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그리고 사랑
말씀본문 : 창세기 3장 1절-14절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말씀제목 : 죄와 벌, 그리고 사랑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죄를 지은 경험이 있죠. 죄를 짓고 싶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죄를 짓게 되는 일들이 있기도 한 것입니다. 너무나 연약한 인성의 죄성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저지르게 되는 죄들이 있다는 거예요. 누군가에게 걸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누군가가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만큼은 알고 있는, 아무도 몰라도 나는 알고 있는 나만의 죄가 있다는거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보이고 싶지 않은 죄악된 모습이 있는 겁니다.
혹시 그런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닌데요, 저는 죄 지은 적 없는데요. 저는 정직하게 살고, 착하게만 살았는데요!"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아마도 그 분은 죄에 대한 개념을 잘 모르는 분일 것입니다. '죄'라는 것과 '범법행위'는 다른 것이죠.
여러분 한번 생각을 해볼까요? 여러분들께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날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어떤 감격이 되시나요?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만한 죄를 지으셨습니까?
어떻게 보면 사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것은 나에게 별로 크게 와닿지 않는 이야기일 수 있다는 거예요. 사실 그렇잖아요. 여러분들이 죄를 지어봐야 얼마나 대단한 죄를 지었다고 예수님이 나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해야되겠냐고요. 솔직히 그정도의 죄를 지은건 없잖아요.
저도 중고등학생 때를 생각해보면 그 때 당시에 내가 어떤 죄를 지었을까, 없어요. 자잘자잘한 죄들이야 있겠지만, 예수님이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정도의 죄를 짓지는 않았다고요. 특히 저는 부모님이 엄청 엄하시고 그래서 뭐 대단한 죄를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출 한번 해본 적이 없어요. 술담배도 안했습니다. 교회도 빠진적이 없어요. 뭐가 있었을까 계속 생각을 해봤는데, 엄마 지갑에서 몰래 돈을 훔친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것 때문에 예수님이 날 위해 대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그 죄값은 제가 다 치뤘어요. 걸렸거든요. 아니 어쩌면 지은 죄보다 더 호되게 치뤘어요. 이거 때문에 예수님이 나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거라고요.
여러분들 중에도 이러한 생각을 해본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없어요. 여러분 나이 때 죄를 지어봐야 뭐 얼마나 대단한 죄를 짓겠냐고요. 죄라고 해봐야 이상한 동영상 보는거, 싸운거, 욕한거, 거짓말한거 정도밖에 없을거라고요. 여러분들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고 한다면, 여러분 솔직히 좀 억울해야 돼요. 아니 뭐 그리 죽을 죄를 지었다고 예수님이 나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해야 하냐고요. 그러니까, 교회에서 바르게 자란 사람일 수록, 모범생일 수록 어쩌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별로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는 너무나 바르게 살아왔는데 나보고 죄인이라고 하는 것이 불편한 거예요. 나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이 별로 와닿지가 않는 겁니다.
혹시나 이곳에도 그러한 생각을 하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그것은 아직 '죄'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라는 영역을 '범법행위'의 영역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거예요. "나는 살인도 안했고, 도둑질도 안했고, 나쁜짓도 안했는데 내가 왜 죄인이야" 라고 말한다는 것은 범법행위를 안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법으로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얘기죠. 조금 적나라하게 얘기해볼까요? '나는 살인도 안했고, 도둑질도 안했고, 나쁜짓도 안했다'는 것은 왜 안한 겁니까? 그런 행위를 하면 법적 조치가 취해지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가거나, 우리나라는 사형제도가 없지만 사형을 당하거나 할 수 있기 때문인거죠. 그리고 그렇게 됐을 때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다는 제약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니 거의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범죄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법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살인을 해도, 도둑질을 해도, 사기를 쳐도, 그 어떤 짓을 해도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 죄 안지을 자신 있으신가요? 단언컨데, 이 중에 단 한사람도 죄를 안지을 수 없습니다. 무슨짓을 해도 하게 될 것이라고요. 여러분들이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그 일들을 안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냐고요.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우리는 무슨 짓을 해도 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성'이라는 거예요. 아담의 죄로 인해 인간에게는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6장 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그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죄가 들어옴으로 인해서 그 생각과 계획이 악한 것들로 가득차게 되었다는거죠. 나는 아니라고요? 아니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제가 숙제를 한번 내봐드릴게요. 제가 좋아하는 선교사님한테 배운 방법인데요, 노트를 하나 준비하시고, 일주일을 살아가면서 내 머리속에 들었던 생각을 그 노트에다가 모두 기록을 하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쇼츠를 보다가, 친구와 대화 하다가, 놀러갔다가 등등 그 모든 생활 속에서 내가 어떤 행위를 하진 않았더라도 생각했던 그 모든 생각들을 기록해보는거죠. 오래 쓸 필요도 없어요. 일주일만 딱 그 생각들을 써보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얼마나 죄가 가득한 인간인지를 아주 적나라하게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안타까운 죄의 모습이 어떻게 들어오게 된 것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바라보고,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것들을 경계해야 하며, 또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깨닫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실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은 여러분들이 이미 유치부 때부터, 주일학교에 다닐 때부터 너무나도 많이 들어온,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말씀일 것입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하고, 하와가 그 유혹에 넘어가서, 아담과 하와가 결국 그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께 혼나게 되는, 여러분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내용이죠. 하지만,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또다시 깨닫게 해주시는 분명한 말씀과 가르침이 있을 것을 기대하며 그 말씀을 다시금 붙잡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오늘 본문 1절에서 3절까지의 말씀을 다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하와에게 접근을 하는데요, 뱀의 질문을 보십시오. 저는 이 구절을 볼 때마다 뱀이 정말 똑똑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인간의 호기심을 제대로 자극하는거죠. 그리고 하나님을 오해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죠. 선악과만을 제외한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어도 된다고 하셨다고요.
