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운다

말씀본문 : 출애굽기 14장 21-31절
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22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23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24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25 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2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27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28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29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더라
30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애굽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더라
3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말씀제목 :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운다
우리는 몇 주동안 계속해서 출애굽의 이야기를 묵상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내용들은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이 애굽이라는 나라에서 노예로 살다가 탈출하게 된 단순한 이방 민족의 역사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 가운데서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출애굽기를 시작할 때부터 계속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렸던 내용이 있었습니다. 애굽은 세상을 나타내고 있고, 이스라엘 민족은 믿음의 사람들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이죠. 여러분들이 말씀을 들을 때에 그냥 단순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역사 이야기로만 듣는다면 그저 따분하고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내 삶에 있어서의 이야기로 듣는다면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분명한 길잡이가 되고 가이드가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우리를 향한 세상의 행동이, 시선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러한 세상의 행동과 시선 속에서 우리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바다가 갈라지고 갈라진 바다 가운데 마른 땅을 걸어갈 일은 없겠지만, 삶을 살아가다 보면 막막하고 도저히 길이 없는 것 같은 상황 속에 놓일 때가 있단 말예요. 그때에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에서처럼 앞 뒤가 꽉 막힌 상황이지만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길로 지나가게 되는 역사를 체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가나안 땅까지 열흘 길이면 갈 수 있는 너무나 간단한 경로가 있었지만 그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광야 길로 인도하시는 내용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죠. 해안 길을 따라서 가면 얼마든지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지만 그곳에는 블레셋 민족이 거주하고 있었고 그들과 부딪히게 될 경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다시 도망갈 수 있었기 때문에, 비록 사람이 보기에는 더 어려운 길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시선과 계획으로는 가장 안전하고 가장 완전한 길이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하나님의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길이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광야 길로 향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경로를 지시하십니다. 출애굽기 14장 2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에 장막을 치게 하십니다. 이렇게 글로만 보고 듣기만 하면 전혀 감이 안오실 것 같아서 앞에 지도를 준비해봤는데요. 홍해 바다 앞에 진을 치게 하시는 겁니다. 숙곳에서 바다 옆으로 얼마든지 갈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다를 앞에 둔 곳으로 인도를 하셨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경로로 이들을 인도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14장 5절과 6절에 나와있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5 그 백성이 도망한 사실이 애굽 왕에게 알려지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그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이르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하고
6 바로가 곧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새
자신의 큰 아들이 이스라엘 민족들 때문에 죽었다는 것에 너무 화가 나고 짜증이 났던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민족들을 거의 내쫓다시피 보내버렸단 말예요. 그것도 그냥 내보낸 것이 아닙니다. 그 와중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들까지 다 내주면서 내보냈거든요. "우리 나갈테니 이거 줘. 이것도 줘" 이러니까 안그래도 지금 자식이 죽어서 얼마나 슬픔 가운데 있었을텐데 놀리듯이 그러고 있으니 얼마나 꼴도 보기 싫었겠어요. 그래서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다 내어주면서 내쫓듯이 내보낸 겁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정신이 든 거죠. 이것들을 그냥 내보낸 것이 너무 화가 나는 겁니다. 이건 아닌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어찌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하고선 다시 잡아들이려고 병거를 갖추고 이스라엘 민족들을 잡으러 가는 겁니다. 아마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들을 다시 다 잡아들이려고 하진 않았을 거라고요. 생각해보니까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자신들의 노예로 있던 것들이 감히 내 재산을 가지고 갔다는 것에 생각해 보면 얼마나 열이 받았겠어요. 곱게 데리고 가겠습니까? 분풀이도 필요했지 않았겠냐고요. 일부는 죽이고, 일부는 노예로 데려가고 그런 생각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쫓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14장 3절을 보겠습니다.
