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도사/설교기록

너, 내 동료가 돼라 (누가복음 5장 1-11절)

하엘파파 2025. 12. 4. 22:38
반응형

너, 내 동료가 돼라

말씀본문 : 누가복음 5장 1-11절

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말씀제목 : 너, 내 동료가 돼라

 

 원피스라는 만화가 있습니다. 워낙에 유명한 만화라서 다들 아실 것 같긴 한데, 루피라는 주인공이 해적이 되어 원피스라는 보물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 만화죠. 이 루피라는 주인공이 처음에는 혼자 배를 타고 모험을 떠나게 되는데 곳곳에서 여러 사건과 인물들을 만나며 항해사, 요리사, 의사 등등 동료들을 모으게 됩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루피가 맘에 드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이 멘트를 던지는 거죠. "너, 내 동료가 돼라!" 그런데 막상 이 동료들이 하나같이 처음에는 다 탐탁치 않아 하거든요. 그러나 결국엔 다들 루피의 동료가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동료들과 함께 '밀집모자 해적단'이라는 이름으로 점점 이름을 떨치게 되는 거죠.

 루피의 동료들이 처음에는 다들 루피의 동료가 될 생각이 없었다가 나중에 루피의 동료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을 해봤더니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겠더라고요.

 첫 번째로, 일단 루피는 누구를 대하든 조건 없이 신뢰하고, 상대가 어떤 과거를 가졌든 상관하지 않아요. 자신을 배신하거나 첩자로 들어왔던 이들에게조차 끝까지 믿어주는 겁니다. 이러한 무조건적인 신뢰가 동료들의 신뢰를 얻게 만들었던 거죠.

 두 번째로, 루피는 자신의 꿈만이 아닌 동료들의 꿈도 지지해 줍니다. 자신의 꿈은 해적왕이지만 조로는 세계 최강의 검사가 되기 위해, 상디는 올블루라는 요리사의 낙원을 찾기 위해, 나미는 전 세계의 해도를 그리기 위해서 등등 한 배 안에서 각자의 꿈을 이뤄나가는 거예요. 동료가 된다는 것은 서로의 꿈을 함께 이뤄나간다는 약속이 되는 겁니다.
 마지막 세 번째, 결정적인 이유인데요. 위기의 상황에서 루피의 희생과 도움을 얻게 되는 겁니다. 거의 모든 동료들은 도움이 필요한 위기의 순간에 루피와 밀집모자 일당이 자신을 위해 싸워주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거예요. 루피는 늘 동료들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아끼지 않고 온 몸을 던져서라도 동료를 지켜주는 겁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루피의 동료들은 그의 동료가 되기로 결심을 하게 되는 거죠. 자신을 이끌어줄 선장으로 인정하고 함께 하게 되는 겁니다.

 정리해 보면, 루피의 동료들에게 루피는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람', '내 꿈을 지지해주는 사람', '나를 위해 목숨 걸고 싸워주는 사람'이라는 루피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루피의 동료가 될 수 있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러한 루피의 리더십과 그와 함께하는 동료들 각자의 개성 넘치는 모습들에 이 만화가 장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만화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 원피스라는 만화가 처음 연재되기 시작한 연도가 1997년입니다. 30여년간 연재가 되며 사랑받아 온 만화인데요.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이렇게 30년 가까이 인기가 많은 만화보다 더 인기가 많고 장기간 사랑받아 온 스토리가 있습니다. 무려 2천 년동안이나 그 인기가 식지 않고 이어져온 스토리죠. 바로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루피가 말했던 "너, 내 동료가 돼라"의 원조격 이야기가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모으시는 이야기라는 거예요. 그 멋있고도 감동적인 이야기의 시작점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인 것입니다. 1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 공생애 활동을 시작하시면서부터 예수님은 엄청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말씀하시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병든 사람들한테 손 얹으시면 병든 사람들이 낫고, 귀신을 막 내쫓고 하니까 이런 소문들이 삽시간에 쫙 퍼지기 시작한 거죠. 그러니까 어디에 예수님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리면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막 몰려드는 겁니다. 그렇게 유명한 예수님이 오늘 게네사렛 호숫가에 나타나신 거예요. 그러니까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몰려온 겁니다.