사탄의 이러한 말씀을 왜곡시키는 일들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어떤 것들이 먼저 떠오르십니까? 하나님을 믿으면 좋은 것들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니면 하나님을 믿으면 하면 안되는 것들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제약하시고, 즐기지 못하게 하시고, 어려움 가운데 있게 하시려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반대죠. 많은 것들로 하나님을 느끼고 누리며 즐거움 가운데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라고요. 그러나 사탄은 우리를 계속해서 속입니다. "하나님 믿으면 이런거 하면 안된다고 그러지?", "하나님 믿으면 이런거 때문에 더 힘들어질 것 같지 않아?", "하나님 믿으면 하면 안되는 것도 많고 재미없는 삶일 것 같아!"
사랑하는 여러분,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사랑하시고,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고 행복을 누리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내 자녀가 불행하게 살기를 원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고요.
제 딸 아이도 유튜브 쇼츠 보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가끔 거실에서 같이 있을 때 딸 아이가 보는 것들이 소리가 들리잖아요. 그럼 뭔가 굉장히 보면 안될 것 같은 그런 소리가 들릴 때가 있습니다. 또는 어쩌다가 딸 아이가 보고 있는 쇼츠 영상들을 보게 되었을 때 이 아이가 보면 안될 것 같은 영상들이 나올 때가 있는거죠. 그럴 때면 아빠인 저는 그것들을 못보게 합니다. 그것을 못보게 하는 것은 아이가 재미없는 것만 보기를 원해서가 아니에요. 아이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닌 겁니다. 아이를 더 망치고, 아이에게 안좋은 영향을 줄 것이 너무나 뻔하기 때문에 그것을 못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딸 아이를 나쁜 것으로부터 보호하고 딸 아이가 좋은 방향으로 가기를 원하는 아빠의 사랑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을 잘못 알고 있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가 나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만지지도 말라고 하시진 않았습니다. 먹으면 안된다고 하셨단 말예요. 그런데 하와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습니까?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라고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잘못 알고 있는 말씀에 사탄이 어떻게 공격을 하는지 보십시오. 4절에서 6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뱀이 아주 잘걸렸다 싶었을 것 같은거죠. 자신있게 얘기하는 거예요. 성경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어떤 유대인학자는 이 부분을 풀이할 때 하와가 선악과를 만져봤을 것이라고 풀이하기도 합니다. 하와가 알고 있기로는 만지지도 말라고 알고 있었는데 만져봤더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거죠. 만져본김에 보니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뱀이 말한대로 진짜 그렇게 될 것 같이 너무 탐스럽기도 한 겁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먹어버리게 된거죠. 그러고선 자기만 먹으면 되는데, 남편에게도 주는 거예요. 그런데 참 안타까운 것은 남편인 아담도 그것을 먹어버린 것입니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거죠.
