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말씀본문 : 민수기 13장 25-33절
25 사십 일 동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말씀제목 :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요즘 시대를 보면 기술이 많이 발전이 돼서 참 편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요. 그 여러가지 편리한 기술들 중에서 알고리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알고리즘 덕분에 유튜브나 SNS에서 내가 관심 있어 하는 것들을 보다 쉽고 편리하게 접할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말도 있죠. 어떤 사람의 유튜브를 열었을 때 나오는 컨텐츠들을 보면 그 사람이 평소에 관심있어 하는 것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스타그램의 검색 탭을 들어갔을 때 나오는 사진들을 보면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떤 사진들을 보고, 어떤 영상들을 보는지를 어느정도 알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알고리즘이라는 녀석이 유저의 평소에 즐겨보는 컨텐츠들을 파악하고 그 유저가 좋아할만한 컨텐츠를 자동으로 띄워준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게임 영상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여러가지 게임 영상에 대한 컨텐츠들이, 평소에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음악 채널들의 음악 컨텐츠들이, 드라마나 영화에 대한 리뷰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여러 리뷰에 대한 컨텐츠들이 그 사람이 소비하는 플랫폼에서 계속 노출을 시켜준다는 거예요. 이 알고리즘에 의한 컨텐츠 노출의 장단점이 있는데, 장점으로는 내가 원하는 내용들을 쉽게 접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별로 원하지 않는 컨텐츠들이 불필요하게 나오지 않도록 걸러준다는 장점이 있는 거죠. 그렇다면 단점은 무엇이겠습니까? 시야가 좁아진다는 것입니다. 같은 주제에 대한 다른 내용들이 있음에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내가 평소에 즐기던 내용에만 그 생각과 시야가 갇히게 된다는 거죠.
저는 개인적으로 다수결의 원칙을 좋아하기는 합니다만, 다수결의 원칙이 무조건적으로 정답은 아닙니다. 다수가 그것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도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마태복음 7장 13절에서 14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무슨 말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라고 해서 그 길이 좋은 길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 문이 크고 길이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길로 들어가지만 그 길은 어떤 길이라는 겁니까? 멸망의 문으로 가는 길이라는 겁니다. 반대로, 문이 좁고 길이 협착하여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길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 길은 생명의 문으로 인도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많은 숫자가 정답이 아님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수가 맞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맞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소수라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틀린 것이 아닌 겁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학교의 반에서 나 혼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예수님이 가짜인 겁니까? 25명 중에 24명이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 하나님이 없는 거예요? 아닙니다. 진리는 숫자 게임이 아니에요. 항상 말씀드리지만, 자부심을 가지세요. 여러분들이 믿는 하나님, 여러분들의 그 믿음 생활, 결코 부끄럽거나 숨길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자랑스러워 하셔야죠. 명품이 왜 명품입니까? 왜 비싼 거예요? 진짜이기 때문에 명품인 겁니다. 진짜이기 때문에 비싼 거죠. 대한민국에서 3%의 명품으로 있는 여러분들인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 믿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세요. 하나님의 백성인 건데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숫자를 보지 마시고 진리를 볼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게 되고 오랜기간을 광야에서 생활 하다가 이제 드디어 약속의 땅의 앞에 오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설레고 얼마나 두근 거렸겠어요. 자신들의 땅도 없이, 집도 없이 그저 떠돌아 다니며 텐트에서 지내던 그 광야 생활을 청산하고 이제 드디어 자신들의 땅, 자신들의 터전, 집이 생기는 거잖습니까. 이제 진짜 자신들의 땅을 가지고 나라를 세우고 한 민족의 국가로서 자리를 잡게 되는 그 일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이들은 약속의 땅을 바로 앞에 두고서 그 땅이 어떠한 땅인지를 살펴보기 위해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게 되는 거예요. 이 정탐꾼들이 얼마 동안을 정탐 했습니까? 사십 일 동안을 정탐을 하고 온 것입니다. 한 달이 넘도록 그 지역을 두루 다니면서 살펴봤으니 얼마나 꼼꼼하게 봤겠어요. 그렇게 사십 일을 정탐하고 돌아온 이들이 그 땅이 어떤 땅인지를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는 거예요. 브리핑 하는 거죠. 어떻게 브리핑 하는지 26절과 27절을 보겠습니다