​ 오늘날 이시대도 마찬가지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옵니다. 누군가는 좋은 말씀을 듣기 위해, 누군가는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해, 누군가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해, 누군가는 어떤 어려움과 괴로움을 해결받기 위해 각자의 생각과 사정을 가지고 교회를 찾아온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무엇을 위해 교회를 나오셨습니까? 그냥 단순하게 습관처럼 일요일은 교회에 가야 하니까 나온 분들도 계실 것이고, 누군가는 부모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교회에서 맡은 일이 있어서, 누군가는 말씀의 양식을 먹기 위해 등등 여러가지 각자의 생각들로 교회를 나오셨겠죠. 어떤 생각이든, 어떤 사정이든 교회를 나온다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일단은 나와야 한다는 거예요. 나와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나와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겁니다. 잘 나오셨어요. 그래도 어쨌든 주님 앞에 나올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보러 나온 이들 속에 한 사람이 등장하게 되는데요. 2절과 3절을 보겠습니다.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 호숫가에 사람들이 몰려오니까 예수님께서 배 두 척 중에 한 배에 올라타시는 거예요. 이 배는 시몬이라는 사람의 배였는데, 2절을 보면 어부들이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뭐냐면 퇴근 준비하고 있다는 거거든요. 셔터 내리려고 하고 있는 중인 거죠. 여러분 혹시 마감 30분 앞둔 카페에 가보셨습니까? 주문을 받을까요, 안 받을까요? 안 받습니다. 왜요? 퇴근해야 되잖아요. 원두 다 빼고 머신기 다 닦고 정리하고 있는데 손님 받으면 퇴근이 늦어지는 겁니다. 정리하는 시간이 또 있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지금 어부들이 그물을 씻고 있다는 것은 이제 이거 다 씻고 집에 가려고 하는 중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마감 중에 있는 시몬이라는 어부의 배에 예수님이 타신 거예요.

 아마 이 시몬이라는 사람도 예수님의 소문을 듣긴 했을 것 같습니다. 워낙 유명하신 분이셨으니 시몬도 별 말 없이 배에 태워준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이 예수라는 인간이 참 귀찮게 하는 거죠. 육지에서 조금 떨어져 달랍니다. 조금 짜증이 나긴 해도 워낙 유명한 사람이니까 해달라는대로 해준 것 같아요.​

 예수님께 배에 올라타셔서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말씀을 전하신 이유가 있었는데, 우선은 확성기 효과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수면 위에서는 소리가 더 멀리 퍼진다고 해요.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보니 육성으로 말씀을 전하시는 것보단 전체가 한번에 들을 수 있는 효과가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말씀을 전하시기 위한 이유가 있었고, 두 번째로는 베드로와의 만남을 위한 포석이었습니다. 이후에 나올 내용에서 나오게 될텐데, 실패를 경험한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시기 위해 일부러 시몬의 배에 올라타셨다는 거예요.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배에 오르셔서 말씀을 전하시는 거예요. 이어서 4절과 5절을 보겠습니다.​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 말씀을 다 마치시더니 배 주인인 시몬에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으라" 여러분, 예수님의 원래 직업이 뭐였습니까? 목수였어요 목수. 베드로는 직업이 뭡니까? 어부예요 어부. 그런데 목수가 어부에게 훈수를 두고 있는 겁니다. 이거 베드로 입장에서는 완전 긁히는 거예요. 아니 연애 한번도 못해본 녀석이 나한테 연애상담 해주고 있는 거랑 뭐가 다르냐고요. 야구 선수가 축구 선수한테 드리블 하는 방법 알려주고 있는 겁니다. 큐브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제가 주환이한테 오른쪽으로 돌려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해보고 싶겠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해보고 싶겠냐고요.

