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도사/설교기록

리얼 갓생 국룰 (신명기 27장 1-10절)

하엘파파 2025. 11. 4.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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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갓생 국룰

말씀본문 : 신명기 27장 1-10절

1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지니라
2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3 요단을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라
4 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5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6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7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8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지니라
9 모세와 레위 제사장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아 잠잠하여 들으라 오늘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10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

 

말씀제목 : 리얼 갓생 국룰

 

 '갓생'이라는 단어의 뜻을 보면 신을 뜻하는 'God' 과 인생을 뜻하는 '생'이 합쳐진 말로, 남들이 보기에도 부지런하고 타의 모범이 될만하게 열심히 사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갓생 산다', 혹은 '갓생 살았다'라는 표현을 쓰고는 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인지라, 주변 사람들로부터 '갓생러'라는 말을 듣고는 하거든요. 이것 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관심도 많고, 욕심도 많다보니 여러가지 것들에 다 신경을 쓰고 발을 담그고 있어서 어느새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할 바쁜 일상에 치여 살고 있는 겁니다. 요즘은 또 저도 학생 신분으로 있기도 한지라, 내일부터 중간고사 기간이거든요. 시험과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엄청 받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니까요.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한다면, 저는 저희 집안의 가장으로 있잖아요. 그런데 이 등록금이 만만치 않은 겁니다. 아이는 점점 커가고 돈 들어갈 곳은 많아지는데, 돈을 더 벌어오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돈을 더 쓰게 되는 상황에서 저희 집사람이 얼마나 답답하고 불안하겠어요. 그래서 그나마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등록금에 대한 부담이라도 덜하게 하기 위해서 뭘 해야겠습니까? 공부해야죠 뭐. 장학금을 받으면 등록금 지출에 대한 걱정을 안할 수 있으니까 공부라도 열심히 해서 장학금이라도 받아야 되잖아요. 자랑은 아니지만, 참 다행스럽게도 저는 지금까지 매학기 장학금을 받고 있어서 입학할 때 등록금 낸 것 제외하고는 아직까지는 제 돈으로 등록금을 낸 적이 없습니다. 참 감사하기도 감사한 것이긴하지만 그만큼 부담과 압박이 또 있는 거예요. 그러니,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제가 생각할 땐 여러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니까요.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중간고사 기간이라고, 기말고사 기간이라고, 시험기간이라서 공부해야 된다고 막 교회를 빼먹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상상이 안되는 모습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상상이 안되는 모습이라고 말하는 것도 웃긴 거라니까요. 왜 여러분들은 되는데 저는 안됩니까? 여러분들은 학생이고 저는 어른이라서요? 아니면, 여러분들은 예배 참석자들이고 저는 말씀 전하는 전도사라서요? 아니라니까요. 물론 말씀을 전해야 하는 어떤 책임과 의무가 주어졌기 때문에 그만큼 더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맡겨진 사명을 지켜야 하는 것은 분명히 있긴 있겠지만, 지난 설교 시간에도 말씀 드렸다시피 이곳에 모인 우리 모두는 모두 다 같은 예배자로서 이 자리에 나와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험기간이라고 교회 빼먹지 마세요. 물론 출석만을 가지고 그 사람의 믿음을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우선순위가 눈에 보여지는 것이지 않습니까. 가장 기본적인 예배 참석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람에게서 어떻게 무슨 대단한 믿음을 기대할 수 있겠냐는 거예요. 

