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도사/설교기록

아름다운 소식 (이사야 61장 1-9절)

하엘파파 2026. 3. 1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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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소식

말씀본문 : 이사야 61장 1-9절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4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5 외인은 서서 너희 양 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6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7 너희가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몫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그들의 땅에서 갑절이나 얻고 영원한 기쁨이 있으리라
8 무릇 나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
9 그들의 자손을 뭇 나라 가운데에, 그들의 후손을 만민 가운데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말씀제목 : 아름다운 소식

 

 노스트라다무스라는 유명한 예언가가 있습니다. 지구 종말에 대한 예언으로 참 유명한 사람이죠. 꼭 지구종말에 대해서가 아니더라도 뭐 여러가지 사건들을 맞췄다고 해서 유명해진 사람인데, 사실상 그 내용을 살펴보면 뭔가 좀 억지로 갖다 껴맞춘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점이라는 것을 봅니다. 타로점, 궁합, 오늘의 운세 등 나의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고 그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많은 활동들을 한다는 거예요. 그만큼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궁금증과 그것을 맞추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는다는 것이죠. 내가 알지 못하는 불투명한 미래를, 확실한 미래로 알게 되면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도 '재미삼아'라는 명목으로 그런 것들을 해보시는 분들이 있어요. 여기 앉아계신 분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혹시 계시다면 단호하게 말씀 드립니다. 하지 마세요. 내가 교회는 다니고 있지만 뭔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겠어서 한 몇 년 다녀보고 나중에 절도 몇 년 다녀보고 하실 분들이라면 모르겠는데, 내가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면 그런거 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 남자친구가, 내 여자친구가 다른 여자랑 혹은 다른 남자랑 놀러 갔어요. 그러고선 와서 "재미삼아서 잠깐 논 것 뿐이야" 라고 얘기하면 여러분 어떻게 반응하시겠냐고요.
​ 마찬가지입니다. 온 세상 만물을 만드시고,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신데, 그분의 자녀라고 말하는 내가, 세상의 가짜 미신들에 눈을 돌리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어이가 없겠냐는 거예요. 미래가 궁금하십니까? 미래가 불안하세요? 기도하십시오. 그걸 왜 가짜들에게 가서 물어보고 있냐고요. 아니 심지어 돈까지 내가면서 왜 그러고 있냐는 거예요. 저는 휴대폰 어플에서 오늘의 운세 보기 뭐 이런게 나오면 쳐다도 안봅니다. 그냥 재미삼아 볼법도 하겠지만, 오히려 일부러라도 피하려고 하는 거예요. 굳이 그거 봐서 뭐하냐는 겁니다. 나의 미래는 하나님께만 달려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역사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거예요.

 오늘은 성탄절을 앞에 두고 있는 주일입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12월이 되면 뭔가 설레거나 기대가 되거나 하는 마음이 들곤 하시나요? 그런 마음이 드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그냥 별 감흥이 없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12월이 되면 뭔가 괜히 설레기도 하고, 12월 특유의 그 분위기를 참 좋아하거든요. 거리에는 불빛이 반짝이고, 화려한 조명과,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캐롤들 뭐 이런 것들이 주는 12월 특유의 분위기가 너무 좋은 거예요.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그날을 앞두고 교회에서 하는 여러가지 행사들에 대한 좋은 추억이 있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한 거죠.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고 요즘엔 거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성탄절을 앞에 두고 있는 주일 저녁에 발표회를 하거나, 저녁예배가 없는 교회는 오후예배 때 발표회를 하곤 하는데 제가 학생이었던 때에는 보통 24일에 행사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라고 해서 12월 25일 전날인 24일에 그런 축하 행사를 했단 말예요. 그런데 그렇게 발표회를 마치고 나면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발표회가 끝나면 어른들하고 학생들하고 남아서 뭔가를 준비하는데, 바로 새벽송이라는 것을 준비해요. 요즘엔 주민들 민원 때문에 할 수가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는데 예전에는 새벽송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새벽송이 뭐냐면, 우리 교회 성도님들의 집을 찾아다니면서 문 앞에 서서 성탄 찬양을 부르는 거예요. 그러면 그 찬양 소리를 듣고 그 집의 성도님이 나오셔서 반갑게 맞아주시고는 미리 준비한 과자를 주십니다. 그럼 그 과자들을 보따리에 담고서 다음 성도님들의 집을 찾아서 돌아다니는 거죠. 그렇게 한바퀴를 돌고 다시 교회로 돌아오면 보따리에 담긴 과자들을 다 풀어놓습니다. 그럼 이제 어른들은 다음날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그 과자들을 분류해서 포장을 하고, 아이들은 뭐하겠어요? 교회에서 밤새 노는 겁니다.​
 요즘 여러분들은 스마트폰만 만지면서 놀겠지만 그때는 스마트폰 없이 밤새 게임하면서 노는 거예요. 마피아 게임도 하고, 아이엠그라운드도 하고, 놀거리들이 엄청 많습니다. 그렇게 놀다가 보면 야식으로 떡국을 주시거든요. 그럼 떡국 먹고 또 계속 노는 거죠. 그러고선 다음날 아침에 뭐해요? 성탄감사예배 드려야죠. 그런데 밤새 놀았으니 아침에 일어나는게 쉽겠습니까? 다들 엄청 힘들어하면서 못일어나고 그러면 목사님이랑 전도사님, 어른들이 와서 막 깨우느라 아침부터 전쟁터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졸린눈으로 본당에 앉아서 비몽사몽으로 예배드리고 그랬던 추억들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12월이 되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괜히 뭔가 설레고 그 특유의 분위기가 참 좋은 것 같아요.


