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ly One

말씀본문 : 출애굽기 32장 1-14절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말씀제목 : Only One
오늘 말씀 제목은 Only One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해석하면 '오직 하나', '단 하나' 라는 뜻이죠. '하나밖에 없다'라는 것은 굉장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가질 수 있고,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것은 그리 가치있게 여겨지지가 않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우리는 '한정판', '선착순' 이러한 말들에 좀 더 관심이 가고, 그것을 갖고자 하는 욕심이 있는 모습을 볼 때가 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팔찌를 하나 가지고 있는데요. 너무 귀하고 귀한 거라서 평소에는 차고 다니지도 않고 제 책상에 두고선 거의 관상용으로 모셔두고 있는 팔찌거든요. 바로 이것입니다. 저희 딸 아이가 여섯 살인가 일곱 살인가 그쯤이었던 것 같은데, 그 때 아빠 주겠다고 만들어 온 거거든요. 여러분들이 보실 때 이 팔찌가 얼마정도 할 것 같으신가요? 아마 문구천국 같은 곳에서 오천원에서 만원 정도 사이면 사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 팔찌를 살 사람도 없겠지만, 저는 이 팔찌를 제 아무리 많은 값을 준다고 해도 팔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너무 사랑하는 딸 아이가 저를 위해 만들어준 딸 아이의 손때가 묻어있는 단 하나의 팔찌이기 때문이죠. 누군가에겐 몇천원짜리 장난감 같은 팔찌이고, 얼마든지 똑같이 만들려면 만들 수 있는 모습과 모양이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가치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팔찌를 별로 가치없게 여기면 다른 사람도 이 팔찌를 별로 가치있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제가 이 팔찌를 별로 가치있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제가 이 팔찌를 정말 저에게 있어서 너무나 가치있는 물건으로 여기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지면 다른 사람들도 이 팔찌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거예요. 왜그렇겠습니까? 남들이 보더라도 제가 이 팔찌를 가치있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치라는 것은, 내가 그것에 얼마만큼의 가치를 부여하는 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라는 가치는 어떤 가치입니까?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의 전부인 존재가 되는 가치로 여기고 계신가요, 아니면 나의 여러 우선순위 중에 네번째, 혹은 열번째 정도에 위치해있는, 얼마든지 다른 것과 바꿀 수 있는 가치로 여기고 계신가요. 누가 보더라도, 여러분들이 믿는 그 하나님,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으로 여러분 인생에 최고의 가치로 여겨보세요.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느껴지고 보여지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들이 믿는 하나님을 여러분 앞에서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감히 그럴 수가 없는 거예요. 누가보더라도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둘도 없는 단 하나뿐인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이 보여지는 여러분들의 믿음의 삶이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막막한 현실을 앞에 두고 그 놀라운 기적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채 모세와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나눠봤습니다. 이미 나에게 일어난 말도 안되는 기적의 일들을 체험했으면서 당장의 내 눈 앞에 있는 현실을 바라보고 절망하는 그들의 모습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같지 않은가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는데요.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원망에도 불구하고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다 공급해 주시면서 이들을 계속 이끌어 가십니다. 만나를 내리시고,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시고, 메추라기를 보내셔서 고기를 먹게 해주신다는 거예요. 그러한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을 나누면서 말씀 제목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던 거죠. '원망할래, 감사할래?' 감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당장의 눈 앞에 벌어진 문제로 인해 원망할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이루어 나가실 하나님의 놀라운 일하심을 바라보며 감사함으로 믿음의 걸음을 나아가시기를 다시금 축복합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광야 길을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하나의 국가 공동체로 세워나가기 위한 작업을 하나 하나 이루어가고 계셨는데요. 여러분들도 아마 학교에서 사회나 이런 과목에서 배우셨을텐데, 국가의 3요소가 무엇이죠? 첫번째, 땅, 영토죠. 두번째는, 국민들이 있어야 하고요. 세번째로 주권입니다. 법을 이야기하는 건데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단순한 가족단위의 공동체가 아닌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공동체로 발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다른 나라에서 다른 민족들의 노예로 살아가는 민족이 아니라, 자신들의 나라에서 자유민으로서 살아가게 되었다는 거죠. 그런데 이것은 단순하게 애굽에서 나왔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겁니다. 하나의 국가가 세워지려면 기본적으로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국가로서 필요한 요소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위해 가나안 땅을 예비해 놓으셨고, 이스라엘 민족들을 이스라엘 국가의 국민들로 삼으시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들의 나라에서 지켜야 할 행동규범, 법적인 내용들을 제정해 나가시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지키는 것들이 있죠. 