 제가 앞에서 예배 빼먹지 말라고 말하는 거 지겨우시죠? 저도 참 지겨운데..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줘야 하는 것이 저의 책임이기 때문에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저도 말씀을 준비하면서 고민한다니까요. '아 이런 말 하면 찔리는 애들이 괜히 또 찔려서 교회 안나오는 거 아닌가?' 이런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솔직한 마음이고,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말들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을 제가 어떻게 감히 제 맘대로 저 편하자고 여러분들 듣기 좋은 말들만 하겠냐고요. 내 아이가 공부는 안하고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가만히 냅둘 수가 있겠냐는 겁니다. 내 아이가 이빨도 안닦고 세수도 안하고 그냥 자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가만히 냅둘 수가 있겠냐고요. 소리를 질러서라도, 화를 내서라도, 혼을 내서라도 일으켜 세워서 그만하게 하고 올바른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어떻게 해서든 지도해야 할 것 아닙니까. 사랑한다고 해서 내 아이가 그냥 지가 하고 싶은대로 냅두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방관이죠. 애를 망치는 거라고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교회에서 제가 담당하고 있는 저의 사랑하는 성도님들이라고요. 하나님께서 제게 맡겨주신 영혼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 앞에 서있는 저나, 여기 계신 선생님들이나 모두가 다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믿으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너무나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반드시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 사랑의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너무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그 사랑 안에서, 그 말씀 안에서 여러분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실텐데 그걸 모르고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는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실 때에 얼마나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시겠냐고요. 말씀 안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짜 갓생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갓생, 세상에서 잘되기 위한 갓생 말고, 진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사는 리얼 갓생을 살아보자고요.

 제가 어느날 티비를 보는데 티쳐스에 나오는 유명한 수학 강사님이 나오는 방송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정확하게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모르는데 어떤 강사님들이 나와서 어떤 학생의 공부하는 방법 같은 것들을 코칭해주는 프로그램인 것 같더라고요. 중학교 1학년인 어떤 학생이 나왔는데 그 학생의 하루 시간표를 봤더니 학교, 학원, 숙제, 취침 거의 이 패턴인 거예요. 그런데 그 중에 취침이 세시간인 겁니다. 세시간 자고 일어나서 학교 가서 공부하고, 학교 끝나면 학원 가서 공부하고, 학원 마치고 집에 와서 숙제하고 세시간 자고, 그리고 일어나서 학교 가고 이런 반복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 학생이 뭐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늘 불안하다는 거예요. 자기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 뒤쳐질까봐 늘 불안하다는 겁니다. 공부를 해도 해도 늘 불안하다는 거예요. 그 방송을 저랑 가족들이 같이 보고 있었는데 그 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하엘이한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야 김하엘이, 행복한 줄 알아 쨔샤" 그러니까 이 딸래미가 이렇게 받아치더라고요. "아빠, 포기하면 편해"

 사람마다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이 있고, 목표가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제가 볼 땐 그 아이의 모습이 하나도 행복해 보이지가 않는 겁니다. 제가 틀리게 본 것일 수 있겠지만 늘 불안하다고 말하는 그 아이의 얼굴에서 행복감이 보이지가 않는 거예요. 너무 안타까운 겁니다. 중학교 1학년이 세시간 자면서 그렇게 공부를 하는데 그 마음 속에는 어떤 마음만 있는 거예요? 불안한 마음만 가득하다는 거예요. 그러한 모습 속에서 어떻게 그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냐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니까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의 방법을 쫓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세상의 가치관 속에서 세상이 말하는 방법대로,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고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것에 뒤쳐지기라도 할까봐, 그것에 미치지 못하면 불행해질까봐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진정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 아니겠냐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입성을 앞에 두고 이렇게 강조하고 있는 거예요. 1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지니라

