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봤자 천국이다

말씀본문 : 사도행전 20장 24절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말씀제목 : 죽어봤자 천국이다
이번 금요일에 홀리윈데이가 진행됐었는데요. 저희 딸 하엘이도 같이 즐길 수 있도록 하려고 데리고 왔었습니다. 중고등부 학생들이 많이 못와서 좀 아쉽긴 했는데 전체적으로 꽤 만족스럽게 보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이상훈 목사님의 말씀이 너무 재밌고 좋았어서 집에와서 하엘이한테 오늘 말씀 너무 좋지 않았냐고 물어봤습니다. 좋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억에 남는 말씀이 뭐가 있냐고 물어봤더니, '유치부 애들 잘한다'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이 남는다고 대답을 하는 겁니다. 그 좋은 말씀들 중에 기억이 남는게 고작 유치부 애들 잘한다는 말씀이 기억이 남는다고 해서 얼마나 씁쓸했는지 몰라요.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냐면, 오늘 말씀 제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꽤나 파격적인 제목입니다. 그래서 또 한편으로 걱정이 되는 것은 너무 파격적인 제목이라서 여러분들이 제목만 기억하게 되면 혹시라도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만한 제목인지라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오해하시지 않도록, 왜 이런 제목이 나오게 된 것인지 말씀을 잘 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행복한 사람들의 축제, 즉 행축데이입니다. 새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을텐데, 단순하게 오늘 하루 새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그것에만 우리가 집중할 것이 아니라, 왜 우리가 전도를 해야 하는 것인지, 왜 우리가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인지, 왜 우리가 행복한 사람들인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가슴에 새겨지게 된다면 그것 또한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날이 된다는 거예요. 아니 어떻게 보면, 내가 열 명을 데리고 왔다고 해도 그것이 그냥 단순하게 오늘 하루만을 위해 아무 의미없이 데리고 왔다가 끝나버리는 것과, 내가 한 명도 데려오지 못했다고 해도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나의 정체성을 깨닫고, 복음의 확신과 능력을 믿게 된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살아갑니다. 내게 주어진 나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단 말이죠.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내 인생을 살아간다고 하지만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를 그 누구도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할지, 언제 가야 할지 내 인생이지만 내 인생의 앞길을 모른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소위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러한 인생을 살아가 보려고 하기도 하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그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말하는 방법들이 나에게 무조건적으로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건 그 사람의 인생에서 성공한 방법이지, 내 인생에서 그 방법이 똑같이 그대로 적용돼서 내 인생을 성공한 인생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화려하고 멋있고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죠. 보통은 돈이 많은 사람들이 그 행복을 누리면서 사는 것처럼 흔히 인식하고는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세요. 돈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그들이 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돈이 많으면 무조건 행복한 삶을 산다는 절대적 기준이 주어지던가요? 아닙니다. 그것이 행복의 절대적 기준이 된다면 돈 많은 사람들은 무조건 다 행복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수많은 돈 많은 사람들도 그들의 괴로움에 못이겨 마약을 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 심지어는 자살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한 모습들을 통해서 우리는 이 사실을 알 수가 있는 거죠. '돈은 행복의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물론 돈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삶을 더 편하게 해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돈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되어버리게 되면 다른 여러가지 인생의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돈 자체가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그 돈을 갖기 위해 잘못된 방법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것입니다.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 도덕적으로 맞지 않는 행위들을 하는 거죠. 