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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 신학에서의 성서와 교리적 표준

하엘파파 2024. 11. 2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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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 신학에서의 성서와 교리적 표준

 

1. 신학의 출발점, 성서와 체험

 웨슬리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정통주의자(orthodox)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신학이 전 시대의 신학 체계를 이어받은 데서의 정통이 아니라 그의 신학의 내용의 일치에서 정통적이라는 말이다. 웨슬리는 자신을 한 책(성서)의 사람이라고 자칭했고 신앙체험을 중요시 했다. 웨슬리 당시에는 성서와 교회의 신조가 신학에 있어서 권위로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오늘날과 같은 성서신학이나 조직신학의 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어떤 조직신학의 체계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 나름대로, 특히 그의 설교를 통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천명하였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 웨슬리가 성서에서 교리를 연역하여, 신학하는 데 크게 역할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신앙체험이었다. 그리하여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웨슬리 신학은 체험의 신학이라고 불리어지고 있다.

 웨슬리가 말하는 체험은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에 호응하는 것으로서의 체험이다. 웨슬리는 기독교 신학이 바로 이 하나님의 은총에 인격적으로 참여하는 데서 나온다고 보았다. 그리고 웨슬리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체험은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으로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또 그 근거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2. 성서 Sola Scriptura

 1) 웨슬레와 성서 : 한 책의 사람 (homo unius libri)

 웨슬리는 성서를 근면하게 읽었다. 그는 매일같이 성서를 원어로 몇 시간씩 읽으면서 진지하게 연구했다. 진실로 그는 성서에 능통하고 있었다. 그가 쓴 글에는 그것이 편지였든, 논설이었든, 너무나 많은 성서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성서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웨슬리는 설교도 성서의 말씀에 그대로 근거를 두고 하였다. 웨슬리에게 있어서는 성서가 설교의 기초가 될 뿐 아니라, 성서가 바로 설교의 내용이었던 것이다. 설교문도 성서의 직접적인, 또는 간적접인 인용으로 가득 차 있다. 웨슬리는 일찍이 1730년부터 '한 책의 사람'이 되기 시작하여, 성서 이외에는 비교적 다른 책을 연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웨슬리가 '한 책의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성서 이외의 다른 책을 읽지 않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린은 웨슬리가 1725년부터 1734년 사이에 옥스포드 시절에 400여 권을 읽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린은 그 시절의 웨슬리의 일기에 읽었다고 언급된 책들을 열거하고 종류별로 열거하였는데 그 책들의 종류와 범위는 너무나 다양했다. 헬라와 로마의 고전을 비롯하여 종교, 문학, 철학, 연극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

 그러므로 웨슬리가 말하는 '한 책의 사람'을 성서 이외에는 다른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이 말은 오히려 웨슬리에게 있어서는 성서가 신학이나 모든 진리에 대한 최고 권위가 된다는 뜻이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성서'는 그의 신학의 근거였다. 성서야말로 참 지혜를 줄 뿐 아니라 그를 확인하고 더하여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성서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

 ①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서

 웨슬리는 성서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으로 그릇됨이 없다고 믿었다. 웨슬리는 성서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믿게 하는 강한 논리, 소위 '4대 논리'를 전개하였다. 웨슬리는 '성서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성서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믿는 것이 메서디스트의 특색이었다.

 

 ② 구원의 도구로서의 성서

  웨슬리는 구원받기에 필요한 진리가 성서 안에 충족히 포함되어 있다고 믿었다. 곧 성서의 충족성을 믿었다. 웨슬리가 말하는 성서의 권위 문제는 구원에 있어서 성서의 충족성에 그 중심이 있었다. 그가 성서를 탐구한 것도 곧 구원의 길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③ 성서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

 웨슬리 신학에 있어 최고의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였다. 성서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생활에 있어 전적이며, 유일한 규준이라는 것은 메서디스트의 기본적인 교리였다. 이는 웨슬리가 하나님의 모든 계시를 성서를 통하여서 읽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서가 신학의 대법원의 역할을 했다. 성서가 신앙생활의 시금석이었다.

 웨슬리는 성서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으므로 그 내용에 실족함이 없다고 믿었다. 곧 그가 계시하는 일에 있어서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믿었다. 곧 웨슬리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되며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역할을 하는 참 진리는 성서에 의하여 주어지며 확인되며 더하여진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성서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실족함이 없다고 믿었다. 

