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할래, 감사할래?

말씀본문 : 출애굽기 16장 1-4절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말씀제목 : 원망할래, 감사할래?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던 내용을 나눠봤는데요. 앞에는 홍해가,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쫓아오고 있는 도무지 뚫고 나갈 길이 없는 상황에 놓였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을 봤습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애굽의 군대와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웃었었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상황을 역전 시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홍해를 가르심으로 길을 만드셔서 그 길로 나아가게 하셨고, 그들을 비웃고 조롱하며 뒤쫓던 애굽의 군대는 홍해 속에 빠져 죽게 하심으로 그들의 입에서 "여호와가 그들을 위해 싸운다"라고 원수의 입에서 하나님을 선포하게 하는 역사를 행하셨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세상은 우리를 바라보며 미련하다 말하고, 조롱하고, 손가락질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국에 우리를 구원하시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로 만드시겠다는 겁니다. 승리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게 하는, 역전의 일들을 우리의 삶 가운데 펼치실 것이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은혜의 시간을 누리고 있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정말 은혜 아닙니까? 전쟁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하나님께서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해주시고, 그들을 쫓아오는 전쟁에 능한 애굽 군인들을 상대로 이스라엘 민족은 싸워볼 필요도 없이 하나님께서 싸워주셔서 이기게 하시고 그 죽음의 황무지와 같은 광야에서 낮에 뜨거울 땐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으로 뜨거운 햇빛을 가려 주시고, 밤에 추울 땐 하나님께서 불 기둥으로 따뜻하게 해주시고, 그야 말로 하나부터 열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뭐 하나 손 볼 필요도 없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다 해주고 계시는 거잖아요. 누가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이죠.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존재입니까? 이 세상 모든 천지만물을 다 지으시고 만드신 창조자, 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 유일한 하나님, 스스로 존재하는 단 하나뿐인 존재, 바로 그 존재가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한 민족을 보호하고 이끌고 있었다는 거예요. 이거 정말 기가 막힌 일 아니냐고요.
여러분, 김성경 목사님 설교 너무 좋으셨죠? 웃기기도 했다가, 울리기도 했다가, 목소리도 좋고, 찬양도 어쩜 그리 은혜롭게 부르시는지 진짜. 사실 저도 예전부터 이 목사님의 팬이라면 팬이었단 말예요. 이 목사님이 전도사님이던 때부터 5분 설교라고 유튜브에 영상 올리시고 그랬는데, 저도 그 당시에 한창 그 영상들 보고 은혜 받고 그랬습니다. 지난 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저도 SNS를 틈만 나면 하는 사람인지라, 인스타그램에서 '교회친구다모여' 채널도 이미 진작에 팔로우를 하고 있었고 그랬다보니 김성경 목사님은 진짜 인플루언서 그 자체였던 거죠. 그런데 그렇게 그냥 스마트폰 화면에서나 보던 사람을 실물로 만나서 현장에서 설교를 라이브로 보고 들으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사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뭘했냐면, 죄송합니다. 여러분 찬양하고 계실 때 저는 뒤에서 이렇게 목사님과 사진도 같이 찍고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막 제가 목사님 5분 설교 영상 올리실 때부터 구독해왔던 사람이라고 막 팬이라고 어필도 하고.. 주책이죠.
