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호와라

말씀본문 : 출애굽기 6장 2절-13절
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4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7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9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들어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하라
12 모세가 여호와 앞에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13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과 애굽 왕 바로에게 명령을 전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시니라
말씀제목 : 나는 여호와라
우리는 지난주까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며 노예생활로 힘들어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을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인도 해내기 위해 모세를 선택하시고 그에게 불에 타지 않는 떨기나무의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볼 수가 있었죠. 그렇게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자신있고 당당하게 애굽으로 향했... 으면 참 멋있고 좋았을텐데 그렇게 하질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자기 모습을 봐도 그런 대단하고 큰 일을 해낼만한 모습이 아니었단 말예요. 나이는 80세의 노인입니다. 40세에 도망쳐 나와서 40년 동안을 외딴 곳에서 혼자 그냥 양떼나 몰면서 그렇게 평범하고 조용한 일상을 살고 있었단 말예요.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고 어마어마한 일들을 이뤄내기 위해 준비하거나 그런 것이 전혀 아니었단 말이죠.
차라리 40년 전이었다면 또 모릅니다. 그때는 왕자의 신분이었으니까, 그 왕궁 안에서 그래도 자신의 편들이 있었을 거 아녜요. 군사훈련이나 여러가지 문명들에 대해서 지혜와 지식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차라리 40년 전에, 그 혈기왕성하고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그 젊은 나이에, 그야말로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할 수 있는 그때에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면 막 힘이 나서 했을지도 모르겠는 거죠. 자신을 따르는 똑똑한 사람들과 담합을 해서 작전을 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군사훈련을 시키고, 물자를 준비하고, 무기를 준비하고,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뭐 그런 여러가지 일들로 애굽으로부터 민족 해방을 이뤄내는 그런 일들을 도모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정작, 그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그 황금기에는 그를 사용하시지 않고, 그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도 전혀 도와주시지도 않고 그러시더니,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때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 200만명 300만명 되는 민족들을 구출해서 인도해내라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냐고요.
더군다나 모세는 애굽에서 범죄자 신분입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간 범죄자라고요. 애굽에서 얼마나 조롱거리이고 웃음거리였겠습니까. 한 나라의 왕자가 노예들 싸우는거 말리다가 자국민을 죽인 것도 모자라서 그거 숨기겠다고 암매장을 하고선 입닦고 있다가 걸려가지고는 타국으로 도망간 사람이에요. 얼마나 불명예스럽습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고 조롱하고 손가락질 했겠냐고요. 한 나라의 왕자가 저지른 일이니 소문도 얼마나 다 났겠어요. 그 사건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요. 그야말로 애굽은 다시는 가고 싶지도 않은, 갈 수도 없는 곳인 겁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가서 그 이스라엘 민족들을 데리고 나오라니, 그야말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모세의 입장이라면 그곳에 다시 가고 싶겠습니까? 잘 때마다 이불킥을 날렸을 법한 그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이 가득한 곳인데 그곳에 다시 가고 싶겠냐고요. 사람들이 알아보면 웃음거리밖에 더 되겠냐는 겁니다. "야 저거 사람 죽여놓고 도망쳤던 모세잖아?!" 이런 얘기들 충분히 들려오지 않겠습니까? 저같아도 정말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것 같아요.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고 싶지 않은 거예요. 자신있게 뭔가를 해낼 수 있을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얘기하는 거죠. 우리 지난 주에 읽었던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3장 11절을 보니까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 제가 뭐라고 바로에게 갑니까. 제가 뭐라고 이스라엘 자손을 거기서 인도해 낼 수 있겠습니까" 이런 거예요. 여러분들한테 하나님께서 어느날 나타나시더니 "주환아, 너 중국에 가서 시진핑한테 한국인들 다 한국으로 데려가겠다고 말하고 중국에 있는 한국인들 모아서 한국으로 데리고 나와라", "연홍아, 너 미국에 가서 트럼프한테 한국인들 다 한국으로 데려가겠다고 말하고 미국에 있는 한국인들 모아서 한국으로 데리고 나와라" 지금 이런 명령을 하고 계신 겁니다. 정말 말도 안되는 미션이잖아요.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일반인한테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런 명령을 하고 계신 거라고요. 그러니까 모세가 단순하게 겁쟁이인 게 아니라, 정말 말그대로 그걸 제가 어떻게 하냐는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걱정인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걱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출애굽기 4장을 보면 하나님과 모세의 밀당이 이어지는데 진짜 모세도 모세고, 하나님도 하나님이신 장면이 막 연출이 됩니다. 모세는 못한다고 못한다고,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고 그러면서 팽팽하게 왔다갔다 한단 말이죠. 그 장면을 잠깐 볼텐데요, 출애굽기 4장 10절에서 15절까지의 말씀을 우리가 좀 더 이해하고 현실감 있게 볼 수 있또록 현대인의 성경 버전으로 읽어보겠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0 그때 모세가 여호와께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못합니다.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이후에도 내가 그러하니 나는 말이 느리고 혀가 둔한 자입니다.' 하자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입을 누가 만들었느냐? 누가 사람을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되게 하며, 사람에게 밝은 시력을 주고 맹인이 되게 하는 자가 누구냐? 바로 나 여호와가 아니냐?
