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도사/설교기록

은혜에 감사로 즐거워하라 (신명기 16장 13-17절)

하엘파파 2025. 12. 1.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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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에 감사로 즐거워하라

 

말씀본문 : 신명기 16장 13-17절

13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말씀제목 : 은혜에 감사로 즐거워하라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리는 날인 거예요. 물론 아직 2025년도가 다 지나간 것은 아니지만 한 해의 마무리를 앞에 두고 이 수확의 계절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억하자는 겁니다. 저도 말씀을 준비하면서 지난 한 해를 돌아봤습니다. 광은교회에 부임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일 년이 다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새삼 시간이 참 빠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어색하기만 했던 이 공간과 그 시간들이 이제는 내 집같은 편안함으로 바뀌게 된 것을 스스로도 체감을 하는 것입니다. 오자마자 적응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바로 동계 수련회를 붙잡혀 갔던 것부터 시작해서 정신없이 순식간에 일 년이 훅 지나가 버린 것 같은데요. 사랑이 넘치는 선생님들과 사랑스러운 여러분들을 만난 것 자체가 참 은혜임을 고백하게 되는 겁니다.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여러분들과 조금 더 친해지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기도 하는데요. 이 아쉬움을 더해서 앞으로 다가올 한 해 동안 좀 더 친해지고 사랑의 교제를 나눠볼 수 있기를 소망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2025년 한 해가 어떠셨나요? 감사한 일들이 많았습니까, 힘들고 괴로운 일들이 많았습니까? 각자마다 여러가지 상황과 환경들 속에서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내며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었겠지만 그 모든 일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음을 돌아볼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혹시라도, 감사한 일들 보다는 괴롭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에게 여러분들보다 조금 더 살아본 인생의 선배로서 감히 말씀드려 본다면, 당시의 상황에서는 참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이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난 뒤에 그 시간들을 돌아보면, 그 힘든 시간들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계셨음을 보게 되더라는 겁니다. 물론 그 순간에는 그러한 것들이 바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때로는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지 않으시는 것 같고, 하나님께서 내 상황을 모르시는 것 같고, 하나님께서 나를 외면하시는 것 같은 때도 있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시간들 속에서도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니 모든 아픔과 괴로움과 어려움의 시간들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늘 기도해 보십시오. 언젠가 분명히 그 시간들을 돌아볼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음을 느끼게 되실 줄 믿습니다.

 그와 반면, 감사한 일들이 많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더 감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 분들은 더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내 삶에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그 은혜를 누리고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감사는 감사를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를 하면 할 수록 감사한 일들이 더욱 풍성해진다는 거예요.

​ 지난 목요일, 수능 날이었죠. 수험생들을 위한 기도회가 아침부터 진행 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시진 못하셨지만 그래도 몇 분의 성도님들이 오셔서 수험생들을 위해 기도를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제가 그날 찬영이 어머니를 처음으로 좀 뵙게 된 거예요. 그래서 인사를 드리면서 찬영이는 저도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고 뿌듯한데 부모님은 얼마나 더 그러시겠냐고, 너무 부럽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안그래도 받은 게 많은데 너무 많은 것들을 주셔가지고 그저 감사할 따름이에요"라고 말씀을 하시는 거죠. 그 감사의 고백 속에 얼마나 진실한 감사가 느껴지던지, 제가 하나님이라면 정말 뭐라도 더 얹어주고 싶을 것 같은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를 생활화 해보십시오.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려고 해보세요. 그렇게 감사함으로 나아갈 때에 여러분들의 감사 위에 하나님께서 감사할 일들을 더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나눌 말씀은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가나안 땅의 입성을 앞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는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말해주는 것이 바로 신명기의 말씀인 거예요. 너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어떻게 행하셨는지, 너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금 강조하며 기틀을 다지는 말씀이라는 겁니다.

 단순하게 그 땅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 땅을 정복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가나안 땅을 주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에 분명하게 주실 것이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그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 라는 거죠.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결혼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혼생활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가나안 땅에는 이방 민족들이 살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땅에는 그들의 잘못된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들을 저지르고 있던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복 전쟁을 명하신 겁니다. 그들을 내쫓고, 그들의 문화를 없애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땅으로 바꿔내라는 거예요.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에 물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으로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너희가 어느 곳에 가든지, 어느 곳에 있든지, 세상 문화에 물들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갈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하나님의 참된 백성의 모습으로 이겨내라는 거예요.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그들을 정복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된 모습으로 네가 선 곳을 바꿔내라는 거죠.​

 특히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제사와 절기가 강조되며, 오늘날 이 시대에 추수감사절의 중요한 정신적 뿌리를 제공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사명을 감당하고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풍성한 소출과 복을 약속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그 복을 받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기뻐하고 기념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13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령하신 이 초막절이라는 것은 우리 달력으로 따지면 보통 9월에서 10월 정도의 때를 말하는 것인데, 수확이 이루어지는 때를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레 동안이라는 것은 일주일을 얘기하는 것인데, 소출을 거두고 난 뒤에 일주일 동안 초막절을 지키라는 겁니다.