그런데 이 목사님이 항상 사역을 가시는 날이면 그 날의 현장의 모습을 꼭 인스타 스토리로 올리신단 말예요. 저는 이 목사님의 그런 루틴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 수련회 모습도 올리실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중에 인스타그램을 들어가보니까 역시나, 스토리를 올리신 거죠. 이야. 김성경 목사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내가 찬양인도 하는 모습 막 올라와 있고, 이야. 그래서 저도 막 자랑질 스토리 올렸죠. 김성경 목사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뜨는 날이 있기도 한다면서 성공한 인생이라고 스토리 올렸더니, 다음날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아세요? 여러분들 혹시 나도움 목사님이라고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김성경 목사님이 인스타그램 4.9만 팔로워, 그리고 나도움 목사님이 2.1만 팔로워인데 이 분도 청소년 사역에 굉장히 열심히 하시는 분이라서 엄청 유명한 분이거든요. 그런데 이 분한테 디엠이 딱 와있는 겁니다. '이미 하나님의 자녀인게 성공한 인생!' 키야... 이게 어떻게 보면 참 없어 보이고 창피한 모습일 수도 있겠는데, 와씨 창피는 무슨 창피야. 저한테 있어서는 거의 연예인 같은 분들인데 그런 인플루언서 목사님한테 다이렉트 메시지 받았는데 무슨 창피겠냐고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했냐면, 그 디엠 메시지를 캡처를 해서 그대로 또 인스타에 자랑질 하는 거죠. '나도움 목사님으로부터 한수 배우는 성공한 인생'
제가 진짜 세상에서 제일 이해 안가는 게 연예인 좋아하고 덕질하고 뭐 가수들이 무대 위에서 손하트 같은 거 날리면 나한테 날린 거라고 막 호들갑 떨거나, 연예인이랑 악수했다고 막 자랑하고 그러는 거 진짜 세상 한심하게 보는 사람인데 제가 그러고 있는 거죠. 아, 사람들이 왜 그렇게 호들갑 떠는지 알겠다니까요. 뭐 그런 한심하다는듯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고들 계세요.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연예인한테 디엠 받으면 안이럴 거 같습니까? 차은우가, 장원영이 내 사진 스토리에 올리면서 막 멋있는 말 쓰고, 나한테 디엠 보내고 그러면 여러분 별 감흥 없겠냐고요. 내 삶의 시간 속에서 접점이나 어떤 특별하고 대단한 도움 같은 게 없어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다니는 어떤 인물이 나를 알아봐주고 나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에도 그렇게 기분이 묘하고 벅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와서,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류의 수많은 민족들이 있었지만 그중에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 그 한 민족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이들을 세상 가운데에 선포하고 계시는 거잖아요. "얘들은 내가 선택한 민족이야. 얘들은 너네랑 다른 민족이야. 건들지마. 까불지마. 얘네 건들면 너네 가만 안둔다" 지금 이 선포를 세상 가운데 선포하고 계시는 거라고요. 이게 은혜라는 겁니다. 이 민족은 내가 직접 인도하고 있는 민족이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이스라엘 민족이라면 너무 든든하고 기분 좋지 않겠어요? 무서울 게 없을 것 같지 않습니까? 이러한 은혜가 우리에게도 있는 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두 달이 좀 안된 정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던 어느 날, 이스라엘 민족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2절 말씀 함께 읽어볼게요.
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있는 거예요. 왜그러는 겁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3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이 구절을 내용을 현대인의 성경 버전으로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3 '우리가 이집트에서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을 뻔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고기와 빵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는데 당신들이 우리를 이 광야로 끌어내어 우리가 모조리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원망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애굽에 살 때는 고기도 먹고, 빵도 먹을 수 있었는데 광야에서는 잡아먹을 동물도 없고, 빵을 해먹을 수 있는 재료를 얻을 수도 없으니 다 굶어 죽게 생겼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보실 때 이스라엘 민족의 이 모습, 어때 보이십니까? 한심해 보이시나요, 아니면 그럴 수 있겠단 생각이 드시나요? 성경이 참 재밌는 게 뭔지 아세요?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성경 속에 나오는 인물들 진짜 다 한심해 보입니다. 이해가 안가는 거죠. 우리가 막 안타까워 하는 장면들 있잖아요. 예를 들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먹는 장면이라든가,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를 자기 여동생이라고 속이더니 다른 나라의 왕한테 아내로 넘겨주는 장면같은 것들 말예요. 절대 이해 안되잖아요. "와 어떻게 이래? 미친거 아니야?" 이러면서 읽잖습니까. 그런데, 내용만 조금 다를 뿐, 비슷한 현실이 내 앞에 닥치게 되면 나도 그들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닌 것 같으신가요?
하나님께서 선악과 따먹지 말라고 했으니까 여러분들은 선악과 절대 안따먹을 것 같으신가요? 하나님이 아담한테 너 왜 그 선악과 먹었냐고 물어보셨을 때 아내 탓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잘못했다고 하나님한테 막 죄송하다고 회개하며 나아갈 것 같습니까? 아니요. 여러분 아담과 똑같은 행동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수백번 수천번 했을 겁니다. 아니, 더한 행동도 했을 걸요? 여러분들 중에 하나님께서 하라는 거,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것들, 나는 진짜 하나님 앞에 다 지켰다 할 수 있는 분 계시냐고요. 내가 잘못한 거 걸렸을 때 남탓 한적 단 한 번도 없었냐고요. 내가 손해볼 것 같으니까 일단 나부터 살자고 거짓말 한적 없으시냐고요.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안타까운 행동보다 더한 짓도 했을 거라는 거예요.
