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도사/설교기록

'이정도면'의 함정 (민수기 20장 1-13절)

하엘파파 2025. 10. 2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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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면'의 함정

 

말씀본문 : 민수기 20장 1-13절

1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이르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
2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
3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6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9 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말씀제목 :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나, 설교를 하고난 뒤에 모니터링을 하면서 보면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잠시만요. 중요한 전화가 와서.. 죄송합니다. 어떤 말까지 했었죠? 네, 설교를 준비하면서나 설교를 하고난 뒤에 모니터링을 하면서 보면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아 사실 제가 어제 넷플릭스에서 재밌는 드라마가 있어가지고 그걸 보기 시작했더니 너무 재밌어서 밤새 보느라고 설교 준비를 제대로 못했거든요. 잠도 제대로 못자고 그래서 오늘은 그냥 간단하게 나눔 정도로 하고 조금 일찍 끝내려고 하는데 괜찮으시죠? 당황스러워 하시는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하면 어쩌나 싶었거든요. 여러분 어떠셨나요? 설교자가 앞에 나와서 설교하다 말고 갑자기 전화를 받으러 나가고, 설교 준비를 제대로 못했다고 하면서 대충 설교하고 끝내려 하는 모습을 보실 때 여러분 어떤 마음이 드셨냐는 거예요. '왜저러나' 정도로 생각했으면 그냥 보통이고, '저 전도사님이 미쳤나, 저게 뭐하는 짓이야' 라고 생각하신 분은 예배를 정말 사랑하고 사모하는 분일 것이고, '오예 개이득'이라고 생각하신 분이 혹시 계셨다면 그건 좀 심각한 거니까 회개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질문해 보겠습니다. 이 예배 시간에 여러분들은 예배자들입니까, 아니면 예배 관람자들입니까. 여러분들은 예배자들입니까, 예배 참석자들입니까. 여러분들은 예배를 드리러 오셨습니까, 예배를 보러 오셨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자들로 예배의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이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들이 예배자들이라는 거예요. 아니, 이곳에 있는 모두가 다 예배자들로 계신 겁니다. 예배의 여러 순서들 중에서 맡은 것들이 있는 사람들만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모든 분들이 다 예배자로 있는 거라고요. 설교자로 서있는 제가 예배 중간에 전화 받으러 나가는 게 이상한 거면,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설교자로 서있는 제가 전날에 넷플릭스 드라마 보느라 늦게 자고 예배 시간에 피곤하게 있는 모습이 이상한 거라면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예배를 대충 준비하는 마음으로 나온 것이 이상한 거라면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로 이상한 거라는 겁니다. 왜요? 저나 여러분들이나 똑같은 예배자의 모습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시간의 예배를 위해서 얼마나 준비하셨습니까? 어떠한 마음으로, 어떤 마음가짐을 준비하고 이 자리에 나와 계시냐고요. 스스로를 돌아보자는 겁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나, 설교를 하고 난 뒤에 모니터링을 하면서 보면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는 거예요. '내가 너무 빡세게 말하는 걸까?', '나오는 것만도 기특한데 좋은 말들만 해주는게 나은 걸까?' 이런 생각이 들곤 하는 겁니다. 나름대로 최대한 부드럽게, 유하게 한다고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가끔은 너무 빡빡하게 얘기했나 싶을 때가 있기도 한 거죠. 저번주였나, 오세만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저는 전도사님이 혼내시는 설교가 너무 은혜가 돼요.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아요." 제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전 혼낸 적이 없는데.. 물론, 말씀 안에서 강하게 얘기 한 것들을 가지고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라고 생각을 하긴 하는데. 아무튼 그 말을 듣고서도, 너무 다행히 세만쌤은 그렇게 은혜롭게 들어주셔서 감사한 것이지만, 다른 분들은 또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거니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는 거죠. 그러다가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보는데 '아, 아니구나. 마냥 좋은 말만 해주는게 다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제가 어떤 동영상을 봤는데, 체대입시학원이었나 그랬던 거 같아요. 취미로 운동을 하는 사람과 입시를 앞에 두고 있는 학생이 있는 거죠. 