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

말씀본문 : 시편 139편 13-24절
13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15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17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18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19 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20 그들이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으로 헛되이 맹세하나이다
2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나이까
22 내가 그들을 심히 미워하니 그들은 나의 원수들이니이다
23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24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말씀제목 :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
한 가지 질문을 드리면서 말씀을 시작하려고 하는데요. 여러분들은 오늘 점심시간에 중국집을 가게 되신다면 짜장면과 짬뽕, 어떤 것을 드시겠습니까? 아마 어떤 분들은 무엇을 먹어야겠다고 빠르게 정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또 어떤 분들은 이게 뭐라고 깊은 고민에 빠진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제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뭐 하나만 딱 좋아하면 참 편할텐데, 짜장면도 너무 맛있게 먹고, 짬뽕도 너무 맛있게 먹어서 중국집을 가게 되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참 안타까운 거죠. 짜장면을 먹으면 짬뽕을 안먹은 것이 후회가 될 것 같고, 짬뽕을 먹으면 짜장면을 안먹은 것이 후회가 될 것 같은 거예요. 심지어 어떤 때는 오늘은 짜장면을 먹어야겠다 라고 다짐하고 갔다가도 막상 도착해서 옆테이블에서 누군가가 짬뽕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짬뽕으로 바뀌기도 하는 것이 이 연약한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때에 내가 내 모습을 봐도 내가 나를 모르겠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을 했지만 살아가는 삶의 모습 속에서 내가 내 모습을 볼 때, 내 스스로도 나를 모르겠는 때가 있다는 거예요.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나라고 말하지만 사실 나도 나를 모를 때가 얼마나 많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 속에서 때로는 실수도 하고,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됨으로써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하는 거죠. 이러한 모습은 나에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니 자신도 모르겠는 자신의 일들을 알기 위해 무당을 찾아가고, 점을 보는 등 다른 어떤 존재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불안해 하며 무당이나 점을 보러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몰라도, 미래가 불투명해도, 불안함이 있을 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걸음을 감사하게 내딛을 수 있는 것은 나보다 나를 더 잘아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에요. 그 존재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심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는 거예요.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의 저자인 다윗은 바로 그러한 고백을 하나님 앞에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앞에 있는 1절에서 12절까지 그 얘기를 먼저 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나를 아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앉고 서는 것도, 멀리서도 가까이에서도, 내가 눕는 것도 말하는 것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주님을 피해서 어딜 가겠습니까. 내가 하늘에 올라가도 계시고, 지하 끝에 있어도 계시고, 바다 끝에 있어도 주님은 어느 곳에든 계십니다. 내가 흑암 속에 숨어있어도 주님 앞에서 나는 숨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고백을 하는 거죠.
그리고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인 13절부터는 하나님께서 나의 몸 속까지 아신다는 겁니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몸 속 장기들까지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거예요. 1절부터 12절까지는 바깥에 보여지는 어떤 모습들에 대해서 고백했다면, 13절부터는 바깥에 보여지는 모습 뿐만이 아닌 나의 속까지도 아신다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렇게까지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에 대해 가장 원론적인 고백을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셨음을 믿으십니까? 아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만드신 줄로 믿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세포적 변이가 이루어지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내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14절과 15절에서 고백하는 거예요. 내가 존재한다는 놀라움,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놀라움, 나라는 존재의 그 모든 신비들이 그저 감사하다는 거죠. 나는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곳에서 내 형체가 하나님 앞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언제부터요? 16절이죠.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이미 하나님께서는 나를 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서 내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생물학적 어떤 현상이나 과정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이미 하나님께서는 나를 보셨다는 겁니다. 그뿐만이 아니죠. 하루가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하루하루가 기록되고 정해졌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나에 대한 그 모든 일들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 나의 계획 이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들을 아시고 생각하시고 계획하신다는 거예요.
제가 늦은 나이에 사역자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그 모든 일들을 다 말씀드리기엔 너무나 긴 이야기라서 이 짧은 시간에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참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결정하게 된 결정이었 거든요. 아무튼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그 일들을 진행하면서도 사실상 마음 한켠에는 늘 걱정과 불안함이 있는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들 자녀들을 키워보셔서 아시겠지만 아이가 커가면 커갈 수록 뭐가 많이 듭니까? 네,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보단 고학년일 때가, 초등학생일 때보단 중학생 때가, 중학생 때보단 고등학생 때가 더 많은 돈이 필요하잖아요.