 여러분들도 아마 대부분 크리스마스가 되면 뭔가 모를 설레는 마음이 있을 겁니다. 크리스마스 하면 뭔가 좋은 이유들이 있을 거라고요. 우리는 참 여러가지 각자의 이유로 크리스마스를 좋아합니다. 쉬는날이니까, 선물 받으니까, 놀러 가니까 등등 가지 각색의 이유로 좋아할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크리스마스가 무슨 날이죠? 네,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렇다면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인데 왜 여러분들이 선물을 받는 거예요? 생일에는 생일자가 선물을 받는 것이 당연한 건데, 우리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에 내가 선물을 받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생일인데, 오늘 내 생일인데 나한테는 선물을 안주고 다른 친구가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요? 내 생일이라고 친구들이 막 모여서 파티를 하는데 나는 안불러. 내 생일파티라고 하는데 나는 초대하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재밌게 놀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같으면 기분이 어떨 것 같냐고요. 생일자 없는 생일파티가 무슨 생일파티냐는 겁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많은 사람들도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고 설레어하고 즐거워 해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서로 인사도 하고, 카드도 써서 나눠주고, 그날 친구들끼리 모여서 신나게 놀고, 데이트도 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무슨 날입니까? 네,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에요. 그럼 누구에게 축하를 해야겠어요? 예수님께 축하해야 하는 겁니다. 누구를 초대해야 되는 거예요? 예수님을 초대해야 되는 거예요. 왜 기뻐해야 됩니까?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에 기뻐해야 되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과연 무엇 때문에 기뻐했냐는 것입니다.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선물 받아서, 놀러 가서, 맛있는 거 먹어서 이런 이유로 기뻐했다면 그것은 크리스마스와는 전혀 관계없는 기쁨이라는 거예요.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아야 될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인 거예요.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아야 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예수님께 어떤 선물을 드렸습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기쁨의 자리에 예수님을 초대하셨나요? 여러분들은 무엇으로 기뻐하고 즐거워 하셨습니까?​

 인간들에게 너무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의 의미가 너무나 퇴색되고 변질되었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주인공이 아니라, 산타가 주인공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기쁜 날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것에 기쁜 날이 되어버렸어요. 참 빛되신 예수님이 화려하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즐길거리들이 빛이 나버리는 그런 날이 되어버린 겁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그럴 수 있어요. 저들에게 있어서는 그저 석가탄신일이나, 개천절이나, 성탄절이나 그냥 쉬는 날 중에 하나로만 알고 있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요. 그런데 우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알잖아요. 우리는 이날이 어떤 날인지 알고 있지 않냐는 겁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 어쩌면 그것이 더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주인공이 되셔야 하는 날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기뻐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구약 시대에 이사야라는 선지자가 예언한 내용입니다. BC 8세기경,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700년 전쯤에 쓰여진 내용이라는 거예요. 우리 1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이사야라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당시의 역사적 상황으로만 본다면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간 상황에서 그들에게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내용의 말씀처럼 보일 수 있어요. 그러나 이 말씀은 후에 오실 진짜 구원자, 예수님을 향한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실 때 이 말씀을 가지고 인용해서 말씀을 하셨던 것인데, 그 내용을 한번 같이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인데 같이 읽어볼게요.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절의 말씀을 그대로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말씀하시고 이어서 뭐라고 하셨는지도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4장 21절입니다.​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 무슨 말씀이에요? 700년 전에 쓰여진 이 예언의 글이 오늘 너희에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바로, 너희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되어줄 존재다"라는 말씀을 하셨다는 거예요. 아름다운 소식이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들이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고, 갇힌 자에게 놓이게 하시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시고, 황폐했던 곳이 다시 살아나게 되고,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봉사자라고 불리게 되고,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받게 되고, 능욕 대신에 즐거움이 넘치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9절의 말씀을 같이 읽어볼게요.​

