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도사/설교기록

다시 받은 은혜 (출애굽기 34장 27-35절)

하엘파파 2025. 10. 1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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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받은 은혜

말씀본문 : 출애굽기 34장 27-35절

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하시니라
28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29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30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31 모세가 그들을 부르매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32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령하고
33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34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령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며
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말씀제목 : 다시 받은 은혜

 여러분들은 혹시 그런 상상을 해보신 적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저는 종종 '내가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쯤으로 되돌리는 것이 좋을까'라는 아주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곤 하거든요. 그러면서 혼자 막 생각해 보고 상상해 보곤 하는 거죠. 그럼 제가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몇 개의 구간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유치원 때인데, 그 땐 생일이 되면 반 친구들 중에 맘에 드는 아이한테 뽀뽀를 받을 수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때 좋아했던 아이가 있었는데 소심해가지고 그 아이의 이름을 말하질 못하고 제 앞에 애가 말했던 애를 말한 거예요. 그래서 별로 맘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던 애한테 뽀뽀를 받았던 그 아쉬웠던 기억이 좀 있어서 그때로 돌아가봐야 하나 싶기도 하고, 또 하나 생각 나는건 초등학생 때, 반에서 선생님이 자리 바꾸기를 하는데 쪽지에다가 자기가 앉고 싶은 친구의 이름을 써서 내라는 겁니다. 마치 사랑의 작대기 같은 거죠. 그래서 두 사람이 서로 일치가 되면 같이 앉게 되는 그런 걸 한건데, 이때도 제가 소심해가지고 제가 좋아하던 애한테 제 마음을 들킬까봐, 제가 좋아하던 친구의 이름을 쓰질 못하고 쌩뚱맞게 다른 친구의 이름을 써서 낸 거죠. 그 결과로, 누구와 앉았는지 기억도 못할 어떤 친구와 앉게 되었는데, 세월이 지나고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뭔가 제가 좋아했던 그 친구는 제 이름을 썼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딱 들더라고요. 아닐 수도 있지만 뭔가 시간이 지나고서야 보이고 느껴지는 그런 느낌적 느낌이 있잖아요.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퍼즐들이 좀 맞춰지는 그런 거 있단 말예요.

 그리고 제가 진짜 제 인생에서 아쉬운 것 중에 하나가 학창시절에 연애를 한번도 못해봤는데, 그게 한이 돼서 그런지 교복입고 데이트 하는 학생들 보면 참 부럽고 그렇거든요. 나중에 나이를 좀 먹고 나서 들어보니까 저를 좋아했던 친구들이 꽤 많았더라고요? 인기가 좀 있었나봐요. 그런데 제가 학창시절에는 지금과는 다르게 좀 소심하고 그랬어서 뭐 누군가를 좋아하고 고백하고 연애할 그럴 배짱이 아예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런 게 좀 아쉬움이 있어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꼭 학창시절로 돌아가서 그때 좋아했던 친구들과 좀 사귀어보고 싶은, 교복 입고 데이트를 해보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 거죠. 그러다가 '아 그럼 군대를 다시 또 가야되잖아' 이런 생각에 군대를 다시 갈 바에야 그냥 학창시절의 연애를 포기하고 군대 전역 이후로 다시 다른 시점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그러는 거예요. 기껏 시간을 돌리고 싶은 이유가 겨우 그런 거냐 하는 되게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들 저를 쳐다보고 있는데, 어차피 시간을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 그런 쓸데 없는 상상을 해본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누구에게나 '다시'라는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면 그 '다시'라는 기회를 통해 내가 이전에 실수했던, 그 아쉬웠던 행동을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다시'라는 것은 어쩌면 누구에게나 너무나 필요한, 너무나 큰 혜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을 보게 되면 무엇이 있습니까? '패자부활전'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그 패자부활전을 통해 다시 기회를 얻기 위해,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얼마나 간절하게 그것을 원하는지 우리는 간접적으로나마 패자부활전에 임하는 참가자들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법들을 받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불안했던 나머지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그것이 자신들을 이끌어준, 자신들을 이끌어 줄 신이라고 숭배했던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러한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려고 했으나, 모세의 중보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거두시고 그 화를 내리지 않으셨던 모습을 말씀을 통해 나눠봤는데요. 이후에 모세는 시내산에서 내려가게 됩니다. 그렇게 내려가다 보니까 사람들의 소리가 막 들려오는 거죠. 사람들이 있는 곳 가까이에 갈 수록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니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즐거워하는 소리인 거예요. 그리고 드디어 그 소리가 들린 곳에 가까이 와서 봤더니 금송아지가 놓여져 있고, 사람들이 그 앞에서 찬양하면서 춤추면서 경배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그 모습을 보고선 너무 화가 치밀어 올라서 어떻게 합니까? 손에 들고 있던 돌판을 던져서 깨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돌판이 어떤 돌판이었어요? 출애굽기 31장 18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8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주신, 하나님께서 직접 써서 주신 돌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냥 평범한 돌판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이 돌판에 새겨진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언약, 약속의 말씀들이 있는 겁니다. 약속의 징표였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돌판이 지금 어떻게 된 거예요? 깨져버린 겁니다.