아이는 점점 커가면서 지출은 많아질텐데, 저까지 신학을 배우겠다고 학교를 들어가면 지출이 더 늘어나게 되는 겁니다. 게다가 젊은 나이도 아니에요. 물론 지금 앉아계신 성도님들이 보시기에는 제가 한참 어려보이고 젊어보이고 저 때는 뭘해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겠지만, 일반적인 루트로 생각해 보면 저는 20년이 늦게 시작하는 겁니다. 보통 목사님들 40년 목회하신다고 하면, 저는 길게 잡아도 20년밖에 못하는 거죠. 게다가 20대 때 시작해서 배우면서 자리를 잡는 것과, 처자식 다 있는 상황에서 생계와 함께 고민하며 싸워야 할 나이에 시작해서 배우고 자리잡는 것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는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앞을 바라보면 막막한 거죠.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렇게 이 길을 정했으면서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 속에선 늘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인 거예요.
그러던 어느날 가족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2박 3일로 여행을 갔는데, 첫째 날 하루 일정을 다 보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저희 딸이 뒤에 앉아서는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내일은 얼마나 더 좋을까?" 첫째 날 여행의 일정이 이 아이에게 너무나 좋았나 봅니다. 그러니까 다음 날에 대한 기대감에 젖어 이런 말을 했겠죠. 딸 아이의 이 말을 들은 아빠인 저는 딸에게 이렇게 대답해 줬습니다. "내일은 더 좋을 거야" 제가 이렇게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이유가 뭐였겠습니까? 아빠가 최고로 좋은 숙소와 최고로 좋은 음식점과 최고로 좋은 볼 거리 많은 곳들을 이미 계획하고 그 일정대로 움직일 것이기 때문인 겁니다.
딸 아이에게 그 대답을 해주는데 제 마음 속에 하나님께서 이 음성을 들려주시는 겁니다. "아들아, 걱정하지마. 네가 걸어가는 그 길, 좋을 거야" 사랑하는 딸 아이에게 즐거운 경험과 추억을 남겨 주기 위해 아빠인 저는 그 여행 일정을 다 계획했다는 거예요. 딸은 그저 차 뒤에 앉아서 아빠가 인도하는 대로, 이끄는 대로 쫓아오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제 인생의 여행 길을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해 놓으셨다는 거예요. 제가 그날 이후로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설 때마다 이 생각을 되새기는 겁니다. "아 맞다. 아 그래. 이 인생의 여행 길은 내 하나님, 내 아버지께서 인도하고 계시지. 하나님, 기대할게요. 하나님, 얼마나 좋을까요"
그날 이후로, 제가 사역자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다짐하고,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 짧은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은혜를 경험하고 감사한 일들을 경험하고 있는지 여러분들은 모르실 겁니다. 하루 하루에 마주하는 일들이 정말 감사가 넘쳐나는 일들로 막 쏟아지는 거예요. 물론, 삶의 여러가지 일들 속에서 힘들고, 피곤하고, 막막하고, 걱정이 되는 일들이 저에게도 수없이 많이 펼쳐집니다.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의 일들이 동반돼요. 그러나, 그러할 때에 다시금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 하나님께서 이끌고 계신다. 그래,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다. 그래, 하나님께서 이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나타내실 것이다. 하나님, 하나님께 맡깁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입술에서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다윗은 17절과 18절에서 하나님을 향해 감탄을 하는 거예요. "하나님, 주님의 생각이 어찌 그리도 심오하세요?", "하나님, 어쩜 그렇게 저를 향한 생각이 많으세요?",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를 생각하신 그 모든 것들을 다 세려고 해보면 모래보다도 더 많겠어요!", "하나님, 하나님은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함께 하고 계시네요!" 다윗의 감격과 벅차오르는 기쁨, 감사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감사는 감사할 수록 감사할 거리들이 늘어납니다. 불평도 불평할 수록 불평할 거리들이 늘어납니다. 우리는 항상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죠. 감사할 것인가, 불평할 것인가. 감사를 선택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감사해 보십시오. 그 모든 사소한 것들에 감사해 보세요. 불평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 주일에 광은교회 찬양축제가 있었죠. 광명, 하안, 일산, 시화를 비롯해서 전원교회까지 모든 지성전들의 성가대와 합창단이 모여서 찬양을 하는데, 제가 정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천국에 가면 이런 모습이 펼쳐지겠구나' 저는 정말 진심으로 그 시간이 너무나 천국에 있는 시간인 것 같은 거예요. 그러면서 이런 고백이 나왔습니다. '하나님, 저를 이 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 성도님들에게 아부를 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마 그날 성가대 서셨던 분들 중에 찬양하시고 퇴장하시면서 저를 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제가 저희 하안성전 성가대 분들 다 들어가실 때까지 앉은 자리에서 박수를 계속 치면서 따봉으로 계속 인사드렸습니다. 제가 뭐라고 제가 다 감사하더라니까요. 제가 많은 교회를 다녀보진 않았지만, 이번 부흥 강사 목사님 말씀 대로 우리 교회, 진짜 좋은 교회입니다. 이런 좋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오신 여러분들이 너무 부럽더라니까요. 감사의 고백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렇게 18절까지 감사와 은혜에 젖어서 하나님께 고백하던 다윗은 19절부터 분위기가 전환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것을 고백하다가 19절부터는 갑자기 개인의 탄식과 원수를 향한 공격의 기도를 드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거예요. 