 명령이라는 단어가 세 번이 반복 됩니다. '명령하여', '명령하는', '명령을' 명령의 뜻이 무엇입니까? 무조건 해야된다는 겁니다. 무조건 해야되는 거예요. 어떤 명령을 하고 있습니까? 크게 두 가지의 명령을 하고 있는데, 먼저 첫 번째로는 큰 돌을 세우고 석회를 발라서 그 위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는 제단을 쌓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이러한 명령을 한 것이었습니까? 9절과 10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9 모세와 레위 제사장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아 잠잠하여 들으라 오늘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10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이요? 말씀을 새기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 말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임을 믿으신다면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을 나타내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어떤 모습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이죠. 말씀을 새긴다는 것은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삶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 해야 할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저희 집에선 주일 예배를 빼먹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 주였나, 하엘이의 절친한 친구가 생일 파티에 초대를 했는데 그 절친한 친구에게 주일이라서 못간다고 말했었다는 일화를 말씀 드렸었죠. 그만큼 저희 집에선 주일성수에 대한 부분이 명확하게 제도화 되어있는 겁니다. 정말 사고나 해외에 나가있는 뭐 그런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선 주일엔 무조건 예배를 지켜야 하는 날인 거예요. 저희 딸 하엘이는 진화론 이런 거 머릿속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무조건 창조예요. 헷갈릴 것도 없습니다. 세계관 자체가 그것으로 정립되고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말하는 잘못된 교육이 들어가질 못한다고요. 그것은 왜 그렇게 된 것이겠습니까? 하엘이가 저의 딸이기 때문인 겁니다. "다른 집 애들은 일요일에 놀러도 가고 그러는데 왜 나는 안돼" 이런 말을 감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 말 나오면 저는 "너 그럼 그 집 가서 살어" 이럴 거라고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라는 겁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가고 있던 그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을 직접 이끌어 내시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삼아주셨다는 거예요.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참된 진리로 세워진 가치관 안에서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창조의 이유에 맞게 그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로 삼아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내가 택하고 이끌어 낸 나의 백성들이니까 내가 너희에게 주는 말씀을 새기고 예배하는 삶을 살라는 거예요. 우리 잠깐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 40절까지 말씀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께서 새기라고 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여러가지 말씀들이 있겠지만 압축하고 압축하면 "하나님 사랑해라, 그리고 너와 네 이웃을 사랑해라." 이 말씀이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딱 이 말씀을 하시잖아요. 그런데 이 세상을 보십시오. 어떤 세상입니까? 수많은 우상들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잖아요. 물질의 신, 쾌락의 신, 명예의 신, 권력의 신 등등 얼마나 많은 우상들로 하나님보다 그러한 것들을 더 사랑하게 만들고 있잖습니까. 또, 이웃도 사랑하지 못하고 나 자신조차도 사랑하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잖아요. 저는 요즘 뭐 학교 주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민원 때문에 학교에서 운동회도 못한다는 뉴스를 보고 진짜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어쩜 그렇게 점점 각박해져만 가는지 모르겠다고요. 이웃끼리 사랑을 하기는 커녕 점점 이웃간에도 적이 되어버리는 그런 사회의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참 아픈 거죠. 경쟁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맛보며 자기 스스로도 사랑하지 못하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는 세상이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어떻게 해요? 절망적인 현실과 상황들 속에 자신의 목숨까지 그냥 스스로 끊어버리는 그런 안타까운 모습들을 여러 미디어 매체들을 통해서 접하고 있잖아요. 말씀을 보고 세상을 보면 정말 신기합니다. 어쩜 그렇게 정반대인지 너무 신기하다고요.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모습들을 나타내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고리타분해 보이고 하지 말라는 것 많아 보여서 답답할 것처럼 느껴지시죠? 아니라니까요. 몰라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 제대로 봐보세요. 하나님 한번 제대로 믿어보세요.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삶만큼 행복하고 감사한 것이 없는 겁니다. 세상이 말하는 세상에서 잘사는 방법, 세상에서 잘되는 방법, 세상에서 말하는 가치관 그거 백날 좇아봐야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삶이 아니라고요. 세상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얼마나 힘들고 지치고 스스로를 망가뜨리는지 대놓고 보여지는데도 세상의 방법을 놓지 못하고 그거 붙잡고 살아가면 아까 서두에 말씀드린 중학교 1학년 그 학생처럼 늘 불안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답답하시겠냐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말씀하시다 못해 어떻게까지 말씀하십니까? '명령'으로 하시는 거예요.

