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도사/설교기록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워 (누가복음 2장 41-52절)

하엘파파 2025. 12. 2.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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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워

 

말씀본문 : 누가복음 2장 41-52절

41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48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말씀제목 :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워

 

 오늘 말씀의 제목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노래의 한 구절이죠. 라고 오프닝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우리 선생님들에게는 해당사항이 되겠지만, 여러분들한테는 아닐 것 같은 거예요. 김종국이라는 가수의 사랑스러워 라는 노래인데, 2005년도에 나온 노래인 겁니다. 20년전 노래죠. 여러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나왔던 노래라서 '아, 이건 시청각 자료가 필요하겠다'라고 생각이 들어가지고 영상을 좀 준비해 봤습니다. 영상을 먼저 보실게요.​


 옛날 노래긴 하지만 제가 이 영상을 찾으면서 보니까 챌린지도 하고 그래서 요즘 학생들도 많이 익숙하게 들었을 것 같긴 하더라고요. 영상 속에 나온 아이가 너무 귀엽게 나와가지고 정말 사랑스러움이 더해지는 영상으로 다들 보셨을 것 같습니다. 가사를 보면 이렇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워, 네가 나의 여자라는 게 자랑스러워, 기다림이 즐겁고 이젠 공기마저 달콤해, 이렇게 너를 사랑해"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사랑스러울 때 이런 감정이 올라온다는 거예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운 겁니다. 자랑스러운 거예요. 기다림도 지루하지 않고 그저 즐거운 거죠. 그냥 숨 쉬는 공기 마저도 너무 좋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이렇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열두 살때의 일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년 유월절 절기가 되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며 그 절기를 지내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추석이 되면 고향에 가서 명절을 보내는 모습이 있는 것과 같이, 이 유월절이라는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명절인 거예요. 말 그대로 민족 대 명절인 겁니다.

 여기서 잠깐 질문을 드려볼까요? 유월절이 무슨 날인지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해왔었죠. 노예들이었어요. 그렇게 노예로 살아가던 이들을 누구를 통해서 해방 시켰습니까? 네,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로부터 해방 됐습니다. 그 노예로부터의 해방되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애굽에 열 가지의 재앙이 닥치게 되었는데, 그중에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이었던 장자재앙이 있었죠. 가축이든 사람이든 첫 번째로 태어난 생명은 다 죽게 되는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어요. 무엇입니까? 네,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로 문설주와 문지방에 발라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피를 발라두면 죽음의 천사가 그 집에 도착했을 때 어린 양의 피를 보고 그 집을 넘어가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넘어갔다라는 뜻의 유월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입니다. 영어로 passover라고 하는데 넘어간다는 뜻의 pass와 위에/넘어서 라는 뜻의 over가 합쳐져서 passover, 재앙을 넘어갔다고 해서 유월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이 마지막 재앙을 끝으로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탈출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유월절이라는 것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다시금 새기게 되는 아주 중요한 날이었던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민족이다'라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민족성을 되새기는 날인 겁니다. 이렇게 중요한 절기이다 보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유월절 절기가 되면 자신들이 지내고 있던 곳에서 꼭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오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거죠. 그러니 당연히 예수님의 가족들도 이스라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원래 살고있던 나사렛이란 동네에서 이곳 예루살렘으로 온 것입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예수님의 부모님인 요셉과 마리아가 봤더니 예수님이 없어진 거예요. 여기 저기 아는 사람들한테 다 물어보면서 찾는데 다들 모르는 겁니다. 부모 입장에서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아마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 상상이 안되실 거예요. 저도 부모가 되어보고 나니까 부모의 마음을 좀 알 것 같은데, 내 아이가 그 사람 많은 곳에서 없어졌다고 생각해 보면 심장이 철렁하는 거죠.