 웨슬리는 성서관에 있어서의 정통적 개신교의 강조점과 신비주의자들의 강조점을 창의적으로 종합했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양극단의 고민을 해결해준 것이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영감의 일회성과 아울러 계속적 영감을 믿으며,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과 신자와의 관계성 곧 구속적 만남에서 본질적으로 이해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자연계시를 인정하였으나 자연계시가 그의 신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는 않았다. 이는 웨슬리가 인류의 타락으로 인하여 자연계시와 이성의 부적당함을 보았으며 또 다른 한편 웨슬리는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신학방법을 의도적으로 피한 까닭이었던 것 같다. 더욱더 하나님의 계시를 체험 속에서 본질적으로 이해하려는 데 강조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3) 성서 해석의 원리

 ① 문자적 의미를 중요시하며 해석한다

 성서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확신은 웨슬리로 하여금 자연히 문자적 의미를 중요시하게 하였다. 웨슬리는 성서 히브리어와 헬라어, 라틴어 등 고전언어에 능통한 학자였다. 그리하여 해석에 문제가 있을 때에는 성서 본문에 기초하여 변론을 내리곤 하였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성서를 해석함에 있어서 그 본문의 의미가 모호하지 않는 한, 본문의 분명한 문자적 의미에서 이탈하지 말라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다. 성서의 문자적 해석은 구절들을 그 문맥과 그 전체에서 이해하도록 해야 하며, 또한 이성의 도움과 체험에 비추어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② 문맥과 연관시켜 해석한다

 웨슬리는 성서의 구절들을 고립된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의 문맥에서 해석함이 중요하다고 했다. 어떤 구절을 앞뒤의 문맥에서 고립된 채 해석하면 그 뜻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때로는 정반대의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③ 성서는 성서와 비교하면서 해석하되, 성서 전체에 흐르고 있는 중요한 진리에 따라 해석한다

 웨슬리는 성서 해석에서 한 성서의 구절은 다른 성서 구절과 대조해가면서 해석해야 한다고 하였다. 웨슬리는 성서에 대한 최선의 해설자는 성서 자체라고 믿었다. 성서는 전부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말씀으로서 성서에는 통일성(the unity of the Bible)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서 해석예 있어서 성서를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은 성서를 성서와 조심스럽게 대조함으로써 그 말씀의 참 뜻을 배우는 것이다.

 

 ④ 체험과 전통에 비추어서 해석한다

 웨슬리는 성서의 문자적 해석은 신자의 체험에 비추어 이해하여야 한다고 했다. 곧 그는 성서를 성서로서 비교하면서 연구해도 아직 어떤 의심이 남아 있으면 하나님의 일들을 체험한 성도에게 물어본 것이다. 이는 웨슬리가 성서를 영감으로 기록케 하신 하나님께서 또한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서를 읽는 사람들에게 초자연적으로 영감하시어 바로 깨닫도록 도와주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웨슬리의 성서 해석에서는 체험, 곧 성서를 읽는 자 안에서의 성령의 역사가 성서를 똑바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웨슬리는 개인의 체험보다 그룹, 곧 공동체의 체험을 중요시했다. 그래서 웨슬리는 체험을 동료설교자들과 토론하고 상의하곤 하여 합의점을 찾아서 결론을 내리곤 하였다.

 그러나 웨슬리는 전통의 권위를 기록된 전통에만 한정했지 구전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면에서 로마 카톨릭의 구전을 권위있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⑤ 이성의 도움을 받되 믿음의 유추에 따라 해석한다

 성서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이성(reason)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웨슬리는 생각했다. 사람의 체험에는 이성의 작용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이성은 이해와 판단과 논술의 도구이다. 종교라는 것은 인간의 기능을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를 발달시키고 장성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이성을 버리는 것은 곧 종교를 버리는 것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성은 종교의 근거를 성서와 함께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성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 아래서 비로소 복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게 된다. 이때에야 비로소 이성은 성서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의 섭리 시대와 구원의 순서 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로 고상한 목적에 사용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성은 믿음의 시녀로 봉사하며 이성은 그 나름대로 갈 수 있는 데까지만 가야 한다. 웨슬리는 이성의 한계를 인지하기 땜누에 믿음의 유추와 성서의 기본적인 교리들 간의 연결과 조화에 유의하라고 권하고 있다.