학창시절에 가장 많이 궁금해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유혹이 있다면 술, 담배, 성인 것 같습니다. 하면 안된다고 알고 있고 배워왔는데 꼭 그것을 가지고 꼬시는 친구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것들을 즐기는 친구들이 뭔가 더 멋있어보이고 잘나가는 것 같아 보이는거죠. 그리고 그런 친구들을 향한 표현도 참 좋습니다. '노는 애들'. 뭔가 노는 애들 사이에 끼게 되면 다른 친구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지도 못하고, 나도 그 무리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뭔가 내가 더 잘나보이고 그런단 말이죠. 나를 만만하게 보지 못하는 것 같다고요. 내가 뭔가 잘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아니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나쁜 것은 애초에 시작도 안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전도사님으로서, 그리고 인생을 먼저 살아본 인생의 선배로서, 여러분들과 똑같은 그 때를 지나온 경험에서 여러분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은 조언이에요. 인생이 망가지는 지름길입니다. 없기를 바라지만, 혹시라도 그 자리에 이미 발을 들여놓은 분이 계시다면 가능한 빠르게 그 자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것은 저를 위해 부탁하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의 인생과 삶을 위해서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나쁘다 말하는 것은 나쁘기 때문에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고, 나쁜 것에는 애초부터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좋은 것인 줄 알고 했다가, 그 순간의 선택과 행위로 인해 어떠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지 성경에서 너무나 정확하게 얘기해주는 것입니다. 7절과 8절 말씀을 봅니다.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뱀이 얘기해준 것처럼 하나님과 같이 되었나요? 아니요, 하나님과 같이 되기는 커녕 부끄러워서 가리고, 하나님과 같이 되기는 커녕 두려워서 숨어버리는 일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이것이 말씀으로부터 벗어난 자의 모습인 거예요. 죄라는 것은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수치를 가져다주고, 부끄러움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두려움 가운데 있게 하는 것이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죄의 일들이 언제, 어디서 일어납니까? 밝고 오픈 된 공간에서 일어나나요? 예외적으로 그런 경우도 간혹 있을지도 모르지만, 거의 대부분은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에요? 당당하지 못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죄는 죄를 알아서 그것을 자꾸 숨기려고 하고 드러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걸릴까봐 두려움 가운데 있게 하는거죠.
뱀의 달콤한 유혹의 말에 속아서 더 좋은 것을 가져보려다가 얻게 된 결과는 너무나 비참하고 처참했던 겁니다. 죄를 짓기 전까지 이들이 얼마나 행복했겠냐고요. 부끄러움도 모르고 창피도 모르고 두려움도 모르고 그저 행복만이 가득했을거 아니냔 겁니다. 부끄러움, 창피, 수치, 두려움 이 모든 것이 다 죄로 인해 들어오게 된 것들이라고요. 죄를 짓기까지 이들의 삶이 어땠겠습니까? 벗은 것도 모르고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자유롭게 다니면서, 하나님이 거니시는 소리가 들리면 하나님이 나타나셨다고 좋아하면서 하나님께 달려가고 하나님 품에 안기고 하나님과 수다 떨면서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이었겠냐고요. 그런데 이들이 죄를 범하게 되었을 때, 이들은 숨게 되는 것입니다. 그 모든 행복할 수 있는 시간들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이에요. 하나님과의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하냐고요.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죄가 가져다주는 결과물인 것입니다. 죄는 결코 우리를 즐겁게 해주지 않는다고요. 죄는 절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합니다. 죄는 여러분들의 삶을 망가트리는 것입니다. 죄의 일들 가운데 있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다시 한번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죄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은 일시적이라고요. 그 일시적 즐거움 뒤에는 너무나 비참하고 불행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9절과 10절을 보겠습니다.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서도 뭔가 이상하지 않으셨겠어요? 원래는 보통 하나님의 소리가 나면 아담이랑 하와가 막 즐거워하면서 하나님을 반기고 맞이하는데 나타나질 않는거죠. 여러분 혹시 강아지 키우시는 분들이 계신가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강아지가 꼬리를 막 흔들면서 달려오고 안아달라고 손 막 두발로 서고 혀로 핥고 만져달라고 와서 계속 귀찮게 하고 그런단 말이죠.
