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도사/설교기록

사명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3-34절)

하엘파파 2025. 11. 5.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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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말씀본문 : 누가복음 12장 13-34절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3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24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26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27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28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말씀제목 : 사명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제가 참 좋아하는 명언들입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어떠한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거예요. 내가 행동한 것에 따라 그것에 대한 열매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살 빼야 되는데' 라고 말하면서 운동은 하지 않고 먹기만 한다면 말하는 것 만큼의 어떠한 기대효과를 얻지 못한다는 거예요. '시험 잘 봐야 되는데' 라고 말하면서 공부는 하지 않고 게임만 하고 있다면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축복을 받고 은혜를 받는 것에 대해서 바라기는 하는데 그에 따른 믿음의 모습, 신앙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저 헛된 기대만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그 사람에게 나타난 놀라운 기적의 일들이 나에게도 나타나길 바란다는 겁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기적에 대해서만 집중을 하지, 그것을 체험한 간증자의 그 신앙의 노력과 헌신에는 집중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거죠.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불 속에라도 뛰어드는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머리카락 하나도 타지 않게 하시는 능력을 보이신다는 겁니다. 다윗의 골리앗과 싸우고자 하는 믿음의 도전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승리할 수 있게 하신다는 거예요.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는 믿음의 결단이 있을 때 그 결단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민족을 살리시는 역사를 일으키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를 맛보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믿음의 모습이 있어야 될 줄 믿습니다. 믿음의 기도와, 믿음의 헌신과, 믿음의 눈물과, 믿음의 생활이 있을 때에, 그 삶의 모습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고 맛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의 본문은 여기 계신 선생님들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말씀일 것입니다.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눠서 보려고 하는데요. 먼저 첫 번째 부분으로 13절에서 15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어떤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유산에 대한 분배를 공평하게 할 수 있도록 자신의 형에게 말씀해주실 것을 요구하는 거죠.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리고 돈은 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우애 좋은 형제가 유산에 대한 문제로 갈등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기대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을 것 같아요. 자신이 아무리 형에게 말해도 형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래도 형이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 혹은 예수님께서 형의 마음을 예수님의 능력으로 바꾸셔서 자신이 원하는 배분의 결과로 만들어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청년은 그런 여러가지 기대를 가지고 예수님께 자신의 문제를 털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한 청년에게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야, 누가 나를 너희 재산 분할하는 거 재판하는 재판장으로 세웠냐? 내가 물건 공평하게 나눠주는 사람이냐?"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나 큰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러가지 기도제목들을 가지고 있죠. 각자 각자의 삶 속에서 어떤 어려움들, 아픔들,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를 합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어떤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큰 특권이 아닐 수 없는 거죠. 우리가 그러한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데에는 기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기대 말예요. 그런데 그 기도제목들이 주님 보시기에 온전한 기도제목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야, 내가 그런 것 때문에 있는 존재냐?"라고 반문하실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지금 어떠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우리의 기도 제목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나의 기대와 다르게 주님께서는 내 기도를 들으시고 눈쌀을 지푸리실 수 있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모든 일에 주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야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 속에 나의 탐욕과 탐심이 있지는 않은가 살펴봐야 한다는 거죠. 주님께서 들으실 때에 기뻐하실만한 기도를 드리며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어서 두 번째 부분이죠. 예수님께서는 16절부터 21절까지 어리석은 부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어떤 한 부자가 소출이 풍성하게 생긴 것 같아요. 그렇게 풍성한 소출을 낸 부자는 생각합니다. '이 많은 곡식을 어떻게 해야할까, 아 그래! 곳간을 더 크게 짓고, 거기에 곡식과 물건을 채워넣자! 그리고 여러 해 쓸 곡식과 물건을 쌓아놓고 남은 여생은 편안하게 놀고 먹으면서 편하게 지내야겠다!' 이것은 비단 이 부자만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 이곳에 계신 여러분들도 이러한 생각을 하실지 모르겠어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없어서 그렇지 할 수만 있다면 평생 놀고 먹을 수 있는 돈 쌓아 놓고 남은 여생 편하게 보내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소망일 거라고요. 그렇게 이 부자는 자신의 성공적인 인생을 위해 기존에 있던 곳간을 헐고 새로운 곳간을 만들고 그 곳간에 열심히 재산을 채워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죠. "야 이 어리석은 인간아, 내가 오늘 밤 너의 생명을 도로 가져가면 네가 쌓아놓은 그 재산은 누구 것이 되겠느냐?"