 

 ⑥ 실제성을 중요시하며 해석한다

 웨슬리는 성서 해석에 있어서 실제성을 중요시했다. 곧 성서 해석은 복잡한 추리나 철학적 사변을 피하여 쉽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서 해석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뿐 아니라 실제 생활에 적응되게 함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성서 해석은 나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알아 행하려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⑦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해석한다

 웨슬리는 하나님께서는 성서를 통하여 지금 말씀하신다고 믿었다. 성서는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웨슬리에게 있어 영감은 과거에 저자에게 영감하신 것을 말할 뿐 아니라, 현재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서를 읽는 신자에게 성령이 초자연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성서의 해석은 성서의 영감 없이는 올바르게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성서의 문자는 성령 없이는 별 가치가 없다. 그것도 그럴 것이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 성서는 '성령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성령은 해석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시의 구속적 의미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도록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성서에서 사람은 죽은 기록과 맞서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말씀의 현존과 맞서는 것이다.

 

3. 체험

 1) 성서와 체험

 웨슬리에게 있어서의 체험은 성서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에 호응하는 것으로서의 체험이다. 그러므로 웨슬리가 말하는 체험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은총에 사람이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체험이라는 것은 이성을 포함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며 또 경험을 고립된 것으로 보기보다는 성도의 교제 속에서 곧 교회에서의 경험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웨슬리는 니케아 공의회 이전의 교회 전통을 대단히 존중했다.

 

 2) 체험의 역할

 웨슬리는 체험이 성서의 내용을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체험이 결코 권위의 원천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체험에서 성서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가 나를 위한 말씀이 되어야 한다.

 웨슬리는 성서에 있는 기독교의 본질적인 교리나 교회가 전통적으로 간직해온 중요한 교리들, 특히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이나 영국 교회의 교리의 대의를 존중했다.

 웨슬리는 늘 하나님의 은총을 사람의 체험과 연관시켜 또한 논리를 생활과, 그리고 교회는 사회와 연관시키면서 실제적인 산 신학을 수용하느라고 노력했다. 교회의 교리나 신학이 실제의 생활, 곧 체험으로 옮겨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신학이 인간의 생에 들어오게 되도록 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던 것이다.

 

4. 웨슬리의 교리적 표준

 1) 교리와 의견

 웨슬리는 위대한 신학자였다. 따라서 그는 메서디스트 운동을 위하여 건전한 신학적 기초를 보존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웨슬리는 누구 못지 않게 신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웨슬리는 기독교의 중요 교리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교리들을 그대로 보존하기를 원하여 교리적 표준을 설정했다. 웨슬리는 메서디스트라면 누구나 이 표준에 따라서 성서를 해석하고 설교하며 그 정신에 따라 훈육을 계속 받기를 원했던 것이다. 

 웨슬리는 1763년에 채플에서의 설교를 규정하는 증서(Deed)를 작성하여 메서디스트의 교리적 근거를 보존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1784년에는 설교자 임명을 확실히 하는 등 교회의 의무에 관해서 증서를 만들었다. 웨슬리는 말하기를 이 증서를 작성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메서디스트라는 단체를 위하여 곧 메서디스트가 해와 달이 존속하는 한 무너질 수 없는 그런 굳건한 근거 위에 확고부동하게 세워지기 위한 것입니다. 곧 그들이 계속하여 믿음으로 걸어가며 그 믿음을 역사로 드러낸다면 말입니다"라고 했다.

 이 증서에 의하면 모든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풀이하고 가르침에 있어서 웨슬리의 신약성서 주해와 4권으로 된 표준설교집에 담겨 있는 교리와 반대되는 어떠한 다른 교리도 설교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임명을 받게 되어 있다. 이에서 시작하여 웨슬리의 신약성서 주해와 표준설교집은 메서디스트의 교리적 표준이 되어 왔다.

 이와 같이 웨슬리는 메서디스트 운동이 확실한 교리 위에서 지속되어 나가기를 갈망했던 것이다.