아담과 하와도 그랬지 않았겠냐고요. 하나님께서 동산에 나타나시면 아담이랑 하와는 그 소리를 듣고 막 반가워서 하나님 맞이하러 뛰어가고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막 얘기하고, 오늘은 어떤 동물들을 봤는지, 뭐라고 이름을 지어줬는지 수다를 떨고, 하나님이 태워주시는 하나님 놀이기구 타고 하늘도 날아보다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여러가지 것들을 보면서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운 그런 시간을 보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이 날은 이상한거죠. 아담과 하와가 나타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찾으십니다. "아담~ 어딨어?", "하와야~ 어디있니?"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차마 하나님의 그 찾으시는 음성에 반응을 하질 못하겠는거죠. 하나님께서 또 찾으십니다. "아담아~ 어디있니?", "하와야~ 이리 나와봐~"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자신과 함께 계속해서 사랑의 관계를 이어나갔던, 너무나 사랑하는 그 존재들을 향한 하나님의 그 사랑의 음성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 앞에 나가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결국, 두려움에 떨며 대답을 하는거죠. "내가 벗었으므로 무서워서 숨었어요.." 아담의 두렵고 떨리는 목소리에 하나님은 이렇게 물으십니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여러분들은 혹시 이 구절을 보시면서 하나님을 어떤 모습으로 상상하시나요? 저는 예전에는 이 장면을 하나님이 엄청 혼내시는, 엄청 무서운 장면으로 상상했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어보니 이 장면이 또 새롭게 보이기도 하는 겁니다.
내 아이가 뭔가를 잘못하고선 부모님께 죄송해서 위축되가지고 엄마아빠의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무서워서 떨고 있는거죠. 내 아이가 내 눈 앞에서 그런 모습으로 있다면 부모는 어떤 마음이 들 것 같으세요? 여러분들이 부모라면 어떨 것 같으신가요? 바로 막 호적에서 파버리고 너는 이제 내 아들도 아니라고, 내 딸도 아니라고 그냥 막 내쫓아버릴 것 같으신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 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속상함과 분노와 아이를 향한 긍휼과 안타까움, 그리고 내 아이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한 그런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들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너 왜그래, 누가 그랬어? 무슨 일이 있었어? 아빠한테 말해봐,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어?" 그 안타까운 마음으로, 애타는 마음으로, 속상한 마음으로 아담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상상해보십시오. 나의 사랑하는 자녀가 기가 다 죽어서는, 부모와의 사랑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숨어있는 그 자녀를 보는 부모의 안타까운 그 시선이 하나님께서 아담을 향한 시선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물음에 아담과 하와는 대답합니다. 12절부터 14절입니다.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아담은 안타깝게도 하와를 탓하고, 하와는 뱀을 탓하는데요. 하나님께서 이들의 대답을 들으면서 얼마나 속상하셨을까요. 얼마나 안타깝고 슬프셨겠습니까.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깨지기도 했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깨지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던 관계였지만 이제는 죄를 돌리고 탓을 돌리는 관계가 되어버린 거예요. 죄라는 것은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망가트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가 가져다 주는 결과라는 거예요.
그 대답을 들은 하나님은 뱀을 바로 저주하십니다. 보세요. 아담과 하와에게는 물으셨습니다. "왜 그랬니"라면서 물어보셨다고요. 그런데 뱀에게는 물으셨나요? 왜그랬는지 묻지 않으시는 겁니다. 바로 저주하시고 징벌을 가하시는거죠. 하나님의 분노가 느껴지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에서 읽지는 않았지만, 이후에 21절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하나님의 모습인 거예요. 죄로 인해 이들은 더이상 에덴동산에 살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나가는 이들의 그 삶을 위해 친히 가죽옷을 입혀주시는 거예요. 내 자녀를 그냥 두지 않으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되면 반드시 벌이 따라야 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벌로 끝내시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일들 안에 사랑의 행위가 동반되어지시는 거예요.
내 아이가 잘못하면 그 잘못된 행위로 인해 벌을 주지만 그것은 내 아이가 미워서가 아닙니다. 그 잘못된 행위로 내 아이를 그대로 버리지 않는다고요. 내 아이가 그대로 망가지게 두지 않는 겁니다.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세워주고 어루어만져 주고, 그 수치와 고통을 가려주며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사랑인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사탄은 여러분들을 속입니다. 세상의 보여지는 일들로 자꾸 보여주면서 여러분들을 그 호기심 가운데로 눈을 돌리게 한다고요. 그러할 때에 그러한 유혹과 호기심의 일들로 넘어가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참된 진리를 쫓으며, 그 말씀을 바로 알아 하나님의 말씀 위에 우뚝 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해 주저하고 넘어지게 되는 일이 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피하시지 마세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여 넘어지고 두려움 가운데서 숨어있을 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이름을 부르며 여러분들으 찾으실 거예요. 그 때 주님의 음성에 회개함으로 나아가십시오. 사랑의 하나님께선 그 모든 일들을 아시고 회복을 위해 당신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며 가죽옷을 지어서 여러분의 수치와 고통을 덮어주실 것입니다.
어려움의 일들이 여러분 앞을 가릴 때 그 사랑의 하나님을 반드시 기억하시고,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며 다시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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