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도사/설교기록

중꺾말 (신명기 30장 1-10절)

하엘파파 2025. 11. 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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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꺾말

 

말씀본문 : 신명기 30장 1-10절

1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쫓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2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4 네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네 조상들이 차지한 땅으로 돌아오게 하사 네게 다시 그것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네게 선을 행하사 너를 네 조상들보다 더 번성하게 하실 것이며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적군과 너를 미워하고 핍박하던 자에게 이 모든 저주를 내리게 하시리니
8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9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10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말씀제목 : 중꺾말

 

 저는 TV를 잘보는 편은 아니거든요. 봐봐야 뉴스나 좀 보는 편인데, 유일하게 꼭 챙겨서 보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골 때리는 그녀들', 줄여서 '골때녀'라는 프로그램이거든요. 원래 축구를 좋아하기도 하는데 TV에 나오는 각계각층의 여자들이 나와서 어설프지만 열심히 노력하면서 축구 실력이 점점 올라가는 모습이 너무 박진감 넘치고 재밌는 겁니다. 단순하게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의 결실이 나타나고 도전의 성과가 이뤄지는 하나의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도 나는 거죠. 거기에 나오는 그 출연자들이 다 각자의 본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축구할 때만큼은 진짜 진심으로 축구를 하는 게 시청자에게까지 느껴지는 겁니다. 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서 땀 한방울 더 흘리고, 한 발자국이라도 더 뛰는 거죠. 그러면서 선수들이 이러는 거예요. "포기하지 마!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야!" 
 그래서 저는 '중꺾마'의 유래가 이 골때녀에서 나온 말인 줄 알았는데, 알아보니까 골때녀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카타르 월드컵 때 선수들이 태극기에 썼던 문구가 공중파 방송에 나오게 되면서 알려졌다고도 하고, 또 온라인게임 대회에서 어떤 선수가 인터뷰 하면서 그 인터뷰에 대한 기사 제목으로 나오게 되면서 시작 되었다고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아무튼 그렇게 여러 매체들에서 이 문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이 문장에 대한 줄임말로 '중꺾마'가 탄생하게 된 겁니다. 세상 사람들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외치면서 그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일어 선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중꺾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외침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말씀의 제목이죠. '중꺾말'입니다. 어떤 줄임말인지 감이 오시나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말씀"이라는 거예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말씀이라고요.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숨 쉴 때에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고, 회복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가끔 딸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혼날만한 언행을 하게되면 부모로서 혼을 낼 때가 있습니다. 부모는 내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 실망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거죠. 그리고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 따끔하게 혼을 내는 것입니다. 이 때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틀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거죠. 부모의 마음도 상하고, 아이의 마음도 상하기 때문일 겁니다. 서로 대화가 없어져요. 집안 공기가 차가워지는 거죠. 그런데 제가 바로 앞서 표현할 때 틀어지는 것'처럼' 보인기도 한다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 말은, 완전히 틀어진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얼마든지 다시 사랑의 관계로 회복될 여지가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회복되겠습니까? 