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잔소리

말씀본문 : 신명기 5장 7-21절
7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8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
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16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17 살인하지 말지니라
18 간음하지 말지니라
19 도둑질 하지 말지니라
20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21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말씀제목 : 사랑의 잔소리
오늘 말씀의 제목을 정하면서 참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원래는 말씀제목을 '하나님의 잔소리'라고 하려고 했었는데, '잔소리'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봤더니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음. 또는 그 말.'이라고 나오기도 하고, 또다른 의미로는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함. 또는 그런 말.'이라고 나오는 거예요. 아마도 오늘 본문의 내용을 함께 읽으면서 여러분들도 오늘 말씀에 대한 내용을 어느정도는 다 이미 파악을 하셨을 겁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하나님께서 주신 열 가지 계명, 즉 십계명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신 분들은 이미 다 아실 거라고요.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음' 이라는 의미의 '잔소리'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마음에 굉장히 걸리는 겁니다. 그래서 이 '잔소리'라는 단어를 쓸까 말까 참 많이도 고민하다가 앞에 '사랑의'라는 말을 넣어서 '사랑의 잔소리'라고 최종적으로 정한 거죠.
사전적 의미로만 본다면 '잔소리'라는 단어는 굉장히 좀 부정적으로 보여지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이 잔소리라는 것만큼 애정이 담긴 것도 없거든요. 여러분들도 한번쯤은 들어보셨을텐데, 사랑의 반대말이 무엇입니까? 랑사 뭐 이런거 하지 마시고요. 미움? 다툼? 아닙니다. 무관심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는 거예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 무슨짓을 하든, 나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면 굳이 뭐 얘기하지 않는 겁니다. 속으로 욕하고 마는 거죠. 그런데, 내가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뭔가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말리든지, 가르쳐 주든지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전도사님이나 선생님들이 문자나 카톡 보내면 귀찮아 하시죠? 이번주에는 교회 꼭 나오라는 그런 연락하면 그냥 알림으로 뜨는 내용만 보고 읽지도 않고 넘겨 버리기도 할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여러분들한테 그런 문자, 카톡, 연락하는 저희가 더 귀찮아요. 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 교회 나온다고 해서 여기 계신 선생님들 뭐 수당 받거나 보너스 받거나 그런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학교나 학원 선생님들이 여러분들 가르치는 건, 그 분들은 그게 직업이고 그걸 하면 돈을 버니까 하기 싫어도 한다고요. 월급도 받고 여러분들의 성적 향상 여부에 따라 인센티브도 받습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여러분들을 어떻게 해서든 공부 시키고 가르치고 한다고요.
그런데 여기 있는 저나, 선생님들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교회 출석한다고 해서 교회로부터 뭐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요. 여러분들이 헌금 낸다고 해서 거기서 몇퍼센트 떼가지고 인센티브로 받거나 하는 것도 아니라고요. 아니, 오히려 여러분들이 어떻게 하면 교회로 걸음을 하고, 예배를 드리게 할까 고민하면서 그 바쁜 와중에도 여러분들한테 시간 내서 연락하고, 여러분들 위해서 개인 사비로 간식도 사는 등, 여러분들을 위해서 오히려 시간과 돈을 쓰는 겁니다. 누가 더 귀찮겠습니까? 연락을 받는 여러분들이 더 귀찮겠습니까, 연락을 하는 선생님들이 더 귀찮겠습니까? 한시간도 안되는 시간 앉아있는 여러분들이 귀찮겠습니까, 20분에서 30분 정도의 설교를 하기 위해 몇날 몇일 몇시간씩 말씀을 준비하는 제가 귀찮겠습니까? 누가 더 귀찮겠냐고요. 제가 장담하는데 여러분들보다 선생님들이 훨씬 더 귀찮을 거고요, 선생님들 중에서도 부장선생님이 더 귀찮은 일들이 많을 거고요, 선생님들께 죄송한 말씀일 수 있겠지만, 선생님들보다 사역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제가 훨씬 더 귀찮은 일들이 많을 겁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감히 당당하게 드릴 수 있는 이유는, 저는 학생 시절도 겪어봤고, 학생일 때 임원도 해봤고, 보조교사도 해봤고, 교사도 해봤고, 전도사도 해보고 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귀찮은 일들을 왜 하는 것이겠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인 겁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영혼들이 보여져서, 그 영혼들이 여러분들이라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그 사랑이 느껴져서, 그 사랑으로 여러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모든 귀찮은 일들을 귀찮게 여기지 않고 사랑으로 해나가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시라고요. 