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피를 볼 때에

말씀본문 : 출애굽기 12장 1-14절
1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2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3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4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사람 수를 따라서 하나를 잡고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5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6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7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9 날것으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10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
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12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14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말씀제목 : 내가 피를 볼 때에
저희 딸 하엘이가 열한 살인데요. 집에 누워서 같이 빈둥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아 시간 참 빨리 지나간다. 내가 벌써 4학년이라니." 인생 10년차의 한이 녹아있는 대사이지 않습니까? 그 열한 살이 봤을 때도 지나온 시간을 돌아볼 때, 살아온 그 삶의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계가 우리의 삶을 참 많이 속이고 있구나' 아날로그 시계도 그렇고 디지털 시계도 그렇고 그 시계의 모습이 우리의 삶의 시간을 참 안일하게 대하게끔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조금 심오한 얘기가 될 것 같기도 한데, 한번 같이 생각을 해보자고요. 우리는 24시간이라는 시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심지어 그 24시간도 반으로 나눠서 오전 오후로 나누니까 12시간으로 보게 되기도 하죠. 그렇다보니까 이 시간이 지나갔어도 어차피 다시 돌아올 시간이라는 인식이 우리의 머리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유한한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마치 이 시간이 계속 될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오늘이 지나가도 내일이 어차피 올 거라는 생각에, 이 하루하루가 계속해서 반복되어질 거라는 착각으로 인해 헛된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삶 속에 우리가 보는 이런 아날로그 시계나 디지털 시계가 아닌, 그 사람만의 고유한 모래시계가 있다고 가정을 해본다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의 모래시계는 아마 이정도가 될 것이고, 저의 모래시계는 이정도가 되겠죠? 그런데, 이정도가 남았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어느날 내 인생의 모래시계를 봤더니 이런 모습으로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들 어떨 것 같으신가요? 너무 무섭기도 하면서, 내게 남은 저 시간을 헛되게 보낼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차라리 모르는 것이 속 편할 것 같기도 한데,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보면서 우리의 삶이 무한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반복된 일상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그 반복은 사실 영원한 반복이 아니라 끝이 있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의 반복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러한 물리적인 시간, 즉 모두가 똑같은 24시간, 365일이라는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있는 자들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개입하셔서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특별한 타이밍, 그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인데요,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일하시는 카이로스의 시간은 모두가 다 다르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당장의 나의 모습을 보면서 실망하거나 자책하시는 분들이 혹시 계시다면 그럴 필요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 속에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통해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가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과 출애굽기를 처음 나누게 되면서 출애굽기는 애굽을 탈출하는 여정을 기록한 책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 12장의 말씀이 어쩌면 애굽을 나오게 되는 최고 하이라이트의 그 시작점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말씀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더 나아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시간들로 바꾸시고 이루어가시는지 그 원리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내용의 장면이라고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구원의 역사하심을 바라보시면서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는 시간 속에 함께 거하심으로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 모세를 애굽에 보내시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내 보이시는 그런 말씀을 함께 나눠봤습니다. 모세는 그렇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애굽의 왕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오히려 애굽의 왕은 그 얘기를 듣고 모세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들을 더 괴롭혔단 말예요. 그리고 이후에도 그러한 모습은 계속해서 반복이 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7장부터 10장까지를 보면 재앙과 번복이 계속 반복됩니다. 출애굽의 여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가지의 재앙을 내리시게 되는데, 먼저는 나일강의 물이 피로 변하는 재앙으로 시작해서 개구리, 진드기, 파리, 가축들의 전염병, 악성 종기, 우박, 메뚜기, 흑암의 재앙이 순서대로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안내보내주면 재앙이 임할거라고 경고를 하고, 바로 왕은 그 경고를 무시하죠. 그럼 재앙이 임하는 겁니다. 그럼 바로 왕이 모세를 불러서 내보내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럼 재앙이 멈춥니다. 그렇게 재앙이 멈추면 바로 왕이 약속을 어기고 안내보내 줍니다. 그렇게 아홉번이 반복된단 말예요. 바로 왕의 고집도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제가 출애굽기를 처음 시작하면서 여러분들께 드렸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애굽은 세상을 말하는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을 얘기한다고 했었죠. 그것을 대입해서 바라볼 때 세상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을 쉽게 놔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다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그 세상 속에서 탈출하고자 할 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여러분들을 놔주지 않는다고요. 이렇게 끈질기게 여러분들을 붙잡아 두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해 내시기 위해 끈질기게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세상 가운데서 머물도록, 세상이 여러분들을 붙잡고 놔주지 않게 그냥 두시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일하심을 바라보시면서 그 은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렇게 아홉 가지의 재앙이 덮쳤음에도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놔주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드디어 마지막 열번째, 장자 재앙을 앞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살고 있는 첫번째 태어난 모든 것들은 사람과 가축들을 막론하고 다 죽는 재앙인 거죠. 그 재앙을 진행하기에 앞서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부르시는 거예요.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2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2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이 때, 이 때를 너희 역사의 시작으로 바꾸시겠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이 말하는 내용을 보면 이 때는 3월에서 4월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그 기준으로 시간을 이루어가시지 않는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새롭게 시간을 세워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그 시간, 그 때로 시작점을 바꿔내시는 거죠.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되는 이 달을 너희의 시작, 그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때로부터가 너희의 새로운 시간이 시작된다는 거예요.