 제 핸드폰에는 아이의 폰하고 연동을 좀 시켜놨거든요. 아이의 스마트폰 사용을 관리하기 위해서 해놓은 건데, 이 어플로 시간을 제한할 수도 있고, 새로운 어플 설치같은 것들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까지도 알 수 있는 거예요. 어느날 아이가 학원 끝나고 할머니 집 앞에 놀이터에서 친구들하고 놀고 있다길래 제가 들러서 집으로 데려가려고 갔는데 놀이터에 아이가 없는 겁니다. 위치 추적을 봤는데 위치에는 놀이터에 있는 것으로 나오는 거예요. 전화를 하는데 전화는 안받고 위치는 놀이터로 나오는데 아이는 없는 겁니다. 진짜 별의 별 상상이 다 되기 시작하는 거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찾는데 없는 거예요. 어디 있었는지 아십니까? 할머니 집에 들어가 있었던 겁니다. 전화를 왜 안받냐고 했더니 대수롭지 않게 무음이어서 몰랐다고 하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요셉과 마리아도 얼마나 심장이 철렁 했겠냐고요. 그렇게 여기 저기 찾으면서 가보니 예수님이 어디에 계셨습니까? 46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찾은 거예요. 사흘 후면 3일을 얘기하는 것인데, 이게 그냥 텍스트로만 보니까 '아 3일 후에 성전에서 만났구나'라고 생각하고 보는 거지, 내 아이가 사라지고 3일이 지났다고 생각해 보면 이건 진짜 끔찍한 겁니다. 찾았으니 다행이긴 한데, 그 3일동안 요셉과 마리아는 정말 앞이 캄캄했을 거라고요. 내 아이와 함께 에버랜드에 놀러갔는데 아이가 사라지고 못찾은 채로 3일이 지났다고 생각해 보면 이건 진짜 상상도 못하겠는 마음인 겁니다. 제가 딸 아이 놀이터에서 30분 찾으면서 다닌 그 마음도 얼마나 심장이 쫄렸는데 3일동안을 아이를 찾아 다녔다는 것은 진짜 상상도 못한다고요.

 아무튼 그렇게 성전에 가보니 그곳에서 다른 어른들과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아들을 봤을 때 요셉과 마리아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다행이기도 하면서도 화가 나기도 하면서도 안도하기도 하면서도 온갖 감정이 올라왔을 겁니다. 보이자마자 막 달려갔을 거 아녜요. 마리아는 막 울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을 찾은 요셉과 마리아는 아이에게 막 호통을 쳤겠죠. 48절을 보겠습니다.

48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너 이놈의 자식,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봐라! 네 아버지와 엄마가 너를 찾으려고 얼마나 걱정하고 고생했는지 아니?!" 이러면서 막 아들을 다그치는 겁니다. 너무나 당연한 모습인 거죠. 찾아서 너무 다행이기는 한데, 막상 이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기서 어떤 똑똑해 보이는 선생님들하고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너무나 평온하게 있으니까 오히려 막 화도 나고 그랬을 것 같아요. 저도 딸내미 때문에 저는 막 찾느라고 뛰어다니면서 고생하고 그랬는데 막상 이녀석은 할머니 집에서 누워가지고 평온하게 만화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까 화가 나더라니까요? 아마 요셉과 마리아도 그런 기분이었을 것 같습니다. 더한 기분이었겠죠. 이러한 부모의 모습에 열두 살 예수님의 대답을 한번 보겠습니다. 49절입니다.

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오히려 예수님은 어리둥절 하는 거죠.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것을 몰랐냐는 겁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 아빠를 잘 따라오지 않고 혼자 떨어져서 다른 곳에서 태연하게 있는 것이 너무 황당하고 기가막힐 노릇이겠지만,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는 거예요. 왜 나를 다른 곳에서 찾느라 고생했냐는 거죠. 아까도 제가 저희 딸 얘기를 계속했는데, 아빠는 이 아이를 찾느라 너무 고생했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아빠가 자기한테 화내는 게 이해가 안되는 겁니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애들하고 헤어졌으면 당연히 할머니 집에 있는 거예요. 예수님은 가장 안전한 집, 진짜 자신의 집에서 평안을 누리고 있었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집은 어디입니까. 물론 우리가 일주일 중에 6일 동안은 세상에서 지내고 단 하루만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집이 세상인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들 집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습니까, 밖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습니까? 잠자는 시간을 빼면 밖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훨씬 많잖아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바깥이 나의 집은 아니라는 겁니다. 집에서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바깥에 나가서 내가 해야할 활동들을 한다고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진짜 집은 예배의 장소인 거예요. 예배의 처소에서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곳에서 삶의 일들을 해나가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안식을 예배의 처소에서 누리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어서 51절을 보겠습니다.