3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이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이었다는 거예요. "저것들 우리 밑에서 노예 생활 못하겠다고 기껏해서 나가봤자 노예 생활만 하던 것들이 어딜 가서 뭘 하겠어?"라는 생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기껏 그렇게 나가놓고는 간 곳이 광야라니. 가나안 땅으로 간다더니 길도 제대로 못찾고 광야에서 헤매고 있는 꼴밖에 안됐다는 거예요. 광야에 갇혀 있는 것 같은 그들의 모습을 볼 때에 얼마나 한심해 보이고, 얼마나 미련해 보이고, 얼마나 우스워 보였겠습니까. 보십시오. 세상이 바라보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세상이 바라보는 여러분들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일요일 오전이면 얼마나 잠 자기 좋고, 놀기 좋은 시간인데 교회를 갑니까? 안 그래도 할 것도 많은데 굳이 교회에 나가서 한시간 앉아있는 것이 얼마나 시간 아깝냐고요. 시험기간엔 당연히 공부해야 되는 것이 국룰인데 웬 전도사라는 인간이 시험기간이라고 예배 빠질 생각하지 말고 교회 나와서 한 시간 예배 드리는 것이 인생에 더 도움이 된다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나 하고 있는데 뭣하러 그런 얘기 들으러 시간 아깝게 거기 가서 앉아있냐고요. 너무 한심해 보이고, 미련해 보이고, 우스워 보이는 모습인 겁니다. 혹시나 여러분들 중에도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어요. 졸려 죽겠고, 피곤해 죽겠고, 할 것도 많아 죽겠는데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너무 힘들어 죽겠는, 별로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의 시선으로 말이죠. 그런데 그 시선은 단순하게 애굽인들만, 바로 왕에게만 있는 시선이 아니었습니다. 14장 10절을 보겠습니다.
10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너무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민족들도 똑같은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애굽인들만이, 바로 왕만이 이들을 광야에 갇힌 것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들이 자신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볼 때에도 광야에 갇힌 모습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너무 힘들어 하고 있는 여러분들처럼 말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나와있는 것은 절대 쓸데 없는 짓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믿는 사람에게는 믿는만큼의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해도 안받겠다는데 뭐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다시 말씀 드립니다. 믿는 자에게는 믿는만큼의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예배 안 나와서 망하는 사람은 있어도 예배를 목숨같이 지켜서 망하는 사람은 절대 없다니까요. 믿어보세요. 여러분들이 믿지를 못하니까 뜨뜨 미지근하게 있어서 이도 저도 아니게 있는 것이지, 내가 확실하게 믿고, 그 믿음대로 행하고자 결단하고, 그 결단대로 믿음의 행동을 옮기면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역사하심의 현장 가운데 있게 된다고요. 그러한 은혜가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하는 거 보세요. 14장 11절에서 12절까지를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원망의 소리가 나와있는데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매장지가 없어서 광야에서 죽게 하냐!", "왜 애굽에서 잘 살고 있었는데 우리를 끌어내가지고 여기서 죽게 하냐!", "우리가 애굽에서 말했지 않았냐, 우리 내버려두라고 했지 않았냐, 우리가 애굽 사람 섬기면서 노예로 그냥 살겠다는데 왜 굳이 끌고 나와가지고 여기서 죽게 하냐!" 어우. 듣기만해도 너무 답답하고 짜증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모세라면 어떨 것 같으세요? 진짜 한대씩 쥐어박고 싶지 않겠어요? 기껏 노예로 살고 있는거 꺼내서 자유민으로 살게 해줬더니 하는 소리라고 저런 말밖에 안하고 있으면 얼마나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겠냐고요.