그냥 3절의 내용만 보면 '아니 무슨 겨우 먹을 거 없다고 모조리 굶어 죽게 되었다고 원망을 해? 하나님이 불 기둥, 구름 기둥도 보여주시고, 홍해도 가르시고, 애굽 군사들도 다 없애주셨는데 겨우 고기랑 빵 못 먹는다고 죽게 되었다고 원망을 하고 있다고?' 거의 이런 생각들 하고 계셨을 것 같아요. 사실 제가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 너무 한심해 보이는 거예요. '앞에 그 어마어마한 기적들을 다 체험했으면서 겨우 먹는 거 가지고 하나님을 원망해? 하나님이 알아서 어련히 다 해주실까, 어휴 답답하고 한심한 인간들'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냥 제가 드는 생각인데,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닌 분들은 어렸을 때부터 성경 동화나, 유치부, 주일학교를 거쳐 오면서 그 나이대에 쉽게 이해를 시켜주려다 보니까 굉장히 단순화 시켜서 가르치는 것들이 그런 영향을 미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제 좀 더 깊이 있게 성경을 볼 나이들이잖아요. 단순하게 말도 안되는 동화처럼 읽을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사람들이 왜 그랬는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상황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 어떤 상황인 건지를 대입해 보면서 읽어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어떤 선택과 어떤 길로 가야 할지를 알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성경을 보지 않고 그냥 마치 성경을 어떤 신화 이야기, 현실과는 상관 없는 옛날 전설같은 이야기, 동화 같은 허구의 이야기로 보니까 성경은 성경이고 내 삶은 현실이고를 따지게 되면서 성경을 삶 속에 하나도 적용을 하지 못한다는 거죠.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이 상황은 현실인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애굽에서 나오면서 그곳에서 먹던 어떤 식량들을 챙겨서 나왔겠죠. 그렇게 챙겨온 식량들로 하루 하루 광야에서 먹고 있는데 식량이 점점 줄어드는 겁니다. 그럼 이제 식량이 다 떨어지기 전에 식량을 좀 구해야 되는데 자신들이 있는 곳은 광야인 거죠. 여러분 광야의 모습이 잘 상상이 안되시죠? 바로 이런 모습이 광야의 모습입니다. 잡아먹을 동물도 없어요. 열매를 따먹을 나무도 없어요. 농사를 지을만한 땅도 아니에요. 이건 현실인 겁니다. 애굽에서 가져 온 이 식량이 다 떨어지면 이곳에서 굶어죽는 것은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현실이 되는 거라고요. 그들은 다가오는 현실을 바라보며 걱정과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상상이 아니고 정말 현실 그 자체라고요.
이스라엘 민족 안에서 모세 외에 각 지파별로 지도자급 되는 자들도 생각이란 것을 할 거 아닙니까. 이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자고요. 예전에 애굽에서 도망쳤던 그 왕자, 모세라는 인간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더니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셨다는 거예요. 처음엔 그냥 미친놈인가 싶었는데 어째 하는 일들을 보니까 모세가 말하는대로 애굽에 막 재앙들이 닥치는데 신기하게도 애굽 사람들한테는 그 재앙이 생기는데 이스라엘 사람들한테는 그 재앙들이 상관이 없는 겁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아 진짜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 맞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겠죠. 400년이라는 기간을 노예로 살았는데 자신들이 노예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건 터무니 없는 소리였을 거라고요. 그런데 진짜로 모세라는 사람이 바로 왕을 이기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게 되는 겁니다. 정말 현실같지 않은 현실이 펼쳐진 거죠.
그렇게 모세가 진짜 하나님이 보낸 사람인가 보다 싶어서 따라 나왔는데, 아니 분명 가나안 땅으로 간다고 했는데 웬 이상한 광야 길로 들어서더니 자꾸 이상한 헛짓거리들을 하는 거죠. 홍해 앞으로 이끌고 와서 길도 못찾질 않나, 하마터면 그것 때문에 애굽 군인들한테 죽을뻔한 위기를 겪기도 하고, 어찌저찌 홍해가 갈라져서 타이밍 좋게 건너오긴 건너왔는데 정말 운이 좋아서 건너온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긴가민가 하면서 어쨌든 따라가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이 길은 아닌 것 같은 거죠. 보이는 건 모래밖에 안보이는데, 한달 넘게 걸었으면 지금쯤이면 목적지에 도착하고도 남았어야 되는데 자꾸 광야에서 길 못찾고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 않았겠어요? 믿음 반, 의심 반으로 계속 따라가고는 있는데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식량은 점점 줄어듭니다. '에이, 좀만 더 가면 되겠지', '에이 좀만 더 가면 되겠지' 그런데 한 달이 넘게 두 달이 다 되어 가도록 보이는 것이라곤 광야밖에 안보여요. 지금부터는 이성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 오는 거예요. 남은 식량은 길어야 일주일 정도도 안갈 것 같고, 그런데 지금 가고 있는 꼬라지를 보니까 일주일동안 어디로 더 간다해도 식량이 나올만한 목적지는 전혀 없는 거죠.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이건 답이 안나오는 거예요.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슨 생각이 들겠습니까? '끝났다', '속았다', '이건 답이 없다' 계산기 두드린 결과가 나오니까 어떻게 하는 거예요? 원망이 쏟아져 나오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 먹고 싶어서 원망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빵 먹고 싶어서 원망한 게 아니에요. 자신들이 맨날 먹는 시리얼, 자신들이 맨날 먹던 라면이 질려서 "아 나 이제 다른 메뉴 좀 먹어보고 싶다!"라고 원망한 것이 아니라고요. 철저하게 현실을 본 것이었습니다. 철저하고 냉혹한 이성적 판단에 의한 현실을 마주한 거라는 거예요.
