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도사/설교기록

Nothing is impossible (누가복음 9장 10-17절)

하엘파파 2026. 4. 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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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 is impossible

말씀본문 : 누가복음 9장 10-17절

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12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14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15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16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말씀제목 : Nothing is impossible

 

 오늘 말씀 제목은 'Nothing is impossible' 입니다. 무슨 뜻이죠? 네, '불가능은 없다'라는 뜻입니다. 이번 하계 수련회 때 여러분들이 앵콜곡으로 외쳤던 찬양의 제목이기도 하죠. 사실 그때 마지막 앵콜곡은 정해져 있었거든요. 그런데 시간 관계상 준비한 앵콜도 못할 상황이었는데, 여러분들이 광기어린 눈으로 앵콜을 외쳐 준 덕에 앵콜을 할 수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준비한 앵콜곡은 '나의 형질이'라는 느리고 감성적인 곡이었단 말예요. 그런데 그 자리에 계셨던 분들은 아실 겁니다. 느리고 감성적인 곡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예 아니었죠. 그래서 했던 곡들 중에 어떤 곡으로 마무리를 해야되나 엄청 고민하고 있는 찰나에 여러분들이 이 곡을 요청하는 겁니다. "Nothing is impossible!!" 이러면서 떼로 막 달려드는데 제가 진짜 당황했단 말예요. ​

 이제서야 말씀 드리는 비하인드 스토리인데, 제가 이 곡을 몰랐습니다. 아는 곡을 요청하면 자신있게 그냥 바로 "오케이! 가자!" 하고선 불렀을텐데, 제가 모르는 곡을 요청을 하니까 섣불리 이 곡을 앵콜곡으로 진행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곡으로 좀 돌려보려고 하는데 진짜 그 자리에 있는 학생들이 다 선동이 되어가지고는 "Nothing is impossible!!!" 막 이러면서 외치니까 도저히 안할 수가 없는 거죠. 제가 그때 빌라도의 마음을 느꼈다니까요. 예수님 풀어주려고 하는데 막 군중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라!!" 이러고 외치니까 빌라도도 얼마나 쫄렸으면 예수님이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는 걸 알았으면서도 그냥 넘겨줬겠냐고. 나는 알지도 못하는 곡을, 안하면 죽일듯이 막 여기저기서 외치고 있으니까 도저히 안할 수가 없어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서 그냥 한 겁니다. 덕분에 아주 신나는 찬양으로 모두가 함께 앵콜을 즐길 수 있었는데요.

 

 이 찬양의 가사를 보면 이렇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네. 나의 힘 되신 능력의 주로 인해. Nothing is impossible. 강한 성 무너지고 눈 먼 자 눈 뜨며 믿음 안에 살 때 Nothing is impossible. 보는 대로 살지 않고, 느낀 대로 살지 않는 내 깊은 곳에 계신 주님. 모든 것 이루어 주시네. I believe I believe. I believe I believe in you.' 여기서 'I believe in you'가 무슨 뜻이에요?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라는 뜻이죠.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라고 계속 고백하면서 끝이 나게 되는 찬양입니다.

 너무 신나고, 막 뛰게 만드는 찬양이기는 한데 저는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좀 드려보고 싶은 거예요. 여러분 정말 믿으십니까? 여러분 정말 믿으세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나의 힘 되신 능력의 주님으로 인해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하시냐고요. 강한 성 무너뜨릴 수 있고, 눈 먼 자가 눈을 뜨고, 그 믿음 안에서 살 때 나는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하시냐는 겁니다. 보는대로 살지 않고, 느낀대로 살지 않으십니까? 내 깊은 곳에 계신 주님이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신다고 믿으시냐는 거예요.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여러분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 고백이 진실된 고백으로 내 입술에서 나오고 있냐는 겁니다.