자녀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며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할 때, 부모는 그 아이의 진심을 보고 다시금 사랑으로 안아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의 관계가 다시 회복이 되는 거예요. 그게 바로 부모와 자녀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아직 자녀가 없어서 부모님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한데요. 저도 마찬가지죠. 그 전까진 몰랐다가 제가 부모가 되어 보니까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겁니다. 자녀를 혼내고 난 뒤의 그 냉랭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부모는 어떤 마음을 갖고 있을 것 같으신가요? 내 자녀가 부모에게 잘못했다고 말하면서 다가오길 기다립니다. 기다리고 있는다고요. 물론, 자녀의 입장에서는 두려울 수 있습니다. 무섭죠. 그러니까 어쩌면 그 두려움에, 혹은 염치가 없어서 잘못했다는 말을 꺼내지도 못한채 입을 꾹 닫고있는 경우도 있는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입을 꾹 닫고있으면 관계가 더 악화되는 거예요.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부모에게 용서를 구하며 다가오기를 부모는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아이의 그 진심이 느껴질 때 부모는 언제라도 아이를 용서하고 안아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모세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1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쫓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얘들아, 나는 너희들에게 어떻게 하면 복을 받을 것이고, 어떻게 하면 저주가 임할 것인지 다 말해줬어.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쫓겨나서 흩어져 사는 그 나라에서 이 말이 생각나면.." 사람에게는 참 희한한 고집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 말라는 거 안하면 참 좋을텐데, 꼭 해보고서 느끼고 깨닫는 아주 못된 고집이 있는 겁니다. 제가 그렇거든요. 하라는 거 잘 하고, 하지 말라는 거 안 하면 얼마나 좋겠냐고요. 그런데 꼭 그렇게 말을 안듣고 온갖 고생을 다 해보고서야, 그제서야 '아 이거 아니구나'라는 걸 몸소 체험하고선 돌이키는 겁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렇게 고생을 해보게 되면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는 거예요.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보통 언제 철든다고 합니까? 군대에 갔다 오면 철 든다고들 하잖아요. 그게 왜 그런 것이겠어요? 군대라는 곳을 들어가기 전까지는 부모님이 챙겨주는 밥 먹어가면서, 부모님의 보호 아래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내 하고 싶은대로 그렇게 살아갔는데, 군대를 들어가면 어떻게 됩니까? 자유가 통제되고, 모든 일들을 스스로 해야되고, 잘못하면 호되게 혼나기도 하고, 온갖 여러가지 고생들을 하게 되면서 '아 내가 부모님 집에서 그렇게 지낼 때가 정말 감사한 삶이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과 집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거예요. 문제는 그렇게 깨닫고도 전역하고 나면 다시 원상복귀 된다는 것이 문제긴 합니다만, 아무튼 그래도 그 고생을 할 때는 내게 주어진 것들에 대한 감사를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에 우리의 인생에서 겪게되는 고난은 어쩌면, 하나님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은혜의 현장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물론 고난 그 자체는 너무나 힘든 시간이 되는 것이겠지만, 그 고난을 통해 다시금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 또한 귀한 은혜의 시간이 되는 것이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계속해서 말씀드렸던 탕자의 비유가 바로 그러한 내용을 잘 알려주고 있는 것이죠. 그 고생을 하기 전까진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 집에서의 그 축복과 은혜를 철저한 실패를 맛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지 않습니까. 그 고생의 일을 통해 회개하며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되고 그 남은 삶을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살아갔을 것을 볼 수 있다는 거예요. 회복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러한 맥락에서 그 회복의 가이드를 제시해주고 있다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필요한 첫 번째는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 기억하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기억하게 되었을 때에, 그 다음에 해야될 일들이 있는 거죠. 2절입니다.