12 자, 가거라! 내가 말할 때 내가 너를 도와 네가 할 말을 가르쳐 주겠다.'
13 그러나 모세가 '주여, 제발 다른 사람을 보내소서' 하자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노하시며 말씀하셨다.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은 어떻느냐? 그는 말을 잘한다. 그가 지금 너를 만나려고 오고 있으니 그가 너를 보면 기뻐할 것이다.
15 너는 그에게 할 말을 일러 주어라. 너희가 말할 때 내가 너희를 도와 주고 너희 할 일을 가르쳐 주겠다.
여러분 모세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얼마나 고민이 되겠냐고요. 앞서 말씀드린 모세의 여러가지 상황과 환경들이 모세의 발목을 계속 붙잡는 것입니다. 자신의 나이, 자신의 처한 상황, 함께 살고 있는 가족 등등 눈 앞에 보이는 현실적인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에 너무나 어려운 것들 투성이라는 겁니다. 물론 나중에야 모세가 진짜 멋있게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내고 그들에게 최고의 지도자로 서게 되기는 하는데, 그런 모세 역시도 이런 모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서든 보내려고 하시고, 모세는 어떻게 해서든 안가려고 하고 그런다고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까지 하십니까? 모세가 자기는 말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계속 못하겠다고 손사레를 치니까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의 형 아론이 있지 않냐면서 모세의 부족함을 그의 주변 사람을 통해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저같으면 때려치라고 너 아니면 다른 사람 쓰면 된다고 하고선 그냥 치워버릴텐데,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그를 붙잡아주시고 채워주시면서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모세는 애굽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의 형 아론을 만나게 하시고 모세가 말을 잘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해주시면 모세는 그 말을 아론에게 전해주고 아론이 그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하면서 그 일들을 행하게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모세와 아론이 함께 드디어 진짜로 바로 왕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바로 왕 앞에 서게 된 두 사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내용을 바로 왕에게 전하게 됩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히브리인들, 즉 이스라엘 민족들을 노예에서 해방 시켜 달라는 얘기를 한 거였죠. 단순하게 해방정도가 아니라 그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겠다는 겁니다. 그들의 말을 들은 바로 왕은 그들의 요청을 들어 줬을까요? 당연히 듣지 않았겠죠. 자신들의 노예로 부리고 있는 그 사람들을 노예에서 풀어주고 보내주는게 어디 쉬운 일이겠냐고요. 그럼 그 노예들이 하던 일들을 다 자신들이 해야되는 거 아닙니까. 당연히 풀어주려고 하지 않는 거죠.
그런데 단순하게 거절하는 정도가 아닌 겁니다. "너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편하니까 그런 쓸데 없는 생각들을 하는구나? 이것들이 안되겠네. 오케이. 그런 쓸데 없는 생각 할 겨를도 없게 더 바쁘게 해줄게" 이러더니 그들이 하고 있는 그 노역의 일들을 더 힘들게 강도를 올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선 어떻겠어요? 모세가 자신들을 노예로부터 해방시켜줄 위대한 지도자가 아니라 자신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존재로 보는 겁니다. 자신들이 더 힘든 상황을 겪게 되는 그 원망의 화살을 자신들에게 그 힘든 일을 시킨 바로 왕에게 향하는 게 아니라 일을 더 가중시킨 것 같은 모세를 향하는 거죠. 모세 때문에 이렇게 더 일이 많아지고 힘들어졌다면서 원망하고 욕하고 손가락질하는 거예요. 이런 원망의 소리를 듣는 모세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화나고 그러지 않았겠어요? 아니 평범하게 그냥 가족들과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호와라는 신이 나타나서는 애굽으로 가서 이스라엘 민족들 데리고 나오라고 명령을 해서 안하겠다고 안하겠다고 못한다고 못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억지로 그렇게 시켜서 가게 했으면 어떤 결과가 나와야겠어요? 바로 왕에게 하나님의 메세지를 딱 전했을 때, 바로 왕이 그 말을 듣고는 알겠다고 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풀어주는 그런 말도 안되는 기적과 같은 일이 펼쳐져야 되는게 우리가 흔히 생각할 법한 모습이지 않겠냐고요.