취미로 하는 사람한테는 다 잘했다고 해주는 거예요. 실수를 해도 괜찮다고, 다시 하면 된다고 웃으면서 너무 친절하게 좋은 말들로 다독이면서 가르쳐 주는 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 뒤에 입시를 앞에 둔 학생이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이 학생에게 똑같이 대할까요? 아닙니다. 웃지도 않고 정색하면서 혼내는 거죠. 그렇게 해서 어떻게 원하는 대학교에 들어가겠냐며 엄청 말그대로 빡세게 굴리는 겁니다.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이겠어요? 한 사람은 취미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여유있게 가르치는 것이지만, 다른 한 사람은 입시를 앞에 둔 학생이기 때문에, 그 학생의 인생의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에 좀 더 엄하게, 좀 더 강하게 코칭하고 훈련을 시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취미로 종교생활을 하길 바라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교회 다니면 그래도 좋은 말씀 듣고, 안다니는 사람들보단 조금 더 착하게 살아갈 수 있어서, 마음의 평안을 찾고, 스트레스 좀 풀고, 친구들도 좀 만나고, 교회에서 하는 여러 재밌는 프로그램 하면서 그냥 친교모임의 종교생활을 하길 원하지 않는다고요. 저는 여러분들이 진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과 맞서 싸우는 하나님의 군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점점 어두워져 가는 세상 속에서 밝은 빛을 비추며, 어둠을 이겨내고 몰아내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기를 원한다고요.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 참된 예배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마음 한편으로는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나온 것만도 기특해요. 진심입니다. 이 쉬기 좋고 잠자기 좋은 주일 아침에 그래도 예배 드린다고 그 졸린 눈을 비벼가며 이 자리에 나와있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니까요. 늦게라도 와서 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이 참 예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와서 한시간동안 고개 숙이고 졸고 있고 자고 있어도 크게 별말 하지 않는다고요. 그러면서도 또 다른 마음 한편으로는 저걸 저대로 냅둬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진짜 여러가지 마음이 드는 거예요. 그 왕 중의 왕이시고,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그래도 '예배'라는 자리에 나와있는 건데, 저 자세가 맞나. 하나님 앞에 예배한다는 자리에 나와서 저러고 있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겁니다. 안 나오는 것보단 분명히 나은 건데, 기왕에 나왔으면 은혜 받고 가는게 본인을 위해서도 나은 거 아니냐고요. 어찌저찌 나오긴 나왔는데, 나와서 한시간 그냥 앉아있다가 돌아가면 이건 뭐 쉰 것도 아니고, 은혜 받은 것도 아니고, 예배 드렸다고 하기도 뭐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은 점점 세속적 가치가 더해지고, 그 가치를 어떻게 해서든 주입시키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총동원해서 여러분을 현혹 시키고 매혹 시키고 잡아 먹으려고 덤비고 있는데, 교회는 나오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그냥 저냥 엉덩이 토닥여 준다? 저는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진짜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고, 믿음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그냥 잡아 먹히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시대 속에서 어떻게 토닥토닥만 해줄 수 있겠냐고요. 훈련 시키고, 단련 시켜서 말씀으로 보호하고,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지 않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볼 때 저도 여러분들을 생각하면 참 안타깝고 마음이 아픈 것이 사실이거든요. 담당 전도사로서 여러분들이 좀 더 믿음으로 바로 서고 말씀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할텐데, 제 스스로 볼 때 참 많이 부족함을 느끼는 겁니다. 그래서 더 기도하고 고민하고 준비하는데도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과 능력으로 여러분들을 붙잡으시고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믿음의 군사가 되어 세상과 맞서 싸우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출애굽 2세대들의 내용입니다. 본문 1절에 보면 미리암이 죽었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죠. 미리암은 모세의 누나였습니다. 그 말인즉 출애굽 1세대들이 이제 다들 죽게 되고 2세대로 세대교체가 되어지는 과정 가운데 있다는 거예요. 이제 곧 아론도 죽고 모세도 죽게 됩니다. 그러한 시대 속에서 이들이 물이 없으니까 모세와 아론에게 와서 자신들의 윗세대들이 보였던 모습을 나타내 보이고 있는 거예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3절에서 5절까지를 보겠습니다.  