​ 그리고 베드로 입장에서 더 킹받는 건 뭐냐면, 아까 뭐하고 있었다고 했어요? 그물 씻고 있었다고 했잖아요. 그물 씻는 건 뭐 준비하는 거라고 했습니까? 마감 준비하는 거라니까요. 지금 일 마치고 집에 가려고 하고 있었는데 그물을 내리라는 건 장비 다 꺼내서 다시 펼치라는 겁니다. 그런데 진짜 최고로 킹 받는 포인트는 여깁니다.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무슨 말이에요? 밤새 허탕쳤다는 거예요. 여기서 다시, 예수님의 원래 직업은 뭐였다고요? 목수입니다. 시몬은요? 어부예요. 예수님은 전직 목수 출신이고, 베드로는 현역 어부입니다. 그 현역에 있는 전문가가 밤새도록 일했는데 잡은 것이 없었다고요. 정말 최악인 날인 거죠.

 밤새 일했는데 수확은 없지, 허탕치고 집에 가서 쉬려는데 웬 유명인을 보겠다고 사람들은 몰려들었지, 그런데 하필 그 유명인이 내 배에 올라탔지, 밤새 일하고 피곤해 죽겠는데 퇴근도 못하고 늦어졌지, 그래도 여기까진 어떻게 참았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 하다하다 깊은 데에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으라는 훈수를 듣고 있으니 얼마나 짜증이 나겠냐고요. 더 웃긴 건, 물고기는 깊은 데서 잡는 것이 아닙니다. 밤에 얕은 데서 물고기를 잡는 것이 전문적인 내용이라는 거예요. 다시 말하지만, 시몬은 현역 어부입니다. 물고기가 잘 잡히는 포인트를 알고, 물고기 잡는 방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시몬이라는 사람이었다고요. 그런 사람에게 대낮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서 물고기를 잡으라는 말은 얼토당토 않는 말이라는 겁니다. 참 짜증도 나고 화도 나고 그랬을텐데, 베드로는 그래도 어떻게 했습니까? 그물을 내리겠다는 거예요.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요? 베드로의 말 속에 그 힌트가 있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내 경험, 내 생각, 내 상식, 내 방법이 분명히 있지만, 그런 것 다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 믿고 그물을 던져보겠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에 내 생각이 들어가서 실행하지 않으면 기적을 체험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내 생각에는, 내 경험상으로는, 내 상식에서는 말이 안되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 하나 붙잡고 움직이면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과 믿음의 행동이 이어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6절과 7절입니다.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했더니, 밤새 잡아도 잡히지 않았던 고기가 엄청나게 잡히는 겁니다. 어느정도로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잡혔다는 거예요. 두 배에 채웠더니 배가 잠기게 될 정도로 잡혔다는 겁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베드로의 고기 잡는 실력이 좋아서였습니까? 베드로의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얻게 된 결과입니까? 베드로의 기발한 방법 덕분이었습니까? 아니요, 아닙니다. 베드로의 실력, 베드로의 경험, 베드로의 방법 그건 이미 철저하게 실패를 맛봤어요. 이 결과는 오로지 예수님의 말씀대로 했을 때 얻어진 결과라는 것입니다.

 말씀은 들었는데 '에이, 그건 아니야'라고 생각하거나, '에이, 그건 말도 안돼'라고 생각해서 안해 버리면 그 사람은 절대 그 기적을 체험할 수 없는 겁니다. 진짜 믿음은, 말씀하신 대로의 행동이 나올 때 그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죠. 백 날 알아봐야, 백 날 들어봐야, 내 행동에서 믿음의 행동이 시작되지 않으면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것이 진정한 믿음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하면, 말씀대로 했을 때, 말씀대로 해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놀라운 기적의 일들을 체험하게 된다는 거예요. 이러한 믿음의 역사가, 믿음의 기적이, 믿음의 체험을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런데 이후에 시몬의 모습이 좀 이상합니다. 8절을 볼게요.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갑자기 예수님 앞에 엎드리더니 자신을 떠나라는 겁니다. 여러분 이장면 혹시 좀 이해가 되시나요? 밤새 허탕치고 빈 손으로 집에 가게 생겼었는데 예수님 덕분에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물고기가 많이 잡혔으면 이거 대박인 거 아니냐고요. "예수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막 신나서 들떠야 되는 거 아니냔 말입니다.