그런데 기적은 커녕 누구나 예상할 법한,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를 너무나 당연하게 맞이한 겁니다. 아니 오히려 더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된 거예요. 노예 해방은 커녕 노예 일을 더 시키게 만든 꼴이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민족들 입장에선 어디서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놈이 나타나서는 왕한테 괜히 되도 않는 소릴 해가지고 자신들이 더 힘들어지기만 하게 된 상황에 놓였으니 당연히 모세를 욕하고도 남는 거죠. 그러니까 모세도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막 하나님께 따져 묻는 겁니다. 출애굽기 5장 22절에서 23절 말씀을 보면 모세의 억울함이 막 고스란히 느껴지는 거예요.
22 그러자 모세는 여호와께 다시 돌아가서 이렇게 부르짖었다. '여호와여, 어째서 이 백성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셨습니까? 무엇 때문에 나를 보내셨습니까?
23 내가 바로에게 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그때부터 그가 더욱 이 백성을 학대하는데도 주께서는 주의 백성을 전혀 구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정말 이런 원망이 나오고도 남을 거잖아요. 기껏 보내시더니 이건 뭐 사람들한테 욕만 바가지로 먹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화가 나고 억울하고 그랬겠냐고요. 그러면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6장의 말씀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이런 원망을 들으시고는 말씀 하시는 거예요. 2절 말씀을 우리 함께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무나 완벽하고 너무나 완전한 대답을 해주시는 겁니다. "나는 여호와이니라" 우리가 읽는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여호와'라고 번역되어서 나오지만 다른 공동번역 버전이나 학자들 사이에선 '야훼'로 불려지기도 하고, 영어 성경에선 '제호바'라고도 나오는데, 사실 이 원문의 발음을 보면 YHWH로 자음으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정확한 발음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것을 번역하면서 모음을 붙이면서 '야훼', '여호와'로 불려지게 된 것인데, 결국 이 이름의 뜻은 '스스로 있는 자'를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고요. 여러분들이 태어난 것, 여러분들이 학교를 다니는 것, 여러분들이 좋은 학교에 가야 하는 것, 여러분들이 좋은 직장을 가져야 되는 것,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인 것 등등 모든 것들의 위로 위로 위로 올라가면 원인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의 발생된 것들에 대한 원인이 있다는 거죠. 결국에 우리의 존재나 우리의 모든 생활의 모습, 우리의 모든 것들은 다 원인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니시라는 거예요. 모든 것의 원인이신 분이라는 겁니다. 결과물이 아니라는 거예요. 스스로 존재하신 분, 모든 것을 만드신 분, 모든 것을 이루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이 존재를 향해서 '신'이라고 표현을 하는 겁니다. 'God' 이라고 말한다고요. 결과가 아닌 존재, 창조자라는 거예요. 요즘 시대에서 보면 '신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굉장히 논리적인 것처럼 말하는 모습들을 흔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을 해보자고요.
