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도사/설교기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출애굽기 1장 1-14절)

하엘파파 2025. 9. 3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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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말씀본문 : 출애굽기 1장 1-14절

1 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2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3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4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5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칠십이요 요셉은 애굽에 있었더라
6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9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13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14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말씀제목 :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오늘은 이제 창세기의 사건들을 마치고 출애굽기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란, 한문으로 나갈 출 자를 써서 애굽을 나가는 기록을 얘기하는 거죠. 애굽에서 나가는 여정을 그린 것이 바로 출애굽기인 겁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대입해서 본다면 애굽은 세상을 얘기하는 것이고, 이스라엘 민족은 믿음의 사람들, 바로 저와 여러분들을 얘기하고 있다는 거예요. 즉, 우리는 출애굽기를 통해서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세상 밖으로 나와 믿음의 여정을 걸어갈 것인가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가운데서 그대로 살아가게 두시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곳에서부터 나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출해 내신다는 거예요.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이 세상이라는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나아가는 그 여정을 통해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삶의 모습을 나타내신다는 거예요. 앞으로 보게 될 출애굽의 여정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세상으로부터 나와 하나님께서 이끌어가시는 믿음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출애굽기가 시작이 되면서 야곱의 자녀들의 이름이 나열됩니다. 야곱에게는 열두 명의 아들들이 있었고 그 아들들의 자손들까지 해서 칠십 명의 가족들이 애굽에 오게 된 거였죠. 원래는 이들이 처음부터 애굽에 살고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단 말예요. 그런데 흉년이 길어지게 되면서 양식을 구하러 애굽에 왔다가 애굽에서 총리가 되어있는 요셉을 만나게 되고, 애굽 나라에서 총리가 된 요셉 덕분에 야곱의 가족들은 애굽에서 그 흉년의 기간을 잘 보낼 수 있게 됐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애굽에서 지낸지 얼마 정도의 시간이 쭈욱 흘러간 거예요. 6절을 보면 세월이 흘러서 이제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이 다 죽은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겁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7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70명 정도의 가족으로 시작했던 그 작은 규모의 가족단위가 이제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시작과 끝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시는 것으로 시작해서 요셉이 죽는 것으로 끝이 나게 되거든요. 그리고 출애굽기로 넘어오게 되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하나의 국가로 서게 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택함 받은 민족이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선택하셔서 그를 통해 이삭, 그리고 야곱에 이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셀 수 없는 자손들로 번성하게 하신다는 그 일들을 이루어 나가셨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오늘 이 시대까지도 이어져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이뤄가고 계신다는 거예요. 창세기가 끝났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창세기가 끝나고 출애굽기로 이어지면서 여전히 하나님의 일하심과 역사하심이 그대로 이어진다는 거죠.

 

 나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난다고 해서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 일들을 계속 이어서 하나님의 일들을 나타내시고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 놀라운 역사의 현장 속에 저와 여러분들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을 통해 우리 광은교회 하안성전의 중등부가, 고등부가, 우리 교회가 그 놀라운 역사를 이어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세요. 칠십 명의 적은 가족 단위의 그들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되는 일들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지금은 여러분들의 규모나 모습이 비록 보잘 것 없어 보이고, 작아 보이고,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하심 속에, 하나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이러한 가득하게 되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게 되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 봤더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났다는 거예요. 우리나라도 보면 고구려, 신라, 백제 시대가 있었고 통일신라, 고려, 조선 이런 식으로 각각의 왕조에 따른 시대가 있잖습니까? 마찬가지로 이 애굽이라는 나라, 이집트도 이러한 역사의 변화들이 있었단 말이죠. 그런데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로 왕조가 바뀌게 되면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좋게 평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역사가 바뀌게 된 것이고 자신들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전에 있는 역사에 대해 안좋게 평가를 한단 말예요. 그래서 보통 새로운 왕조의 바로 전 역사의 왕들에 대한 평가는 다 안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얘네가 이래서 우리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라는 명분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이런 모습들은 뭐 예전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죠. 정권, 권력이 바뀌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이전 정권, 이전 권력에 대한 안좋은 이미지를 심는 것이 우선 됩니다. 그리고 이전 권력자들에 대한 교체가 이루어지는 거예요. 숙청을 하거나, 유배를 보내거나 하면서 이전 정권에 대한 지우기가 시작이 되는 거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게 이제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하니까 모든 것들이 다 명분이 필요한 겁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바꿔야 한다'라는 명분 말예요.