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회중 앞에 나와서 자신들이 정탐하면서 봤던 과일을 보여주는 겁니다. 과일이 엄청 싱싱하고 크고 먹음직스럽게 생긴 거죠. 그러면서 뭐라고 합니까? 그 땅에 가보니까 젖과 꿀이 흐른다는 거예요. 땅이 기름지고 비옥하다는 겁니다. 너무 좋은 땅이라는 거죠. 여기까진 참 좋았는데, 그 뒤가 참 안타까운 겁니다. 28절과 2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땅은 너무 좋고, 열매도 너무 잘 열리고, 너무 풍요로운 땅인데, 그 땅에는 아낙 자손이 있고, 아말렉인이 있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이 있고, 가나안인들이 있다는 거예요. 이게 왜 문제가 되냐, 우선 아낙 자손 같은 경우에 키가 매우 큰 민족이었습니다. 거인족이라고 불리우는 네피림의 후손이라고 했으니 키가 꽤 컸을 것이겠죠. 큰 키가 주는 위압감이 있는 겁니다. 그리고 아말렉인들이 나오게 되는데 이들은 에서의 손자의 후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 민족의 먼 친척 같은 존재들이겠지만 이스라엘 민족을 엄청 괴롭히는 종족이었어요.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에서 진을 치고 있을 때 이들을 공격했던 종족이 바로 아말렉이었습니다. 그것도 뒤처져 있는 약하고 지친 사람들을 공격한 거예요. 아주 치사하고 악질적인 민족인 겁니다. 이어서 보면 헷, 여부스, 아모리 족속들에 대한 언급도 있는데 이들은 모두 가나안 땅에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거주하고 있던 민족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 아모리인들은 고대 가나안 땅에 살았던 여러 부족들을 통칭하는 이름이었는데, 이들은 다 키가 크고 힘이 강력했다고 성경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민족들은 하나같이 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시같은 존재, 까다로운 존재들이었던 겁니다.
우리도 보면 뭔가 누군가랑 싸울 일이 생겼을 때, 물론 싸울 일이 없어야겠지만, 아무튼 싸울 일이 생겼을 때 그 상대를 딱 보면 '아 얘정도는 내가 이기겠다' 싶은 상대가 있고, '아 얘랑 싸우면 내가 무조건 손해본다' 싶은 상대가 있단 말예요. 뭔가 실제로 싸워보지는 않아도 그 상대방이 뿜어내는 아우라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 상대와 나의 전투력이 측정이 되는 겁니다. 속된 말로 만만해 보이는 애들이 있고, 피해야 될 것 같은 애들이 있다는 거죠.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민족들은 다 어떤 상대였던 거예요? 만만치 않은 상대들인 겁니다. 아 이건 쉽지 않아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얘기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막 수근 거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야 들었어? 아낙 자손? 걔들 거인들 아니야? 걔네하고 싸워야 된다고? 걔들하고 우리가 어떻게 싸워!", "뭐? 아말렉? 걔들 예전에 우리 르비딤에 있을 때 우리 공격했던 겁나 치사하고 악랄했던 애들 아니야?", "아모리 족속? 걔들 다 키 큰 애들 아니야? 걔네 힘 엄청 쎄다고 소문난 애들이잖아!" 막 이러면서 서로 수근 수근 거리고 막 여기 저기서 난리가 난 겁니다. 그 때, 정탐꾼 중에 한 명이었던 갈렙이라는 사람이 딱 나타납니다. 30절을 읽어볼게요.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막 눈동자가 흔들리고 수근 거리고 있는데 갈렙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는 거죠. "야야, 얘들아, 시끄럽고 조용히 해봐. 우리 이길 수 있어. 걔들 별거 아니야. 쫄지마! 걱정말고 당장 쳐들어 가자!"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저는 진짜 믿음의 사람들이 믿음으로 바로 서면 이런 멋있는 모습들이 나오는 거 같아요. 다윗 보세요. 골리앗의 모습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을 때 "뭐야 저 덩어리는?" 이러고 그냥 튀어나가서 싸우고, 또 다니엘 보십시오. 왕과 장관들이 다 하나되어서 기도하면 죽이겠다고 법으로 딱 선포했는데 그러든지 말든지 창문 활짝 열어놓고 대놓고 기도하고 있질 않나, 엘리야는 또 어땠습니까. 850명의 그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앞에 두고 맞대결을 펼치잖아요. 이렇게 믿음의 사람들은 좀 이런 멋있는 거룩한 패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이런 멋진 믿음의 모습이 나타나길 소망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합니까? 31절에서 33절을 보겠습니다.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아 웃기지 마. 우리가 어떻게 쟤들이랑 싸워. 쟤들은 우리보다 강해" 이러고선 싸우기도 전부터 벌써 포기하는 거죠. 게다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냥 포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그 땅에 대해서 악평까지 했다는 거예요. 뭐라고 악평을 했어요?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다" 아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자기들이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놓고선 바로 돌아서서 그 땅은 살고 있는 사람을 삼켜버리는 땅이라는 거예요. 이뿐만이 아니죠. 정점을 찍는 멘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 내가 나를 보더라도 내 모습이 메뚜기 같다는 거예요.