자신의 몸까지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고 그저 돈만을 위해 잘못된 선택으로 잘못된 방향을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왜 벌어지는 것이겠냐는 거예요. 내가 나를 모르고, 내 정체성을 모르고, 절대적 가치와 절대적 행복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태어나게 되면 언젠가는 무조건 죽게 됩니다. 모든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이 있고 각자의 삶의 모습이 있고 각자의 생활 방식, 각자의 가치관, 각자의 생각하는 바가 각각 다 다르다 할지라도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동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라는 거예요. 누구나 죽는다는 것입니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노인이든 젊은이든, 사장이든 직원이든, 유명하든 무명하든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거죠. 이 사실에는 그 누구도 반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거예요. 팩트 그 자체인 것입니다. 이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거죠.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어도, 아무리 대단한 권력을 쥐었어도, 아무리 유명하고 아무리 많은 것들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모든 두려움의 근원은 죽음입니다. 귀신이 왜 무섭겠어요? 귀신이 나를 잡아갈까봐 무서운 겁니다. 놀이기구가 왜 무서워요? 혹시라도 잘못되면 죽을까봐 무서운 거잖아요. 밤에 돌아다니는 것이 왜 무섭습니까? 강도나 못된 사람을 만나서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이 왜 무서워요? 물에 빠져 죽을까봐 무서운 겁니다. 모든 두려움의 끝에는 결국 죽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죽음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귀신이 무섭겠어요? 놀이기구 타다가 놀이기구가 고장나는 것이 무섭겠어요? 저 높은 곳에서 추락해서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고 하면 고층에서 밑에를 바라보는 것이 무섭겠냐고요. 인간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죽음의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여러 가지의 두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딱 한 사람만이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거예요.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거예요. 이 사망 권세, 죽음을 이겨낸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있다는 그 소식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기쁜 소식을 얘기한다는 거예요. 굿뉴스, 기쁜 소식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이것만큼 기쁜 소식이 뭐가 있겠냐는 거예요. 모든 두려움과 걱정과 근심의 근원인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면 죽음의 문제로 인해 나오게 되는 모든 문제들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겁니다. 삶의 지속적인 기쁨과 소망을 줄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기쁜 소식은 무엇입니까? 엄마가 최신형 스마트폰으로 바꿔준다는 거, 고사양 컴퓨터 사주는 거,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거, 원하는 직장에 취직하는 거, 내가 짝사랑하는 그 애가 알고보니 그 애도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거, 뭐 그런 것들 기쁜 소식이 될 수 있겠죠. 그런데 그런 기쁜 소식들이 내 인생에 있어서 영원한 기쁜 소식이 되느냐고 물어본다면 여러분들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아닐 겁니다. 왜냐면 여러분들도 이미 그러한 소소한 기쁜 소식들은 어느정도 접해봤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러한 기쁜 소식들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기쁜 소식들이 오래가는지 한번 살펴 보자고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한번 봐보자는 겁니다. 인간에게는 생애주기라는 것이 있죠. 태어나서 유년기를 겪게 되고 유치원을 들어가게 됩니다. 이 때의 기쁜 소식이라 하면 새로운 장난감과 새로운 인형이 기쁜 소식이 되겠죠. 그런데 그 기쁜 소식이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었을 때도 여전히 기쁜 소식이 될까요? 안됩니다. 불과 몇년 정도만 지나도 그 기쁜 소식은 더이상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한다고요. 그리고 중학교 들어갈 때쯤부터 해서는 대학이라는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공통된 교육과정을 받게 됩니다. 이때부터는 공부가 어마어마하게 스트레스로 다가오게 되는 거죠. 지금 여러분들처럼 말예요. 그럼 이때의 기쁜 소식은 무엇이 되겠어요?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쁜 소식이 내 인생을 아무 걱정 없이 기쁘게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줄까요? 아니요. 또다른 걱정과 근심 앞에 놓이게 됩니다. 취업의 문제 앞에 놓이게 되는 거예요. 그럼 이때부터는 무엇이 기쁜 소식이 되겠습니까? 내가 원하는 직장,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기쁜 소식이 되는 겁니다.