2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 "이 말이 생각나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내가 너희들에게 말해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렴." 기억을 하게 되면 이어지는 행동은 '돌아오는 것'이라는 거예요. 돌아와야 한다는 겁니다. 기억만 하고 끝나면 안된다는 거예요. 기억했으면 돌이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돌아와야 된다는 거죠. 흙탕물 속에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았다면 그곳에서 나와야 하는 겁니다. 알고만 있고 그대로 흙탕물 속에 있는다면 변화가 될 수 없는 거예요. 여전히 더러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억했으면 돌아오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탕자를 보십시오. 내 아버지 집에 있는 것이 좋은 것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으면 그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행동을 해야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돌아가는 행동과 그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나타낼 때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까? 3절입니다.

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희를 돌아오게 해주실 거야. 그리고 하나님께서 흩어진 백성들을 다시 모으실 거야" 하나님께서도 그 마음을 돌이키실 거라는 거예요. 긍휼이 여겨주실 것이라는 겁니다.​

 제가 하엘이를 혼낼 때면 호되게 혼내놓고선 제 방으로 들어와서 컴퓨터를 하고 있을 때가 있거든요. 그럼 이제 거실에서 엄마와 하엘이의 대화가 들려오는 겁니다. 엄마가 하엘이에게 뭐라고 하겠어요? 아빠한테 가서  잘못했다고 하라고 하는 거죠. 그런데 아이는 아빠가 무서우니까 그 용기가 나지가 않는 겁니다. 아빠가 안받아줄 것 같다고 울먹 거리면서 엄마한테 무섭다고, 못하겠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럼 엄마는 또 뭐라고 하겠어요? 그래도 아빠한테 가서 잘못했다고 말하라고 하는 겁니다. 잘못했다고 하고 봐달라고 애교도 부리고 그러라는 거죠. 엄마가 아이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이유는 뭐겠습니까? 아이를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에요. 아이가 그렇게 하면, 아빠가 받아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 겁니다. 아이가 그렇게 해야, 아빠의 화가 풀어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만약 아이가 그렇게 혼나고 나서 아빠한테 잘못했다는 말이 없이 자기 할 것만 하고 있으면 아빠는 어떨 것 같으세요? 그냥 알아서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화가 풀릴 것 같으십니까? 아닙니다. 더 화가 나는 거예요. 더 괘씸한 거죠. '저게 지금 분위기 파악 못하고 저러고 있네?' 하고선 더 큰 화가 몰려올 수 있다는 겁니다. '아직 정신 못차렸구만' 하고선 안낼 화도 더 난다고요. 아빠가 안받아줄까봐 무서워서 그랬다고 해도 그건 핑계가 될 수 없는 겁니다. 앞에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부모는 아이가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다가오길 기다린다는 거예요.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엄마는 아이에게 아빠한테 가서 잘못했다고 말하라고 시킨다는 겁니다. 그 두려움에도, 그 어려움에도 용기를 내어 부모에게 가서 용서를 구할 때 부모는 얼마든지 내 아이를 용서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거실에서 막 엄마와 딸이 대화하는 소리가 다 들려오는 겁니다. 그러다가 아이의 용기 낸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거죠.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러고선 아빠 방으로 들어와서 눈물을 글썽 거리며 잘못했다고 말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아빠는 이 아이가 얼마나 용기를 낸 것인지, 얼마나 진심인지를 알기에 그것을 거절하지 않고 아이를 안아주고 무릎에 앉히고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는 거예요.

 모세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말해주듯이 그렇게 얘기해 주고 있는 겁니다. 너희가 고난을 당하게 되었을 때에,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을 때에, 이 말씀을 기억해 내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기억해 냈으면 돌이키라는 거죠. 돌아가라는 거예요. 잘못된 거 알았으면, 잘못한 거 알았으면 그대로 쓰러져 있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용기 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라는 겁니다. 회개하라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돌이킴의 용기에 화답하시고 사랑으로 안아주실 거라는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 될 것이라는 거죠.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훗날에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들을 골라서 하는 거예요. 우상숭배를 하고, 다른 신을 섬기고, 하나님께 형식적인 예배만 드리고 마음은 다른 곳에 가있는 그런 일들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드리는 것을 향해서 다 집어치우라고까지 말씀하신다고요. 너희들의 제사가 나에게 즐거움이 아니라 역겹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예배라고 드리는 그 예배가 하나님께 아무런 기쁨이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왜요? 형식뿐인 예배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일상의 생활에서는 다른 신을 겸해 섬기고, 이 핑계 저 핑계들로 세상과 타협하며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거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행동을 하며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러고서는 하나님 앞에 제사드린다고 그러고 있으니 하나님은 그딴 거 필요 없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게 하시는 거예요. 다른 나라의 침략에 완전히 망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포로로 끌려가게 하시는 거죠. 징계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예배드린다고 나오긴 나오면서 그 마음 가운데는 온갖 세상의 것들로 가득하고, 예배의 자리에 나온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나의 탐심과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저 하나님을 그런 존재로 여겨버리며 사랑의 관계가 아닌 나의 욕심을 채워주기 위한 존재 정도로 여겨버리는 모습을 나타낸다면 하나님은 그 예배 받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의 애인이 나랑 데이트 하고 있으면서 계속 핸드폰만 보고 있는 겁니다. 뭐하나 봤더니 다른 여자랑 하루종일 카톡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모습에 뭐라고 좀 했더니 왜이렇게 쿨하지 못하냐며, 난 어쨌든 널 만나러 너 옆에 있지 않냐며 따지고 있으면 여러분 그거 괜찮으시겠어요? 아니면, 다른 여자 만나러 놀러가 놓고선 난 몸은 여기에 와있지만 내 마음은 너를 향하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그러면 여러분 안심하고 계시겠냐고요.
 하나님이 최고라고 말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시험기간이나 학원이나 학교나 친구와의 약속이나 그런 여러가지 일들로 인해서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예배를 빠지는 모습 속에 하나님이 어떤 마음을 느끼실지 여러분 생각해 보셨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우리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신다는 거예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느끼시는 감정을 우리가 똑같이 느끼도록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 슬픔, 분노, 실망 이런 모든 감정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감정들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인격적인 만남,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아예 대놓고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라고까지 말씀하셨다니까요.