3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 이 불만 가득한 말투, 너무 익숙하지 않아요? 그렇습니다. 자신들의 윗세대들이 했던, 자신들의 부모세대들이 했던 그 모습 그대로를 똑같이 나타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들이 중요한 겁니다. 부모님들이 어떤 모습을 나타내느냐에 따라 자녀들이 그 모습을 똑같이 나타낸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아직 부모님이 되려면 멀었지만, 언젠가 여러분들이 부모님들이 되었을 때 꼭 믿음의 모습을 자녀들에게 나타내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부모님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불평 불만을 말하고 원망하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는 그런 부모님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꼭 그런 부모님들이 되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자신들의 윗 세대들이 했던 그 모습을 어떻게 똑같이 또 하고 있냔 말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불만을 말하고 불평하고 원망해서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봐왔을텐데도 불구하고 그 다음세대들이 똑같은 모습을 또 나타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안타깝냐고요. 죽는게 나을 뻔 했다고 말하는 모습이 어쩜 이리 똑같습니까. 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했냐고 말하는 모습이 어쩜 이리 똑같냐고요. 이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에 있었단 말예요. 여전히 만나가 내리고 있었고 여전히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셨단 말이죠. 그런데 그 은혜가 당연해지니까 그것이 은혜로 여겨지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하게 되면 이렇게 불평과 불만과 원망의 소리가 나오게 된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누리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라는 거예요. 모든 것이 은혜인 겁니다. 그 은혜를 하나님이 거두시게 되면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겠냐고요. 당장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습니까. 휴전국가잖아요. 휴전이 무엇입니까? 전쟁을 쉬고 있다는 거예요.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할게 없는 나라라는 겁니다. 은혜라고요. 하나님께서 이 은혜를 거두시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불과 75년 전 이야기예요. 그리 오래 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어진 은혜의 시간, 은혜의 때에, 은혜로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만을 터트리며 물을 달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8절입니다.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반석에 명령하여 물을 내게 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짐승들이 마시게 하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이 명령을 들은 모세가 하는 행동을 보겠습니다. 11절입니다.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더니 물이 솟아 나와서 회중들과 짐승들이 물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이 나타나게 된 거죠. 그런데 이후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 좀 의아합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12절을 보겠습니다.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 하나님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화가 나셨어요. 12절의 말씀을 보면 두 가지 이유로 하나님께서 화가 나셨는데 첫 번째, "나를 믿지 아니하고" 그리고 두 번째,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는 나를 믿지 않았다, 그리고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혹시 하나님의 이 반응이 이해가 되시나요?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보는데 모르겠는 거예요. 모세와 아론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화를 내시는 건지 모르겠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입장이 되어보려고 상상을 깊게 해본 거죠. 먼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신 분명한 내용이 있었다는 거예요. 모세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모세는 어떻게 했습니까?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이 모습을 보시고 "너는 나를 믿지 않았다"라고 말씀 하셨다는 거예요. 조금 이해가 안되실텐데, 모세는 이전에도 반석에서 물을 나오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17장에 나오는 내용인데요, 그때는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이 나왔었거든요.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똑같은 원망을 그대로 또 하니까 모세가 어떻게 했습니까?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을 친 거예요. 하나님은 분명히 반석에게 명령해서 물을 내게끔 하라고 말씀 하셨는데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너는 나를 믿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들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하지 않고,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내 경험대로 그 일들을 해나갈 때에 하나님께선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너는 나를 믿지 않았다"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모습들이 얼마나 많냐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지식, 여러분들의 경험, 여러분들의 생각 의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어서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하는 것에는 10절에 나오는 모세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10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반석 앞으로 모았습니다. 여기까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잘했단 말예요. 그리고 그 뒤에 모세가 뭐라고 합니까?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라고 하는 겁니다. 이 부분을 현대인의 성경에선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이 반역자들이여, 우리가 당신들을 위해 이 바위에서 물을 내야 하겠소?" 무슨 말입니까? "야이 반역자들아, 우리가 니들 때문에 이 바위에서 물을 나오게 해야겠냐?!" 이러면서 반석을 지팡이로 두 번 때린 겁니다. 그러자 반석에서 물이 나온 거죠. 이렇게만 봤을 땐 모세와 아론이 별로 크게 뭘 잘못했는지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했다고 생각을 해보자고요. 모세가 회중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위해 저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라고 하고선, 반석을 향해서 지팡이로 딱 가르키면서 "여호와의 명령이다! 반석아, 너는 물을 내라!" 이렇게 하자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오는 것과, 회중을 향해서 "야이 반역자들아, 우리가 니들 때문에 이 바위에서 물을 나오게 해야겠냐?!" 하고선 반석을 지팡이로 두 번 내리쳤더니 물이 터져 나오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명령대로 했다면 회중들이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바라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한 행동으로 봤을 땐 회중들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기억하기보다 모세의 지팡이의 기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거예요.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한 것은 모세의 지팡이의 능력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인 거예요. 그런데 모세의 이러한 행동과 모습으로 인해 하나님께선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이와 비슷한 사건이 출애굽기 17장에서 나오는데요. 17장 4절을 보면 그때는 모세가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단 말예요. "하나님, 제가 이 백성들에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들이 저를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합니다. 도와주세요" 그렇게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부르짖었던 모세가,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에선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백성들에게 승질을 부리고 화를 내고 분노와 혈기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일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선 그 모습을 보시고 "너는 나를 믿지 않았다. 너는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라고 책망하시는 거예요.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이정도면'이라는 함정'이라고 정해봤는데요. 여러분, 여러분들이 모세라면 좀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이정도면 잘한거 아니냐고요. 하나님을 원망하는 백성들을 앞에두고 이정도면 잘한거 아닙니까? 반석을 두 번 쳐서 물이 나오게 했으면 이정도면 잘한 거 아니냐고요. 어쨌든 물을 나오게 했잖아요. 어쨌든 백성들은 물을 마셨잖아요. 이정도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낸 거 아니냐고요. 하나님께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의 경험과 능력으로 반석에서 물이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너의 분노와 혈기로 반석에서 물이 나온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명령으로 반석에서 물이 나온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생활의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우리에게도 모세와 같은 모습이 있지 않냐는 거죠. "하나님, 제가 이정도면 그래도 잘한거 아니에요?", "하나님, 그래도 이정도면 안믿는 사람들보단 나은 거 아니에요?", "하나님, 이정도면 열심히 한 거 아니에요?", "이정도면"이라는 나의 생각과 나의 판단으로 하나님 앞에 타협하려는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아니요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령하신 대로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하기를 원하신다는 거예요. '그정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안일한 태도에 하나님의 거룩함이 나타나지 못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신다는 거예요.