복도에서 뛰면 안된다, 수업 시간에 떠들면 안된다, 친구들을 때리거나 괴롭히면 안된다 등등 어떤 공동체든 간에 그 공동체 안에서 지켜야 할 약속들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이스라엘 민족들이 이제는 애굽에서 나와서 자신들이 살아갈 나라에서 지켜야 할 행동과 여러가지 규칙들을 만드시기 위해 시내산으로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잠깐 밑에서 기다리고 있게 하신 거예요.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 밑에서 대기하고 있고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규칙, 행동규범에 대한 명령을 듣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너무 잘 알고 계신 십계명,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법으로 딱 정하신 내용들을 기록한 것이 바로 이 십계명이죠. 그 십계명 외에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에 대한 규칙을 다 만들어 주고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출애굽기 19장에서부터 31장까지를 보면 하나님께서 일일이 하나하나 그 내용들을 다 모세에게 명령하고 계시는 겁니다.
얼마나 내용이 많았겠습니까. 여러분들 중에 혹시 법대 준비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저는 이름만 들어도 벌써 머리가 아플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인데요. 법대, 법학과, 이름만 들어도 살벌하잖아요. 왜그렇습니까? 알아야 될 내용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우리 흔히 법대, 법학과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법전 막 이만한 거 엄청 두꺼운 책 들고 다닐 것만 같은 그런 이미지 상상되지 않으시냐고요. 마찬가지죠. 지금 하나님께서 아예 새로운 나라를 처음부터 세팅하고 계신 거니까, 얼마나 그 내용들이 많았겠습니까. 모세는 지금 시내산에서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그 법적인 내용들을 직접 듣고 제정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렸겠어요. 그렇게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열심히 법들을 배우고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래에서 어떻게 하고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모세가 오랫동안 보이질 않으니까 불안한 나머지 새로운 신을 만들어 달라는 겁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것까지 봤단 말예요.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봤습니다. 출애굽기 19장 16절에서 20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16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17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
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19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20 여호와께서 시내 산 곧 그 산 꼭대기에 강림하시고 모세를 그리로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시는데 그 모습이 어마어마하게 웅장하게 등장을 하시잖아요. 천둥 번개 치고 구름이 쫙 깔리고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나팔 소리 같은 소리가 나고, 그런 모습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봤단 말이죠. 그래서 너무 웅장하고 너무 거대하니까 사람들이 다 무서워서 벌벌 떨고 그런단 말예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무서워서 접근도 못하는 곳에 모세가 올라가는 겁니다. 자신들의 눈으로 다 직접 보고 알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들었던 자들이 오늘 본문에서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모세가 그렇게 시내산에 올라갔는데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내려오질 않고 있으니까 모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자신들을 이끌고 나온 지도자 모세가 오랜 기간동안 보이질 않으니까 자신들이 불안하지 않게 보이는 신을 만들어달라고 아론에게 구하고 있는 거예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도 안되는 요구에 아론이 어떻게 합니까? "무슨 소리냐! 하나님께서 우리 지도자 모세에게 우리를 위해 명하실 내용들이 있어서 그를 시내산으로 부르시고 얘기하는 중일텐데 그새를 못참고 무슨 새로운 신을 만들어달라는 말같지도 않은 소리들을 하고 있는거냐!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하시는 거 우리가 다 봤고 그 위로 모세가 올라가는 것도 우리가 다 보지 않았냐!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애굽에서부터 우리를 계속 인도하고 계셨는데 무슨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는 소릴 하고들 있는거냐! 되도 않는 소리 하지 말고 다들 돌아가서 잔말말고 기다리고들 있어라!" ..라고 했으면 참 좋았을텐데, 안타깝게도 아론이 하는 모습을 보겠습니다. 2절에서 4절까지 말씀입니다.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백성들 보고 금을 가져오라고 하더니 그 금들을 녹여서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송아지가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고 선포를 하는 거예요. 도대체 아론은 왜 이런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한 것이었겠습니까? 사람이 이렇게 연약하다는 거예요. 여러 사람들이 와서 나에게 어떤 요구를 하게 되면 그들에게 뭔가를 해줘야 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왜그렇겠습니까? 그 요구를 만족시켜주지 못하게 되면 내가 위험해지기 때문인 겁니다. 단순하게 한두 명이 와서 어떤 무리한 요구를 하면 그래도 그정도는 뭐 안된다고 거절하거나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원이 찾아와서 나한테 뭐 해달라고 요구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뭐라도 해야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겠냐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거잖아요.
