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웨슬리신학

성화와 그리스도인의 완전

하엘파파 2024. 11. 24.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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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와 그리스도인의 완전

 

1. 성화관의 일반적 특징

 웨슬리의 성화론은 그 당시의 여러 학파와 비교하여 볼 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견해가 종합되어 독특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

 첫째, 그 당시의 모라비안파의 극단적인 것을 지양하는 개념, 곧 점진적인 성장(gradual advance)의 개념이다. 웨슬리는 사람이 출생 후 성장하는 것과 같이 거듭난 후에도 성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그가 인간의 선악에서나 믿음에서나 또는 성결에 있어서 모두 단계가 있다고 보았고, 인간은 거듭난 후에도 아직 내적인 죄가 남아 있다고 보는 데 기인한다.

 둘째, 웨슬리에게 있어서 이와 같은 점진적인 성장의 개념은 순간적인 요소와 결합되어 있다. 이것은 당시의 칼빈주의자의 성화론과 구별되는 점이기도 하다.

 셋째, 웨슬리는 성화의 점진적인 과정에 한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로서 순간에 보다 고차적으로 끌어올려지는 단계가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가 주장한 성화의 과정에서의 성장은 독특한 것으로 회개와 믿음으로 신생함과 함께 성화가 시작되며, 신자로서의 회개와 믿음으로 온전한 성화, 곧 성결하여지며, 마침내는 영화하는 순간적인 단계에 이른다고 보았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로서의 성화는 종말론적인 목표를 향하여 계속 상승하는 것이다.

 웨슬리에 의하면 성화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는 은총의 현재 여기에서의 역사를 누구보다도 깊이 통찰하였다. 그러나 그는 구원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았다고 하여 결코 인간의 책임을 도외시하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하나님은 사람과 더불어 역사하신다는 복음적 협동설과 일치한다.

 

2. 성화의 단계

 1) 초기의 성화

 사람이 거듭날 때 성화가 시작된다는 것이 웨슬리의 견해인데 이를 흔히 초기의 성화(initial sanctification)라고 한다. 거듭남으로 인하여 성화의 단계에 들어섰으나 온전한 성화에 이르기 전인 것으로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융해되지 못한 상태이다.

 

 2) 온전한 성화

 웨슬리는 점진적인 성화에 순간적인 단계의 성화를 밀착시키는데는 두 개의 순간적인 체험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중생과 동시에 일어나는 초기의 성화, 다른 하나는 그 후에 오는 또 하나의 순간적인 체험 곧 온전한 성화이다. 전자를 불신자가 회개하고 믿음으로 얻은 순간적인 체험이라고 한다면, 후자 즉 온전한 성화는 신자가 다시 자기의 무능과 자기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죄를 깨닫고 믿음으로 받는 신앙체험이다. 이 체험을 웨슬리는 '제 2의 축복(Second Blessing)', '두번째 변화(Second Change)', '온전한 구원(Full Salvation)', '기독자의 완전', '성령 충만'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본질을 '온전한 사랑', 혹은 '순수한 사랑'이라고 불렀다.

 웨슬리에 의하면 이 순간적인 체험을 통하여 신자는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성으로부터 씻김을 받으며 사랑과 봉사에 더욱 큰 힘을 얻어 승리하는 생활의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온전한 성화의 체험이 그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최종 목표는 아니다. 성결의 은혜를 받은 사람도 성도로서 승리할 때까지 계속 전진하여야 한다. 계속하여 보다 승리롭게 성화되려면 이 온전한 성결의 체험이 본질적으로 요청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모든 신자를 향하여 이 온전한 성화 곧 기독자 완전에로 나가라고 권고했다.

 

3. 기독자 완전

 1) 이것은 종교의 진수(religion itself)이다

 기독교 완전의 교리를 웨슬리는 가장 중요시하고 강조했으며, 온전한 성화를 가리켜 '종교의 진수'라고까지 말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목표이기 때문에 그의 설교의 관심이 신자로 하여금 성결의 은혜를 받도록 하려는 데 집약되어 있었다. 즉, 기독자 완전은 성별(Full Consecration), 온전한 성화, 그리고 온전한 사랑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웨슬리는 이ㅓㄳ을 이 땅 위에 사는 동안 얻을 수 있는 완전이라고 주장했다.