실제로 그렇게 바꿔내신 시간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적용되고 있지 않습니까? 기원 전, 기원 후. 무슨 말이에요? 기원 전, BC가 무슨 말입니까? Before Christ 예수님의 탄생 전을 말하는 것이고, AD는요? Anno Domini 라고 해서 라틴어인데 "주님의 해"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의 태어난 이후를 얘기하는 거예요. 이 세상의 모든 전세계 사람들이 예수님의 태어나기 전 시간과, 예수님의 태어난 이후의 시간으로 나눠서 모두가 그것을 기준으로 공통된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든 안믿든 전세계 사람들이 그것을 기준으로 공통된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성경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신이 없다고 말하며 예수를 세계 4대 성인의 한 사람정도로 낮춰서 얘기한다 해도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 앞에서 그런 것들이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들께 계속해서 말씀 드리잖아요. 비록 여러분들이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3%밖에 안되는 크리스찬 학생들이라고 해서 위축될 필요가 없다니까요. 눈 앞에 보이는 숫자가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3%이든지 1%이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다는 거예요. 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심에 감사함으로 당당하게 세상에 나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시간을 바꾸신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시간을 따랐습니까? 애굽의 시간을 따른 것이잖아요. 바로의 시간을 따라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떤 시간을 따르는 거예요? 하나님의 시간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로 살아가게 된다는 거예요. 애굽의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습니까? 고통의 시간, 노동의 시간, 아픔의 시간, 슬픔의 시간이었습니다. 잠을 자고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할 때에 온갖 어려움 속에서 힘든 노동과 고통 가운데서 살아갔다고요. 하나님께 고통을 부르짖는 시간을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는 시간이었다는 거예요. 그러나 이제는 어떤 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시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시간을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노예가 아닌 해방된 민족으로서 기쁨과 환희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 감격을 누리는 시간을 맞이하게 됐다는 거죠.
하나님이 우리의 시간을 새롭게 바꾸실 때, 우리에게는 새로운 삶과 새로운 시간표가 시작된다는 겁니다. 세상이 정한, 세상의 기준대로의 시간표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거죠. 하나님의 시간표에서 살아간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시간에 여러분들의 시간을 맡겨 보세요. 고통과 아픔과 걱정과 두려움이 아닌, 기쁨과 감사와 은혜와 평안이 가득한 삶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를 누리실 수 있기를 진심을 다해 간절히 축복합니다. 이제 이러한 새로운 시작을 앞에 두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린양을 준비하는 것이었어요. 3절과 6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3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6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열흘째 날에 어린 양을 준비하고 그 양을 바로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4일 동안을 데리고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4일 동안 무엇을 했을까요? 어린양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어린양을 보면서 기대와 희망을 갖는 것이었다는 거예요. 왜요? 죽음의 공포에서 그들을 살려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그 어린양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 13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어린양을 준비해서 죽음의 심판이 임하는 그 날에 어린양을 잡아 죽이고 그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집 문을 지지하고 있는 양쪽의 기둥과 문의 윗부분 가로대를 말하는 건데 그곳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애굽에 있는 모든 첫 번째 태어난 것들을 다 죽이실 때에, 그 집에 어린양의 피가 발라진 것을 보게 되면 그 집은 넘어가시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유월'의 뜻을 보면, 한문으로 '넘을 유'자와 '넘을 월'자를 써서 유월, 즉 넘다, 지나다, 뛰어넘다, 건너가다 라는 뜻으로 '넘어서 건너가다'라는 뜻을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넘어가셨다는 거예요. 모두가 다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죽음의 심판 앞에서 어린양의 피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 피를 보시고 넘어가셨다는 겁니다.