지난주에 저희가 수련회에 대한 피드백을 하기 위해 QR코드를 찍고 설문조사를 했었잖아요? 거기에 써진 내용들을 공유 받았는데, 참 여러가지 많은 내용들이 있더라고요. 대부분 좋았다는 내용이 많았고, 등받이가 없어서 허리가 아팠다, 쉬는시간이 너무 적었다, 일정이 너무 빡빡했다 거의 이런 내용들에 대한 피드백들이 좀 있었는데, 그중에 두 명이 이런 아쉬웠다는 피드백이 있는 거예요. '둘째 날 기도회 때 찬양이랑 기도랑 왔다갔다 해서 집중이 안됐다. 둘째 날 기도회 빼고 다 좋았다' 그 내용을 보는데 아 진짜, 좀 여러가지 많은 생각이 드는 거죠. 저에게 있어서는 거의 뭐 '악플 읽기' 뭐 이런 느낌이었는데..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셋째날 나에게 예수님이란 발표할 때 광명의 어떤 고3 학생이 나와서 첫째날까지 예수님이 잘 안믿어지고 의심되고 그랬는데 기도회 때 찬양듣는데 눈물이 나면서 믿어졌다고, 그러면서 이제 나에게 예수님이란 내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하는 유일한 분 이라고 고백했던 그 고백이 저에게는 '아, 주님께서 누군가에게는 그 때 부른 찬양을 통해 예수님을 체험하게 하셨구나' 하는 굉장히 큰 위안과 은혜로 생각을 하고는 있습니다만, 또 그와는 아예 다른 반대의견을 보니까 맘이 좋지 않더라고요.
그러니까 겨우 이 두 명의 의견만 봐도 막 맘이 흔들리고 다음부터는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하게 되고 그러는데, 생각해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대표급 되는 사람들이 막 아론한테 찾아와서는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막 따지면서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내라고 하니까 아론도 그 상황이 많이 당황스럽고 걱정스러웠을 것 같긴 한 거죠. 요즘 같으면야 모세한테 전화를 하든 카톡을 보내든 해서 어떻게 하면 될지 뭐 물어보고 답변 받아서 그대로 하기라도 할텐데, 이 당시에는 그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연락을 할 수도 없고, 찾아갈 수도 없고 하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나름대로의 머리를 쓴 거죠. 어떻게 보면 애굽에서 노예 생활 하면서 했던 일이 이 일들을 해왔던 거잖아요. 우리 보통 이집트 하면 떠오르는 것들 뭐가 있습니까? 피라미드, 파라오, 스핑크스 이런 것들 떠오르잖아요. 신전을 짓고, 신을 만들고 하는 것이 그들이 하던 일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이들에게 있어서는 여호와라는 낯선 신보다는 그들의 생활권에 녹아있던 어떤 보여지는 신의 모습이 그들에게 익숙한, 더 믿을만한 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모습을 보입니까? 6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이렇게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게 우리를 인도할 신이다"라고 말했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거부하거나 낯설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서 제사를 드리고 먹고 마시며 뛰놀았다는 거예요.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기뻐했다는 거예요. 금송아지를 보면서 자신들을 인도할 신이 만들어졌다고 이런 말도 안되는 일들을 벌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이런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의 반응을 보겠습니다. 7절입니다.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모습을 보시고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부패하였도다" 이 부분을 다른 성경 버젼으로 보면 '타락했다', '손상됐다', '부정하다'라는 표현들로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할 수 있는 겁니다. 자신들이 노예에서 해방되고 싶어서 자신들의 능력으로 해방된 것이 아니란 말예요. 자신들이 광야로 오고 싶어서 그 광야로 온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길로 나아간 길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자신들의 능력이 아닌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데 자신들을 인도해 내주었던 존재가 보이질 않으니 불안함이 커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 아니겠냐는 겁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면서도 하나님의 도움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다른 '능력'에 기대고 있지는 않냐는 거예요.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고, 그럼에도 안 될 것 같으면 결국 다른 무언가를 찾으려 하지 않냐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연약함이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금송아지는 무엇이겠습니까? 