 여러분, 기념일은 왜 지키는 걸까요? 그날을 기념하면서 기억을 하기 위함인 겁니다. 우리가 기념하는 여러가지 것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누구나 다 기념하고 챙기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네, 생일이죠. 다른 건 몰라도 생일은 꼭 챙긴단 말예요. 내 애인이 내 생일을 안챙겨줬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별 사유 아닙니까? 헤어져야 되는 거예요. 제가 저희 집사람의 생일에 생일을 깜빡했다? 어우, 저는 상상도 못합니다. 생일, 결혼기념일, 무슨 데이 이런 것들을 챙기는 이유가 뭐냐는 거예요. 기억과 의미,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들을 잊게 된단 말이죠. 그래서 그 기억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기념일을 통해 계속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초막절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다가 나오게 돼서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살아가던 그 때를 기억하라는 거예요. 즉, 애굽에서 살아가던 그 집을 떠나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텐트 치고 생활했던 것을 기념하라는 것입니다. 비록 아무것도 없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초막에서 지내는 삶을 살았지만, 그 가운데서 모든 것을 채우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서 소출을 얻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거죠. 광야 가운데서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도 이른 비와 늦은 비로 소출을 얻게 하시도록 계속해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초막절에는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시는지 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 절기를 지킬 때는 혼자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와 노비와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모두가 함께 즐거워하라는 거예요. 이 절기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공동체적 정체성을 다시금 새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객과 고아와 과부가 모두 함께라는 말씀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가장 어려웠던, 가장 약한 계층을 말하는 건데요. 객은 나그네를 말하는 것인데, 그들은 땅이 없어 소작농도 될 수 없었고, 고아와 과부는 남편이나 아버지의 보호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초막절을 지키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아무것도 없이 나그네였을 때, 하나님께서 돌보셨던 것을 기억하게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명령하시는 거죠. 너희가 지금 누리는 풍성한 소출과 복은 너희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니, 그 복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과 나누라는 겁니다. 초막절은 단지 기억의 절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백성들이 축복의 통로로서의 사명을 행하는 절기가 된다는 거예요. 이어서 15절을 보겠습니다.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절기를 지키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왜 이 교회에 나와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겠습니까? 코로나 때처럼 그냥 집에서 유튜브로 방송 틀어놓고 방송 보면서 찬양하고 말씀 들으면서 예배 드렸다고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온라인 예배라고 해서 혼자서 조용히 하나님 믿고 기도하고 찬양 듣고 부르면서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는 거잖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교회라는 공간에 모여서 함께 예배를 하는 것이겠냐는 겁니다. 물론 개인의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교회는 공동체 안에서 즐거움과 위로와 회복을 누릴 수 있다는 거예요. 사도행전 2장 46절을 잠깐 보겠습니다.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 초대교회 당시에 왜 사람들이 그렇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함께 모여서 예배하려고 한 것이었겠습니까? 모일 때 힘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모일 때 위로를 얻고 모일 때 기쁨을 얻는 거예요. 그것이 공동체가 가진 힘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 기뻐해주고, 위로해주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는 거죠. 또 히브리서 10장 25절의 말씀을 새번역 성경 버전으로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25 어떤 사람들의 습관처럼, 우리는 모이기를 그만하지 말고, 서로 격려하여 그 날이 가까워 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입시다.

​ 모이기를 폐하지 말고, 모이기에 힘쓰라는 거예요. 함께 모일 때에 그 안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누구도 차별없이 다 모여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함께 즐거워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기에 우리는 함께 모여서 찬양하고 기도하며 예배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이기에 힘쓰시기를 축복합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조금 힘들더라도, 주일만큼은 교회에 나와서 믿음의 형제 자매된 이들끼리 서로 얼굴을 보며 응원하고, 또 일주일을 살아나갈 힘을 말씀을 통해 충전하고 그 삶의 발걸음을 내딛어 보자고요. 여러분들이 이 시간 아니면 언제 이렇게 마음껏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 들을 시간들이 있겠습니까. 여러분들 학교에서 교회 다니는 친구들 별로 만나지 못하잖아요.