제가 회사 생활을 할 때 제일 싫어했던 사람이 해보기도 전부터 포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꼭 있는 거예요. 뭘 하자고 하면 해보지도 않고 '이거 안된다, 저거 안된다' 그러면서 막 불평불만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만 안하면 모르겠는데 주변 사람들을 다 동요하게 만드는 거예요.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그러면서 이 회사는 돈도 별로 안주면서 시키는 건 많다느니 어떻다느니, 지원도 안해주면서 뭐 어쩌구 저쩌구.. 아 진짜 이런 사람 있으면 너무 힘든 겁니다. 해보려고 하는 사람도 막 힘이 빠지게 한다고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사람하고는 잘 안붙어 있으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하고 대화를 하면 막 제 정신도 피폐해져 버려서 급피로가 몰려온단 말예요. 그런데 반대로 막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이건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팀장님 이건 제가 확인해 볼게요. 얘들아 우리 해보자" 이런 사람들하고 같이 있으면 시너지 효과가 나서 안될 것도 이런 사람들하고 같이 하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긍정의 힘이 막 솟아나는 겁니다. 저도 웬만하면 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사람인지라, 어떤 일에서든 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여기에 긍정의 에너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진짜 막 신이 난다고요.
그런데 이건 저만 그런게 아니라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주변에 부정적이고 불평불만만 말하는 사람들 하고 같이 있어 보세요. 그 말들이 내 인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반대로, 긍정적이고 감사의 말들만 말하는 사람들 하고 같이 있어 보세요. 나도 같이 힘이 난다니까요. "야 이거 너 못해. 이거 우리 못해." 이런 사람하고 "야 이거 너 완전 잘하겠다. 이거 우리 할만하겠는데" 이런 사람 중에 누구하고 같이 있고 싶겠냐는 겁니다.
사람이 이렇게 부정적인 시선을 갖게 되면 그 모든 것들이 다 부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리고 그 부정은 어디까지 이어집니까? 자기비하까지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열 명의 정탐꾼들 말하는 거 보세요. 한번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기 시작하니까 그 부정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내 모습에 대한 부정까지도 오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 모습이 메뚜기 같아 보여지는 거예요. 보잘 것 없어 보여지는 겁니다. 자신의 존재가 하찮게 느껴지는 거라고요. 물론, 이들이 본 모습이 잘못 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를 본 거예요. 실제로 그곳에는 크고 힘 센 민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본 거라고요. 그러나 이들이 간과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시선을 바라보지 못했다는 거예요. 자신들의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이 어떤 땅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었어요.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직접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셔서 데리고 온 땅이었다고요. 이스라엘 민족들이 자신들이 어떤 땅을 가질까 하면서 고른 땅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고르시고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한 땅이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부모님이 여러분을 데리고 어디 백화점이나 매장을 간 겁니다. 여러분들이 평소에 갖고 싶던 게 있는 거죠. 컴퓨터가 됐든, 스마트폰이 됐든, 옷이 됐든, 신발이 됐든 평소에 내가 갖고 싶은 게 있었단 말예요. 그런데 부모님이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사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매장에 가서 봤는데 컴퓨터가 막 300만원, 스마트폰 폴드7이 200만원 막 이러는 거죠. 그런데 내 수중에 갖고 있는 돈이라곤 기껏 용돈 모아서 모은 돈 50만원 정도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막 부모님한테 짜증을 내는 겁니다. 난 돈도 없는데 뭘 사라고 그러는 거냐면서 막 화를 내고, 불평하고 짜증을 내고, 나는 거지라고 막 신세 한탄 하고 있으면 부모님이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 어이가 없는 거죠. 언제 니 돈 주고 사라고 했냐고요. 엄마 아빠가 엄마 아빠 돈으로 사주려고 했으니까 골라보라고 한거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막 그렇게 화내고 짜증내는 모습 보면 그거 사주고 싶겠어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딱 그 모습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언제 니들 보고 니들이 알아서 하라고 했냐고요.