​ 제가 학창시절에 연애를 한번도 못해봤다고 했었잖아요. 그랬다는 것은 연애에 대해서 아예 무지했다는 거거든요. 다시 말해서 여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열아홉 여름쯤엔가 첫 연애를 하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흑역사로 남은 연애를 한 거죠. 교회 동생의 친구였는데 멀리도 살았습니다. 그 친구는 노원에 살았고 저는 부천에 살고 있었거든요. 그 친구가 어떻게 부천에 친구 만나러 놀러왔다가 저도 같이 만나서 놀고 이후로 서로 문자메시지 주고 받으면서 그냥 그렇게 문자로만 연락을 주고 받던 사이였는데, 어느날 제가 어떤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이런 글을 본 겁니다. 오늘 사귀면 크리스마스에 100일이라는 뭐 그런 글을 본 거죠. 그날따라 무슨 용기가 났는지 그 소심한 놈이 이 친구한테 고백을 하려고 맘을 먹은 거예요. 크리스마스에 100일 기념을 하고 싶었나봅니다. 그런데 여자들이 싫어하는 고백이 어떤 고백이에요? 문자로 하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고백했을까요? 네, 문자로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그 친구도 저에게 호감이 어느정도 있었는지 받아줘서 사귀게 된 거예요. 제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인생 첫 여자친구가 생긴 순간이었다고요. 그렇게 사귀기로 한 날 문자를 막 주고 받다가 저녁에 자기 전에 제가 이런 문자를 보냅니다. '사랑해' 아 진짜 최악인 거예요. 무슨 사귀기로 한 날에, 얼굴도 한번 본 사이인데 뭔 갑자기 사랑해냐고. 그 문자에 그 친구의 답장은 '아 난 아직 사랑까진 아니고.. 좋아해^^;' 이렇게 온 겁니다. 당시에는 그게 되게 서운하더라고요. 아 나는 용기내서 사랑한다고 했는데 상대방은 좋아한다고 답장 오니까 민망하고 막 서운하고 그런 거죠. 지금 생각해 보면 '헤어져'라고 답장 안온게 어딘가 싶어요.
 그러고선 한 일주일인가 뒤에 사귀고 처음으로 얼굴을 보러 간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첫 데이트를 하기 위해 부천에서 노원까지 전철을 타고 한시간 반정도 걸려서 찾아간 거죠. 그렇게 만나서 간 대망의 첫 데이트의 식사장소가 어디였나면 김밥천국이었습니다. 왜냐면 당시의 저에게 김밥천국은 가성비 최고인 식당이었거든요. 싸고, 종류 많고. 제 나름대로는 최고의 레스토랑을 간거라고요. 그러고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겠는데 이제 헤어질 시간이 슬슬 다가왔습니다. 나름대로 본 건 있어서 그 친구의 집인 아파트까지 같이 데려다 주고 인사하고선 집까지 한시간 반이 걸리니까 너무 늦으면 또 안되잖아요. 그래서 전철타러 빨리 가려고 인사하자마자 바로 뒤돌아서 그냥 냅다 뛰어간 거죠. 아마 지금같으면 들어가는 모습하고 방에 불켜지는 모습까지 다 지켜보면서 "방에 잘 들어갔네" 이런 스윗한 멘트도 날려주고 그랬을지 모르겠는데, 열아홉 당시에 연애도 한번 못해본 제가 뭘 알았겠냐고요. 뭐 그런 우당탕탕한 첫 연애를 1년도 못가서 헤어지게 되었는데, 아무튼 당시의 종민이는 그런 행동들이 왜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는 겁니다.

 

 만약에 제가 지금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가서 열아홉살의 종민이에게 뭐가 문제인지를 말해줘도 모를 거라고요. 말해줘봐야 이럴 겁니다. 왜? 문자로 고백하는 게 왜? 연인들끼리는 자기 전에 사랑한다고 해야하는 거 아닌가? 왜? 김밥천국이 왜? 최고의 식당인데 왜? 헤어졌으면 빨리 돌아서 가는 거지 왜? 이러고 있을 거라고요. 그럼 그 말귀를 못알아먹는 열아홉 살 종민이에게 마흔 살 종민이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명령해야 되는 거예요. 하지마! 문자로 고백하지마! 쉽게 사랑한다고 하지마! 첫 데이트 코스로 김밥천국 가지마! 집에 데려다 주고 그냥 바로 돌아서서 뛰어가지마! 명령한다고요. 못알아들을 땐 명령을 해서 못하게 해놔야 하는 겁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왜 하지 말라고 한 것인지 깨달을 때가 오겠지만, 그 전까지는 명령을 해서라도 못하게, 또는 하게 해놔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명령하시는 거예요. "내 말씀을 새기고 내 말씀대로 살아! 예배 드려!" 왜요? 그것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또 친히 그렇게 살았을 때 너희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해주신단 말예요. 신명기 28장 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면 어떻게 된다고요?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28잘 10절도 한번 보겠습니다.