 사람은 자신과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학교에서 나만 교회 다닌다고 하면 뭔가 좀 소외감 같은 거 들고 그러지 않으세요? 30명 있는 곳에서 29명은 이쪽에 있는데 나만 저쪽에 있다고 하면 뭔가 위축되고 그런단 말입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있으면 그런 게 없는 거죠. 보세요 여러분, 우리끼리 있는 이 공간에서는 신나는 찬양할 때 뛰면서 박수치자고 하면 뭔가 막 어색하잖아요. 그런데 수련회 가면 어떻습니까? 그 안에서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뛰면서 박수치고 그러고 있으니까 전혀 어색함 없이 나도 막 힘이 나서 뛰면서 박수치고 그러면서 찬양하잖아요. 그만큼 그 공동체 안에서의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일주일 가운데 믿음의 나눔을 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으면 참 좋겠지만, 그러한 공동체가 없다면 교회 안에서밖에 누릴 수가 없다는 거잖아요.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믿음 안에서, 예배를 통하여 서로가 함께 은혜를 누리고 즐거워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어서 16절과 17절을 보겠습니다.

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16절의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시켜 본다면, 예배는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약속된 만남이라는 것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남자들은 무조건 의무적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했던 거예요. 오늘날엔 이동이나 강제성은 없지만 예배의 소중함은 똑같이 강조된다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라는 말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너를 기다리고 계신다"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네가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나오라고 말씀하십니까? 빈손으로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따라 하나님 앞에 예물을 준비하라는 거예요.

 이 말씀을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예물이 필요해서가 아니에요. 이 세상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이 뭐가 필요하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물을 원하시겠냐는 겁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그냥 하나님께서 만드시면 돼요. 못하실 게 없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겠어요? 하나님을 생각하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보고 싶으신 겁니다.
  
 얼마전에 하엘이하고 TV를 보고 있었어요.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TV에서 나오는 어떤 장면을 보다가 제가 하엘이한테 이랬거든요. "저거봐 하엘아, 돈이 다가 아니야. 돈이 조금 없어도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닌 거야"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하엘이가 이러는 겁니다. "우리집은 조금 없는 게 아니라서 그래" 얘가 그냥 생각없이 농담으로 한 건지, 아니면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서 말한 건지 모르겠는데, 와 진짜 제 딸 아이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걸 들으니까 순간적으로 확 올라오는 거예요. 철 없는 아이의 입에서 헛튀어 나온 말일 수 있겠는데 그 순간에 제가 너무 화가 나는 겁니다. 그래서 하엘이한테 막 화를 낸 거죠. "야, 너가 뭘 그렇게 없이 살았다고 그따위 말을 해? 엄마 아빠가 너한테 못 해준 게 뭐가 있다고 그런 말이 나오냐고. 너 친구들 중에 핸드폰 플립 가진 애 있어? 생일파티 때 10만원 넘는 케이크로 생일 케이크 했던 애 있어?" 이러면서 막 그동안 하엘이한테 해줬던 것들을 조금 치사스럽지만 쫙 나열을 하면서 혼을 낸 거예요.

 애 엄마는 설거지를 하느라고 앞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채 제가 아이한테 막 화내는 소리를 듣고선 저보고 애한테 좋게 좀 얘기하라고 말을 한 겁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내가 좋게 얘기하게 생겼냐고, 얘가 뭐라고 했는 줄 아냐고 그러면서 앞에 있었던 얘기를 딱 했더니, 애 엄마가 그 얘기를 듣고선 저보다 더 애한테 화를 내는 거예요. 너 지금 그게 아빠한테 할 소리냐면서, 너 그렇게 엄마 아빠가 창피하고 우리집이 창피하면 할아버지네 가서 살으라고, 엄마 아빠가 너한테 뭘 그렇게 못해줬다고 그런 소리를 들어야겠냐고 그러면서 저보다 더 화를 내는 겁니다.

​ 와 그런데 이게 진짜 부모 입장에서 너무 서운한 거예요. 물론 우리집이 막 부자처럼 잘 사는 집은 아니고, 남들한테 막 자랑할만큼의 환경이 아닌 건 맞는데, 그렇다고 해서 애한테 못해준 건 없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어릴 때부터 그 비싼 영어학원도 보내주고, 닌텐도도 사주고, 하엘이 또래 아이들은 다 키즈폰 들고 다닐 때 저는 제가 쓰던 아이폰 쓰게 해주고 그랬단 말예요. 장난감이나 인형 사줄 때도 여러분 혹시 실바니안이라고 아십니까? 이게 엄청 비싼 장난감 인형인데 그런 것도 다 사줬단 말예요. 그리고 티니핑 아시죠? 이게 부모님들 사이에서 뭐라고 불리는지 아십니까? '파산핑', '등골핑' 이라고 불리는 장난감입니다. 캐릭터가 하도 많고 금액도 어마무시해서 아이가 그거 모으는 취미 생기는 순간 그냥 바로 돈 새는 지름길이란 말예요. 그런데 이런 걸 다 누린 게 바로 저희 딸 김하엘이란 생명체입니다.