9 그들의 자손을 뭇 나라 가운데에, 그들의 후손을 만민 가운데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받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라고 불리우게 하시겠다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기쁨의 소식, 좋은 소식, 아름다운 소식이라는 거죠. 우리는 이 소식을 들었고, 알고 있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나에게 진짜 기쁜 소식으로 알게 된 사람은 무덤덤할 수가 없는 거예요. 너무 기쁘고 감사하고 설레고 즐거울 수밖에 없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을 처음에 누가 전했습니까? 천사가 전했단 말예요. 그런데 이때, 천사가 전한 말씀이 뭐였는지 한번 같이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장 10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볼게요.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천사가 나타나서 뭐라고 말합니까?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누군가에게 국한된 소식이 아니라는 거예요. 모든 사람들이 다 기뻐할 소식이라는 겁니다. 그것도 그냥 기쁜 소식이 아니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는 거예요. 도대체 어떤 소식이어야 모든 사람들이 다 기뻐할 소식이겠냐는 겁니다.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무엇이겠어요? 저희 딸에게 있어서 좋은 소식은 이것일 것 같아요. "김하엘! 오늘 휴대폰 시간 제한 없이 맘대로 써도 돼!" 이것은 이 아이에게 너무나 좋은 소식일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부모님들이 그렇게 얘기해 주면 좋은 소식이 될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만약, 천사가 나타나서 "너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한다! 너희에게 매월 100만원씩을 주겠다!" 이렇게 얘기하면, 누군가에겐 기쁜 소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삼성의 이재용 회장이나, 일룬머스크, 빌게이츠 뭐 이런 사람들에게는 전혀 기쁜 소식이 될 수가 없는 겁니다.

 이렇게, 누군가에겐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을만한 것이 누군가에겐 별로 그렇게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천사는 뭐라고 말했습니까? '온 백성',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는 거예요.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기쁨의 좋은 소식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받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태어나면, 언젠가 한번은 반드시 죽게 되어있다고요. 사람은 누구나 돈이 많든지 없든지, 권력이 있든지 없든지, 잘생겼든지 못생겼든지, 예쁘든지 못생겼든지, 공부를 잘하든지 못하든지 상관없이, 누구나 언젠가 죽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모습은 어떻습니까? 죽음 앞에 있는, 그 없어질 것들을 해결하려고 인생의 시간을 다 쓰는 거예요.

 돈 많이 벌려고, 권력을 잡아보려고, 외모, 공부, 스펙, 이런 것들에 인생의 시간을 쏟아 붓는다는 겁니다. 기준도 없어요. 굳이 기준이 있다면 '남'인 거죠. 남들보다 돈이 많은가 적은가, 남들보다 잘나가나 못나가나, 남들보다 예쁜가 못생겼나, 남들보다 가졌나 못가졌나. 이런 기준으로 인생을 살아가니 늘 부족하고, 늘 불안하고, 늘 허우적댄다는 것입니다. 그거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땅 가운데서 그렇게 살아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태어나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겨우 그런 것들 붙잡으면서 살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게 아니라는 거예요.