내가 고3인데, 교회에 가면 하나님이 도와주신다고는 하는데, 고3이니 불안불안 하니까 뭐 믿을 구석은 있어야 될 것 같고, 교회 다니면 그래도 하나님이 좀 보살펴 준다고 하니 교회를 다니긴 다니고 있는데, 이거 보니까 보통 교회에 나오면 예배 한시간, 공과 하면 한시간 반, 뭐 특별활동 한다고 뭐 하고 뭐하고, 내가 지금 수능까지 100일도 안남았는데, 이 시간에 차라리 공부를 하면 그래도 적어도 어떤 과목 어느정도 분량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긴 한데, 아 그래도 교회 나오면 하나님이 머리도 더 좋게 해주시든가, 아니면 뭔가 공부할 환경을 만들어주든가, 뭐라도 좋은거 주시겠지 하는 기대를 가져보는데 딱히 현실은 그리 크게 변화되는 건 없는 것 같고, 그러다가 수능 날, 아 그래도 내가 교회 열심히 다니고 하나님께 기도도 열심히 하고, 예배도 빠지지 않고 잘 나가고 했으니 하나님이 내가 풀기 좋은 문제들로 잘 주시겠지 하고 시험을 치루는데, 수능을 죽을 쑤는 거죠. 내가 생각하고 계획했던 대학은 커녕 서울권은 커녕 경기도권도 못갈 것 같고, 이 성적으로 내가 원하지도 않는 대학교에 원하지도 않는 과로 갈 거 같으면 차라리 재수가 나을 것 같은데 재수는 하기 싫고, 그런 답도 안나오고 망가져 버린 현실을 마주할 때 여러분 무슨 생각 들 것 같으세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주한 현실은 이 현실보다 더 막막한 현실입니다. 진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거라고요. 계산기 아무리 두드려봐도 이건 답 없이 없는 겁니다. 그냥 진짜 굶어죽게 생긴 거예요. 이 상황에서 더이상 도저히 모세와 아론이라는 저 작자들 따라갈 형편이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왜 괜히 나 잘 살고 있었는데 굳이 끌고 와서 여기서 굶어 죽게 만드냐는 불만과 원망이 터져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 같으면 안나오겠어요? 나같아도 열받고 화나겠지 않으세요? 그런데 이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 자신들이 마주하고 있는 그 현실에 앞서 있는 그 말도 안되는 일들도 그들의 현실로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셨다는 걸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들은 400년이 넘게 노예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예생활은 그들에게 있어서 그냥 너무나 당연한 생활이었어요. 우리가 읽을 때나 노예생활이라고 읽는 것이지 그들에게는 그냥 그것이 일상이고,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인생의 삶의 모습이었다고요.