제가 금요철야때 찬양인도를 하면서도 성도님들 앞에서 잠깐 나눴던 이야긴데요. 저희 딸 하엘이가 복숭아가 먹고 싶었나 봅니다. 저는 피곤해서 잠깐 누워서 눈을 좀 붙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딸래미가 아빠를 막 흔들어 깨우면서 복숭아가 먹고 싶다고 복숭아를 깎아 달라는 거예요. 저는 막 비몽사몽 상태니까 5분만 있다가 깎아 주겠다고 얘기를 하고선 비몽사몽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5분이 지났는데도 아빠가 안일어나고 복숭아를 깍아주질 않으니까 이 딸래미가 자신의 분노를 막 표출하는 겁니다. 아빠는 내가 복숭아 깎아 달랬는데 복숭아도 안깎아준다고, 아빠가 복숭아도 안깎아 주는데 내가 왜 아빠 말을 들어야 되냐고 뭐 별 소리를 다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이런 소릴 들어가면서 복숭아를 깍아줘야되나 저도 별 생각이 다 들기는 했는데, 어쨌든 일어나서 복숭아를 깍아줬습니다. 딸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쨌든 깍아주기야 줬지만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참 씁쓸한 거죠. 아빠에 대한 믿음이 저렇게도 없나. 이스라엘 민족들이 이렇게 불평불만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막말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무슨 생각이 드셨겠습니까. '아 저것들 어떻게 할까' 막 미간 잡지 않으셨겠어요? 뒷목 잡지 않으셨겠냐고요. 하나님께선 왜 이들을 이렇게 오도 가도 못하게 홍해 앞으로 이끄신 것입니까? 14장 18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8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서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을 여호와인 줄 알게 하시겠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앞에 있는 그 문제, 여러분들이 막막해 하는 그 어려움의 일들을 통해서 세상 가운데에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있기를 축복합니다. 바로의 시선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 광야에 갇힌 한심하고 미련하고 우스운 모습이었지만, 하나님의 시선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하나님께서 연출해 놓으신 무대 속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여러분 앞에 놓여진 문제를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시겠습니까? 세상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똑같이 바라보며 두려움 가운데서 스스로를 바라보더라도 그저 미련해 보이고, 그저 한심해 보이고, 그저 우스워 보이는 자리에 머물러 있는 그저 그런 교회 다니는 어떤 애로 있겠습니까, 아니면, 세상이 바라보는 시선과 전혀 다른 180도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이 바로 이러한 마인드에서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된다는 거예요. 문제를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현장으로 바라보면 그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닌 겁니다. 그 문제를 통해 나타나게 될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일들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는 거죠. 앞에는 바다가 길을 막고 있고, 뒤에는 바로의 군대가 쫓아오고 있는 사방이 막혀있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2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성경에 나오는 여러가지 수많은 기적의 사건들이 많이 나오지만, 그 여러가지 멋진 장면들 중에서도 아마 가장 유명하고 가장 멋진 장면으로 손꼽힐만한 장면이 바로 이 장면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을 해보는데요. 상상만 해보더라도 너무나 멋있는 장면이죠. 바로,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장면입니다. 큰 동풍이 밤새도록 불더니 그 바람으로 인해서 바닷물이 갈라지는 거예요. 길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생각을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철저하게 부숴버리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해내는 길도 만드시는 분이시라는 거예요. 그것이 광야이든, 그것이 바다이든 상관 없이 말이죠. 우리가 생각하는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을 만들어 내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지난 시간에 나눴던 말씀인데요. 한번 더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야 55장 8절입니다.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생각과 다른 길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야 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완전하고 더 완벽한 길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바다를 갈라내어 만들어주신 길로 걸어갔습니다. 그 길을 걸어가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말씀을 묵상하면서 혼자 상상을 좀 해봤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 거예요. 모세의 근처에 있던 사람들, 즉 모세의 가까이에서 앞장 서서 가던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기적으로 바라봤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눈 앞에서 그 일이 펼쳐졌으니까요. 그런데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마침 동풍이 세게 불어서, 다행히도 그 바람 덕분에 바다가 갈라지게 되어서, 너무나 운이 좋게 그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던 사람들도 있지 않았을까요? 이것은 그냥 저의 상상일 뿐이니 감안하고 들어주시면 됩니다.
우리도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똑같은 기적을 체험했음에도 누구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놀라운 기적으로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것은 어떻게 우연히, 마침, 타이밍이 좋아서, 운이 좋아서 이뤄진 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는 거예요. 믿음이라는 것은, 정말 사소한 것까지도 믿음의 영역으로 바라보면 너무나도 은혜가 넘치는 일들 투성이인데, 그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면 아무리 크고 대단한 일들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안믿는 사람은 절대 믿지 않는 것이 또 믿음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믿는 것을 믿을 것인가, 믿지 않는 것을 믿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결국 개인의 몫이라는 거예요. 믿음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저도 저의 삶을 돌아보면 진짜 절망적인 상황들을 너무나도 많이 겪어왔거든요. 진짜 그 순간에는 이건 도저히 답도 없을 것 같은 그런 일들을 참 많이도 겪어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일들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인 거예요. 사람들한테 얘기하면 '에이 그런게 어딨어. 말도 안돼' 라고 해도 그 일들을 겪은 저만큼은 남들이 뭐라하든 상관 없이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사건들까지도 모든 문제들 속에 하나님께서 해결하시고 그 일들을 통해 믿음을 계속해서 성장시켜 주셨다는 거예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내 삶 가운데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하심을 너무나도 많이 바라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에요. 믿음의 자리에 있을 때에 믿음의 체험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와 함께 그 앞에서 있던 자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현장을 체험하게 되는 거라고요. 그런데 뒤에서 바로의 군대가 어디까지 왔나 그것만 보고 있는 자들은 은혜의 현장 속에서도 믿음의 체험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5절을 보겠습니다.