객관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들이 뭐가 예쁘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뭐가 좋아서 선생님들이 그렇게 정성을 쏟겠냐고요. 선생님들한테 애교를 부리길 합니까, 시키는 것들 열심히 하기를 합니까, 예배 자리에 나와서 적극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태도를 보이길 합니까, 뭐 하자고 하면 막 다같이 즐겁게 하기를 합니까 뭘 합니까? 교회 와봐야 털푸덕 의자에 앉아서 고개 숙이고 있는 거밖에 더 하냐고요. 여러분들을 예뻐하고 사랑할 이유가 없다니까요. 여러분들을 위해서 정성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고 어떻게 하면 여러분들을 한 달에 한번이라도 더 볼 수 있을까 고민할 이유가 없다고요. 귀찮아하고 말도 안듣는 그런 모습 봐봐야 스트레스나 더 받지, 뭔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여러분 얼굴 한번 보기 위해 그 정성들을 쏟고 있겠냐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말씀 드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을 사랑하기 때문인 줄 믿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진짜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마음으로 여러분들을 사랑하니까 그 사랑으로 여러분들에게 그 사랑을 주려고 봉사하시고 섬긴다는 거예요. 정말 이 죽일 놈의 사랑.. 여러분들을 향한 선생님들의 사랑의 마음이 여러분들에게 꼭 전해지기를 너무 너무 소망합니다. 전도사님도 여러분들의 그 시기를 겪어봐서 여러분들이 어떤 마음인지 아주 모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선생님들의 그 사랑의 마음들이 여러분들에게 닿아서 여러분들도 그 사랑에 조금이나마 화답해주며 함께 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귀한 공동체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서두인지, 본문인지도 모르게 앞에 잔소리를 주욱 늘어놨는데요. 저도 마찬가지죠. 여러분들을 향한 사랑과 애정이 없으면 굳이 이런 잔소리 할 필요 전혀 없습니다. 그냥 공과 내용대로 말씀 준비하고, 간단하게 말씀 나누고, 대충 말씀 풀어서 20분 정도 짧게 하면 저도 편하죠.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사랑하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더 붙잡았으면 좋겠는 것이고, 사랑하니까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더 살아가길 원하는 것이고, 사랑하니까 여러분들이 세상이 원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는 마음으로 말씀 안에서 사랑의 잔소리를 하는 것이니 그 사랑의 마음을 느껴지기를 다시금 소망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계속 나눴던 말씀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이들을 하나의 국가로 세우시려고 하시는데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이라는 나라에서 거주하는동안 애굽이라는 나라의 왕이 정한 생활방식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갔습니다. 노예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삶 말이죠. 그러나 이들은 이제 더이상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를 얻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거죠.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 열가지의 계명을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아니, 자유롭게 살아가게 하신다면서 또 제한을 주시면 그건 자유가 아닌 거잖아요'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어요. 태초에 만들어진 인간에게는 죄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 그들은 완전한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갔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들이 죄를 짓게 되는 사건이 생깁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선악과를 따먹게 되는 사건이죠. 그 사건으로 인해 인간은 타락하게 됩니다. '죄'라는 것이 생기게 됐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인간의 마음 속에는 악한 생각이 찾아들어오게 된 겁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혹시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이 별로 그렇게 크게 와닿지 않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죄를 지었다고 해봐야 뭐 얼마나 큰 죄를 지었겠어요. 예수님이 모든 인간을 위해서 죽었다고 하면 그건 그래도 그나마 좀 이해를 할 수 있겠는데,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고 하면 그건 별로 와닿지 않는 거죠. 이 중에 누구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정도로 큰 죄를 지은 사람은 없을 거라고요. 그정도 사형 당할 죄를 지으려면 정말 어마어마한 죄를 지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요. 