자, 그럼 우리 이런 상상을 한번 해보자고요.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아 난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이니까 굳이 귀찮게 저런거 안해도 하나님이 살려주시겠지' 하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이 행동을 하지 않은 어떤 사람이 있었다면, 이 사람은 이 재앙을 당했을까요, 안당했을까요?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반대로, 어떤 애굽 사람이 보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뭐하는 건지 물어본 겁니다. 내용을 들어보니까 이건 진짜로 일어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자기도 뭐하는 행동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대로 똑같이 따라 했습니다. 그럼 이 애굽 사람은 이 재앙을 당했을까요, 안당했을까요? 안당하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똑같이 애굽 사람들처럼 죽음의 재앙 앞에 놓이게 된 자들이었지만 그 어린양을 통해서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소망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4일 동안 그 어린 양을 바라보면서 그 어린 양의 희생을 통해 죽음이 아닌 생명으로, 노예가 아닌 자유민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얻게 됨을 기대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똑같이 죽음의 재앙을 앞에 두고 있었지만 그들은 4일동안 그 준비한 양을 바라보면서 죽음의 공포로 떨고 있는 것이 아닌, 새로운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내용을 들어보셨을 때에 뭔가 연상되는 게 있지 않으신가요? 그렇습니다.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어린양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내신 하나님의 이 방법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가운데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해 내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 전체가 바로 예수님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뭐라고 말합니까? 요한복음 1장 29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표현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인 겁니다.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내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친히 그 어린양의 역할을 하셨다는 거예요.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기만 하면, 그것으로 인해 구원을 얻게 된다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의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참된 진리를 알지 못한채 헤매는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하며 믿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바라며 희망과 기대로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유월절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왜 어린양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 어떠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인지를 깨달을 수가 있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양의 피를 바를 때 애굽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저것들 뭐하는 건가 싶지 않았겠어요? 그리고 그 이유를 듣게 되었을 때 그들이 얼마나 비웃었겠습니까. 정말 말도 안되는 얘기잖아요. 죽음의 사자가 오는데, 어린양의 피를 발라두면 죽음을 면할 수가 있답니다. 얼마나 말도 안되고 우스운 얘기냐고요.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손가락질과 비웃음과 조롱 가운데에서도 그러든지 말든지 오직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그 일들을 행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사람이었든 애굽 사람이었든 말예요.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행했다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예요.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답니다. 이러한 말들에 많은 사람들이 콧방귀도 안뀌는 그런 시대이지 않습니까. 인간의 지식과 지혜와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교회에서는 얘기한다고요.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바라볼 때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고 미련해 보이고 멍청해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세상은 우리를 바라볼 때 미련하다 말할지 모릅니다. 어리석다고 말할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세상이 바라보는 어리석어 보이는 하나님의 그 말씀이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고 행할 때에 구원이 임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11절을 봅니다.
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식사를 하는데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하게 식사를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식사의 모습은 아닌 거죠. 이것은 언제든 바로 움직일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실제로 이 유월절의 사건 이후에 애굽에서 쫓겨나듯 길을 나서게 된단 말예요. 열번째 재앙이 닥친 이후로 바로 왕과 애굽 백성들이 이스라엘 민족한테 완전히 질려버려서 그들을 다 내쫓아버립니다. 당장 나가라고 막 쫓아낸단 말예요. 그러니까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지체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드디어 애굽으로부터 탈출하는 거잖습니까. 이제 드디어 노예생활을 청산하게 됐단 말예요. 이들은 이제 애굽에서의 노예로서의 삶이 아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나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완전한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된 자들이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한 자들이 굳이 노예로서의 삶이 가득한 그 애굽 땅에서 지체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여유롭게 먹고 즐기면서 지체하지 말고, 언제든 바로 움직일 준비를 할 수 있게끔 이렇게 식사를 하라고 명령하신 거예요.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되는 말씀인 겁니다. 세상 속에서 머물러있지 말라는거예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으면 이전 것에 미련두고 지체하지 말라는겁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비전과 새로운 삶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바로 반응하고 움직이라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에 늘 깨어 준비된 자세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하나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이 날은 누구의 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방금 읽은 11절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유월절이니라' 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사람의 뜻과 사람의 계획과 사람의 어떤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사람이 행한 어떤 기념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음을,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날임을 기억하라는 거예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일들은 나의 능력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아닌 겁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그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말씀해주고 계시는데, 오늘 본문에서 읽지는 않았지만 12장 41절을 보면서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41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그들에 대한 호칭이 어떻게 바뀝니까? '여호와의 군대'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거예요. 이전까지 그들의 신분은 노예였습니다. 10년 20년 그정도의 세월이 아니었어요. 4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노예였다고요. 그러나 이들에게 어린 양의 피가 뿌려진 그 날 이후로 이들은 하루아침에 신분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더이상 그들은 노예가 아닌, '여호와의 군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말씀을 통해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고 해낼 수 없는 그 일을 하나님께선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시간에 맞게 한순간에 바꿔내시는 역사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시는 거예요. 우리는 죄와 사망으로 세상 가운데 매임을 받은 자들이었으나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로운 삶과 생명을 허락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둠에 속한 자들이었으나, 예수님의 피로 이제는 빛에 속한 자들로 바뀐 자들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그 어떤 어려움과 아픔과 쓰러짐이 있을지라도 소망이 있음을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삶을 살아가는 순간들 속에서 어려움의 일들을 마주할 때, 그 어려움을 바라보며 두려움 가운데 있지 마세요. 우리는 그 어려움을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소망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자들임을 기억하십시오. 그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닌,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자들이라는 거예요. 우리의 삶이 힘들고 괴롭고 낙담되고 어렵고 아픔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어린 양 되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구원을 받아 새롭게 된 자들임을 기억하세요. 여러분들의 삶에 어린양의 피를 칠하십시오. 예수님의 피를 뿌려보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삶에 칠해져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피를 보실 때에, 여러분들을 세상으로부터 구원해 내시며, 하나님의 군대로 삼으시고, 새로운 삶의 여정으로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삶을 이끌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하나님께 감사가 넘치고 기쁨이 넘치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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