25 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이스라엘 민족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 넣었던, 모세를 따라 나온 것을 후회하며 불평과 불만과 원망이 터져나오게 만들었던 애굽사람들이 외치는 말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을 치는도다" 함께 따라해보겠습니다.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운다" 여러분, 너무 든든하지 않으세요? 세상이 여러분들을 바라보며 외치게 될 말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한번 더 따라해보겠습니다. '그들을'에 여러분들의 이름을 넣어서 선포해볼게요. "여호와가 김종민을 위하여 싸운다" 아멘. 여러분들이 믿음의 걸음으로 하나님께서 이끌어가시는 그 길을 따라 나아갈 때에 세상은 여러분들을 바라보며 미련하다고, 한심하다고, 우습다고 손가락질하며 비웃을지 몰라요. 여러분들의 믿음의 행위를 공격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비웃음과 손가락질에 그 길을 멈추지 마시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만들어 내시는 길을 바라보시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계속해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 보세요. 그러할 때에 세상은 여러분들의 믿음의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운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힘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무너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실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앞에 홍해가 가로 막고 있는 현실,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쫓아오는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는 거예요. 그 현실을 바라볼 때 우리는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손가락질 하고, 세상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 한없이 미련해 보이고, 세상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한없이 한심해 보이는 여러분들의 그 믿음 생활에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현실을 보게 한다고요. 주일에 더 자고 싶고 더 쉬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예배의 자리를 지키려 몸부림치는 그 모습을 세상은 미련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문제 앞에 놓였을 때 기도하러 나아가는 그 모습을 한심하다고 말한다고요. 그리고 실제로 내가 그렇게 믿음 생활을 해도, 내가 그렇게 열심히 교회를 다녀도, 내가 그렇게 열심히 기도를 해도 별로 달라지는 것 같지 않은, 별로 크게 달라지는 것 없는 것 같은 현실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3%밖에 안되는 복음화율이, 두 세 명밖에 안나오는 우리 교회의 학생들의 수가, 예배를 잘 나와도 별로 다이나믹한 변화가 없는 것 같은 현실을 보게 한다는 거죠. 그럴 때면 두려움 속에 갇히게 된다는 겁니다. 위축되는 거죠. 이것이 과연 소용이 있는 것일까. 의심이 커지고 믿음이 점점 사라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고, 도저히 해결이 되지 않을 것 같은 그 현실 앞에서 아무런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거예요. 무기력과 두려움과 의심이 싹트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러할 때에 그 두려움으로, 그 무기력함으로, 그 의심으로 넘어지거나 쓰러지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그 현실 너머에 있는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눈 앞에 놓여진 현실을 바라보고 절망 가운데 쓰러지고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인도하심을 바라보시라는 거예요. 나의 시선이 현실을 바라보게 되면 두려움과 무기력함이 찾아오게 되지만,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시선으로 옮겨지게 될 때, 우리는 두려움이 아닌 기대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로 볼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한 믿음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앞에 놓여진 홍해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뒤를 쫓아오고 있는 애굽 군대는 무엇인가요. 그 문제의 상황, 문제의 현실을 바라보지 마시고 여러분의 삶을 이끄시고 여러분들의 삶을 통하여 일하실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하나님을 믿어보십시오. 그리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 여러분들의 삶을 맡겨보세요. 그렇게 하나님을 붙잡고 믿음의 걸음을 계속해서 걸어갈 때에, 세상은 여러분들을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이 여러분들을 바라보며 증거할 것입니다.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운다" 이러한 선포가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통하여 세상 가운데 선포되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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