 베드로는 기적을 체험하며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았던 거예요. 단순한 선생님 정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세요. 5절에서는 예수님을 향해서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8절에서는 "주여"라고 호칭이 아예 바뀌지 않습니까.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이성,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 기적의 현장 앞에서 예수님의 존재를 명확하게 느끼게 된 것이죠. 너무나 거룩한 존재를 만나게 되었을 때 그것을 감당할 수 없는 압박감에 눌리게 되는 거예요.

 성경에 자세히 묘사하고 있진 않지만 그 상황을 그냥 상상해 보면, 베드로가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질 때 어떤 마음이었을 것 같으신가요? 입으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 마음 속에 정말 완전한 믿음이 있었겠냐는 겁니다. 반신반의 하지 않았겠냐고요. 적어도 어느정도의 의심은 있었지 않았겠냐는 거죠.

 베드로도 어쨌든 예수님께 배를 빌려드렸기 때문에 군중들 속에서 예수님이 전하시는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좋든 싫든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었죠. 그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 보니 이분은 뭔가 다르긴 다른 것 같다 하는 생각이 들긴 들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선 뭔가 좀 상식과 이치와 이성에 맞지 않는 지시였지만 말씀대로 행동에 옮겨본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막상 물고기가 그렇게 많이 잡힌 것을 보고 나니까 예수님의 존재감을 완전히 느끼게 된 거예요. 이 분은 단순한 선생이 아닌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겁니다.

 반신반의 했던, 아니 어쩌면 의심 90%의 마음으로 그물을 던졌던, 아니 어쩌면 '너 이거 안잡히기만 해봐라. 아주 개망신을 줄테다'하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는 그 마음을 예수님은 다 아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을 것이겠죠. 그러니까 그 거룩한 존재에게 바로 엎드리게 되는 거예요. 자신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예수님 앞에 엎드린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절 하반부를 함께 읽겠습니다.

10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무서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너를 겁주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를 부르기 위함이라는 거죠. 그러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삶의 비전을 제시해 주시는 겁니다.

​ 우리 지난 시간에 '하나님의 빛'이라는 찬양을 같이 불러봤었는데요. 그 찬양의 가사를 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빛 앞에서 그 투명한 빛 앞에서 모두 드러날 나의 모든 죄와 허물' 어둠 가운데 있을 땐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나의 더러움이, 그 거룩한 존재 앞에 서게 되었을 때, 그 빛과 같은 존재 앞에 서게 되니 보이더라는 거예요. 내 모습이 너무나 부끄럽고 더러운 존재라는 것이 느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뒤에 나오는 가사를 주목해 봐야 돼요. '하나님의 빛 속에서 그 따뜻한 빛 속에서 모두 고쳐질 나의 모든 죄와 상처 그의 빛 속에서' 그 빛으로 인해 내 죄와 상처가 드러나서 너무 부끄럽고 숨고 싶은데, 그 빛으로 인해 나의 죄와 상처가 고쳐진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후렴 부분에 너무나 감동적인 가사가 이어집니다. '드러내어 징계함 아닌 드러내어 고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하나님의 빛. 드러내어 부끄럽게 하지 않고 더욱 단단히 만들 은혜와 사랑 전하게 할 하나님 그 빛' 내 죄와 상처를 드러내어서 징계하시려고 그것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어서 고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드러내어서 부끄럽게 하시려고 그것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더욱 단단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거예요.