그런데 여기 계신 여러분들 중에 그런 정도의 죄를 지으신 분이 계십니까? 만약 그런 죄를 지은 분이 계시다면 그분은 지금 여기 앉아있으면 안되는 거예요. 경찰서를 가셔야죠. 여기 계신 저와 여러분 중에 그 누구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정도의 죄를 지은 사람은 없다고요. 해봐야 신호 위반한 거, 해봐야 엄마 돈 훔친 거, 해봐야 거짓말 한 거, 해봐야 뭐 좀 나쁜 생각하는 거 정도밖에 없을 거라고요. 그러니까 사실, 예수님이 날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이 별로 은혜가 안되는 겁니다. 특히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당신은 죄인입니다"라고 말하면 그 말에 동의가 안되고 반발이 생기고 기분이 나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 범법행위와 죄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범법의 행위로 죄인 여부를 따지면 죄인 소리 듣지 않을 사람 여기도 많을 거라고요.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죄라는 것은 범법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난 것이 죄라는 거예요. 앞서 얘기했던 것같이 여기있는 우리들 중에는 심각한 범법행위를 저지른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사형 당할 정도로 법을 어긴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그 법이라는 것이 없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예전에 그런 영화가 있었던 거 같은데, 1년 중에 단 하루, 그날은 법적책임을 묻지 않는 날인 거예요. 쉽게 말해서 어떤 짓을 해도 범법행위가 적용되지 않는 날인 겁니다. 도둑질을 해도, 폭행을 해도, 심지어 살인을 해도 그 누구도 죄를 묻지 않는 거예요. 자, 여러분같으면 그 날에 뭘 하실 것 같으세요? 뭐 굳이 대답을 들어보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이나,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이나 서로 그 답을 듣게 되면 서로에게 있어서 얼마나 불편해지겠어요. 굳이 적나라하게 말하지 않아도, 나누지 않아도, 어마어마한 일들을 저지를만한 그런 생각들을 누구나가 다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죄성이라는 거예요.
그 죄성의 씨앗은 뿌려지면 무조건 열매를 맺는 겁니다. 조그만 양초에 붙어있는 불과, 얼마전 우리나라 산지를 다 태웠던 산불이 난적이 있었죠. 그 산불의 불과 서로의 속성이 다를까요? 아닙니다. 똑같은 불인 겁니다. 태울 재료와 산소, 그 요건만 충족되면 얼마든지 그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고 태워버릴 똑같은 불이라는 거예요.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제어할만한 어떠한 장치가 없는 상태가 되면 그 죄성이라는 불꽃은 상황과 요건만 맞아 떨어지면 다 집어삼키고 태워버릴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모두가 다 그러한 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속성을 굳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어도 인간들끼리도 그 속성을 알고 있으니까 공동체 안에서 그것을 제어할만한 법적 테두리를 만들고 제어할 장치를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러니 그 위대한 바울 사도조차도 뭐라고 합니까? 내 마음 속으로는 분명히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 내 육체의 생각은 여전히 죄악된 그 속성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죄악된 생각과 죄악된 모습이 나타나더라는 고백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우리는 모두가 다 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인간들도 자신들의 죄악된 속성을 알고 법을 만들고 그것을 제어할 장치를 두는데, 하나님께서 인간의 그 죄악된 속성을 모르셨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제어할 장치를 두시는 거예요. 그냥 두면 이들이 서로 파멸할 수밖에 없으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시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계명이었다는 거예요. 어떤 말씀들을 주셨는지 쭈욱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7절의 말씀입니다.
7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인간이 그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 하나님께서 가장 처음으로 강조하신 것이 무엇이었어요?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거예요. 왜그렇겠습니까? 다른 신들은 다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여러분까지도 만드셨는데 무슨 다른 신이 필요하겠냐는 거예요. 이어서 8절과 9절을 보겠습니다.
8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하나님이 너무 싫어하시는 행위를 말씀하시는 거죠. 우상 만들지 말라는 겁니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시잖아요. 그런데 어쩜 이렇게 인간들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행위들을 그렇게 하는지, 왜그렇게들 우상을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상가집에 가서 절하지 않는 이유가 말씀에 나와있는 이런 부분들 때문인 거예요. 우상 만들어봐야, 그것들에게 절해봐야 쓸데없는 짓들이라는 겁니다.