좋은 대학교, 좋은 직장이 여러분들의 금송아지는 아니신가요?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좋은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좋은 성적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예배 한번쯤 빠지는 거,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직장 상사에게 잘보이기 위해,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들 한번쯤 하는 거, 금송아지 아니냐고요.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말씀과 다른 삶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는 거, 그게 바로 금송아지 아니냐는 겁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행동을 보면 뭐 그렇게 나쁜짓 한 거 같아 보이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금송아지 만들어놓고 뭐라고 합니까? 4절과 5절 말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애굽에서 너희를 인도해 낸 너희의 신이라고 하면서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라고까지 합니다. 금송아지 만들어서 다른 이름 붙이지도 않았어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그대로 갖다 붙이는 겁니다. 그리고 뭐합니까? 6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번제를 드리고,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이거 다 하나님께 하는 거잖아요. 하나님께 하는 것 그대로를 똑같이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행위에 하나님의 평가는 뭐였다고요? "부패하였도다" 부패했다는 겁니다. 썩었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겁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애인이 있습니다. 내 여자친구가, 내 남자친구가 잠시 출장을 갔어요. 잠시 가족들과 어디 여행을 갔어요. 잠시 몇일동안 어디 갔다와야 할 곳이 있어서 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내가 돌아오는 기간을 이 남자친구가, 여자친구가 기다리질 못하고 다른 남자를, 다른 여자를 만난 거죠. 그러면서 나한테 이러는 겁니다. "아니, 나는 너가 연락도 안되고 그러니까 혼자 있기 외롭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너랑 비슷한 사람 만나서 잠깐 논 것 뿐이야. 그런데 나는 그 사람 만나면서 너 생각했어. 너랑 같이 가던 음식점 갔고, 너랑 같이 가던 카페 갔고, 너랑 같이 즐기던 데이트 그대로 했어. 뭐 새로운 거 한 거 아니야." 여러분들의 애인이 이렇게 나에게 얘기한다면, 여러분은 '아 그랬구나, 얘는 바람 핀게 아니고 내 생각하면서 나랑 논다고 생각하고 계속 내 생각을 했던 거구나' 이러고 받아들이시겠어요? 바로 헤어지지 않겠습니까? 더 소름인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한테 얘기하셨단 말예요. 출애굽기 20장 22절에서 2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
23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이미, 이미 경고하시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어쩜 이렇게 대놓고 하지 말라고 한 짓을 그대로 합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도 이제 너무 화가 나시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다 진멸하고, 아예 모세를 통해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이 너무하신 겁니까? 그거 겨우 금송아지 하나 만들었다고 다 없애고 아예 모세를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시겠다는 것이 너무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잖아요. 너무한 건 이스라엘 백성들이지 않습니까. 해도해도 너무한 건 이스라엘 백성들이라고요. 400년 동안을 노예로 살고 있던 인간들 꺼내서 자유민으로 만들어 주고, 자신들을 치려는 애굽 군대로부터 보호하시고 그들이 더이상 쫓아오지 못하게 다 무찔러 주시고, 그 광야에서 시원하게 따뜻하게 온도조절 다 해주시고, 일하지 않아도 수고하지 않아도 먹을 것이 끊이지 않게 하시고, 계속해서 모든 것들을 다 해주시는데 그래도 여전히 믿지 못하고 계속해서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고 있는 이 이스라엘 민족들 다 없애버리고 싶지 않으시겠어요? 도대체 언제까지, 얼마나 더 이들에게 배신당하고 상처받고 속이 썩어나야겠냐고요.
