은 것이 완전 범죄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소문이 퍼져있는 거죠. 하필이면 이 소식이 바로 왕에게까지 전해지게 된 거예요. 이 소식을 들은 바로 왕이 모세를 죽이려고 찾기까지 하는 겁니다. 그래서 모세는 어쩔 수 없이 도망을 가게 된 거죠. 그렇게 타국으로 도망을 친 모세는 그곳에서 양 떼를 돌보면서 그저 그냥 그렇게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이집트의 왕자로 40년을 살다가, 타국에서 평범하게 양 떼를 돌보는 인생으로 40년을 살아가던 어느날 호렙 산에 이르게 돼요. 바로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저쪽을 보니까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나무가 타지를 않고 있는 거죠. 떨기나무가 뭔지 잘 모르실텐데 일종의 가시나무 같은 나무라고 보시면 됩니다. 나무가 불에 잘 타요, 안타요? 나무는 불에 잘 타죠. 특히 건조한 가시나무같으면 너무 잘 타겠죠. 그런데 모세가 보니까 이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나무가 타질 않고 있으니까 너무 신기한 광경이 펼쳐진 겁니다. 그래서 이 모습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다가갔더니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부르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깜짝 놀라서 "네,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바로 대답을 하는 거예요. 바로 이 장면이 하나님과 모세가 처음 만나게 되는 모습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제목과 같이 들으시고, 부르시고, 보내시는 하나님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은 들으신다는 거예요. 오늘 본문 7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 하나님께서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분명히 보시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의 근심을 아신다는 겁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오늘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의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들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몇년 동안을 계속해서 부르짖었는데 이제야 반응하시는 것이 너무 하신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는 거죠. 모세가 이집트의 왕자로 40년을 살고, 양을 치면서 40년을 살았으면 80세 정도의 나이니까, 적어도 80년 이상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그 고통 가운데 있었던 거잖아요. 그럼 우리가 생각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80년 이상을 부르짖었는데 하나님이 그냥 놔두신 거 아니냐고 생각이 들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출애굽기 2장 25절을 보면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어도 80년 동안을 부르짖었음에도 그들을 바로 구출해내지 않으신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전쟁에 필요한 인구수라든가 가나안 땅의 죄악이라든가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을 것이겠죠.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때를 채우기 위해 그들의 고통을 그냥 놔두시고 계신 것이 아니라, 돌보시고 계셨고, 그들을 기억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할 때는 출애굽을 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쌍해 보일 수 있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보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쌍해 보일 수 있고 억울할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들의 삶 가운데도 역시 하나님의 일하심과 돌보심의 일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다 들으시고 지켜보고, 그들을 돌보셨다는 거예요. 때때로 우리가 생각할 때는 내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내가 힘들어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 고통을 바로 없애주시고, 그 어려움을 바로 해결해 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게 운행하시고 이끌어 가신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 기다림의 시간 속에도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쩌면, 저와 여러분들 또한 나의 시대에서 내가 꿈 꾸는 것들을 못볼 수 있는 것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희망하는 것들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 역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 이후의 다음 세대가 그 꿈을 이어가서 이루게 하시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또한 그 역사를 이어 받아서 이러한 시대를 맞이할 수 있게 된 것 아닙니까.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후대들을 위해서 싸우고 버티고 지켜냄으로 인해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이런 시대를 맞이하게 된 거잖아요. 이러한 모습을 꿈꿔왔을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누려보지 못한 이 은혜의 현장을 우리는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 결과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 억울할 수 있고 안타까울지도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루어가시는 과정 속에서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의 삶 또한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내 삶을 하나님께서 그냥 두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 삶은 내 삶에서의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계속 부르짖어야 하는 겁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거예요. 왜요? 하나님이 들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의 모든 아픔과 괴로움과 고통과 슬픔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아뢰는 그 모든 일들을 외면하시지 않으시고 들으심으로 여러분들을 돌보시는 역사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이어서 두번째로, 하나님은 부르신다는 거예요. 4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잠깐 문제를 드려보겠습니다. 