 

 2) 웨슬리의 교리적 표준

 웨슬리는 기본적인 교리 위에 메서디스트가 서 있기를 갈망했었다. 교리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메서디스트는 설교의 표준으로서 웨슬리의 표준설교(52), 성서해석의 표준으로서 웨슬리의 신약성서 주해, 그리고 개신교와의 일치의 표준으로서 웨슬리가 작성한 24개 신조를 교리적 표준으로 삼았다. 이것이 특색있는 웨슬리안 형태의 교리적 표준이다. 

 교회는 옛부터 교리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하여 교리적 표준이 있어 왔다. 복음의 귀한 것을 그대로 순수하게 보존하는 것은 기독교회의 중요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웨슬리에 이르러서는 교리 표준이 새 형태로 나온 것을 본다. 곧 웨슬리는 신약성서 주해로서 성서 해석의 표준을 제시하고 표준설교를 제정하여 설교하는 형태를 제시함으로써 메서디스트 안에 이써서의 교리적 규준을 삼은 것이다. 

 

 ① 신양성서 주석 (Explonatory Notes upon the New Testament)

 이 책은 성서 해석의 표준이라 할 수 있다. 이 주석은 웨슬리가 1754년과 1755년에 저작한 것이다. 이 책에서 웨슬리는 신약성서 원어를 영어로 번역하였다. 자기가 보기에는 보다 정확한 원문의 뜻을 옮겼다고 생각하였다. 웨슬리의 주해는 그의 신학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또한 웨슬리의 설교를 돕는 성격을 띠고 있어 웨슬리의 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② 웨슬리의 표준설교

 1763년에 출판된 교역자 회의록에 웨슬리가 작성한 표준증서가 수록되어 메서디스트 설교자들의 설교의 표준을 제시해 주었다. 이에 근거하여 웨슬리가 처음에 출판한 4권에 있는 설교가 '표준설교'로 알려져 왔다. 

 웨슬리 사후에 메서디스트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영국 감리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44편의 설교를 표준설교 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이나 오스트리아에서는 53편의 설교를 실제적으로 표준설교로 다루고 있다.

 

 ③ 24개 교리신조

 웨슬리가 작성한 24개 신조는 영국 교회의 39개 신조에서 일부분을 수정하여 축소시킨 것이다. 

 웨슬리는 영국 교회의 39개 신조에서 11개조는 완전히 생략하고 나머지 조항에 수정을 가하거나 단축하였다. 이런 수정은 신학적 의미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 24개로 주어진 신조가 코크(Coke) 박사 편에 미국 교회에 전달되어 미국 감리교회가 독립하게 될 대에 곧 발티모어(Baltimore)에서 열린 총회(1784.12.24-1785.1.2에서 미국 국가에 관한 조항 하나를 삽입하여 25개조 신조로 되었다.

 

 3) '우리의 교리', 메서디스트의 중요한 교리

 웨슬리는 성서 해석에서 늘 믿음의 유추에 따라서, 기본적인 교리들간의 상호관계와 조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 더 나아가 이 중요한 교리 사이에는 유사한 점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의심나는 성서 구절들은 성서 전체에 흐르고 있는 중요한 진리들에 따라서 해석되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가 하면 웨슬리는 메서디스트의 설교자는 그의 교리적 표준에 있는 교리와 반대되는 것은 가르치거나 설교하면 안된다고 하였다. "우리 설교자들이 우리의 교리들을 설교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웨슬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교리들은 다음과 같은 교리라고 했다. 이신득의, 온전한 성화, 우리 주님의 대속, 사죄에 대한 성령의 증거와 확신, 예정론과는 달리 모두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 진리를 좇아 진실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사람은 타락하지 않는다는 교리, 그리고 끝까지 회개치 않는 영혼은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는 교리 등이다. 윌리엄스가 열거한 중요한 교리에 의하면 위의 교리에 원죄와 그리스도의 신성 및 삼위일체가 첨가되어야 한다.

 웨슬리는 그의 편지에서 지적하기를 세 가지 중요한 성서적 교리가 있는데 이것은 원죄, 이신득의, 그리고 성결의 교리라고 했다. 웨슬리는 중요치 않은 의견에 있어서는 관용했으나 어떤 근본적인 교리를 힘주어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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