그런데요 여러분, 이 모습이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내 삶 속에서는 하나님보다 더 믿는 것들이 있지 않냐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싫어하는 행동을 여전히 계속해서 하고 있다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보다 더 우선시 여기는 것들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보다 더 믿는 세상의 것들이 여전히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그 모습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나타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지 않냐는 거예요. 그러한 부패하고 썩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조리 진멸하시고자 하실 때 모세는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위해서 그들을 용서하고 마음을 돌이켜 달라고 그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구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중보로 그들을 용서하시고 그 뜻을 돌이키시는 것입니다.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모세의 이러한 중보와 같이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으로 안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을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하나님과 죄인 된 저와 여러분들을 화해시키는 유일한 중보자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고 있다는 거예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나아갔듯이,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시는 영원한 중보자가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나아간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삶을 이끌어 가시고 세워가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 이심을 믿어보세요. 금송아지 만들지 마시라는 겁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세상에서 보여지는, 세상에서 가득한 인간이 만든 신을 따르려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하러 나온다고 나오지만, 그 마음 가운데 어떠한 하나님이 있냐는 것입니다. 내 소원을 들어주기 위한 존재, 내가 더 잘되게 해주는 존재로 믿고 내가 예배드리니까, 내가 헌금하니까 내 인생 더 잘되게 해달라고 빌고 있는 기브앤테이크의 존재로 교회를 나오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인격적인 만남을 원하신다는 거예요.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앞길을 알게 해주는 존재, 내가 잘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존재, 내가 남들보다 좀 더 나은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해주는 존재로서 기브앤테이크 하는 관계를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거예요. 세상이 말하는 종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기브앤테이크의 관계입니다. 점 보러 가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얼마를 주면, 내가 잘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세상의 종교 아닙니까? 내가 신상 앞에서 백팔번 절을 하면 나의 수고와 노력을 통해 내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세상이 만들어 낸 종교 아니냐고요. 그러한 종교들 중의 하나로 기독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헌금 만원 더 하고, 여러분들이 예배 한 번 더 나오면 여러분들 시험 문제 하나라도 더 맞게 해주시고, 여러분들 좋은 대학교 가게 해주시고, 여러분들은 좋은 직장 취업 시켜주시기 위해 교회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예배 한번 더 나오고 안나오고에 하나님이 절절 매달리시는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들의 사랑입니다. 여러분들과의 사랑의 관계를 원하시는 거예요. 하나님도 사랑하고 돈도 사랑하고 노는 것도 사랑하는 그런 사랑 말고, 진짜 사랑하는 관계,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관계, 다른 것 쳐다보지 않고, 바람피지 않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 사랑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것으로 채우는 사랑 말고, 나도 사랑하고 다른 사람도 사랑하는 그런 사랑 여러분들 원하시냐고요. 그게 제대로 된 사랑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겠냐는 겁니다. Only One, 오직 하나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고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지 않겠냐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 단 하나의 사랑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원하신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그렇게 사랑하셔서 자신의 아들 예수까지도 내어주셨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보다 주인으로 삼았던 것, 주님 앞에 내려놓으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나아가 보세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해보세요. 세상이 줄 수 없는 그 크고 놀라운 사랑으로 여러분들을 안으시고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실 줄로 믿습니다. 그 사랑으로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감사와 은혜가 넘치는 귀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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