어떻게 하다보니 내가 원하는 직장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게 되었어요. 기쁜 소식을 얻게 된 거죠. 그럼 이때부터는 걱정과 근심이 없을까요? 아니요. 마찬가지로 이 기쁜 소식도 내 삶에 넘치는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또다른 문제에 마주하게 돼요. 무슨 문제이겠습니까? 결혼이라는 문제 앞에 놓이게 됩니다. 이때의 기쁜 소식은 무엇이겠어요? 내가 원하는 여러가지 조건의 이성과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 기쁜 소식이 되겠죠. 그렇게 원하는 조건의 이성과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그럼 그 기쁜 소식이 계속 내 인생을 기쁘고 행복하게만 만들어줄까요? 결혼해 보신 선생님들 어떠세요? 너무 막 하루하루가 행복해서 미칠 것 같으신가요? 물론 당연히 행복하긴 하지만, 또다른 문제들이 생기게 된다고요. 이제부턴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자식에 대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자녀 양육에 대한 걱정들이 생긴다고요. 이때부터 기쁜 소식은 자녀의 잘되는 소식이 기쁜 소식이 됩니다. 자녀가 좋은 대학교를 가게 되었어요. 기쁜 소식이죠. 그런데 그 기쁜 소식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내 자녀가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어요. 기쁜 소식이죠. 그런데 그 기쁜 소식 이후에 여러가지 문제들이 또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의 사이클에서 여러가지 기쁜 소식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 기쁜 소식은 내 인생을 지속적으로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한다는 거예요. 저기까지만 하면, 저거까지만 하면 남은 인생은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것을 위해서 달려가고 달려가는데 잡힐 것 같은 그 행복이 잡힐듯 잡힐듯 챗바퀴 돌다보면 어느새 인생의 시간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 흘러가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의 생애라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 어떻게 괜찮으시겠어요? 남들도 다들 그렇게 사는 인생이니까 나도 뭐 특별날 것 없이 그냥 남들이 말하는 기준에 맞춰서, 그냥 그거에 어떻게든 맞춰보려고 낑낑 거리다 끝나는 그 인생 괜찮으시겠냐고요. 내가 이 땅에 왜 태어나게 되었고 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채 그저 남들 사는대로, 다들 그렇게 사니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그 기준도 아닌 기준에 맞춰보려고 낑낑 거리며 살아가는 인생이 행복한 인생처럼 보이시냐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기쁜 소식을 증거하는 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예수 믿으면 죽음을 이겨내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그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에 자신의 생명도 전혀 아깝지가 않다는 거예요. 실제로 바울은 이제 자신의 생명이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앞에 두게 됩니다. 그 상황 앞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하는 거예요.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천국에 대한 소망, 영원한 삶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두려움의 근원을 이겨낸 자의 모습이라는 거죠.
진정한 복음은 복음 그 자체로 나에게 힘과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기쁜 소식은 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나만 그냥 조용히 혼자 알고 있겠습니까? 물론 그런 분들도 계실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엄마, 나 합격 했대!", "아빠, 나 합격했대!" 그럼 그 소식을 들은 부모님은 그 소식을 듣고 혼자만 알고 계실까요? 아닙니다. 바로 친구들한테 전화 하는 거예요. "어~뭐해? 잘지내지? 아니 그러고보니까 철수 뭐 어디 대학교라고 했지? 아, 거기였구나. 아 종민이? 아니 맨날 공부도 안하고 그래서 걱정했는데 어떻게 서울대를 또 합격했다네 참나.. 하여간 그놈때문에 그동안 맘 고생한 거 생각하면 진짜 어우 말도 못해. 아유 축하는 무슨. 아이 무슨 소리야 철수 그정도 갔으면 그래도 대견한거지. 어 그래. 나중에 밥이나 한번 먹게. 아이 뭐 이런 거 가지고 나보고 쏘라 마라야. 그냥 얼굴이나 보고 그러는거지. 어 그래 또 연락할게." 이 대화가 무한반복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진짜 기쁜 소식을 접한 사람은, 그 기쁜 소식이 내 것이 된 사람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오셨습니다. 모든 인간이 기뻐할 수밖에 없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어요. 