 애굽의 새로운 왕이 딱 보니까 이 나라에 히브리인들이 너무 많은 겁니다. 여기서 히브리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말하는 겁니다. 토종 애굽인들이 많아야 되는데 웬 다른 민족들이 많이 살고 있으니까 별로 맘에 들지 않는 거죠. 그래서 왜 이렇게 히브리인들이 많은가 봤더니 이전 왕조에서 요셉이라는 총리가 있었고, 그 총리가 이방인 출신인 겁니다. 그러니까 그 이방인 출신의 총리 때문에 그 총리와 같은 민족들이 이 나라에서 번성하면서 살고 있는 게 맘에 안들었겠죠. 게다가 이전 정권에서 활약했던 총리니까 어떻게 해야겠어요? 역사의 변화가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이 왕이 어떻게 합니까? 9절과 10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9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보다 많고 강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실제로 그러한 위협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 다른 시각으로 볼 때는 그런 정치적 상황이 연관되어서 이들을 노예로 삼고 역사에 대한 변화를 위해 일부러 이러한 명분으로 이들을 더 괴롭혔다는 견해도 있다는 거예요. 일종의 '선동'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전 독일 나치 시대 때 유태인들을 학대했던 것과 비슷한 거죠. 그때 당시에 독일 국민들에게 유태인들에 대해서 계속 안좋은 인식을 심게 하고 사람들을 선동하니까 사람들이 사실과 다른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유태인들을 잘못된 편견으로 혐오했던 시대가 있었잖습니까? 마찬가지로 지금 애굽의 새로운 왕이 애굽의 백성들에게 이러한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겁니다. 이 히브리인들을 그냥 두면 우리에게 위협이 된다는 거예요. 저들은 우리와 똑같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11절을 보겠습니다.

​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노예로 삼는 것입니다. 이들이 자신들의 민족에 위협이 된다는 명분을 가지고 그들을 노예로 삼고 힘들게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보십시오. 이 이스라엘 민족들이 정말로 애굽 나라에 위협이 되는 민족이었을까요? 물론 확답할 수 없겠지만 조심스럽게 얘기해본다면 아니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은 목축업을 하던 민족이었습니다. 물론 시대가 흐름에 따라 다양한 직업군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들은 기본적으로 군사훈련을 받거나 어떤 군사체계를 갖춘 민족은 아니었다는 거예요. 물론, 꼭 군사적인 측면만 보고 위협이 안됐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계속 불어나는 인구수라든가, 실제로 이 왕이 말한대로 다른 나라와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들이 다른 나라와 손을 잡고 애굽을 같이 공격하게 되면 분명히 위협이 될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출애굽기 뒤에 나오는 내용들을 보면 이들은 전쟁에 능통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성경에서 출애굽기 13장 17절을 보면 이렇게 나와있거든요.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하나님께서 이들을 바로 가나안 땅으로 직행하게 하면 블레셋과 전쟁했을 때 다 겁먹고 도망갈까봐 일부러 그곳을 피해서 멀리 돌아가게 하셨다는 거예요.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에 익숙한 민족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여러가지 근거들을 봤을 때 이러한 명분을 가지고 요셉 당시에 좋은 이미지였던 히브리인들, 이스라엘 민족들을 노예로 부리고 그들을 억압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아까 제가 서두에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애굽은 세상을 얘기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믿음의 사람들을 얘기하고 있다고요. 그렇다면 여러분, 이 대목을 봤을 때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대할 것 같습니까? 세상은 믿음의 사람들을 미워할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이 베이스를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돼요. 요한복음 15장 1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것들에 대해 우리에게 이미 얘기를 하셨다는 겁니다. 우리 함께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세상을 보십시오. 기독교를 정말 억까한다고요. 시대가 지나면 지날 수록 점점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다른 종교들 보세요. 불교, 천주교 별로 그렇게 막 나쁜 이미지로 나오는 경우를 거의 보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교회는 진짜 어마어마하게 까내린다고요. 여러가지 각종 매스컴에서 교회에 대한 안좋은 인식을 얼마나 심어주고 있습니까. 수많은 교회의 비리, 목회자들의 부정부패, 성적 타락 등은 기본이고, 드라마 같은 것들 보세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를 어떻게 나타내 보이고 있냐고요. 예전에 더글로리, 수리남 이런 것들 보면 거의 교회를 아주 무슨 이상한 집단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습니까. 예능같은 것들을 보더라도, 연예인들이 절에 템플스테이 가고, 점 보러 가고, 타로 점 보고, 무당 찾아가고 이런 것들은 되게 신비하고 대단한 것처럼 보여주잖아요. 마치 어떤 트렌디한 문화의 하나처럼 보여준다고요. 그런데 교회는 절대 그런 이미지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서 교회의 이미지가 어떤 이미지냐고요. 완전히 밑도 끝도 없이 추락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코로나 때도 보세요. 교회들 얼마나 탄압받고 욕 먹었습니까. 교회 다닌다는 이유 하나로 욕먹던, 다른 사람들에게 교회 다닌다고 함부로 말도 못하던 시절이 불과 몇년 전이었다고요.