 우리 보통 연인들끼리 어느정도 기간이 되면 뭘 맞추죠? 우리 교회 아이들은 다들 너무 순수하고 공부만 해서 그런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커플링이라는 것을 합니다. 또, 결혼을 하게 되면 뭘 해요? 결혼 반지를 한단 말예요. 그래서 누군가를 봤을 때 뭔가 좀 맘에 들고 연락처도 물어보고 싶고 그러다가 왼쪽 네번째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 있으면 보통은 그냥 포기하잖아요. 물론 그 와중에 '골키퍼 있다고 골 안들어가냐' 이러면서 덤벼드는 사람도 간혹 있기야 있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 네번째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 있는 걸 보면 맘을 접는단 말입니다. 왜그러겠어요?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가 있거나, 결혼을 했거나 이렇게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결혼반지는 그것이 주는 의미가 크게 있는 거죠. 두 사람 간의 사랑의 언약이 담겨있는 징표같은 물건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연인이, 내 애인이, 내 배우자가 화가 나가지고 갑자기 반지를 빼가지고 그냥 확 던져 버렸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건 이별사유인 거죠. 이건 뭐 그냥 헤어지자는 거 아닙니까? 지금 모세가 너무 열받은 나머지 하나님께서 손수 친히 만들어주신 그 돌판을 냅다 던져버린 거예요. 심지어 깨졌습니다. 하나님 마음이 어떠셨을 것 같으세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이라면 그 순간에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이거 완전 이별통보감이잖아요.

 물론 모세는 거룩한 분노를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앞에서 경배하는 행위를 보고선 하나님의 마음을 느낀 것이죠. 지난 시간에 말씀을 나누면서 제가 했던 표현이 있었는데요. 바람 피운 거라고요. 바람 피우고 있는 현장의 모습을 눈 앞에서 본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그 마음을 느끼고 그대로 표현한 거예요. 단순하게 모세가 혈기가 너무 왕성한 나머지, 너무 화가 나서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아무거나 집어 던져버려서 돌판을 깨뜨린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 그대로를 표현 했다는 거죠. 다시 말해서,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커플링을 집어 던진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커플링을 던져 버리신 거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별통보를 하셨다는 겁니다.  출애굽기 33장 2-3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2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3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그의 사자는 보내시겠지만 하나님은 같이 가시지 않겠다는 겁니다. 지난 시간에도 나눴습니다만,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럴만 하시다는 거예요. 그렇게 모든 걸 다해서 사랑으로 이끄시고 보호하시고 함께하셨는데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하고 불평하고 배신하고 바람 피우고 그러고 있으니 하나님도 질릴 대로 질려버리신 거 아니겠냐는 겁니다. 하나님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꼴을 당하면서까지 이 답도 안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계속 사랑하셔야겠냐고요. 그런데, 이 모습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이진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랑해주시고, 이렇게 베풀어 주시고, 이렇게 도와주셨는데, 그 은혜를 경험할 때는 감사해서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고 다짐했다가도 또 다른 어려운 현실들을 마주할 때면 원망도 하고 불평도 했다가, 해결되면 감사했다가도, 또 다른 어떤 일들 속에서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들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며 그것이 전부인냥 살아가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행동이 뭔지 뻔히 알면서 또 어쩔 수 없다면서 그 행동을 반복하고 그렇게 또 무너지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는, 그런 모습이 출애굽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다를 게 뭐가 있냐는 거예요.