1번, 모세가 불에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고 가까이 가서 하나님께서 부르셨다. 2번,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기 위해서 모세에게 불에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여주셨다. 몇번이 정답이겠습니까? 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기 위해서 불에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모세를 부를만한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특별한 방법으로 그를 부르셨다는 거예요. 떨기나무는 그 지역에서 너무나 흔한 나무입니다. 뭔가 특별하거나 대단하거나 한 나무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모세를 부르실 때 그 나무를 사용하셨을까요? 바로 이 모습이 모세의 모습이었던 겁니다. 바로 이 모습이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뭔가 대단하고 화려하고 특별나고 그래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보잘 것 없고, 대단할 것 없고, 평범한 나무지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불이 붙어도 타지 않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떨기나무가 대단하고 특별한 나무라서 불에 타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이처럼 보잘 것 없고, 평범하고,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는 사람으로 쓰임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렇게 부르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부르시는 자에게 거룩할 것을 요구하시는 겁니다. 5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발을 벗으라는 거예요. 신발을 벗으라는 것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살펴볼 수가 있는데 먼저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하시는 겁니다. 고대 사회에서 신발은 땅과의 접촉을 상징하며, 신을 벗는 행위는 세속적인 것을 벗어버리고 신성한 영역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했다고 해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세상의 것들을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겸손에 대한 표현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나의 능력과 나의 잘남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창조주이시며 전능자이신 하나님께 겸손함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순종함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이유를 묻거나 반박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대한 그대로의 행위, 순종함의 모습을 요구하신다는 거죠. 마지막 네 번째로는 새로운 시작과 헌신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과거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알려주시는 거예요. 새로운 발걸음을 걸어갈 것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실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의 모습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달라야 한다는 거예요.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분리된다는 거예요. 무엇이 분리되는 겁니까?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분리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들께 계속해서 강조하는 말이 있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있든 뭔가 좀 달라도 달라야 한다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뭔가 다른 모습들을 나타내야 된다고 말예요. 그런데 이것을 곡해해서 들으시면 안됩니다. 어딜가든 무조건 뛰어나고, 1등을 해야되고, 그래야지만 하나님께 쓰임받는다는 얘기를 하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태도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누군가는 이걸 곡해해서 "하나님은 연약한 자도 쓰신다고 하는데 왜 잘해야 될 것을 강조하냐" 이렇게 반문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계속 말씀드리는데 1등을 해야 하나님께서 쓰시고, 똑똑해야 하나님께서 쓰신다는 얘길 하는게 아니라고 계속 말씀드립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는 그 특출남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말씀드리는 거라고요.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뭔가를 시켰을 때, 네 알겠습니다 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하고, 아 왜 나한테 이런걸 시켜 이러면서 투덜 거리면서 느릿느릿 게으르게 움직이는 사람하고 여러분 같으면 누구를 시키겠어요? 뭔가를 줬을 때 우와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사람하고 아 뭐 이런거밖에 안주냐 하면서 받는 사람하고 여러분 같으면 누구한테 더 주고 싶을 것 같으세요? 너무 뻔한 거잖아요.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공부를 잘해야 하는 이유가 이와 같은 겁니다. 내가 출세해서 잘먹고 잘살기 위해 공부해서 1등하는 거라면 저 여러분들한테 1등 하라고 얘기 안해요. 공부하라고 얘기 안한다고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공부를 하더라도 열심히 하는 이유가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내게 주어진 학생이라는 본분에서 내가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다른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나타내 보이고, 그 모습을 통해서 다른 이들이 아 쟤는 교회다니는 애라서 저렇게 뭔가 다른 모습이 있구나 하는 것들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면, 여러분들이 있는 그 삶의 현장 속에서 특출난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그런 도구가 될 수 있다면, 세상 사람들과 다른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크리스찬으로서의 삶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다면 열심히 해야되지 않겠냐는 거예요.