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데리고 온 거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자신들의 모습만을 보면서, 자신들이 봐왔던, 자신들이 경험해왔던 그 생각과 시선을 가지고 있던 자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봐왔던 이들, 즉 갈렙과 여호수아에게는 이 땅 또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주실 것이라는 그 믿음과 시선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올라가서 빨리 차지하자"라는 담대한 희망의 선포가 나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 명이 말하는 것에, 그 숫자에 눈이 멀어서 불평과 불만을 하게 됨으로 결국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광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거예요.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서두에 알고리즘을 말씀 드렸는데요. 여러분들은 어떤 알고리즘에 노출되어 있습니까? 세상이 말하는 가치관, 세상이 말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세상이 보여주는 세상에서 잘사는 모습에 노출되어 있지는 않으신가요? 여러분, 그 알고리즘에서 벗어나셔야 한다는 겁니다. 계속해서 세상이 보여주는 것들에 노출되어서 그것들을 보고 듣고 있으면 여러분들의 인생이 세상이 말하는 가치관에 갇히게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에 노출되어 보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는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 눈과 귀를 열어 보세요. 세상이 말하는 행복, 세상이 말하는 가치관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훨씬 더 가치 있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의 가치관을 세상의 가치관보다 높게 여기고, 성경이 말하는 가치관대로 살아가 보려고 해보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놀라운 일들을 체험하게 되실 거라고요. 그렇게 했을 때, 그렇게 살아갈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왜 믿음의 체험을 못하는지 아십니까? 믿음의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생활을 해야 믿음의 체험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요. 콩을 심어야 콩이 나고, 팥을 심어야 팥이 날 거 아닙니까. 심지를 않는데 어떻게 그 열매를 얻을 수가 있겠냐는 거예요. 여러분들 인생의 알고리즘에 말씀과 은혜로 채워보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에 믿음의 씨앗을 심어보세요.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은혜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맺게 하시는 열매를 볼 수가 있다는 거예요.
많은 세상의 사람들이 이렇게 해야 잘 산다고 말하고, 이렇게 사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아니에요 여러분. 제발 속지 마십시오. 그 말들에 불안해 하지 마시라고요. 그래도 교회보다 학원 가는 게 중요하다고요? 그래도 말씀보다 문제집 푸는 게 중요하다고요? 그래도 신앙보단 당장의 현실이 중요하다고요? 아니요 여러분 아니라니까요. 열 명이 그렇게 얘기해도 여러분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아니야, 그래도 교회가 중요해!", "아니야, 그래도 하나님이 더 중요해!", "그래, 그래도 믿음으로 살아봐야지!", "하나님, 세상은 이게 맞다고 하는데, 저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겠습니다!", "하나님, 세상은 이쪽으로 가야된다고 하는데, 저는 하나님이 가라는 대로 가겠습니다!" 라고 믿음의 선포를 할 수 있는,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항상 말씀 드리는데, 하나님 앞에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 하나님이 절대 가만히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끝까지 책임지신다고요. 나중에 말씀을 또 나누게 되겠지만, 실제로 저 열 명의 정탐꾼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그 땅을 밟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믿음의 선포를 했던 두 명의 정탐꾼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약속의 땅을 얻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사람의 눈과 시선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능히 해낼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 그렇게 믿음의 시선으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선 그 믿음의 선포를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준비해두고 예비해두신 크고 놀라운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 그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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