 제가 가끔 가족들과 외식을 하거나 어디를 갈 때면 하엘이를 보면서 집사람한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얘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쟤는 데려가지 말자" 이상하게 꼭 어디 놀러가거나 외식하러 외출을 하게 되면 이 딸래미가 저의 심기를 건드리는 행동들을 할 때가 있단 말예요. 아직 어린애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고 그럴 나이라고 이성적으로, 머리로는 알고 있기는 한데, 막상 현장에서 애가 막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리고 떼를 쓰고 그러면 아 이게 이해가 되는게 아니라 저도 막 화가 올라오는 겁니다. 진짜 아예 모르는 애기면 또 모르겠는데, 이제 4학년 정도면 알만큼 알고 행동할 나이라고 생각이 드니까 아빠 입장에서 맘에 안드는 행동이 나올 때면 이게 막 화가 올라오는 거예요. 가족들끼리 간만에 기분 좋게 외출을 했으면 좀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 왔으면 좋겠는데, 이 딸래미가 툴툴 거리고 심술 부리고 고집 부리고 그러고 있으면 그날은 그냥 뭐 가족 전체가 기분이 완전히 망가져 버리는 거니까 그거에 또 더 화가 나고 그러는 거죠.

 제가 또 보기와는 다르게 굉장히 단호한 모습이 있거든요. 어느정도 달래주다가 더이상 안되겠다 싶으면 그 땐 그냥 짤없이 잘라버리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겉으로 전혀 내색하지 않아서 전혀 몰랐는데 어느날 갑자기 그냥 연락 안되고 손절해버리는 그런 사람들, 그게 저거든요. 음식점 같은데 가서 뭔가 좀 서비스가 안좋거나 그래도 앞에서는 그냥 웃으면서 "괜찮아요" 이래놓고선 뒤에서 별점 0점 주고, 리뷰에 안좋았던 거 다 쓰고, 다시는 거기 절대 안가는 그런 무서운 사람들, 그게 저예요.  아무튼 딸래미가 그렇게 막 고집 부리고 툴툴 거리고 그러면 저도 이제 짜증이 나니까 말하는 겁니다. "너 다음부터 절대 따라오지마. 집에 있어. 그따위로 행동할 거면 너 혼자 살아 그냥" 뭐 이러면서 분위기 다 망가지는 거죠. 그럴 때면 이제 누가 나서겠습니까? 엄마가 나서는 겁니다. 엄마는 아이를 달래주고, 남편한테는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아빠와 딸 사이를 중재하는 거예요. 아이의 마음을 대신해서 아빠한테 전해주고, 아이한테는 아빠의 마음을 전해주고, 그러면서 다시 화목을 이루도록 엄마가 중간에서 그렇게 중재를 하는 겁니다.

 그런 것처럼, 모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막 중재를 하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화가 나셨으니 너희들 하나님 더이상 화나시지 않도록 장신구 다 떼어버리고 반성하는 모습 보이라고 하고, 하나님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했다고, 그래도 하나님의 약속한 백성들이지 않냐고 하면서 하나님 같이 안계시면 우리 아무리 좋은 땅 가봐야 의미 없다고, 용서해 달라고, 제발 같이 가주시라고 그렇게 막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시 그 언약을 세우시기 위해 새로운 돌판을 준비하게 하시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34장 1절 말씀입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다듬어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 이스라엘 백성과 맺었던 그 언약의 돌판이 깨졌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서 해야 할,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 규범들을 쭈욱 말씀하시고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언약을 세우시는 거예요. 27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2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웠음이니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주어졌음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게 모세는 다시 하나님의 언약을 세우며 돌판에 새기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어떻게 그 일들을 했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28절의 말씀입니다.