​ 제가 말씀 드렸었죠. 제가 이 앞에 서서 여러분들에게 예배 열심히 드려도, 교회 열심히 다녀도 얼마든지 1등 할 수 있고, 공부 잘할 수 있다고. 이런 말을 제가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그 예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거라고. 이렇게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내가 공부를 잘해서 하나님께 쓰임받는다가 아니라,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현장 속에서 다른 친구들은 다 욕하고 나쁜 짓 하는 것들에 나도 똑같이 할 수 있지만 안하는 이유가 뭐겠어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할 수 없어서 기왕이면 그들과 다른 모습을 뭔가 하나라도 나타내기 위해서 안하는 것 아니겠냐는 겁니다. 저도 학교를 다니다보면 날씨가 좋고 그럴 땐 수업을 뒤로 하고 그냥 놀러 나가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대학생 형 누나, 언니 오빠들 보면 다 그렇게 한번씩 땡땡이도 치고 결석도 하고 지각도 하고, 출석체크만 하고 도망가고 그런단 말예요. 신학대학교인데도 그렇습니다. 나중에 전도사 목사하겠다는 학생들조차도 그런다고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그러고 싶다니까요. 그런데 그러지 않는 이유가 뭐겠어요? 구별된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에게 구별된 모습이 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함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겠다는 거예요. 우리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다른 구별된 모습이 나타나야 되지 않겠냐는 거예요.

​ 세상 사람들하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하고 똑같으면, 세상 사람들이 봤을 때 교회를 다녀야 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오늘날 이시대에 교회가 욕 먹는 이유가 이런 거 아니냐고요. 세상 사람들이 봤을 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자신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보이니까, 아니 어떨 땐 자신들보다 더 한 모습을 나타내 보이니까 오늘날 교회들이, 교인들이, 크리스찬들이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조롱 당하는 거 아닙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다고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세상과 다른 자들이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과 뭔가 달라도 다른 모습이 나타나야 하지 않겠냐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여러분들의 삶의 현장 속에서 세상과 다른, 구별된, 거룩한 모습이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학생으로서 공부 열심히 하는 것, 여러분들이 친구들에게 좋은 말을 사용하는 것, 모두가 외면하는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것, 남들이 다 불평불만을 말할 때 나는 긍정적으로 감사의 표현을 하는 것 등등 여러분들의 삶의 자리에서 아주 작은 사소한 것들이 여러분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10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것은 그저 모세가 40년 동안 고생했으니까 그거 보상해 주시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해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일에 사용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고 보내신다는 거예요. 40년을 그저 혼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모세를 200만에서 300만명이 되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어 낼 지도자로 세우시기 위하여 그들에게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부르신 그 한 사람 잘 먹고 잘 살게 하시려고 부르시고 세우시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앞서 말씀드린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선택해 주셨다고요. 그런데, 그 부르신 것은 여러분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인생을 살게 해주시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을 통하여 여러분들의 가족, 여러분들의 친구, 여러분들과 만남을 갖게 되는 그 모든 관계의 사람들을 구원해내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하심이 있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는 분이 누구시라는 거예요? 14절입니다.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 스스로 있는 자, 피조물이 아닌 모든 것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분이 여러분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부르시고,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시라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주에도 말씀 드렸다시피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반에서 여러분 혼자 교회를 다니고 있다고 해서, 여러분 혼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위축되거나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3%의 소수라고 해서 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은 그 소수의 사람을 통해서, 그 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고요.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도 보면 일제 강점기 당시에, 우리나라의 기독교인은 1.5%도 안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우리나라의 독립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다 해왔다는 거예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고요, 모든 독립운동의 요소들 속에 기독교인들이 주도적으로 그 일들을 이끌어 왔음을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 또한, 비록 보기에는 적어보이고, 힘이 없어보일지 모르지만,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향한 그 믿음과 기대가 분명하게 있고, 하나님께 그 인생을 드린다면, 하나님이 그런 여러분들의 삶을 결코 가만히 두시지 않을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세상 친구들과는 다른 모습을 나타낼 때에 여러분 한 사람을 통해 그 반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세상은 1%의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통해서 세상이 변화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부르시고 세우신 줄로 믿습니다. 내가 나를 봤을 때 보잘 것 없어 보이고, 아무런 능력이 없어 보이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일지라도, 그 일들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스스로 계시는 능력의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부르시고 여러분들을 보내시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그 모든 자리 가운데로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계신 그곳에서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놀라운 일들을 나타내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의 그 모든 곳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거라고요. 하나님의 그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보십시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삶을 통하여 크고 놀라운 일들을 나타내시며 여러분들 통해 변화를 일으키시는 역사가 저와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