 17절부터 19절까지 부자가 말하는 내용을 보면 계속해서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인 거예요.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내가 내 영혼에게", 전부 다 '내가'인 겁니다. 나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모습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실제로 이 부자의 삶의 모습을 상상을 해보자고요. 이렇게 마음 먹은 부자는 자신이 살아가는 그 모든 삶의 시간 속에서 열심히 살았을 것입니다. 기존에 있던 곳간을 헐고 새로운 곳간을 짓고, 그 곳간에 자신의 평생을 책임질 재산을 모아넣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했겠냐고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을 착취하기도 하고, 베풀지도 않고, 자기 스스로에게도 아껴가면서 그렇게 돈을 모으고 모으는 겁니다. 악착같이 모으는 거예요. 그렇게 자신의 남은 여생의 평생을 책임질 재산이 어느정도 모아진 어느 시점에, 생각지도 못하게 죽을 병에 걸린 겁니다. 또는 갑작스런 사고를 당하게 돼서 죽게 된 거죠. 그렇게 이 세상에서의 삶을 다하게 되었을 때, 이 부자는 자신의 평생을 바쳐 살아온 그 삶의 일들이 그냥 물거품이 된 것이지 않겠냐는 겁니다. 너무나 헛된 인생을 살아온 것 밖에 안된다는 거예요.

 제가 지난 교사기도회 때도 잠깐 말씀을 드리긴 했었는데, 제가 딱 이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삶을 살아왔거든요. 저의 목표는 '돈 많은 장로님'이 되는 거였다니까요.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던 중에 교통사고를 당한 겁니다. 저는 그때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된 거예요. 우리 보통 목사님들 말씀 전하실 때 이런 말씀들 많이 하시잖아요. "사명이 있는 사람은 절대 죽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는 이 말씀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만, 너무나 많은 인생의 모습들이 있지 않습니까. 야고보는 칼에 죽음을 당하고 베드로는 옥에서 나왔다고 해서 야고보는 남은 사명이 없어서 죽음을 당한 게 아니잖아요. 물론 그 모든 인생의 일들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이지만, 여러가지 죽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 사고를 당하기 전까진 저에게 있어서 죽음은 너무나 먼 미래의 이야기일 것만 같았거든요. 그런데 그 사고를 딱 당하면서 생각 든 것이 이겁니다. '아 나도 언제든 죽을 수 있겠구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중 그 어느 누가 나의 남은 인생을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10년 뒤, 20년 뒤, 혹은 우리 청년 선생님들 같은 경우에 적어도 40년, 50년은 더 살겠지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냐고요.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 가운데 놓여지고 있을텐데 그 사람들이 자신들이 오늘 죽을 것이라고 그 누가 생각을 하고 있겠냐는 겁니다. 그 누구도 보장할 수 없고 장담할 수 없다는 거예요.
