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총과 죄인
1. 인간의 기원과 성격
웨슬리는 성서의 기록, 창세기의 아담과 그의 타락에 관한 기록을 문자 그대로 해석함으로써 웨슬리 자신의 인간이해, 특히 죄관에 대한 설명을 전개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존재로서 모든 피조물의 으뜸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을 받았으므로 아담의 원상태는 죄없는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살고 있던 모습이었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세가지로 설명하였다. 자연적인 형상(the natural image of God), 정치적 형상(the political image of God), 도덕적 형상(the moral image of God). 웨슬리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이 세 가지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서 도덕적 형상을 가장 중요시했고, 이 도덕적인 형상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은 특별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자유 곧, 스스로 결정하는 힘이 있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인간은 육과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웨슬리는 종교개혁자들과 같은 견해를 갖고 있었다. 성서가 가르치고 있는 '인간'은 그 전체가 하나님 앞에 관계를 가지고 서 있는 존재이다.
2. 인간의 타락의 결과
웨슬리는 종교개혁자들과 같이, 아담이 타락한 결과로 온 인류도 타락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웨슬리는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거나 또는 선을 행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한다.
인간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총에 있는 것이다. 타락한 자연인은 나면서부터 그 마음이 부패되어 있다. 그는 나면서부터 부패된 상태를 악한 뿌리라고 불렀다. 그리고 모든 외적인 죄와 내적인 죄는 악한 뿌리에서 솟아 나온다고 보았다.
웨슬리는 아담의 타락이 전 인류에게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하였다. 즉 아담의 범죄는 인류에게 전적인 부패를 가져왔다. 이는 인간의 자연적인 이성에 의하여서는 인식할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거듭난 뒤에야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상황이다.
3.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웨슬리에 의하면 인류는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였기 때문에아담 이후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인간 자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에 희망이 있을 뿐이다. 이리하여 웨슬리는 어거스틴이나 종교개혁자들과 함께 '은총으로만'이라는 입장을 취하게 된 것이다.
웨슬리의 은총관에 따르면,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인하여 이 형벌에서 사함을 받았고, 계속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의지를 회복받았다고 본다. 이것이 웨슬리의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의 개념에서 설명되고 있다.
웨슬리는 죄인의 상태를 인간 자체로서 설명하기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고 있는 실존적인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데 그 특징과 훌륭한 점이 있다. 즉, 웨슬리에게 있어서의 인간관은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하는 구원론적인 관점에서 설명되고 있다. 동시에 웨슬리는 원죄의 교리와 은총의 교리를 복음의 목적과 필연적인 연결을 맺고 설명한다. 이렇게 인간의 죄문제를 하나님과의 산 관계에서 봄으로써, 실존적인 의미를 깊게 하고 있다.
4.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과 인간, 복음적 협동설
웨슬리는 아담의 범죄로 인한 인류의 타락을 믿는 동시에 하나님께서도 그 타락한 인간을 위하여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었다. 이는 인간의 상태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보는 가운데서만 통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역사를 웨슬리는 선행적 은총의 개념에서 설명해 나간다. 이것이 웨슬리의 인간관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측면이다.
웨슬리 신학에서는 사람이 은혜를 못 받아서 구원을 못 받거나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반역하기에 그렇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웨슬리의 구원론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다. 이런 점에서 웨슬리는 어거스틴이나 루터나 칼빈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러나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는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고 강조한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총이 모두 예수의 대속에 근거하고 있다고 본다. 그 대속의 첫번째 결과로써 하나님께서는 선행적 은총을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신 은혜이다.
실존적인 인간, 즉 하나님의 은총 아래 있는 인간이자 성령의 보편적인 역사 아래 있는 인간은 웨슬리에 이해에 따르면 부패성을 가지고는 있으나 원죄의 죄책에서 해결되어 있으며, 자유의지가 부분적이나마 회복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함께 협동할 수 있으므로 자기 구원을 위해 일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인간은 세상을 향해서도 다스리는 힘을 활용해야 하며 합리적으로 살아 나아가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웨슬리에 의하면, 구원에 있어서 인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의존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 또한 이 구원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므로 우리는 전도를 하여야 한다.
사람은 자기의 구원문제에 있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의존하면서도 그 안에서 책임있는 위치에 있다. 그러므로 구원에 있어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호응하며 함께 일하여야 한다. 이를 신인협동설(Synergism)이라고 한다. 인간은 구원에 있어서 자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은총에 의하여 하나님께 호응하는 것이며 이 근거에서만 구원이 가능하고 또한, 인간에게도 자기 구원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성서는 다른 한편에서 사람은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 구원을 이룰 '책임'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을 웨슬리는 강조한다. 구원을 못 받았다면 그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은 선을 행하라는 분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웨슬리 신학은 은총과 자연의 관계에서 양극화되어 고민을 초래하는 오늘의 신학계에 그 해결의 실마리와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이것은 선교에 있어서 교회의 책임을 올바르게 찾게 해준다. 즉,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에 근거하여 낙관적인 소망을 갖는 동시에 교회가 선교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5. 모든 인류를 위한 구속의 은총
웨슬리에게 있어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웨슬리에 있어서는, 칼빈이 일반은총과 구속의 은총을 구분할 뿐 아니라 단절하는 데 반하여,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계속성을 주장한다. 웨슬리에 있어서 선행적 은총은 회개케 하는 은혜로 연결 된다. 따라서 선행적 은혜는 구원의 은혜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웨슬리는 이중예정론에 근거하여 제한된 그리스도의 대속을 주장하는 칼빈주의를 비판했다.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가능하다고 강조하는 데는 칼빈과 의견을 같이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은혜를 어떻게 작용하시느냐에서 '머리카락 하나'의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이 차이는 그 응용에서는 대단한 의미와 차이를 드러낸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은혜 작용을 이중예정론으로 설명하였다. 단 일회적인 하나님의 결정에 의하여 어떤 이들은 구원으로, 어떤 이들은 유기(멸망)로 정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대속은 오로지 구원으로 예정된 사람들을 위한 제한된 대속이라고 한다.
이에 반하여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한 것으로,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로 정하셨다고 주장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제한하는 것은 실제 전도 생활에 큰 지장과 모순을 초래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웨슬리는 성서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들을 열거하면서 이중예정론과 제한된 대속설을 비판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의 가슴의 뜨거운 구령열은 바로 이런 신학에 뒷받침되어 '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외치며 만민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로 옮겨졌다. 이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의 능력이 됨으로써 웨슬리의 전도는 회개와 믿음의 결단을 촉구하는 전도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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