그러나 이것은 잘 살펴보면 다윗 개인의 원수를 향한 선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을 향한 선포인 것이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인들, 하나님을 악하게 말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을 향한 선포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다윗은 21절과 22절에 고백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를 제가 어떻게 미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를 제가 어찌 증오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저들을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대적이 곧 나의 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나를 만드시고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내가 그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고 경외하는데 나의 그런 하나님을 악하게 말하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을 내가 어떻게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냐는 거예요.
여러분, 누가 내 부모님을 욕하고 있으면 가만히 두겠습니까? 누군가가 내 사랑하는 자녀를 욕하는데 그 사람과 같이 있고 싶겠어요? 누군가가 나의 사랑하는 배우자, 나의 사랑하는 가족을 미워하고 욕하고 싫어하는데 내가 그 사람과 함께 어울려 다니겠습니까? 다윗은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행동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겠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비방하고 악하게 말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행동 하지 않겠다는 거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악하다 말하는 모습 나타내지 않겠다는 거예요.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자세라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23절과 24절에서 다윗의 위대한 고백이 이어집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제 마음 아시잖아요. 제가 무슨 생각하는지 하나님 아시잖아요. 하나님을 향한 제 마음 주님께서 보실 줄 압니다. 저는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동행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교만함이 아닙니다. 그 어느 누가 하나님 앞에서 당당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모두 죄인이고 연약한 존재이기에 죄 앞에서 쓰러질 수 있고 넘어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러한 연약함 가운데서도 주님께서는 주님을 향한 그 사랑의 마음을, 그 몸부림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죄로 인해 쓰러지고, 연약함으로 인해 넘어질 때도 있지만, 끝까지 주님을 붙잡으려는 모습, 끝까지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서 싫어하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려는 모습,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대로 살아가려는 모습, 그 몸부림을 주님께서 아신다는 거예요. 그때 우리는 다윗의 고백처럼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 내가 연약해도, 내가 부족해도, 내가 쓰러질 때가 있고, 내가 넘어질 때가 분명히 있지만은 그래도 주님은 아시잖아요. 다른 사람, 그 어느 누구도 모른다 할지라도 주님을 향한 저의 사랑을 주님은 아시잖아요. 주님께서 제 마음을 아시잖아요." 이 사랑의 고백을 주님께서 들으시고 기쁘게 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나의 생각, 나의 계획, 나의 모든 삶의 일들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거예요.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걱정이고, 무엇이 염려가 되겠습니까. 오늘 이 시간 말씀을 기억하며 다시금 마음에 이 말씀을 새기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내 생각을 아시고 내 삶을 아시고 내 모든 상황과 환경을 아시는 주님, 주님을 향한 나의 마음을 살펴 주시고, 내가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기쁨이 되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은혜의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러한 고백이 우리의 입술에서 나올 때에 하나님께서 그 고백을 들으시고, 받으시고, 그 분의 은혜로 우리 삶의 발걸음을 인도해주시는 귀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오늘도 우리에게 귀한 말씀을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살피시고 아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나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게 하여 주옵소서. 나의 삶을 이끄시고 운행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의 주님을 붙잡음으로 주님께서 이끌어가시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향한 감사의 고백이 넘쳐나게 하시고, 주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이 넘쳐나게 하심으로 주님의 은혜 안에서 축복의 삶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오며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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