10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땅의 모든 백성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인 것을 보고 두려워할 것이라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거예요. 어떻게 했을 때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모든 복을 내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방법대로 공부 열심히 하면, 세상의 방법대로 돈 많이 벌면, 세상의 방법대로 높은 위치에 올라가면 해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복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고요.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서 그 말씀대로 행하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며 나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시겠다는 거예요. 그러한 자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리얼 갓생이 아니겠냐고요. 복된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면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은 국룰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리얼로 갓생을 살기 위한 국룰이라는 거예요.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그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명령하시는 거예요. 왜 이러한 명령을 강력하게 하셨던 것이었겠습니까? 그곳에는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잘못된 삶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잘못된 문화가 퍼져있었다는 거예요. 세속적 가치, 세속적 문화가 자리잡은 곳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거룩한 백성들이 들어갈 것을 앞에 두고 그 정체성을 다시금 확립시켜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의 사람들은 바알이라는 잘못된 신을 섬기고 있어. 풍요를 바라는 신을 자신들이 만들어서 섬기고 있어. 얘들아, 그것은 가짜야. 풍요는 그들이 만들어 낸 바알 신이 주는 것이 아니야.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신은 나밖에 없어. 그곳에는 맘몬이라는 잘못된 신을 섬기고 있어. 물질을 최고로 여기고 더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해 잘못된 행위들을 하고 있어. 아니야 얘들아, 그것은 가짜야. 물질이 전부가 아니야. 너희들의 필요를 내가 다 알아. 내가 필요할 때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줄 거야. 그것으로 때에 맞게 나무들이 열매를 맺을 거야. 곡식들이 자랄 거야. 다른 가짜들에게 속지마. 내가 다 알아서 해줄 거야. 얘들아, 너희는 나의 백성들이야. 너희는 저 땅에서 잘못된 것을 따르며 살아가는 자들과는 다른 존재들이야. 걱정하지마. 불안해하지마. 저들이 하는 것 하지 않아도 너희는 내가 인도할 거고 내가 보호할 거고 내가 지켜줄 거야. 내가 채워줄 거야. 내가 말한 것들을 새기렴. 이 아빠가 지켜줄 거야.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니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을, 이 사랑의 음성을, 사랑의 메시지를 들려주고 계십니다. 돌판에 새겨서 산 위에 세우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 하나님을 잊고 살아갈 때에, 눈을 들어서 산 위에 세워져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며 다시금 나의 정체성을 기억하라는 거예요. 제사를 드리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통해 나의 정체성을 다시금 회복하라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할 때에 사람들과의 관계도 화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질 때에 다른 이들과의 관계도 화목을 이룰 수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해 그 화목의 관계를 지속하라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세상이 말하는 방법대로 살아가는 갓생은 불안을 가져다 주지만, 하나님께서 말하는 방법대로 살아가는 갓생은 평안을 가져다 줍니다. 삶을 살아가다가 지치고 힘들 때, 쓰러지고 넘어질 때, 눈을 들어 그 새겨진 말씀을 바라보라는 거예요. 너를 지키고 있는, 너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기억하고 일어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겠다는 거죠. 예배의 자리를 통해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그 모든 관계를 회복 시키시겠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 물들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가 세상을 물들여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의 모습을 나타내 보여야 하는 자들임을 기억하세요. 그렇게 믿음으로 승리하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삶을 통해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며 땅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과 함께 하심을 바라보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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