 아무튼 그렇게 사고를 당하고 병원에 입원해서 누워있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정말 다행히 살긴 살았는데, 자칫 했다간 죽을 수도 있었던 그 사고 앞에서 내가 죽었다면,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을텐데, 그때 나는 하나님께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 제가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그래도 연봉 얼마까지는 받아봤습니다. 하나님 제가 그래도 이런 차까지는 타봤습니다. 하나님 제가 그래도 회사에서 이런 직급까지는 올라가봤습니다. 하나님 제가 그래도 사업하면서 사장님 소리는 들어봤습니다. 뭐 이런 말 할 것이겠냐고요.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살아왔는데, 내가 오늘 죽게 되었다고 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 뭐 하나 할말이 없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제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된 거예요. 앞으로 내가 남은 인생을 살아갈 때에, 언제 죽어도, 언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어도 그때가서 하나님한테 저 이렇게 살다 왔어요 하면서 조잘조잘 거릴 수 있을만한 인생을 살아봐야겠다 라고 생각을 하고 늦은 나이에 신학공부 하면서 지금 이렇게 사역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계십니까? 이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그저 나만을 위해, 내 인생의 성공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계시진 않으십니까? 혹시나 그런 분이 계시다면,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계셨다면, 빠르게 돌이키시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기 위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계시기 때문에 이렇게 교사로서의 직분을 감당하며 사명을 감당하고 계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맡으신 사명을 잘 감당해 내심으로 이 땅에서의 삶을 다 마치시고 주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에 주님과 기쁨의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귀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세 번째로 22절부터 30절까지를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서 말씀하시는데요. 앞에는 무리들을 향해서 말씀하시다가 22절부터 예수님께서는 그 시선을 제자들로 돌리십니다.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염려요?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거예요.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동고동락을 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 예수님의 행하시는 모든 일들을 봐왔던 자들이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러한 제자들도 그들의 마음 가운데 이러한 걱정과 염려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마음을 다 알고 계신 거예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아마 제자들이 다들 뜨끔했을 거라고요. 왜냐하면 제자들도 자기들끼리 누가 더 크냐 하면서 막 싸웠단 말입니다.
​ 그런데 사실, 제자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걱정과 염려가 될만하기도 했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이들은 다 자신들의 생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자들입니다. 마태같은 경우는 얼마나 잘나갔었냐고요. 당시에 세리였으니 지금으로 따지면 고액 연봉자였습니다. 베드로나 요한 이런 제자들도 마찬가지죠. 자영업자들이잖아요. 가룟 유다 이런 사람들은 정치권하고도 엮여있는 당원이었으니 다들 각자 자리에서 한가닥씩 하는 인물들이라고요.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 나서면서 부터는 자신들의 그 어떤 생활 방식이나 생활 패턴같은 것들이 흐트러지는 겁니다. 사 먹을 수 있는 것도 못 사먹게 되고, 사 입을 수 있는 것도 못 사입게 되는 일들이 생기는 거예요. 그러면서 무슨 생각들을 했겠습니까? '좀만 참자. 곧 있으면 예수님이 왕이 될 것이고, 왕이 되시면 내가 장관 한 자리 정도는 앉게 될테니 그 날을 위해서 투자한다고 생각하자' 뭐 이런 생각하지 않았겠냐고요. 기대도 있는 동시에 근심과 걱정과 염려가 있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거예요. 29절에서 30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구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시잖아요. 그런 것은 세상 사람들이나 구하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는 거예요. 모르시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 것들로 염려하고 근심하기엔 시간이 아깝다는 거예요. 그런 염려와 근심으로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은 그런 것 걱정하는 삶이 아니라는 거예요. 더 나은 가치를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더 나은 가치를 위한 삶이겠습니까?