제가 여호와의 증인들과 만나서 서로 논쟁하는 그런 시간들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교회를 향해서 이런 주장을 하더라고요. "이렇게 십계명에는 그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나와있는데 교회들은 십자가라는 형상을 만들어 놓지 않냐, 그러니 너희는 잘못된 것이다." 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우리는 십자가를 숭배하거나 섬기는 것은 아니잖아요. 보통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을 보면 그 형상에 어떤 능력이 있어서 그 형상 앞에 가서 절하고 소원을 빌고 그러는데 우리는 그런 느낌으로 십자가가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교회라는 것에 대한 어떤 표식, 심볼같은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을 다시금 상기하고자 하는 하나의 모형인 것이지, 그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막 십자가에 절하고 그런 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설명을 해줬던 기억이 있는데,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그런 말 하면서 여러분들을 막 현혹 시키려고 하면 그런 말들에 넘어가시면 안되세요.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잘 읽고 말씀을 알아야 그런 거짓된 진리로 덤벼드는 이들에게 맞서 싸울 수 있는 겁니다. 말씀으로 무장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어서 11절과 12절을 보겠습니다.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
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실 것 같아요. 함부로 쓰지 말라는 겁니다. 장난이라도 "하나님 걸고" 뭐 이런 말 함부로 하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맘대로 오용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거나 하지 말라는 거죠. 가끔 신학생들 중에 이런 신학생들 있거든요. 맘에드는 이성에게 가서 "내가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우리가 만나야 한다고 하셨어." 뭐 이런 되도않는 작업멘트를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겁니다. 함부로 하나님 이름 내세우면서 뭐 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어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는데, 지난번에도 말씀 드렸다시피 안식일은 따지고 보면 토요일입니다. 그럼 우리는 토요일에 예배 드리지 않고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니 십계명을 어기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실 거예요. 실제로 이것을 가지고 공격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여호와의 증인 같은 그런 사람들이 이 부분을 가지고 많이들 얘기하는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기독교는 십계명의 정신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해 그 계명을 완성된 의미로 지키고 있다는 거예요.
안식일은 두 가지를 기념하는 날인데, 먼저는 창조의 완성,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6일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신 것을 기념하고, 두번째로는 구원의 자유를 기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 생활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쉼을 얻은 것을 기념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 시대로 넘어오게 되면서 예수님께서 안식 후 첫날, 주일이죠. 그날에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원을 완성하시고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날을 기념하며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는 넷째 계명 자체를 폐지한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상징하는 모든 쉼과 안식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누리게 되었다고 믿는 거예요. 즉, 십계명의 핵심 정신인 하루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예배하고 영혼의 쉼을 얻는 것은 그대로 유지하되, 그 기념의 날짜를 그리스도의 부활이 일어난 일요일로 옮겨 지킨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기독교는 안식일의 원리를 주님의 부활과 구원을 기념하는 주일에 적용하여 지키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 예배를 빠지시면 되겠어요, 안되겠어요? 예배의 자리를 목숨같이 지켜내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이렇게 첫째 계명부터 넷째 계명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들의 해야 할 행동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고, 다섯번째 계명부터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의 해야 할 행동에 대해 말씀해 주시는데요. '부모님을 공경해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이웃의 의소유를 탐내지 말라' 라고 가족과 이웃간에 해야 할, 지켜야 할 행동규범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십계명의 말씀을 보면 느낌이 어떠십니까?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지 마라 이렇게 나오니까 뭔가 막 나를 억압하고, 나를 짓누르고, 나를 묶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시나요? 그런데요 여러분, 이 십계명의 내용을 하나 하나 자세히 들여다 봐보세요. 이것은 "하지마!"라는 강압적인 명령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볼 수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러한 계명들이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모습이 펼쳐지겠습니까?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둑질하고, 거짓이 난무하고, 서로의 것을 탐내는 그런 사회를 생각해 보시라고요.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거, 괜찮으시겠어요? 강한 자가 약한 자의 것을 빼앗고, 탐내고, 필요하면 거짓말도 하고, 내 맘에 드는 대로 다른 사람의 배우자를 빼앗고, 내 유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살인도 저지르는 그런 세상, 살만하시겠어요? 굉장히 끔찍한 세상일 것 같은데, 말하다보니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그러한 세상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로 가르치는 거예요. 하나님의 방법은 미련한 것이고, 세상이 말하는 방법이 현명한 것이며, 그것이 잘사는 비결이라고 여러분에게 가스라이팅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가스라이팅에 당하고 계시잖아요. 아무리 교회에서 말씀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예배가 중요하다고 그렇게 그렇게 얘기해도 여러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세상이 하는 말이 맞는 것 같다고 세상 따라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세상이 어떤 세상이에요? 경쟁하고, 다른 사람 짓밟고, 빼앗고, 탐내고, 거짓말하고, 어떻게 해서든 쟁취해 내면 그것이 성공인 그런 세상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행복한 삶이겠냐고요.