​ 엄마 아빠는 재정이 어려워서 긴축정책이 들어가도 딸 아이에게만큼은 부족함 없도록, 또래 아이들보다 서운하지 않게 하려고 다 해줬는데 아이 입에서 그런 말을 듣게 되니까 말 그대로 현타가 씨게 오는 겁니다. 너무 서운한 거예요. 제가 진짜 아이한테 그 얘길 듣고선 분노가 터지다 못해 그냥 막 삶의 의욕이 사라지고 도피잠이 몰려오더라니까요. 하나님의 마음도 이런 것 같습니다. 내 자녀가 자신이 받은 은혜를 알지 못하고서 불평과 불만을 늘어트리고 은혜에 감사하지 않으면 서운하고 섭섭하다 못해 괘씸하고 화가 나는 것 아니겠냐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할 때 하나님이 왜 그들을 치셨는지 이해가 확 되더라니까요.​

 지난 주에는 교회에서 쿠키를 만들었나 봅니다. 그 몇개 안되는 쿠키를 만들고선 엄마 아빠를 주겠다고 굳이 굳이 포장을 해서 가지고 온 거예요. 저는 주일에 모든 스케줄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보통 저녁 아홉시 정도가 되는데, 그 시간까지 그 쿠키를 고이 모시고 있는 겁니다. 제가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이는 할아버지 집에 있다가, 엄마랑 있다가, 저를 만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오기 전에 수많은 방해가 있었던 거예요. 할머니는 그거 뭐 아빠를 주겠다고 그러고 있냐고 그냥 너 먹으라고도 하고, 엄마는 너무 맛있는데 아빠 주지 말고 그냥 엄마가 먹으면 안되냐고 하기도 했지만 그 모든 방해를 이겨내고 아빠에게 전해주는 그 스토리를 듣고서 그 쿠키를 받았을 때 아빠의 마음이 어떨 것 같으신가요? 너무너무 감동을 받는 겁니다. 겨우 그 쿠키 하나에 큰 감동을 받는다고요.​

 부모는 아이에게 크게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부모에게 있어서 자녀는 기능을 위해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거예요. 사랑을 위해 존재하는 존재인 겁니다. 사랑의 관계로 이어지는 관계라는 거죠. 이 사랑의 관계 속에서는 서로를 향한 감사의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있는 거예요. 내 아이가 나한테 뭔가 대단한 것을 주길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부모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보고 싶은 거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뭘 드린다고 드려봐야 얼마나 대단한 것을 드릴 수 있겠냐는 거예요. 다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그 마음을 받고 싶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러분들의 마음,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여러분들의 마음, 부족하고 보잘 것 없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하는 그 마음을 하나님은 너무나 기쁘게 받으신다는 거죠.

 뭔가가 필요해서 뭔가를 바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의 신들과 같이, 나의 어떠한 잘됨을 위하여, 나의 어떤 바람을 위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기브 앤 테이크로 그 신에게 뭔가를 바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순서 자체가 다른 겁니다. 내게 주심에 감사해서 하나님께 드린다는 거예요. 나에게 주신 것들이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께 나도 뭐라도 드리고 싶은 사랑의 마음으로 드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해주길 바라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기를 바라신다는 거예요. 그 사랑의 관계를 지속하고 싶으신 거죠. 나의 사랑하는 자녀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싶다는 것입니다.

​ 항상 말씀드렸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복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분이세요. 세상이 말하는 행복, 세상이 보여주는 행복이 아닌,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누리는 진짜 행복을 말이죠. 하나님의 백성됨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행복 말예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예배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거예요. 감사는 내가 가진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기억할 때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최고의 선물을 드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최고의 선물을 드려 보세요. 그때에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고 드리는 여러분들도 즐거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나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모든 것들에 감사해 보세요. 우리는 감사를 회복해야 됩니다. 감사가 회복될 때 우리 안에 즐거움이 넘칠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에 당연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며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를 시작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나님께 감사의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수많은 감사의 제목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 보여질 줄로 믿습니다.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시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갈 때에, 은혜에 은혜를 더하시고 복에 복을 더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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