그것에 대한 대답으로, 마지막 부분이죠. 31절부터 34절까지의 말씀으로 대답하시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가라는 거예요. 너희는 그것을 구하라는 겁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할까,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움직이며 살아가라는 거예요. 굳이, 일부러 제자들에게 시선을 돌려서 말씀하셨다는 것은 오늘 날 예수님을 따르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바로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너희의 구할 것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것들이어야 한다는 거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구할 수 있는 주님의 제자된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알아듣기 쉽게 여러가지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참 믿음이라는 것이 어렵죠. 다 아는데, 무슨 말씀인지 다 알겠는데, 뭔 말인지 알긴 알겠는데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믿음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듣고 머리로 알기만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앞서 서두에 말씀을 드렸었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세상의 일들이나 믿음의 일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행동이 있어야 믿음의 은혜가 나타나는 거예요.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믿음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번주 월요일에 저희 외삼촌이 돌아가셨거든요. 85세의 나이로 소천하게 되셨는데, 목사님이셨습니다. 은퇴하시고 지내시던 중에 간에 문제가 좀 생겨서 병 중에 계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병원은 안들어가시고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주님 만나러 가겠다고 집에서 지내신 거죠. 그래서 추석 연휴 때 어머니께서 외삼촌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니 한번 인사드리러 가자고 하셔서 뵈러 간 겁니다. 가서 뵈었더니 복수가 차서 배가 이렇게 나와있더라고요. 그런데 얼굴은 꽤 좋아보이시는 겁니다. 인사드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오늘이 제일 좋은 날이야" 저는 그 말씀이 그렇게 울림이 되더라고요. 그 병마와 싸우느라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되실텐데 그 입술에서 나오는 고백이 너무 놀라운 겁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하루, 그 오늘이 가장 좋은 날이라는 고백이 어찌나 제 가슴에 깊이 박혔는지 몰라요. 평생을 하나님을 위해 살아오신 분의 고백은 역시 다르구나 라는 것을 느끼는 겁니다.
 그러면서 평생을 그렇게 목회를 해오신 분이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해놓은 게 없어서 아쉽다는 겁니다. 그 말씀에 저희 어머니께서 왜 해놓은 게 없으시냐고, 평생을 교회를 세우고 몸 바쳐서 양들을 이끌어 오시지 않았냐고 그러시면서 위로를 해주시더라고요. 평생을 한 교회를 섬기며 목회를 해오셨음에도 그렇게 주님의 일에 대한 아쉬움이 남으셨나 봅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사를 드리고 돌아왔거든요. 또 지난 주일에는 섬기셨던 교회의 성도님들이 방문하셔서 함께 예배도 드리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고선 다음날인 월요일에 바로 돌아가신 거예요. 마지막으로 그렇게 성도들과 인사를 다 나누시고 주님 품에 안기신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오늘 하루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어떤 하루를 보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기도를 드리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교회에서 너무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고 불평하진 않으셨습니까? 생계가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냐고 현실에 타협하며 살아가고 계시진 않으셨습니까? 이제 할만큼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정도 했으면 열심히 했다고, 그만해도 되겠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아니에요.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쉴 때는 주님 품에 안길 때입니다. 그때까진 열심히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주님과 동역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냐고요. 평생을 목회를 하며 살아갔음에도 더 많은 일들을 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것이 주님의 일일텐데, 우리가 해봐야 얼마나 많은 일을 했다고 주님 앞에서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겠냐고요. 여러분 당장 내일이라도 주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자신 있으시겠습니까?
 우리는 때때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자리에 대한 은혜를 잊고 살 때가 있다고요. 늘 고백하면서도 늘 까먹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선 그 자리, 여러분들이 맡은 사명, 그것은 짐이 아니라 은혜인 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께서 특별히 세워주신 자리잖아요. 주님께서 은혜로 맡겨주신 사명이지 않습니까. 그 자리를 감당하며 겪게 되는 그 아픔과 슬픔, 그 어려움과 고통, 그 인내와 고난의 씨앗이 여러분들의 삶에 뿌려질 때에 반드시 그 씨앗은 아름다운 열매로 맺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공짜가 없으신 분이라고요.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고 싶다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역사와 기적을 체험하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면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며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삶을 살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일들이 가득하지 않겠냐는 는거예요. 그렇게 주님의 은혜가 가득한,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우리 함께 기도하실텐데요. 내게 맡겨주신 그 자리에 대한 은혜를 다시금 기억하며,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나를 주님의 자녀로 삼아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내가 주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제가 주님의 일에 조금이라도 함께할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내가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겠습니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어떠한 일들에서도 주님의 자녀로 서겠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어려운 상황과 환경들로 인하여 포기하고 주저하고 넘어지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믿으며 주님의 자녀된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겠습니다. 이러한 고백으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너진 삶을 회복시키시고 세워주시고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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