 돈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아무리 대단한 권력을 쥐었어도 인간의 죄로 인해 생겨난 죽음에 대한 문제는 그 누구도 해결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나타난 거예요. 그게 누구입니까? 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해서 지셨다는 거예요. 왜요?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렇게 사랑하시는 인간들이 죄로 인해 생겨난 죽음으로 인해 두려워하고, 죽음으로 인해 끝나는 것이 너무나 불쌍해서, 안타까워서, 죽음으로 인한 끝이 아닌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해주시기 위하여 선택하신 행동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을 값어치로 계산한다면, 나는 얼마짜리일까요? 진짜 객관적으로 우리 한번 스스로의 값어치를 매겨보자고요. 감성적으로 우리 부모님들이 말씀하시는 몇십억을 줘도 안바꾼다 이런거 말고, 이성적으로, 객관적으로 한번 나에게 값어치를 매겨본다면 우리는 얼마짜리겠냐고요. 참 잔인하게도, 어른들은 그것이 매겨집니다. 회사에서 연봉이라는 것으로 값어치가 매겨진다는 거예요. 3천만원, 4천만원, 5천만원, 1억 이런 값어치로 매겨지고 평가를 받게 된다고요.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에서 자신에 대한 가치를 높이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학생 때부터, 나의 존재의 값어치를 높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고요. 그런데요 여러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값어치의 존재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들의 값어치는  예수님짜리입니다. 예수님이 목숨을 내어 던지시고 바꾸신 값어치를 지닌 존재들이라는 거예요. 이 정체성이 내 안에 명확하게 있으면 남들과 비교하면서 주눅들 수가 없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포르쉐를 타던, 100평짜리 한강뷰 아파트에 살던 상관 없다고요. 이 땅에서의 유한한 삶에서의 모습들에 신경쓸 필요가 없는 겁니다. 아무리 포르쉐를 타고, 100평짜리 한강뷰 아파트에 살아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으면 그 인생은 그냥 그대로 끝나는 것 뿐이에요. 오래 누려봐야 100년도 못누릴 그 누림과, 영원히 누릴 행복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들은 그 진짜 가치를 가지고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며 이땅에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요. 진짜 기쁜 소식으로 기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제가 저희 딸 하엘이에게 복음에 대해서 알려주기 위해서 이런 비유로 말을 해줬거든요. "너 만약에 너가 죽으면 개미 만마리가 살 수 있어. 그럼 너 죽을 거야?"라고 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하는 거예요. "그렇지? 아무리 많은 개미가 살게 된다고 해도 너 한 사람의 목숨값과 바꿀 수는 없는 거야"라고 설명을 해주고는 한번 더 간 거죠. "생각해봐. 너가 죽는 것으로 강아지 만 마리가 살 수 있다고 해서 너가 죽겠어?" 그랬더니 하엘이가 이러는 겁니다. "어.. 그정도면 내가 죽는게 나을 것 같은데?" 그래서 제가 순간 당황한 거예요. "뭐? 강아지 만 마리 때문에 너가 죽겠다고?" 이랬더니, "응. 내가 죽고 강아지가 만 마리가 살 수 있다고 하면 죽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 아이가 강아지를 좋아하다 보니까, 자기 생각에 자기 한 명이 죽는 것으로 강아지가 만 마리가 살 수 있다면 나쁜 것만은 아니겠다 라고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아무리 너가 강아지를 사랑해도 그건 아니라고, 강아지가 아무리 많이 살 수 있다고 해도 어떻게 인간의 목숨과 강아지의 목숨을 비교할 수 있겠냐고, 너가 그런 선택을 한다 하더라도 엄마 아빠가 어떻게 강아지 때문에 너가 죽는 걸 볼 수 있겠냐고 이런 설명을 해줬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거예요. '저 인간들의 죄값을 대신 치뤄줌으로써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 다시 나아올 수 있다면 내 고통, 내 고난, 내 목숨 내어 던질만 하겠다' 라고 생각하시는 예수님의 마음과, 자신의 하나뿐인 독생자, 그 사랑하는 아들 예수가 내가 만든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어떤 취급을 받고, 어떤 고통을 당하고, 어떤 수치를 당하고,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를 뻔히 알고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그것을 알면서도 그 아들을 내어주는 하나님의 마음, 그 마음이 어떨지 여러분 상상이 되십니까? 우리는 감히 상상도 못할 사랑의 마음인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땅에 내려오신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이 완전히 바뀔 수 있는 너무나 기쁨의 소식이 되는 거예요. 그러나 이것은 단순하게 우리가 생일을 축하하듯이 태어난 것에 대한 축하를 받을만한 사건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수치의 시작이었던 거죠. 하나님이신 그분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땅에 오신 것이었어요. 인간을 향한,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사랑, 그 사랑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내어 던진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선 자신의 아들을 내어준 말도 안되는 사건이었던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의 이러한 은혜와 사랑을 잊어선 안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이 사랑을 너무 하찮게 여길 때가 너무나 많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이러한 은혜와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있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수가 있음을 기억하기를 소망합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은혜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었다는 거예요. 썩어질 이땅의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바라볼 수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입은 자들이 어떻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것을 바라며, 똑같은 가치를 좇을 수가 있겠냐는 거예요. 우리는 더 귀한 가치를 좇을 수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축복합니다.

 나의 자격이 아닌, 여전히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자신을 내어주신, 그 아들까지도 내어주신 하나님을 다시금 기억하며, 아름다운 소식을 기억하고 누릴 수 있는 성탄의 시간을 보내십시오. 나아가,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와 기쁨으로 예수님께 나의 마음을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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