28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모세는 사십 일 동안을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했다는 거예요. 우리 보통 그런 말들 많이 하지 않습니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것들이란 말예요. 무슨 일을 하더라도 굶으면서 일을 하면 그건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왜요? 결국 그 일들을 하는 이유가 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들이라는 거죠. 생각해보세요.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하고 잘해도 결국 먹지를 못하고 일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는 겁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일을 잘해도 먹지 못해서 병나고 그러면 무슨 소용이냐고요. 그러니까 누가 밥도 안먹고 일하고 있으면 주변에 이런 말들을 한다고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먹고 하세요' 그만큼 우리의 삶 가운데 먹고 마시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모세를 보세요. 사십 일 동안을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과 함께 있는데 하나님도 너무 하시지, 떡도 안주시고 물도 안주셨는지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 돌판에 십계명을 기록하는 일들에 매진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사십 일 동안 사람이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면 그 모습이 어떨 것 같습니까? 완전 초췌해지지 않겠어요? 헬쓱해지고 무슨 병든 사람 같은 그런 모습을 하지 않겠냐고요. 요즘 같으면 노동법에 어긋나는, 고용노동부 이런 데다가 신고 할만한 사유가 되지 않겠습니까? 밥도 안주고 일시킨다고 말예요. 그런데 모세의 모습이 어땠는지 29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29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얼굴 피부가 헬쓱해졌더라', '얼굴 피부가 녹초가 됐더라'가 아닙니다.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났다는 겁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피부 때문에 고민 중인 분들 계시다면 화장품 뭐로 바꿔야 할지 고민하지 마시고 돌판 두개 준비하셔서 거기에 십계명 기록해보세요. 피부에 광채가.. 사랑하는 여러분, 죄송하지만 이 말씀은 단순하게 피부가 좋아지기 위한 방법을 기록하기 위해 쓰여진 말씀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난 이유가 무엇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났다는 것입니다. 이 광채가 왜 나는 것입니까? 이것은 모세가 어떤 능력자라서, 그의 능력이 대단해서 광채가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그의 얼굴에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빛을 나타내는 모습이라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과 같이 잘먹고 잘마시고 잘살아서 빛이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거할 때에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이 빛나게 하기 위해 세상의 방법을 사용해서 돈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잘 살려고 하지 마시라는 거예요. 그것들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유명한 말씀이죠. 마태복음 4장 4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물질, 세상의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에 그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광채가 난다는 거예요. 저는 이 자리에서 표현이 조금 안맞을 수도 있겠지만,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말을 어느정도 이해를 합니다. 관상을 믿는다는 게 아니라,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어느정도 유추해 볼 수가 있다는 거죠. 평소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매사에 밝게 웃는 사람들을 보면 얼굴에서부터 벌써 나타난단 말예요. 같이 있으면 에너지가 느껴지고 같이 즐거워지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을 보면 벌써 얼굴에서부터 어두침침하고 칙칙하고 같이 있기가 꺼려지는 사람들도 있는 거예요. 그래도 좀 가까워져 보려고 말을 걸거나 하면 그 말투에서 벌써 생긴대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정적이고 투덜 거리고 불평만 늘어놓고 그런 사람들 보면 벌써 얼굴에서부터 그 아우라가 느껴진다고요.