 그런데요 여러분, 시대가 지나면 지날 수록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예수 믿는 것이, 교회를 다니는 것이 더 쉬워질 것 같습니까? 아니요. 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보면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고요. 여러분들 이 은혜의 때에 믿음 제대로 지키지 않으시면요, 정말 믿음 지키기가 어렵고 힘들어질 때에 다 무너질 수 있다는 거예요. 물론,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시고 그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도우시는 손길 또한 분명히 있을 것이지만, 우리가 너무 안일하게 있다가는 정말 힘들어지는 때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 중등부 같은 경우에, 매주는 아니지만 2주에 한번씩 학교 앞에 선생님들과 함께 학교 앞 전도를 하고 있는데요. 아무리 세상이 악해졌다고는 해도 그래도 그나마 여전히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참 즐겁습니다. 물론 그 아이들이 교회까지 나오면 너무나 더할나위없이 좋겠습니다만, 최소한 그 아이들에게 교회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아주 작은 씨앗이라도 뿌리고자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 정말 아주 작은 마음으로 그렇게 매번 선생님들과 간식을 들고 가서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있는데, 뉴스 보세요. 길거리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유통기한 지난 과자를 나눠주고, 아이들에게 마약이 들어있는 음료수를 주고 그런 것들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키고 문제를 일으킵니까. 그런 뉴스들을 볼 때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고요. 그래도 다행히 아직까지는 저희가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마주하고 과자를 나눠주는 것들에 대해 어떤 제재나 문제가 발생되지 않고는 있지만 시대의 흐름을 볼 때 이것도 이제 몇년 후면 못하는 때가 오지 않겠습니까. 점점 전도하기가 어려워지는 시대가 오고 있잖아요. 그런데요, 그런 불안하고 어두운 미래를 보면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여전히 믿음의 백성들을 향한 일하심이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12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 "그러나, 학대를 받을 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생각할 때는 학대하고 괴롭히고 힘들게 하면 그들이 움추러들고 피하고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일하심 가운데 믿음의 백성들은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간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억압하면 억압할 수록 믿음의 백성들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퍼져나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됩니까? 괴롭히는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을 계속해서 억압하고 학대하고 힘들게 하겠지만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믿음의 사람들이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믿음의 사람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들로 근심하게 된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인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세상이 흘러가는 모습을 봤을 때, 상황이 환경이 믿음의 사람들이 점점 어려워지고 신앙을 지키기가 힘들어지고 고난이 계속 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아무리 벌어진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저와 여러분들의 중심에 새겨지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믿음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알고 있습니다. 아니, 알 것 같을 뿐이지 여러분과 같은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저를 비롯한 우리 선생님들도 여러분들의 그 마음을, 그 상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복음화율이 3%라고 합니다. 그말은, 여러분들 한 반에 25명 정도의 인원들이 있다고 한다면 한 반에 교회 다니는 학생이 한 명 있을까 말까 라는 얘기겠죠.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지금 이자리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여러분들이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한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가치가 점점 더 강해지고, 세상이 말하는 돈의 가치가 전부인 것으로 물들어가는 이 때에, 더이상 진리가 진리가 아닌 것이 되고 여러가지 교회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들로 인해 교회의 가치가 훼손되어 더이상 믿음이 자랑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이는 이 때에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를 생각할 때면 기성 세대의 어른으로서 여러분들한테 참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요. 여러분들이 참 걱정스럽고 안타까워요.

​ 그런데요 여러분, 기독교 2천년 역사를 살펴보면 교회가 믿음생활 하기 쉬웠던 시대는 그 어떤 때도 없었습니다. 매 시대마다 그 시대마다의 어려움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럼에도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그 상황들 속에서도, 그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냈음을 기억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나 교회 다닌다"라고 말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충분히 이해해요. 그런 얘기를 했을 때 친구들이 어떤 말들로 여러분들을 조롱하고 놀릴지도 대충 예상이 된다고요. 그러나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걱정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조롱과 놀림이 우리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짜의 말들에 우리가 상처받을 필요 없다는 거예요. 아니 저는 오히려 여러분들이 더 당당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진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믿음을 지키며 나아갈 때, 진짜의 모습을 보일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믿음을 보시고, 세상이 보여줄 수 없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여러분들의 삶을 빚어내실 줄로 믿습니다. 성경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신다고요. 고난 가운데서, 아픔 가운데서,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끝까지 믿음을 붙잡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보십시오. 그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을 이기게 하시고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게 여러분들의 삶을 이끄실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삶을 기대합니다. 그 3%의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러분들 세대를 바꿔내실지 기대가 된다고요.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믿음을 지켜냄으로 이 시대 속에서 빛나게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세상이 어두워져간다고 할지라도, 상황이 안좋아진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의 고백을 함께 찬양하며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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