여러분 다 스마트폰 가지고 계시죠. 그런데 그것이 어느날 갑자기 생겼습니까? 아니죠. 삼성이나 애플이라는 기업에서 누군가들이 계속해서 연구하고 연구해서 여러가지 부품들로 스마트폰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계 안에서 여러가지 프로그램들을 누군가들이 개발을 해서 여러가지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누가 "이건 어느날 그냥 갑자기 생긴거야. 이 어플들은 그냥 자동으로 생긴거야"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뭐가 논리적인 이야기냐는 겁니다. 스마트폰을 만들어내는 기술력을, 그 안에 들어가는 부품이나 프로그래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저와 여러분들은 알지 못한다고요. 어떻게 이 스마트폰이 인터넷이 되고, 내가 어플을 클릭하면 그 어플이 작동해서 게임도 되고 여러가지 편리한 기능들을 제공하게 되는 것인지 우리는 그 기술력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내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도 안되는 기술력이라고 해서 '아 이건 그냥 원래부터 있던거야'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만큼 논리적이지 못한 생각이 어딨겠냐고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자연, 하늘, 나무, 동물, 식물들, 바다, 물고기 등등 그 모든 것들이 어느날 갑자기 그냥 생겼다는 게 말이 되냐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진화론', '빅뱅이론' 뭐 그런 것들의 주장이 그런거잖아요. 몇억만년 전에 갑자기 우주에서 대폭발이 생기고 그렇게 지구가 생겨나게 되고 아메바 같은 생물이 몇억년동안 진화를 이뤄내면서 원숭이가 되고 원숭이가 사람이 된다는 그런 말이 믿을만 하세요? 모든 것들을 만들어 내는 신적인 존재, 신의 존재가 만들어냈다는 것이 차라리 훨씬 더 믿을만하지 않겠습니까? 어느날 쇠붙이와 유리들이 굴러다니다가 자기들끼리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켜서 스마트폰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과, 삼성이라는 기업에서 연구와 연구를 거듭한 끝에 아주 정교한 기술력으로 스마트폰을 만들어냈다는 것 중에 뭐가 더 믿을만 하겠냐는 겁니다. 이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 시간과 공간 그 모든 것들을 만들어 내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만들어 내셨다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작품, 창조물이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거예요. 모든 것들을 만들어 내시는 분. 모든 것들이 가능하신 분. 그것을 우리는 전지전능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능치 못함이 없으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의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오늘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 얘기를 해주고 계시는 겁니다. "나는 여호와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 2절에서 13절까지를 보면 계속 말씀하고 계시는 거예요. "나는 여호와라" 이 말을 듣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한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든지 말든지 뭐 제대로 듣지도 않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또 모세에게 이제 바로 왕에게 가서 또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세가 하나님께 뭐라고 말합니까?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2 모세가 여호와 앞에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여러분, 모세가 하나님께 따져 물은 것 중에 틀린 말이 있습니까? 없어요. 맞는 말입니다. 아니, 같은 편인 이스라엘 자손들도 모세의 말을 안듣는데 자신들을 노예로 삼고 안놔주려는 바로 왕이 모세의 말을 듣겠냐고요. 더군다나 모세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데 그런 말도 못하는 자가 얘기 한다고 해서 무슨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일어나겠냐는 겁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전하시는 그 말씀을 다시 보자고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신 것이 뭐라고 했습니까? "나는 여호와라" 이 말은 무슨 말이겠습니까? '너가 하는게 아니고 내가 하는 거야' 능력이 제한되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고, 불완전하고, 상황과 환경과 시간에 제약이 있는 피조물인 너가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자, 능치 못함이 없는 존재, 모든 것을 만든 존재,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 그분께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말을 잘하든 못하든, 지혜롭든 아니든, 능력이 있든 없든 상관 없이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기 때문에 너의 그 모든 상황과 환경은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능력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외모가 어떻든지 중요하지 않다고요. 여러분들의 학벌, 여러분들의 직업, 여러분들의 태생, 여러분들의 환경, 여러분들의 출신 그런거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왜요? 하나님이 그 모든 것보다 위에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스스로 계신 분, 피조물들이 만들어 낸 그런 것들 따위에 전혀 개의치 않으시는 분, 피조물들이 만들어낸 학력, 직장, 출신, 물질, 돈 등등 그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강조하는 것이 이겁니다. 여러분들이 세상 것을 아무리 좇으며 돈을 최고로 여기고, 세상이 추구하는 그 가치를 위해서 열심히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것들도 물론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는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좆으며 한번 뿐인 인생을 보다 더 가치있는 삶으로 살아가 보자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시험기간에 한시간 예배 빠지고 벼락치기로라도 시험 범위 몇페이지 더 공부해서 한 두 문제 더 맞추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내 인생을 맡기고 하나님을 내 인생의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하나님께서 이끌어가실 내 삶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찬양하고 말씀 듣고 기도하는 것이 여러분들의 삶을 더 멋진 삶으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대충 살면서 그냥 하나님만 믿으라는 게 아니에요. 내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그 최선이 나의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내가 좀 더 누리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성공의 맛을 누리기 위한 최선이 아니라, 나의 최선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한 삶, 나의 최선을 통해 이뤄나가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는 삶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아시고, 그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크고 놀라운 일들로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일하실 것이라는 거예요.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여호와라" 내가 보기에 내 모습이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을 것처럼 작아보여도, 별로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쓰시고자 하시면 여러분들이 감히 생각하지도 못하고 상상해보지도 못한 크고 놀라운 일들로 여러분들의 삶을 사용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삶을 그렇게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보세요. 하나님이 반드시 여러분들을 통해 일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과 환경과 그 모든 것들에 상관없이 택하시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화답하며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일들에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들의 귀한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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