51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 어찌저찌 예수님을 찾게 되고, 예수님도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왔던 곳으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순종하며 살았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을 위해 지은 건물이었어요. 예수님은 얼마든지 그곳에서 계속 계실 수 있었고, 그러실 수 있는 분이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셨다는 거예요.

​ 가끔 뉴스같은 것들을 보다보면 사이비, 이단 집단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전 재산을 다 팔고, 가족들도 다 버리고 그 집단에 다 갖다바치게 하는 거죠. 그리고 그곳에서 같이 숙식을 하며 지내게 합니다. 이거 아니라는 거예요. 앞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는 집이 있지만 집에서 모든 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가서 내게 주어진 일들을 감당한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우리는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배의 자리가 좋다고 해도 내가 해야할 것들을 하지 않고 교회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보내신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르신 곳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또 오해해서 예배를 소홀히 하시면 안됩니다. 집에서 잠을 푹 자고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다음날 또 힘차게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서 예배를 통하여 충분한 영혼의 안식을 취해야 일상의 삶 속에서 믿음의 삶을 살아낼 수가 있다는 것이니 예배를 소홀히 하지 마시고 충분한 쉼을 누리고 삶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52절을 보겠습니다.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님께서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균형을 볼 수가 있어요. 예수님께서는 육체의 성장뿐만이 아닌 지혜의 성장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혜의 성장이 무엇이겠습니까? 삶의 모든 일들 속에서 배우려 하고, 허투로 보내지 않고, 성실한 모습을 보였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공생애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직업이 뭐였습니까? 네, 목수였습니다. 나무를 베고, 깎고, 다듬으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을 것이고, 제작의뢰를 받기도 했을 것이며, 고객들의 컴플레인을 상대하기도 했겠죠. 그러한 모든 삶의 일들 속에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셨다는 거예요. 그리고 나아가 하나님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사랑스러운 자로 성장해 가셨다는 것입니다.

​ 가끔 보면 하나님께는 사랑스러울 것 같긴 한데, 사람들한테는 아닐 것 같은 사람들이 있어요. 또 어떤 분들을 보면 사람들한테는 사랑스러울 것 같은데, 하나님께는 아닐 것 같은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워 가셨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삶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운 자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 안에서 너무 사랑스러운 한 사람 한 사람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여러분들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그 소중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바 되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에게 더 사랑스러워지도록 성장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그러한 성장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 안에 거하며, 내 안식을 누리는 곳이 어딘지를 알고, 내 일상의 삶 속에서 말씀대로 행하는 순종의 삶의 모습이 있을 때에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운 자로 계속해서 성장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송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것이겠죠. 내 안식을 누리는 곳이 어딘지를 안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예배의 처소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진정한 영혼의 안식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내 일상의 삶 속에서 말씀대로 행하는 순종의 모습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말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주변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이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바 된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거예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자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처럼 내 주변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2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거예요.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내게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내게 주어진 비전을 바라보며 성실하게 살아가면서, 도움이 필요한 친구가 있으면 도와주고,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 하고, 보다듬어주며, 사랑의 말들을 건내는 하나님의 자녀된 모습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그 삶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는 자가 되는 것 아니겠냐는 거예요. 이러한 모습을 나타내는 사람을 어떻게 그 주변 사람들이 사랑스럽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사랑스럽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냐는 거죠. 오늘 말씀의 제목과 같이, 하나님께서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실 때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럽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친히 우리에게 믿음의 사람으로서의 본을 나타내 보이셨다는 거예요. 우리들 또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백성들로서, 예수님께서 나타내 보이신 이러한 모습을 닮아,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습을 나타냄으로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담당하며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는 귀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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