​ 제가 예전에 CS강사할 때 이런 강의를 자주 했었는데, 그게 어쩔 수가 없는 겁니다. 여러분, 웃으면서 불친절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으세요? 안됩니다. 반대로, 무표정이나 화난 표정으로 친절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안된다니까요. 그래서 얼굴을 보면 이 사람이 평소에 어떤 생각과 어떤 말투, 어떤 표정을 많이 했는지를 어느정도는 유추해볼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보면, 대체적으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보다 얼굴이 더 밝습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술, 담배 뭐 이런 걸 하지 않고 그렇다 보니 얼굴이 확실히 달라요. 이게 젊었을 때는 별로 모를 수 있는데, 나이가 좀 어느정도 들고 나면 교회를 다니면서 믿음 생활 하는 사람과, 교회를 다니지 않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 모습이 확연하게 나타난다니까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 30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30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 그 얼굴에서 광채가 남을 보고 두려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걱정하면서, 더 좋은 것을 먹고, 더 좋은 것을 마시고, 더 좋은 것을 입어서 빛이 나고자 하는 그런 세상에 끌려 다니는 인생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함으로 인해 그 말씀으로 빛이 나는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에 다른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들을 보고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세상이 두려워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다시 은혜를 주셨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도 너무나 부족하고, 너무나 연약한 인간이라서 또다시 무너지고, 또다시 쓰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무너진 상태로, 그렇게 쓰러진 상태로 있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시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보시라는 거예요. 다시금 하나님께 간구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수련회 때 받은 은혜, 그 은혜에 감격해서 이제 바뀐 삶을 살아가보고자 결단했다가도,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와서 여전한 나의 행동 패턴과, 습관되어진 죄악된 모습들로 인해 다시 무너졌다 하더라도, 그러한 모습들로 인해 '아 나는 어쩔 수 없구나', '아 인간은 원래 연약하니까 어쩔 수 없지' 라고 끝날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보시라는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다시'의 은혜를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해보게끔 해주신다는 거예요. '다시' 언약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사랑으로 안아주심을 믿어보세요. 그리고 그 말씀 안에 거해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 보려고 노력해보세요. 몸부림 쳐보자고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여러분들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모습을 나타낼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줄 믿습니다. 

​ 말씀을 준비하는 가운데 동기로부터 디엠을 받았는데요. 이 친구가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그래서 병원을 가봤더니 미주신경성실신이라고 진단을 받았다는 거예요. 다행히 어떤 질병이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쨌든 갑자기 기절하고 쓰러지는 그런 증상이 나타나니까 본인은 너무 불안하고 무서운 거죠. 길을 가거나 일상의 삶 속에서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게 되면 또 어떤 위험이 있을 수도 있고, 중요한 자리에서 갑자기 그래버리면 여러가지로 또 곤란한 상황들이 생길 수도 있고 하니 얼마나 두렵겠어요. 그래서 중보 기도를 요청을 하고자 디엠을 보낸 겁니다. 평소에 너무 밝고 씩씩해서 웬만하면 부탁같은 것도 잘 하지 않는 그런 친구가 그렇게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중보기도를 요청하는 것을 보니까 한편으론 고맙기도 하면서 얼마나 걱정스럽고 불안하고 두려웠으면 자신의 힘듬을 잘 내색하지도 않는 녀석이 이렇게 중보기도를 요청할 정도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또 아프더라고요. 그런데 마침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 중에 디엠을 받아서 말씀을 통해 위로의 말씀을 전해줬거든요.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사람의 어떤 위로의 말들보다 가장 좋은 것이 말씀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읽은 본문의 28절과 29절의 말씀을 주면서, 모세는 40일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얼굴에 광채가 났다는데,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니. 세상의 일들로는 우리의 모습이 걱정이 가득하고 두렵고 무서울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있으면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빛이 날 수 있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지 않겠냐고 얘기해 주면서, 힘들겠지만,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분명히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드러내실 거라고,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빛을 나타내실 거라고, 그러면서 기도하겠다고, 꼭 함께 기도하겠다고 그렇게 위로의 말을 전해줬거든요.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의 먹을 것, 마실 것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나타내실 줄로 믿습니다. 그 어떠한 어려운 상황과, 아픔의 일들 가운데 있을 때에도, 쓰러짐과 넘어짐의 일들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갈 때에, 그 말씀 안에 거할 때에 하나님께선 그 모든 일들 속에서 다시 은혜를 베푸실 것이고, 그 은혜로 우리의 삶을 밝게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거예요. 그 말씀을 붙잡고 신뢰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감사와 은혜가 넘치는 귀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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