 

 2) 이는 동기와 사랑 안에서의 완전이다

 우리는 개념과 실제가 일치할 때 완전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기대하는 수준에 도달하면 완전하다고 하는데 물론 이는 상식적인 범주의 것이다. 따라서 그가 기독자 완전이라고 하여 인간이 그의 무지나 실수 등의 제약성을 탈피하여 자유를 얻게 된다고 본 것은 아니다. 제약성을 벗어나는 자유에 대하여는 영화의 순간으로 미룸으로써 그도 다른 종교개혁자들과 견해를 같이했다. 그렇다고 하여 그가 이런 제약성을 죄악시한 것도 아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죄와는 구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설혹 사람이 그것들을 수행하는 기술과 능력에서 실족할지 몰라도 그 순응하고자 하느 의지나 목적, 의도에서는 순수할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완전 상태의 지속을 이해함으로써 웨슬리의 기독자 완전의 교리를 깊이 파악할 수 있다.

 웨슬리의 기독자 완전은 다만 동기에서의 완전, 곧 의도의 순수성을 의미한다. 인간은 한계성을 가진 그대로의 완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절대적 완전이 아니요 상대적 완전으로 신자가 완전한 사랑 안에서 완전한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된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웨슬리가 말하는 성결은 생활에서의 성결, 하나님과 실제적인 관계에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의하여 주어지고 일어나는 사랑의 생활인 것이다.

 

 3) 이것은 순간 순간 주를 의지함으로써 유지되는 완전이다

 하나 더 고찰할 것은 이 성결 혹은 기독자 완전의 상태는 순간 순간 주를 의지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에서만 유지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개념은 웨슬리의 죄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찰할 때 잘 납득이 된다.

 웨슬리는 성결한 신자라 할지라도 그의 삶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의식적 죄 때문에 그리스도의 대속의 보혈을 순간 순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무리 완전한 자라도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가 요청된다는 것이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순간 순간 의존함으로써 성결된 상태는 계속하여 유지되며 성장되어 나가는 것이다.

 웨슬리는 성결한 신자의 생활에 역설적인 의미를 가하면서도 즉 회개와 믿음의 결단의 계속적이면서도 동적인 은총의 역사로 성도는 성결의 상태에서 상승적으로 성장을 한다고 보았다.

 웨슬리는 죄보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역사를 더욱 강조한 것이다. 보혈을 항상 의지하는 신자는 계속하여 그 죄를 씻음받고 있으며, 따라서 주 앞에서 정죄됨이 없이 언제나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며 주를 받드는 것이다.

 

 4) 이는 전도와 봉사의 원동력이 된다

 기독자의 완전의 본질을 사랑으로 보는 웨슬리에 있어서 성결은 윤리적 또는 사회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웨슬리에 의하면 사랑의 행동은 곧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나타난 것이다. 행동으로 이어지는 사랑을 떠나서의 성결은 그 내용이 넘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메서디스트는 세상에서 활동적이어야 한다. 메서디스트는 복음을 전파하여야 하며 또한 사랑의 봉사를 하여야 한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성결, 사랑 그리고 선행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4. 기독자 완전론의 현대적 의의

 성화론이 기독교의 구원론에 있어서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으로 귀중한 의의가 있음을 밝혀왔다. 이런 성화론은 특히 웨슬리의 해석에 있어 그 의의를 더 깊게 하고 있다.

웨슬리는 죄의 깊이를 보는 동시에 그보다는 더욱 깊은 구속의 은총을 투시함으로써 신자에게 소망을 안겨주고 있다. 뿐만아니라 이 성화론이야 말로 기독교 윤리에 근본적인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성화론을 제거한 윤리나 사회복음은 엄밀한 의미에서 성서적 근거를 상실한다. 인본주의적인 윤리에 대치할 근거는 성화론 외에서는 찾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성화론에 나타난 웨슬리의 신학은 그가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인간의 무능성에서보다는 능력에서, 그리고 인간의 두려움보다 하나님의 약속에서 이해하고 있으므로 은총의 낙관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성화론의 복음이야말로 오늘의 교회 생활에 활력을 주는 원동력으로서 그 교리의 재강조가 필연적으로 요청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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