 그러나 참 다행인 것은,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부모가 아이를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회개함으로 나아올 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용납하시고 사랑과 은혜로 안아주실 준비가 되어있으시다는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그들의 터전을 잃고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 그들이 다시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 나아오며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그들과의 사랑의 관계를 다시금 일으시키시는 역사를 나타내시는 거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고, 하나님을 놓치고 살아가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할 때에, 반드시 그것에 따른 어려움이 그 삶 속에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그때에, 바라고 원하옵기는, 그 어려움 가운데 쓰러지고 무너진 채로 있지 마시고 하나님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기억하셨다면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돌아오시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함으로 나아가 보세요. 그렇게 움직일 때에 하나님은 회복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 회복이 어떻게까지 이어질 것인지 9절에서 말씀해주고 있는 거예요.

​9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단순하게 용서해주시고 끝이 아니라는 거예요. 너희의 모든 일에 복을 주시고, 잘되게 하시고, 풍성하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느정도까지요? 여호와께서 너희들의 조상들이 잘되게 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도 그렇게 해주시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더 대박인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5절의 말씀인데요. 5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네 조상들이 차지한 땅으로 돌아오게 하사 네게 다시 그것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네게 선을 행하사 너를 네 조상들보다 더 번성하게 하실 것이며

​ 9절에서는 '너희의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라고 되어있는데 5절에선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를 네 조상들보다 '더' 번성하게 하실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너의 조상들에게 해주신 것처럼 해주시는 것만도 감사한 것인데, '더'의 은혜를 더해주시겠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러한 하나님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더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라고요. 어떻게 했을 때요?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을 때,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더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받아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하나님 진짜 너무 사랑꾼 아닙니까? 이런 사랑꾼이 어디있겠냐고요.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즐길 것 다 즐기다가 죽기 직전에 하나님 믿고 천국 가겠다고. 제일 똑똑한 것처럼 말하는 말이지만 제일 멍청한 말입니다. 두 가지의 멍청함이 묻어있는 말인데요. 첫 번째로는, 언제 죽을지 누가 어떻게 아냐고요. 갑자기 그냥 차에 들이 받아서 죽게 되면 그건 그냥 끝나버리는 겁니다. 두 번째로는, 단순하게 죽음 이후의 천국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분명하게 이 땅에서의 천국과 같은 삶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도 천국을 누릴 수 있다는 거예요. 오늘 말씀에서도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네 조상들보다 더 번성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잖아요. 하나님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삶을 살아갈 때에 이 땅에서 누리는 분명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이 어렵게 느껴지시나요? 뭔가 대단한 사람들만이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으십니까? 아닙니다. 10절의 말씀을 읽어 볼게요.

10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어려운 것도 아니고, 먼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너희 모두 다 누구나 가능하다는 거예요. 할 수 있다는 거죠. 왜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어려움이 있을 때, 고난이 있을 때, 해결되지 않는 문제와 아픔과 고통이 있을 때, 그 때에 무엇으로부터 시작된 것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혹여나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는 않았는지,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시라는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을 기억하시라는 겁니다. 너무나 은혜이고, 너무나 다행인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가 아이의 모든 것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돌이킴은 빠를 수록 좋은 거예요. 회복은 빠를 수록 좋은 것입니다. 회복 이후에 누리게 될 복과 은혜가 너무나 크다는 거예요.

 우리는 누구나 연약한 인간이기에 언제든 쓰러질 수 있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선 안된다는 거예요. 포기하지 마십시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말씀인 겁니다. 내 안에 말씀이 계속해서 살아 있을 때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 말씀이 내 안에 있을 때에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고 회복될 수 있고 다시 발돋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말씀으로 돌이키세요. 말씀에 순종해 보세요.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복에 복을 더 하시고, 은혜 위에 은혜를 더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복과 은혜를 누림으로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함께 '여호와께 돌아가자' 찬양하시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시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겠다는 결단의 고백을 올리며 기도하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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