여러분 지금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다니고 있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실이지만, 그것이 자연스러운게 아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는 역사가 100년도 안돼요. 아니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여러분들처럼 그렇게 학교생활, 학원생활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 100년 후, 아니 한 50년 후만 지나더라도 여러분들의 후대 사람들이 여러분들의 모습을 불쌍했던 시대로 평가할 수 있다니까요? '아니 어떻게 6년 동안을 학교라는 공간에 있었대? 아니 어떻게 19살이 될 동안 공부만 하면서 살았대? 아니 무슨 주말에도 학원을 갔대?, 와 이 시대 사람들은 진짜 시간 아깝게 살았다. 진짜 불쌍하게 살았다. 완전 노예로 살았었네' 이런 평가를 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학교 다니고 공부해야 되고 학원에 쫓겨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현실, 왜 당연한 현실입니까? 그래야 대학교 좋은 곳 가고, 그래야 좋은 곳 취직 해서, 그래야 돈을 잘 벌고, 그래야 좀 잘 살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러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말도 안되게 여러분들에게 한 몇백 억의 돈이 주어졌다고 생각해 보세요. 남들은 평생을 벌어도 못 만져볼 돈이 여러분들에게 생겼다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학교 다니겠어요? 여러분 학원 지금처럼 열심히 그렇게 다니시겠습니까? 주말도 없이 그렇게 학원에 쫓겨서 살아가겠냐고. 아뇨. 그럴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어주겠다고 하면 그게 현실감이 있겠어요, 아니면 그런 터무니 없는 소리 듣고 있을 바에야 학원 가서 한시간 공부하는 게 현실감이 있겠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노예 해방은 그런 정도의 얘기였다는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소리였다는 거예요. 그런 소리 듣고선 혹하고 있을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그 시간에 빨리 돌 하나 더 옮기고 인센티브 5만원 더 받는 게 내 인생에서 더 나은 현실, 진짜 현실이었다고요.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노예에서 해방이 되어 자유민이 됐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단순한 자유민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민족으로 정체성이 새롭게 세워졌다는 거예요. 노예가 만물을 지은 왕의 자녀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 말도 안되는 터무니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현실로 만들어 내주셨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하나님이 오늘도 여전히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이 하나님 진짜 믿어볼만한 하나님이지 않겠습니까? 이 하나님께 내 인생 한번 걸어볼만한 하나님이시지 않겠냐고요. 이 놀라운 일들을 나타내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으심으로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원망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첫 번째, 반신반의 했던 것. 두 번째, 현실적인 현실만 봤던 것, 세 번째, 나에게 일어난 비현실적인 일이 현실이 된 것을 간과 한 것. 그렇다면 이들이 원망이 아닌 감사와 기대가 나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겠습니까? 반대로 하면 되겠죠. 첫 번째, 완전히 믿을 것, 두 번째, 보이는 현실적인 현실 뒤에 일어날 비현실적 현실을 바라볼 것. 세 번째, 나에게 일어난 비현실적인 일이 현실이 된 것을 기억하는 것. 원망으로 이어질 일들 앞에서 감사로 이어질 일들로 바꾸면 그것은 더이상 문제가 아니라 또다른 은혜를 누리는 은혜의 현장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4절의 말씀을 함께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이 약속의 말씀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터무니 없는 말입니다. 말도 안되는 말입니다. 초등학생이 얘기해도 이것보다는 현실적으로 얘기하겠어요. 어느정도 믿을만한 말로 말을 해야 믿어보든가 말든가 할텐데 도저히 믿을만하지 못할 말을 하고 계시니 더 못믿겠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요 여러분,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400년을 노예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에서 해방되는 것은 믿을만한 말이었겠습니까?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기만 하면 우리집은 죽음에서 면하게 된다는 건 믿을만한 말이었습니까?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이 이 민족 전체를 이동할 수 있게끔 움직이고 보호하는 것은 믿을만한 현실입니까? 홍해가 갈라지는 것은 믿을만한 현실이었습니까? 아니요. 단 하나도 인간의 생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말해봐야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고 여길 터무니 없는 일들이라고요. 그러나, 그 말도 안되는 일들을 하나님께서는 현실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역사하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일들을 기대해 보십시오. 여러분, 교회 다녀서 이모양 됐다고 원망하실래요, 교회 다녀서 이런 인생 살게 되었다고 감사하실래요. 내가 하나님 믿어서 이런 취급받는 인생 살게 되었다고 원망하시겠습니까, 내가 하나님 믿어서 나는 도저히 생각도 할 수 없는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고 감사하시겠습니까. 감사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들의 삶 속에 이미 말도 안되는 역사를 하나님께서 일으켜 오셨다고요. 얼마 안되는 여러분들의 인생이지만,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무수히 많은 기적과도 같은 일들을 일으키셨다는 거예요. 그것을 우연의 일치로 볼 것인가,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신 기적으로 볼 것인가는 여러분의 선택에 있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의 삶 가운데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은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믿으시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원합니다.
여러분들의 남은 삶 가운데서 부딪힐 수많은 현실과 수많은 상황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 믿음의 선택을 해보십시오. 현실을 바라보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두려움과 불안함 속에서 불평과 불만의 말들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보시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그 약속을 신뢰하며, 그동안 내 인생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기대함으로 감사의 말들로 나아가 보시라는 거예요. 그렇게 감사로 나아갈 때에, 여러분들의 문제는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게 하심 같이 여러분들의 문제 가운데에 차고 넘치는 축복의 일들로 채워나가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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