​ 물론 우리가 찬양을 통해, 그 찬양의 가사를 통해 고백하는 것은 굉장히 좋은 거예요. 실제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찬양을 듣고 부르고 하다가 어느날 나도 모르게 그 찬양의 가사가 와닿고 나의 진실된 고백이 되면서 믿음이 생기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는 거죠.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찬양의 가사가 우리가 흔히 듣는 노래의 가사들처럼 그냥 누군가가 쓴 가사로만 끝나면 안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세상의 가요를 부를 때도 어떻게 부릅니까? 연인이랑 사귀다가 헤어지면 이 세상의 슬픈 이별노래 가사가 다 내 얘기 같잖아요. 누군가를 짝사랑하게 되면 짝사랑 노래들이 다 내 얘기 같잖아요. 짝사랑 할 때, 이별 했을 때 노래방 가면 다 가수가 되는 겁니다. 그때가 노래가 제일 잘 불러질 때라니까요. 왜 그런 것이겠습니까? 누군가 다른 사람이 쓴 가사이지만, 그 노래 속 가사가 내 얘기가 되니까, 내 고백이 되니까 감정이 이입이 되는 겁니다. 누가 작곡했고 누가 작사했고 뭐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요. 그냥 그 노래는 내 노래인 거예요.

 찬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분위기에 취해서, 그냥 분위기에 휩쓸려서 신나가지고 한번 외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찬양의 가사가 내 고백이 되기 때문에 기뻐야 된다는 거예요. 그 찬양의 가사가 내 고백이 되기 때문에 눈물이 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찬양의 가사가 내 고백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여러분들이 신나게 뛰면서 외쳤던 그 찬양 속 가사가 여러분들의 진실된 고백으로 울려퍼지길 소망합니다. 그 가사의 고백이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면 세상을 살아가는 중에 일어나는 일들이 무엇이 두렵겠어요. 나의 힘 되신 능력의 주로 인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대잖아요. 불가능은 없대요. 믿음 안에 살 때 내 앞에 펼쳐진 강한 성도 다 무너지고, 눈 먼 자도 눈을 뜰거랍니다. 불가능이 없대요. 보는대로 살지 않겠답니다. 느낀대로 살지 않겠대요. 내 깊은 곳에 계신 주님이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신답니다. 이러한 고백이 여러분들의 입술에서 넘쳐나기를 다시 한번 진심을 다해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제자들이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말씀 드리는 장면으로 시작을 하는데요. 10절의 앞에 있는 내용을 먼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9장 1절과 2절을 함께 읽어볼게요. 

​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더니 그들에게 병 고치는 능력과 귀신을 내쫓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그들을 보내셨다는 겁니다. 이어서 6절을 읽어볼게요.

6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그렇게 예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주신 능력을 가지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그 능력을 나타낸 겁니다. 복음을 전하고, 귀신도 내쫓고, 병든 사람이 있으면 병을 고쳐주고 한 거죠. 제자들이 얼마나 신났겠어요? 예수님만 행하시던 그 기적들을 자신들도 행하고 있으니 얼마나 좋았겠냐고요. 그러니까 제자들이 그런 능력들을 나타내고 이제 예수님께로 돌아온 겁니다. 오늘 본문 10절의 말씀을 읽어볼게요.

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얼마나 신나서 얘기를 했겠습니까. 자신들이 귀신을 내쫓은 얘기, 병든 자를 고친 얘기, 복음을 전하니 사람들이 믿고 따라오는 얘기 등등 자신의 인생에서 도저히 경험할 수 없었던 경험들을 하고선 신나서 막 얘기했겠죠. 그야말로 전설적인 자신들의 무용담을 막 늘어뜨려 놓은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얘기를 다 들으시더니 그들을 데리고 벳새다라는 마을로 이동을 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어요. 예수님께서 그들의 말을 다 들으시고는 그들을 데리고 이동을 하셨다는 거예요. 현대인의 성경 버전을 보면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한 모든 일을 예수님께 보고하자 예수님은 그들을 데리고 따로 벳새다라는 마을로 가셨다." 예수님의 두 번째 테스트가 이어지는 것이었어요.

 소문이 무성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행한 일들을 본 이들이 그 신기하고 대단한 능력을 또 보고 싶어서였는지 무리가 예수님과 제자들을 따라 다니는 겁니다. 그 수가 몇 명이었대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죠. 오천 명입니다. 심지어 이 숫자는 남자만 따져봤을 때 오천 명이니,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모였을 거라는 거예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니 예수님과 제자들이 얼마나 바빴겠습니까. 사람들에게 복음도 전하고, 병 고친 사람들이 오면 고쳐주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일들로 엄청 분주하게 움직였을 거라고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이제 해가 저물어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얘기하는 거예요. 12절입니다.​

12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 슬슬 저녁을 먹어야 되는 시간이 오는데, 같이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 많으니까 이들에게 뭘 줄 수 있는 상황은 안되고 하니 예수님께 이제 무리를 다 돌려 보내자는 거예요. 제자들의 말을 보십시오. 여기는 빈 들이라는 겁니다.어디서 뭐 사먹을만한 곳도 없다는 거예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시는지 보겠습니다. 13절을 읽어볼게요.