​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선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완전한 믿음을 요구하시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취미로, 여러분들이 사교모임으로, 여러분들이 종교생활로 교회 나오시는 거면 얼마든지 칭찬해드릴 수 있어요. 그정도면 너무 잘하는 거죠. 그정도면 너무 대단한 거죠. 그 정도면 칭찬받아 마땅하죠. 그런데 여러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고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원하시는 믿음의 모습이 그정도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원하시는 예배의 모습이 그정도겠어요? 그정도면 하나님께서 만족하실 것 같으세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이라면,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실 때 만족스러우실 것 같으세요? 여러분들의 삶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그정도면 칭찬해주실만 할 것 같으신가요? 하나님은 분명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선하신 하나님이시고 인자한 분이시죠. 인내하시고 참으시고 사랑으로 기다려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와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질서의 하나님이시며 거룩한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쓰러질 수 있고, 부족한 모습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 어느 누가 하나님 앞에서 완벽하고 완전한 모습으로 설 수 있겠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선 그 믿음의 태도를 보시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붙잡으려는 그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려는 그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한계를 넘어 일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려는 그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흠없는 모습으로 기뻐하실만한 모습을 나타내려는 그 모습을 하나님은 원하신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이 예배의 자리를 지키려 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그 모습, 하나님께서도 분명히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정도면'의 함정에 빠지지 마세요. 하나님 앞에 순종함으로 나아가려 할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 할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려 할 때에, 그 때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남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을 기억하시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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