저희 집에는 인생 10년차를 살아가고 있는, 삼춘기쯤을 지나고 있는 한 생명체가 있거든요. 이런 표현이 좀 그렇긴 한데, 말을 진짜 드럽게 안듣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부모는 이런 저런 여러가지를 요구하는 거죠. 이빨 닦아라, 스마트폰 그만 봐라, 공부 해라, 책 읽어라, 운동해라, 나쁜말 쓰지 마라, 일찍 자라, 유해한 컨텐츠 보지마라 등등..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게 뭔지 아십니까? 전부 반대로 합니다. 거의 전쟁이죠. 아이가 그렇게 싫어하고 짜증을 내는데도 부모는 어떻게 해서든 부모가 말하는대로 하게끔 시키고 명령을 하는 겁니다. 그 이유가 뭐겠어요? 그것이 그 아이가 올바르게 자라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끔 하는 행동들이기 때문인 겁니다. 내 자녀를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진실된 사랑의 표현, 사랑의 잔소리라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아가길 원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 말씀 보면 하지 말라는 얘기만 가득하고,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 얘기만 하고 있고 그런 생각이 드시는 분이 계시다면 제가 감히 단언코 장담하는데, 여러분이 성경을 제대로 안보셔서 그런 생각 드는 거예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라고요. 여러분 성경 제대로 읽어보셨습니까? 여러분들이 성경을 제대로 읽어봤는데도 그런 생각이 든다면 저에게 따로 말씀해 주세요.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가 없습니다.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여긴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성경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의 삶을 억압하시려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것 못하게 하시려고, 답답하게 살게 하시려고 이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험한 세상 속에서, 거짓이 난무하는 이 세상 속에서, 잘못된 진리가 판을 치고 있는 이 세상 속에서,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말고, 진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 너희를 만들어 낸, 나의 형상대로 만들어 낸 나의 사랑하는 내 귀한 자녀들이 나를 믿고, 나를 의지하고, 내 은혜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그 인생이 진짜 빛나는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주신 것이 이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세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믿어 보십시오. 항상 말씀 드리죠. 말씀대로 살지 않으니까 말씀에서 말하는 은혜가 없는 겁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면 말씀에서 말하고 있는 안식과 평안과 은혜가 임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을 부담스럽게 하려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혼내시기 위해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는 거예요. 아니, 반대죠.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더 자유하게 하시려고, 여러분들을 고치시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가시기 위해, 하나님의 그 빛으로 밝은 빛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려고 지금도 여전히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그 사랑의 말씀을 붙잡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은혜를 받아 누리며, 하나님의 은혜의 테두리 안에서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혹시라도 하나님을 오해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다시금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빛이 되시는 분이세요. 그리고 우리는 그 빛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 빛으로 인해 나의 죄악과 허물이 드러날까봐 두려워하겠지만, 하나님께선 그것들을 드러내시고 징계하시기 위해 그 빛을 비추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빛을 통해 고치시고, 그 빛을 통해 사랑으로 안아주시려고 하심을 믿으십시오. 그렇게 하나님의 빛으로 나아가보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아픔과 상처, 고통과 슬픔을 안으시고 새롭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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