​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너희가 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어이없어하는 거죠. 아니, 빈 들에서, 그것도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오천 명을, 게다가 가진 거라고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는데 우리보고 뭘 주라는 건가 싶지 않았겠냐고요. 말이 안되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제자들의 대답을 보세요.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말한 내용 중에 틀린 말 있습니까? 없어요. 이 상황에서 보면, 제자들이 정상이고 예수님이 비정상입니다. 제자들의 말이 정답이고, 예수님의 말은 틀린 말입니다. 제자들의 말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논리적이고, 예수님의 말은 말 같지도 않은 터무니 없는 말이라고요. 그러나,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결말이죠. 16절과 1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6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그 무리들을 다 먹게 하시는 거예요. 심지어, 먹고 남을 정도의 기적을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어서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보여주신 것이죠. 이거밖에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게 있어서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상황은, 현실은, 환경은, 이성적으로는, 논리적으로는, 합리적으로는 도저히 되지 않을 것 같지만, 예수님께서는 상황이, 현실이, 환경이, 이성이, 논리가, 합리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제자들은 이미 그 앞에 예수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말이 안되는 기적적인 일들을 체험했습니다. 귀신을 내쫓고, 병든 자를 고치고, 복음을 전하며 주님의 능력을 체험했단 말이죠. 그러나, 그러한 기적의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보이는 현실과 상황 속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한계 안에 가두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메시지를 던져 주시기 위해 그들을 데리고 굳이 이동을 하셨다는 거예요. "내 능력은 한계가 없다", "나에게 불가능은 없다"  누가복음 9장 7절과 8절을 보겠습니다.​

7 분봉 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는 어떤 사람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8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 중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생각했던 그러한 생각을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했을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도 이러한 일들을 행했어요.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고, 여러 기적을 행했었죠. 그러한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보여주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선지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분이라는 거죠.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싶었던 거예요. "너희도 나로 인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는 여러 기적을 행하고 온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여러 믿음의 체험을 하고, 믿음의 기적을 본 제자들의 믿음을 보시려고 하셨어요. 그러나 돌아온 제자들의 반응은 실망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미 말이 안되고, 불가능하고,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체험하고 눈으로 봤음에도, 또다른 문제 앞에 그들은 또다시 현실을 바라보고, 상황을 바라보고, 이성을 앞세운 거죠.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음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사람의 생각, 사람의 능력, 사람의 한계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일지 모르지만 예수님에게는 아니라는 거예요.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25년 한 해동안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어떤 기적을 체험하셨습니까. 때로는 소소한 일들로, 또 때로는 큰 일들로 여러분들의 삶의 일들 가운데 주님의 사랑과 은혜의 능력을 나타내 보여주셨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삶은 주님과의 추억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입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일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일들, 이해가 되지 않고, 답이 안나오는 일들 속에 놓일 때가 있어요. 현실이, 상황이, 환경이 나를 짓누를 때가 있는 겁니다. 말씀을 아무리 많이 들었고,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은 하지만, 막상 내 앞에 닥쳐진 상황들 속에 하나님의 능력은 온데 간데 없이 그저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이성적으로, 상황적으로, 환경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제한하고 선을 그은 일들이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혹여나 이 자리 가운데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음성이 들려졌기를 소망합니다.

 "네가 생각하는 그 문제, 네가 생각하는 그 어려움, 그것은 나에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것은 나에게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나는 네가 가진 것으로, 네가 생각하는 그 작은 것으로 얼마든지 바꿔낼 수 있고, 그 상황을 역전시켜낼 수 있다."

 앞으로 다가올 2026년 한 해동안, 우리의 눈 앞에 수없이 많은 일들이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일들 속에서 어렵고 힘든 일들을 마주하게 될 거예요.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고, 내 능력으로 이겨낼 수 없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나는 못해도, 나는 할 수 없어도,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 능력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내 능력으로 너희도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 우리가 신나게 불렀던 찬양, Nothing is impossible. 그 찬양의 제목과 가사와 같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을 고백해 보십시오. 나의 믿음의 고백으로 선포할 때에, 그 가사는 어떤 찬양의 가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입에서 진실된 기쁨의 고백으로 울려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기쁨의 고백이 넘쳐 흐르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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