그 기쁜 소식, 진짜 복음을 내 것으로 받은 사람은 그 기쁜 소식이 나의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 다른 사람의 기쁜 소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 기쁜 소식이 하나도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 모두에게 이 기쁜 소식이 나의 기쁜 소식으로 전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예수만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터무니 없다고 말이죠. 자신이 볼 땐 예수 믿는 사람들보다 내가 더 나은 것 같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보다 내가 더 선행을 많이 베푼 것 같은데 예수를 믿어야지만 천국에 간다는 그 너무나 간단한 방법처럼 느껴지는 방법에 화가 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믿지 못하겠다고 하기도 하죠. 이런 겁니다. 여러분들이 놀이기구를 타러 놀이공원에 간 거예요. 손목에 찬 자유이용권 팔찌만 있으면 어떤 놀이기구든 탈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돈이 많아서 자유이용권을 끊지 않고 그냥 현금을 들고 다니는 거죠. 그리고 놀이기구 앞에 직원에게 말하는 겁니다. 현금 줄테니 타게 해달라고 말이죠. 그때 놀이기구 앞에 있는 직원은 뭐라고 하겠습니까? 매표소에 가서 표를 사서 와야 된다고 말하겠죠. 그 말을 듣고 다시 얘기하는 거예요. 어차피 매표소에서 만원인데 나는 매표소까지 가기 귀찮고 그런거 잘모르겠고 하니 그냥 현금을 줄테니 태워달라고 말이죠. 그럼 직원은 뭐라고 하겠습니까? "죄송하지만 표가 없으면 입장이 불가합니다" 라고 할 것입니다.
천국을 들어가는 방법도, 영생을 얻는 방법도 이와 같다는 거예요. 내가 볼 때 이게 더 맞는 방법인 것 같고, 내가 볼 땐 이게 더 나은 것 같다 할지라도 그것을 세운 주인의 규칙과 방법에 어긋나면, 내 생각의 방법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겁니다. 이 세상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을 예수를 믿기만 하면 들어갈 수 있다고 기준을 세웠기 때문에 그 방법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된다는 거예요. 내가 잘나서가 아니고, 내가 어떤 자격이 되서가 아니고, 내가 뭔가를 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은 그 믿음 하나로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고 말씀하신 그것이 얼마나 감사하냐는 거예요. 너무나 간단하고 명확한 방법을 주신 그 사실이 믿는 자들에게 너무나 은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알기 때문에 다른 이들도 이 은혜를 깨닫고 세상이 주는 허무한 행복이 아닌,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행복의 방법을 알려주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전도라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자유이용권이 있어야, 그 티켓이 있어야 놀이기구에 입장을 할 수 있듯이, 천국은 예수를 믿는 그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이땅에 태어난 목적을 알고, 계획을 알고, 끝을 알고,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때에 한치 앞을 모르는 인생길에 있음에도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거예요. 내 인생은 내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이끌어가시는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삶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두려움의 근원인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에 삶의 순간들 속에서 행복을 누리며 자신감 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거예요. 모든 인간에게 두려움이 되는 그 죽음 앞에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 사도의 고백과 같이, 죽어봤자 영원한 천국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에 삶에 대한 자신감과 감사와 은혜를 가지고 그 삶의 발걸음을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이 있었기에, '죽어봤자 천국이다'라고 고백하며 흔들림 없이 당당하게 그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내 인생의 사명을 붙잡을 때, 세상의 허무함과 두려움을 이기고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그 기쁜 소식이 여러분들의 기쁜 소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 인생 가운데에 그 기쁜 소식이 임하게 되었을 때, 우리의 삶의 방향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세상이 속이고 있는 행복의 기준 아닌 기준에 맞추려 허우적 거리는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이땅에 나를 태어나게 하신 창조자의 목적을 알고 내 인생을 책임지시는 참된 주인의 인도함을 믿으며 기대함을 가지고 기쁨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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