​ 저희 딸 하엘이가 친구들이랑 놀다가 그랬는지 뭐하다 그랬는지 어딜 다쳐서 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소독도 안하고 밴드만 붙이고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아빠인 저는 그 밴드를 떼어 내고 소독약으로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바른 후에 반창고를 붙여주려고 하는데, 이 딸내미가 무섭다면서 꺅꺅 거리고는 아빠한테서 막 도망치는 거예요. 소독하기 무섭다고 울고불고 하는 겁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그걸 그 상태로 그냥 두면 그 상처가 어떻게 되겠어요? 곪는 겁니다. 나중에 더 큰 고통으로 커지게 되는 거예요. 아빠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내 사랑하는 딸이 더 큰 고통을 마주하게 하고싶지 않기 때문에, 그 상처를 고치기 위해 딸을 붙잡고 딸이 숨기는 상처를 꺼내고 거기에 소독약으로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주는 것입니다. 딸을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닌 거예요. 딸을 사랑하기 때문인 겁니다. 마지막으로 11절을 보겠습니다.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베드로와 그와 함께있던 동료들이 어떤 행동을 보입니까?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 거룩한 존재 앞에 온전히 서게 되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무가치하게 느껴진 것이죠. 진짜 가치를 만나니까 내가 쫓고 있던 가치가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진짜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이런 모습이 나타날 수밖에 없게 되는 거예요. 내 인생 전부를 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그렇겠습니까? 내 상식과 내 생각과 내 방법, 내 이성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일들을 행하시는 분이기 때문이에요. 내 삶을 얼마든지 뒤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분이시기 때문인 겁니다. 그런데 그런 능력을 가지신 분이 아무 보잘 것 없는 나를 부르시는데 어떻게 내가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진짜를 경험했는데 어떻게 가짜를 계속 바라보고 있겠냐는 거예요.

 베드로는 자신의 실패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피곤함과 무력감, 상실과 걱정, 근심과 아픔 가운데서 자신에게 찾아온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고 예수님의 말씀에 의심의 마음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죠. 그 결과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되었고, 예수님 앞에 엎드렸으며, 이전의 삶을 모두 다 내어던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실패 가운데서 지쳐있던 베드로를 예수님의 동료로 부르셨어요. 그리고 베드로를 부르셨던 그 사랑의 예수님께서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더이상 그 절망 속에 있지 말고, 더이상 그 실패 가운데서 좌절하고 있지 말고, 너의 그 모든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나에게 와라. 내가 너의 모든 짐을 대신 지어주겠노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그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서두에 루피의 동료들이 루피의 동료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조건 없이 신뢰하고 어떤 과거를 가졌든 상관하지 않아요. 동료의 꿈을 지지해 주며 그 비전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모든 위기의 상황에서 자신의 전부를 내어 던져서라도 동료를 지켜냅니다. 절대 동료를 포기하지 않아요. 이러한 선장이 나를 동료로 부른다면, 이 선장에게 내 인생 맡겨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루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예요.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동료로 부르시고 동료로 삼아주셨습니다. 동료로 부르신다는 것은 책임을 지겠다는 거예요. 동료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루피의 동료들도 보면, 모두 다 자신의 선장인 루피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루피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도 자신들의 목숨을 다 바쳐서 루피가 위기에 빠지면 루피를 지키려 하고, 함께 모험의 여정을 떠나며 서로의 꿈을 이뤄나가는 거예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을 위해 제자들도 자신들의 목숨을 다 바쳐서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꿈을 이뤄나갔던 거죠.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무런 보잘 것 없는 나에게 찾아와 주신 예수님, 날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주신 그 예수님의 동료가 되었다면 우리도 그에 맞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냐는 거예요. 그 예수님이 정말 어떤 사랑으로 나에게 오셨는지를 안다면 내가 어떻게 이정도의 믿음 생활을 할 수 있겠냐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의 동료로 한번 제대로 따라가 보자고요. 진짜 예수님의 동료다운 동료가 되어 보자는 거예요.​

 그렇게 예수님의 진짜 동료가 되어,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이끌어가실 것이며, 그 이끄시는대로 살아갈 때 너무나 영광스럽고 내 힘과 능력으로서는 체험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반응형